날마다 기적을 만나는 사람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Consider, when times are 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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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수의 강

2020. 12. 22.

 

제목 :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본문 : 전도서 714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싯점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면, 감사한 날도 있었고, 

기쁨이 충만한 날도 있었며, 곤고하고, 힘든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보면, 감사하고 기쁜 날 뿐만 아니라, 

하고 힘들었던 날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시냇가에 돌들을 치우지 말라

돌들을 치워 버리면, 시내는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돌들이 있기에, 

시냇물은 흘러가면서, 노래 소리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받은 고난들도, 

이와 같이 시냇가의 돌과 같지 않나 싶습니다.

굴곡이 없는 평온한 삶을,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하지만, 

그런 삶은 반면에 무의미하고, 

조롭고, 권태스러운 삶이 되기 쉽상 입니다.

 

2천년 교회사를 보아도,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에는, 

오히려 신앙이 견고해지고 부흥,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가 국가 권력의 보호를 받거나, 평안할 때에는 

'세속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개개인의 신앙도, 마찬 가지 입니다, 

예수 믿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초대교회 당시의 믿음이, 

가장 순수하고 열성적이었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땅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을 당시, 예수님을 믿으려면 

자신의 삶은 물론, 

목숨까지도 다 내려놓아야 할 만큼, 

온갖 고난과 박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배들은, 이 모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본을 우리들에 게 남겼습니다.


반면에, 오늘날은 믿을수 있는 여건이나 환경이 너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나 신자들이, 

이 사회에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복음'은 항상,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담는 부대인 사람들의 심령은, 

항상 새것으로 남아 있지 못하고 낡아져 갑니.

고린도 후서 4장16절 말씀과 같이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심령이 날로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서, 고난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고난을 피하지도 말고, 

불평도 하지 말아야 니다, 

도리어 이러한 고난의 때를 잘 활용하면, '믿음의 진보'를 이끌어 낼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러기 위해서 우리는 고난 당할때,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 시간 함께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고난을 만났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을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삶의 의미는, 오직 하나,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거나, 

엉뚱한데서 찾으려고 몸부림치던 사람은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삶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왜 사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의 때에는,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요나니느웨에 가서 외치라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는 배에 오르자마자, 맨 밑층으로 내려가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양심의 가책을, 그런 식으로 피해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요나는 죽을 고비를 만나자, 비로소 자신의 불순종의 죄를 깨닫게 되고, 

고기 뱃속에서, 정한 회개의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요나서 2장 2-9절에 나와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불순종하고, 영적으로 잠든, 

요나를 깨우셨습니다.

지금 고난을 만났습니까

고난의 때를,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인생의 좌표를 바로 잡는, 

유익한 회로 선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

 

셋째로, 고난의 때에, 더 성숙한 '믿음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욥기 1장1절을 보면,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사단이 모인 곳에서, 

사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욥이었지만, 

그에게 무서운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의 모든 재산을 잃게되었고, 열 자녀가 한꺼번에 몰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온 몸에 악창이 나서,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

그의 아내는, 욥의 비참한 모습을 보다 못해,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조소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욥도, 자기가 무슨 이유로, 고난을 당하는지 알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그러나 욥기 23장 10절을 보면, 

그는 믿음의 의인답게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어 나오리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그가 확신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을, 

순금같이 만드시 기 위해서, 연단을 허락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과 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도 때로는,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훈련시키듯이, 

난을 통하여, 우리를 단련시키십니다.

그런즉 고난이 다가올 때,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릇으로,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가 주님보다, 세상을 바라보며 의지할 때에, 고난이 옵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믿음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 24절에 말씀 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느니라, 하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무역을 하지 않았으나, 사람도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보내셔서,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하시는 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느냐 하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보내셔서, 

우리가 평소에 의지하던, 

모든 세상적인 배경과 물질을 끊어버리 십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바라보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 적은 없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을 위해 사는 데도, 고난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그 날부터, 

오로지 복음을 위해 살았지만,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고린도후서 1장8-9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얼마나 고난이 심했으면, 사도의 입에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다,고 까지 고백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어떤 연유로 인한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낙심하거나, 자신을 의지하지말고, 하나님만 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만사가 형통할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기 쉽습니다

다 자기가 잘나서 잘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만나, 인생의 쓴맛을 맛본 사람은

마음이 낮아져서,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이전에는 진수성찬을 놓고도 감사할 줄 몰랐는데, 

지금은 조촐한 음식 앞에서도, 

국이 다식도록 감사의 도를 드리게 됩니다

죽을병에 걸려 본 사람은, 

자기가 숨을 쉬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도 격해 합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아야 행복한 줄 압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 의식 때문에 불행해 합니.

이처럼 비교 의식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을 통하여 말하기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능력있고, 내가 지혜로워서 할수 있는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임할 때에, 

사도 바울과 같이 자족하는 마음으로, 감사할 때에 내 앞에 놓여있는 

모든 고난을, 능히 감당하고 극복하실수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기려면, 

자비가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조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 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잡혀 가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나님의 '인자하심'을 생각하고, 다시금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 애가 3:20-23을 통하여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 하시므로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로 고난당하게 하시는 그 자체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고난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복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 고 하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를 극렬한 풀무 불 가운데서 건지시고

'다니엘' 을 사자의 입에서 보호하셨던 나님께서, 

우리들도 현재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서, 능히 보호하시고 건져주실 것입니다.

 

올 한해동안, 나에게 다가왔던 이모양 저모양의 고난을 통하여, 

믿음이 진보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시편 119편 71절 말씀과 같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함으로, 

이 한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러내는 놀라운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