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기적을 만나는 사람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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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수의 강

2021. 2. 22.

요한 14장 1-6 절 

 

요한복음 14장은, 일명 “위로장”(the comfort chapter)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요한 14장에는,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서 유월절 만찬을, 드셨습니다. 

요한 13장 30절 말씀입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과 열 한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마태 21장 8-9절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매우 들떠 있었습니다.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큰 영광을, 받게 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 12장 24절 말씀을 보면, 뜻밖에도 예수님은, 

자신이 곧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님은,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만 이 세상에 남겨놓으시고, 자신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잃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게다가 제자들은, 조금 전에, 예수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마음만 가졌지, 실제 행동으로는, 그것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내용과 같이, 그들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서, 서로의 발을, 

씻겨주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발을, 씻기도록 만들고 말았습니다.

거기다 더해, 예수님은 뜻밖에도, 요한 13장 21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누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룟 유다가, 자리를 뜨는 것을 보면서도, 달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한 13장 29절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 가운데서, 모든 면에서 으뜸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요한 13장 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그러하다면, 다른 제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없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마음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에 있는, 근심을 아시고,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으십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에 의해서,

배신을 당하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리라는 것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잡히실 때에는,

나머지 제자들도 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날 것임을, 예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홀로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짊어진, 인류의 모든 죄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에게서도,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도 크셨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는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전연 없으셔야 했던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에는, 아랑곳하시지 않고,

오로지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데만,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 13장 1절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렵고, 환경이 열악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라(His presence, 1절).

둘째,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어라(His promises, 2-3절).

셋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믿어라(His Person, 4-6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했습니까? 

그것은 제자들의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보다는, 자신들의 

당면한 문제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부족할 때, 우리 마음에, 이런저런 근심이, 

찾아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확고하게,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 14장1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에 “믿다”라는 동사가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앞에 사용된 동사는 하나의 사실(fact)입니다. 

그곳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명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뒤에 사용된 동사는 하나의 명령(command)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런 뜻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듯이 또한 나를 그렇게 믿어라.”

제자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믿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신명기 31장 6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이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시더라도,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믿음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시면서,

너희를 돌보고 계심을 믿고 있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내가 너희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너희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라.”

 

예수님은 여기서 “믿다”라는 동사를, 현재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의 믿음과는 좀 다른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것에만 머무르지 말고, 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살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의 믿음은, 그러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던 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을 때, 도마가 어떤 말을 했습니까? 

요한 20장 25절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제야 도마는 그에게 있었던 모든 의심을 다 떨치고서, 예수님은 자신의 주시며, 

자신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도마에게, 요한 20장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들의 믿음이, 눈으로 보고서야 믿는,

낮은 수준에 머물지 않고, 보지 못하고서도 믿는 높은,

수준에 올라가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요한 16장 13-15절에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사역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사역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성령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마치 성령님이 제일인양

성령님만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하시는 사역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인데, 

성령님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예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충분히 받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내 눈으로 좀 볼 수만 있다면, 내 믿음이 매우 확실해질텐데.”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실 수는 없으실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육신을 가지셨을 때는, 물론 제자들과 함께 계실 수는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에 한 장소에만 국한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언제나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처럼 제자들의 눈에, 보이시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님이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처했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모든 근심을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 요한 14장 2절의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내 아버지 집”은 어디를 가리킵니까? 

하늘나라 곧 천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은 천국을 여러 가지 다른 말로서 표현을 합니다. 

우선, 천국이 천국 곧 하늘나라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곳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상반부 말씀입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고후12장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천국을 가리켜서, "셋째 하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첫째 하늘은 대기, 둘째 하늘은 우주, 그리고 셋째 하늘은 천국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신 후에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마가 16장 19절입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이처럼 천국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천국이라고 불립니다. 

또 천국은 하나의 성(城, city)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하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서는, 천국을 가리켜서,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또한 누가 23장 43절에서는 천국은 “낙원”(樂園, paradise)이라고도 불립니다. 

그곳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는

천국을 가리켜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천국은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는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따라서 대통령이 살고 있는 청와대를 방문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아마도 부모님은 그 어린아이에게 신신당부를 할 것입니다.

“얘야, 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그곳에서는 함부로 장난을 치거나 까불어서는 안 된다. 

그곳에 있는 물건도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점잖게 행동해야 한다. 알겠지?”

그러면 그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곳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은 너무나도 평안한 곳입니다. 그곳은 우리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천국에는 큰집도 있고 작은 집도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물을 하늘에 많이 쌓은 사람은 큰집에서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작은 집에서 살아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런 뜻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큰아들이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집 한쪽에 새로운 방을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그 방에 큰아들 가족이 살게 합니다. 

또 둘째 아들이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또 다른 쪽으로 새로운 방을 만듭니다.

그 새로운 방에는 둘째 아들 가족이 살게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가운데 있는 거실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빙 둘러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뜻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따로 따로 각기 다른 집에서는 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한 집에서 평안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아버지 집이라고 부르시면서 그곳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곧 하나님 아버지의 집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만큼이나 넓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 사람들이 꽉 차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곳이 얼마나 넓은 곳인가를,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를 우리에게 말씀해주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을 토대로 해서 천국에서는 각자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어느 정도일까 계산해 보았습니다. 

한 스다디온은 약 185m입니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은 2200km입니다. 

천국은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2200km가 됩니다. 

물론 천국에는 생명수 시내가 흐릅니다. 생명나무들도 있습니다.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된 길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천국의 공간 가운데서 약 25% 정도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거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가정을 했습니다.

 

아담 이래로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아온 사람들의 수는 약 400억 정도가 된다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지구상에 살게 되는 사람들의 수를,

넉넉잡아 1000억이 된다고 가정을 해봅니다. 

그 가운데서 약 20% 정도가 구원을 받는다면, 200억의 사람들이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수치들을 놓고 계산을 해보면,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한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대략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500m인 공간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충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울러 천국에서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요한계시록 21장 1-4절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천국은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아픔도 없는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히 돌보아주시는 곳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1장 18절을 보게되면,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혹시,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세상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런 것을 만드실 수 있으십니다.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21장 19-23절을 읽어봅니다.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그 어떤 건축가나 실내장식가가 예수님과 견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처소의 아름다운 광경은 사람의 말로는

가히 표현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예수님이 그저 듣기 좋으라고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요14:2 중반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오늘 본문 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참된 것만 말씀하십니다.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천국이 존재하지도 않고, 영화롭지도 않고, 거할 곳도 많지 않다면,

진리이신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만큼은

그 사실을 말씀해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2절 하반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이 아버지 집으로, 곧 천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은 제자들을 버려 두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시기 위해서 하늘나라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제자들이 듣게 되었을 때, 얼마나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위로의 말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영접하여

그곳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천사와 같은 다른 이를 보내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자기의 어린 아들을 차에 태우고 가다가 공원어귀에 내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가 잠시 손님을 만나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공원에서 놀고 

있으라고 일렀습니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손님을 만나고 돌아오는데 그만 자동차가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너 댓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되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벌써 밤은 깊었습니다. 

그때까지 아들은 아무도 없는 공원 입구에서 휘파람을 불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미안하기는 왜 미안하세요? 아빠는 말씀하신 대로 오셨지 않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은 많이 흘러 주변은 어두워졌습니다. 

혹시 예수님이 자신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계신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여전히 믿으며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가 되면,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하여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 못지 않게, 우리에게 오시기를 바라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다. 

요한 17장 24절 입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곧 오실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들이 거의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듣는 데서,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7장 33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아버지 집으로, 곧 돌아가게 되었노라. 

너희도 아버지 집으로 오는 길을 알고 있으니,

장차, 우리 모두는 아버지 집에서 함께 만나, 영원토록 같이 살게 될 것이니라.”

그러자 열 한 제자들을 대표해서 도마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무슨 뜻입니까?

도마는 지금 이렇게 예수님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시기 위해서 동쪽으로 가시는지, 서쪽으로 가시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도 안 계신데, 어찌 우리 홀로 아버지 집을 찾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있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할 필요는 전연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첫째 하늘은 어떻게 지나가며,

둘째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은 어떻게 어디로 지나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로 가야하는지 염려할 필요가 전연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이유를 3절에서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에게 다시 오셔서, 그들의 손을 붙드시고

친히, 그들을 아버지 집, 곧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써 천국 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이끌고, 천국으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낯선 곳으로 갔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길을 잘 몰라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마침 잘 되었군요. 지금 제가 그곳으로 가고 있는 길입니다.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 저와 함께 가세요.”

그러면 얼마나 손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오른 쪽으로 얼마 가서, 왼쪽으로 돌고, 한 참 가다가 무슨 건물이 나오면

또 우회전을 해서 얼마쯤 가면 거기가 원하는 곳입니다.” 

그렇게 방향을 설명해주는 것보다, 직접 안내해주는 것이, 얼마나 더 쉽습니까?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으로 가는 방향을 말씀해주시는 대신에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의 손을 붙들고, 직접 아버지 집으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이 얼마나 큰 위로의 말씀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어떻게 될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친히 우리를 영화로운 아버지 집으로, 인도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화로운 아버지 집에서,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잃은 모든 것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되찾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첫째,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을 믿어라”(His presence).

둘째, “내가 너희에게 한 약속을 믿어라”(His promises).     

셋째, “내가 누구인 지를 믿어라”(His Person).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믿고 신뢰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큰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의 위로하심이, 언제나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