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기적을 만나는 사람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지혜롭게 사는자의 삶 (How can we live wis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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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전도서

2020. 7. 3.

 

제목 :지혜롭게 사는 자의 삶

본문 : 전도서 7;1-29

 

여러분, 혹시 수년 전에 상영되었던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참혹한 생활을, 적나라하게 잘 묘사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독일군 장교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에 가서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저 멀리 아래쪽에서, 

유대인 여자 한 사람이 짐을 운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독일군 장교는 돌아가서 장총을 가지고 나오더니, 

그 여인을 향하여 겨냥했습니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심심풀이로,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 참혹한 수용소 생활 속에서, 하루는 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독일군이 키우고 있던, 닭 한 마리가 갑자기 없어진 것입니다. 

독일군은 범인을 색출하겠다고 유대인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본보기로 맨 앞에 있는 유대인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그리고 고함을 칩니다. 

"닭을 들고 다니는데 못 보았을 리가 없어. 누구야? 빨리 불어! 

안 그러면 나올 때까지 차례로 한 사람씩 죽이겠다." 

그러나 모두가 공포에 질려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못 보았단 말이지?" 

그러면서 독일군 병사는 두번째 사람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나이 어린 소년 하나가 한 발자국 앞으로 자기 몸을 내밀었습니다.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너냐? 

네가 닭을 훔쳤어?"라고 독일군 병사가 호통을 쳤습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훔쳤는지 알고 있어? 

예, 알고 있습니다. 누구야?

그때 소년은 겁에 질렸으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바로 저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를 가리켰겠습니까? 

총에 맞아서 이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이야 이미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지혜로운 답변입니까?

나이 어린 유대인 소년의 지혜는 자기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또한 다른 유대인들의 생명도 구했습니다.

 

전도서 7장에서는, 지혜의 유익과 가치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혜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며, 보배로운 것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으며.

두 번째는,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 서 10;12절 말씀과 같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지혜를 얻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도덕적 타락과 부패로 말미암아, 

자기 능력과 노력으로는 참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지혜는 아름답고 소중하며 보배로운 것입니다.

(1) 지혜는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마지막 날을 예비하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트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 옥합 속에서 흘러내리는 보배로운 기름과, 

거기서 풍겨 나오는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향유냄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트린 일은, 

마리아, 란 이름과 더불어, 

지금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더 나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의 수단을 넘어,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대변하고 있어서,

자신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을, 

대단히 명예로운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기억되는 아름다운 이름은 언제 결정됩니까? 

죽는 날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출생하는 날입니까? 

가룟 유다(Judas Iscariot)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유다라는 이름은 "praise,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태어날 때는 얼마나 좋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습니까?

그러나 죽을 때 잘 죽지 못했기 때문에, 악취 나는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출생하는 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을 다 살고 난 뒤에 죽는 날 결정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초상집에 가면 아무래도 마음이 엄숙하고, 진지해지지 않습니까?

나도 결국은 이와 같이 죽겠구나. 

내 생명이 끝나는 날이 있겠구나. 앞으로 사는 동안 바르게 잘 살아야지.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겨야지. 

이런 마음이 절로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잔칫집에 가 보세요. 마음이 느슨하고 헤퍼집니다. 

술 마시고 떠들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죄 짓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닦아올 자기의 마지막 날을 예비하며, 

유익하고 보람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매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헛되고 허무한 육신의 쾌락을 즐기는 일에, 마음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2) 지혜는 우리의 삶을, 옳은 길로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진정으로 책망하고 충고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좋아합니다.

 

가시나무가 탈 때 뿌지직 뿌지직 하고 매우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장작불처럼 오래 가지도 못하고 금방 타 버리며, 

화력도 시원찮습니다. 

그러니 무슨 실속이 있겠습니까?

아첨하는 소리가, 바로 가시나무 타는 것과 같이, 

요란스럽기만 하지, 실속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뇌물은 의인의 눈을 멀게 하고, 

명철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충언과 책망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새 정부의 인사 청문회때, 

사람들의 탐욕과 뇌물 그리고 부도덕으로 많은 분들이 그간 쌓아놓았던

명예와 명성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패가망신당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접하고 있지 않습니까?

좋은 약이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좋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또 충언역이, 라는 말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와 책망을 들을 때에는 감정이 상하고, 

귀에 거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을 잘못되고 우매한 길에서, 

지혜롭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지혜는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은 아들을 되찾는 아버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몫을 챙겨서 먼 나라로 떠나갈 때, 

얼마나 당당하고 의기양양 했습니까?

처음에는 좋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형편없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되다 못해, 비렁뱅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끝이 시작보다 형편없이 추락한 처절한 실패의 모습입니다.

 

반면에 창세기 37장에서는, 

'요셉'이 노예로 애굽에 팔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든 고난과 시련을 다 이겨내고,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근에 허덕이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끝이 시작보다 훨씬 더 나아진, 위대한 승리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10:22에 보면,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환경이 열악하고, 과정에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겸손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면, 

일의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으며, 최후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어리석고 우매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우매자는 급한 마음을 가지며, 쉽게 노를 발합니다. 

성급히 화를 낸다는 것은 인격에 대한 통제를 상실한 것으로 

결국 죄악을 낳고 말게 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봐도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이런 말은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는 현재의 사명을 도외시하고, 지나간 시절만 생각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삶의 태도로, 

갈수록 전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는 말로, 

누워서 침 뱉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름다운 일의 끝을 생각하면서, 

매일의 삶에 묵묵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틀림없이 오늘보다도  더 나은 내일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가 여러분의 손에 안겨진다는 말씀입니다.

 

(4) 지혜는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속지 않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지혜와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와 물질, 이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이 더 소중합니까? 

지혜가 더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혜는 없고 물질만 있으면, 타락하기가  쉽습니다.

오히려 생명을 잃는 길로 나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미국의 신학자 라이 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라는 사람이, 

"The Serenity Prayer"라고 하는 기도문을 작성했습니다. 

 

여러분도 그 내용을 들으시면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O God, give us   Serenity to accept w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what should be  changed,   

And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그는 이 기도문에서 세 가지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첫째로,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옵소서.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고 순응할 수 있는, 

침착함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두 번째, 바뀌어야 할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비겁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그리고 바꿔야 할 것과 바꿀 수 없는 이 두 가지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통한 날을 주실 때가 있는 반면, 

곤고한 날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두 가지 일들을 번갈아 겪게 하시는 것은, 

이러한 갖가지 일들을 통해,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롭게 대처한다는 말은,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악을 행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이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통한 날을 주시기도 하시며, 

아울러서 곤고한 짐을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형통한 날이 왔을 때 자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압니다.

 

반면에 곤고한 날을 당했다 할지라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곤고한 날을 당했을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혜의 소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해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일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의인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형통해야 하는데, 

오히려 멸망하는 의인이 있다는 것과 

또 악인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잘못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악인이 형통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솔로몬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박국서를 보면, 

하박국 선지자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으며, 

시편 73편에서 아삽이 느꼈던 고민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고민에 대해서,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거나, 

스스로의 의를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내가 지혜롭고 경건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마땅히 제게 복을 주셔야 하지, 

왜 제게 이와 같은 어려운 고난을 주십니까? 하고, 원망하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패망케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죄를 짓고 악하게 살아도 얼마든지 형통하던데 뭐. 

될 대로 돼라. 

그런 식으로 죄악에 자기 몸을 내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양극단을 다 피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양극단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으로 믿고, 

경배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감히, 

자기의 의를 자랑할 수가 있겠으며, 

죄악 가운데 자기 몸을 내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이 고난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해 위의 영원한 세계를 바라볼 때에,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땅의 것은, 포기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십자가 푯대를 바라보며,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한 사람은, 

열 사람의 통치자의 힘을 뭉친 것보다도, 더 강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역시 인간은 죄인이며.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100% 선만 행하고, 

죄를 전혀 범치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다 불완전합니다. 

그러니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심정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어떻게 아름답고 소중한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까?

솔로몬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는, 

지혜를 얻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왜, 사람이 노력해서 자기의 힘으로는,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우리 인간의 머리로 통달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묘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와 명철은 유익한 것이고, 아름다우며 소중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의 반대가 되는 어리석은 것, 우매한 것은 

인생에게 해를 주는 악한 것이요, 미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우매함을 피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전도자는 인간이 모든 삶의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모든 어리석음과 우매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28절 말씀을 보면, 

솔로몬이 깊이 궁구 하는 가운데 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솔로몬은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숫자 대구법'을 이용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구나,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구나,라고 할 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은, 

남자든지 여자든지, 

일천 명에 한 사람을, 찾을까 말까 할 정도로 귀하다는 것입니다. 

못 찾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잘못 만드셨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에 순종해서 살기만 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꾀를 낸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왜 자꾸 꼬이고, 어려워지고, 복잡해집니까?

얄팍한 수를 쓰고, 잔 꾀를 부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야고보서 1:5 말씀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는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거나, 

책을 많이 읽고, 경험이 풍부하다 해서, 지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풍성한 지혜를 주셨던 것과 같이, 

우리 가운데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면,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하늘의 풍성한 지혜를, 우리 모두에게 

후히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