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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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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믿으면

2021. 1. 10.

 

요한 4장 23∼24절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할 때마다, '영과 진리' 로 예배해야 합니다. 

 

먼저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복을 받으려고 예배한다면, 그것은 

예배의 본질과 핵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되게 예배하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복은, 저절로 풍성하게, 

임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교회중 하나인, 시카고 인근에 위치한 윌로우크릭교회

(Willowcreek community church)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지난 30여년간, 소그룹(cell)과 현대적 예배의 한 형태인 소위, 

"열린예배"와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미국 교회 성장의 중심 모델이, 

되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핵심 사역자들이, 최근 3년동안 조사를 거쳐, 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이 보고서에 의하면, 이 교회의 사역자들은, 

"교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제자가 되는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며, 이제는 지금까지의 목회 방향을, 바꿔야 할 때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특히, 담임 교역자인 '빌 하이벨스' 목사는, 보고서를 접하면서 "충격적"이라고 

말하면서 "목회 잘못했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영적 성장"은, 훌륭한 교회 프로그램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기도와 성경읽기, 

그리고 예배와 교제 라는 원리에서 비롯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예배하는 모습도, 예전과 같지 아니하고, 많이 변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말은, 전통적인, 경건한 예배 모습을, 찿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기도와 설교는, 가능한 짧게 하고 있으며, 설교 내용도, 

듣기 좋고, 긍정적이며, 세상 중심의 실제적인 것들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팽배해져 있는, 민주화 사상과 개인주의 발달, 그리고 반지성적, 

실용주의와 낙천주의 풍토에서, 예배의 모습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 예배가 아니라, 개인의 욕구 충족과 교회의 외적 성장에 촛점을, 

맞추다보니, 듣기 거북한, 죄나, 심판, 지옥에 대한 설교는, 거의 하지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의 겉 모습은, 예전에 비해, 많이 웅장해지고, 화려해 졌지만, 

예배를 통한 변화는, 그리 신통치 않아 보입니다.

아마도 예배의 본질을 외면한체, 외적인 성장을, 교회성장으로, 잘못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어 집니다.

이제는 이 시대의 교회도, 교회 성장과 부흥에 관한, 프로그램을 내려놓고, 

기복주의를 벗어 던지고, 예배의 개혁을 통하여, 영적으로 충만하며, 말씀이 

살아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첫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예배하는 장소인,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후에, 갈릴리로 돌아오시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경유하여, 가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서로 상종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서, 

멀리 다니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시면서,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셨습니다. 

그 까닭은, 예수님이 그 곳에 사는,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을 구원하셔서,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누가 19장 10절 말씀을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러면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우리를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참되게 예배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가 왜 구원받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시대를 여셨습니다.

먼저, 23절 전반부 말씀을 보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 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성경을 살펴보면, 우리 성경과 조금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그 때에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느니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째튼, 우리 성경이든, 헬라어 성경이든, 똑같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로 “때”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 드려진 예배,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드려진 모든 예배는, 

참된 예배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시대가, 열려진 것을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 4장19절 말씀을 살펴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일과 그리고 영적인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의 불행했던, 과거와 현재를,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선지자로 생각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어디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지, 

요한 4장 20절 말씀과 같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기서 “우리 조상들”은 사마리아인들 이며, “당신들”은 유대인들 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어디서, 드려야 합니까?

예배는, 아무 곳에서나 드려도 되는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12장5절 말씀을 보면,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드리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 에서,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예배한 까닭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의 오경만, 성경으로 여겼습니다. 

신명기 11장29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그리심 산 에서 축복을, 에발 산에서, 저주가 선포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이후로, 축복이 선포된, 그리심 산이, 사마리아 사람의 예배처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구약성경 39권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역대하 6장 6절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는, 지금 어디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지를, 

예수님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요한 4장21절 말씀과 같이, 뜻밖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요한 4장2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이 말씀은, 예배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선언적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짐승을 죽여, 제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그런데 주후 70년, 로마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 산에서, 살육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그리심 산에서도, 또한 예루살렘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짐승을 죽여, 하나님께 드린 예배는, 

다만 참된 예배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자신을, 영원한 제물로 드림으로, 

더 이상 짐승을 죽여, 제사하는 일을, 필요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의해서, 옛 언약 시대의 예배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 대신, 새 언약 시대의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 14장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길이십니다.

여기서, 헬라어 성경을 보면, “길”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있습니다. 

“그 길”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길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시대를 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되게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법을, 밝히셨습니다.

본문 요한 4장 23-2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아버지는, 예수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은, 영원토록 하나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부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시대를, 

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법이, 어떠한지도 밝히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씀이,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려면, 

두 요소, '영과 진리'가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과 진리" 두 요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려면, '영'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우선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이 때 “영”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영은, 우리 '인간의 영'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23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인간의 요소를, 

"영과 혼과 몸" 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참된 예배는, 몸으로 드리는 피상적인 예배도 아니고, 

혼으로 드리는, 감정적인 예배도 아니며,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배를 뜻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말하자면, 사마리아 여자는, 그리심 산이든지, 예루살렘이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려면,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심 산이냐, 예루살렘이냐,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예배하든지, 영으로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이, 이 곳에 앉아 있다고해서,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신실한 마음으로, 예배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는, 우리의 혼으로 드리는, 

감정적인 예배도 아닙니다. 

사람의 감정은, 기복이 심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변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거나, 감정을 앞세우는, 예배는, 

그것 또한, 참된 예배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설교를 유머러스한 말로, 웃기고, 재미있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감동적인 예화로, 눈시울을, 적시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설교를, 잘 들었다고, 은혜로웠다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참된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신실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예배는, 비로소, 하나님이 시쁘게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 15장8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당시 유대인들은, 영으로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영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려면, '진리' 로 예배해야 합니다. 

아무리, 영으로 뜨겁게 예배하더라도, '진리'에 어긋나면,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려면, '영'으로 예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진리'에 부합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한 18장38절 말씀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예수님께, '진리' 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요한 17장17절에,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든지, 또는 예배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잘아는, 텍사스의 레이크 우드 교회의 죠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는, 

거의 말씀이 없습니다. 비록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할지라도, 결코 참된 

예배라고 할수 없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게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 아래에서, 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서 그것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신이라 하면서, 섬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뜻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하여도,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아무리 열광하며 섬겼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될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카톨릭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리아상을 만들어 예배하는것, 결코,

참 예배가 될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단들이 드리는 예배가, 겉으로 보면, 뜨겁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참되게 예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진리로, 예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한 14장6절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없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는,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참된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거부한다면, 그들의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예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려면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예배에는, '영과 진리' 이 두 가지 요소가, 다 포함됩니다. 

이 두 가지 요소 가운데, 한 가지라도 빠지면,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요한 4장22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이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사마리아인들을 가리키며, “우리”는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의 오경을 제외한, 다른 구약성경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영으로 예배했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진리로 예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진리로,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입술로만 예배하고, 영으로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배도, 참된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려면,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할 때마다, 우리의 영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 안에서, 참되게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 4장23-2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1)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해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이유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 자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말라기 1장8-10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는, 흠 없는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처럼 흠이 있는 짐승들은, 총독에게, 세금으로도 바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마지못해, 시늉만 했지, 참되게 예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들은 뻔뻔하게도, 하나님께 은혜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살랐습니다. 

그들은, 헛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예배도,

받지도 않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예배를 드린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

둘째,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결코 어떤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리심 산에만, 계신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에만 계신 것도, 아닙니다. 

예레미야 23장 24절 말씀을 보게되면,

하나님은, 실로 온 천지에, 충만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편 139편 7절 이하에서도, 

하나님은 어디나 갈수 있으며, 어느 시간에도, 있을수 있으시다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20장23절이하, 말씀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람의 벤하닷 왕이,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그때,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렇게 아룁니다. 

이스라엘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 

 

아람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산의 신' 이며, 그들의 신은, 

'골짜기의 신'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람의 왕이, 두번째로,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의 말대로, 평지에서 싸웠습니다. 

그런데도 아람이, 또,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산이든지 골짜기이든지, 땅이든 바다든,

늘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기 때문에, 어느 곳에든지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들의 마음의 중심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예배를, 드려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언제나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 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시대를, 여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법을, 밝히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참되게 예배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예배는 하나님이 아닌,  성공문화와 오락문화에 익숙한, 인간의 삶에, 

촛점을 맞추다보니, 거룩함과 경건함이 실종되어 버리고, 단지 기계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을 뿐 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아닌,

단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추구하려는예배로, 전락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하나님을 만날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감성, 지성, 의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할수 있게 된다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종교개혁자 John Calvin 이라는 신학자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해서 하나님 중심예배 순수한 성례를,

그리고 성경적인 삶 참된 예배의 기본으로 삼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한 영과 진리로 드리는,

하나님 중심 예배로예배가 바뀌고 개혁 되어질 때,

이 땅의 교회들이 십자가 복음 위에, 다시 한번, 굳건히 세워질 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영과 진리로 예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 바른 예배를 드림으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풍성히 받고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