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홍보-귀농사업발굴-상품-부동산

관광개발, 미디어홍보, 생태농업,귀농사업, 귀농교육,기술보급, 031-410-0706

조선의 천재화가 단원김홍도가 표암강세황선생으로부터 그림공부를 한 안산의 경성당

댓글 0

관광명소안내

2012. 8. 7.

 

 

 

 

사진 : 경성당(안산부곡동 소재) 좌측에 김홍도가 마시며 공부한 옷나무 고목의 뿌리에서 나오는 유명한 "옷나무 우물"이 있음

 

조선시대 4만권의 책중 2만권의 책이 안산의 경성당과 청문당에 있었다.

사진의 경성당은 약 1만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조선의 천재화가 단원김홍도는 어릴때부터 청년기까지

10년이상을 표암강세황 선생으로부터 이곳 경성당에서 그림과 서예를 익히며 농사를 짓다 정조임금의 부름을 따라

입궐, 도화서에서 정조임금의 명을 받아 일본과 중국 금강산등을 도는 폭 넓은 활동을 하게 된다.

일본의 미술계에서는 김홍도가  "도슈샤이샤라쿠"라는 암호명로 신분을 위장하여 일본을 정탐했다는 설이 있으나 진위여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사진 : 청문당(부곡동소재)

이 곳 청문당과 경성당은 불과 수백미터 인근에 있으며, 이곳 "청문당"과 "경성당"에는 각각 1만여권의 책을 보유중이었으며,

조선시대에 정치 사회적으로 한국 정신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호이익기념관 자료참고 http://seongho.iansan.net/00_main/index.jsp  ) 

 

 

안산옛길답사 - 성태산성-경성당-청문당 동영상보기


 

 


 

 

----------------------------------------------------------------------------------------------------------------

 

Prolog
세상의 역사는 시간을 따라 흐른다.
고통의 시간이었든, 평화의 시간이었든, 그것은 역사에서 한가지 사건일 뿐이다.

역사의식은 오늘을 내일로 연결하는 생각과 삶의 통로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모든 후손들의 기억에서 사라질뿐이다. 안산의 성태산성과 만권당은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못한 역사의 극명한 사실성을 일깨워 준다.

안산투어는 "(사)단원과 수평"과 함께 안산의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묻혀진 우리지역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깊은 고뇌와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5천년의 유구성을 부인하고 20년의 역사만을 강조해온 우리에게 조상의 기록들은 생생한 모습으로 어제의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역사는 오늘이다. 오늘의 기록이다. 기억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후손들로 하여금 오늘의 우리를 까마득히 잊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무지이자 자성이어야 한다. 함께해 주신 지역사연구모임 "단원과 수평"의 여러 회원들과 김각곤국장, 변함없는 관심으로 지역사연구을 하고계신 안산문화원의 정진각 선생, 그리고 살아 있는 역사를 강조하며 열변을 토해주신 전 문화원장이신 유천형 선생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조선왕조 정신문화의 상징인 규장각의 원서를 소장하고 성호 이익선생과 표암 강세황 선생의 정신문화를 꽃 피
우고, 단원김홍도선생의 그림교육의 시초가 된 만권당의 두 주인공, 경성당과 청문당에 감사드린다.

- ansantour -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 천년의 역사가 살아 나오다! 일동의 "성태산성"

10월 초순을 넘기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일동의 안산1대학 캠퍼스를 휘돌아 불던 날, 우리는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과 함께 향토사연구가인 전 문화원장 유천형선생, 안산문화원의 지역사연구가 정진각선생, 그리고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 활동하는 사단법인“단원과 수평”의 김갑곤국장등 10여명의 지역문화에 관심있는 특별한 시민들이 안산 일동으로부터 부곡동으로 이어지는 약 8킬로의 수리산맥을 따라 역사탐방에 나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안산은 천년의 역사와 고도의 전설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자연유산으로부터 선조유산에 이르기까지 백악기와 쥬라기를 넘어 고려와 백제시대를 지나 조선왕조와 일제침탈, 전쟁과 해방이라는 우리민족의 역사흔적이 곳곳에 숨어 있는 고장이다.

일동에 자리잡은 안산1대학 캠퍼스를 돌아 뒷산으로 접어드니 가파른 산등성이 일행을 맞이한다. 산기슭 정자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가을의 야생화가 고즈녁한 산중을 무척이나 정겨운 분위기로 인도한다. 앞서가던 전 안산문화원장 유천형 선생이 짐짓 벼랑아래 산자락을 가리킨다. 얼핏 눈에 보이지 않는 바위 무더기를 내려다보던 유천형선생이 “이곳이 바로 10년전에 발견된 천태상성입니다.”라고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한다. 신라를 거쳐 천년을 잊혀져온 고성(古성)의 존재가 우리의 무관심을 탓하기라도 하듯 눈 앞에 다가선다.

한양대학교 배기둥교수가 8년전에 용역조사를 거쳐 그 실체가 드러나 성태산성은 왜구에 시달리던 강화도를 피해 이곳 안산읍성을 통해 중국과 남방국가로 나가는 해양루트의 길목이었기에 그만큼 왜와 청의 침범이 빈번했었나 보다. 안산시가 천년의 성태산성을 지역문화의 성지로 삼아 시민들과 후세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물려줄 날을 기원해 본다.

2. 고향의 산책길, "바지고개"의 전설

어느지역이나 그렇틋이, 이곳 성태산의 고지들도 언제부터인가 여기저기 애칭이 붙여져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겨 놓았다. 때론 기록이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임의로 붙여놓은 탓에, 언쟁(말)도 있고 논쟁(글)도 있지만, 모두가 우리지역의 정서와 삶의 역사가 아니던가!. 유천형 선생은 “바지고개”의 이야기를 옛날 조선시대에 성태산 길에 도둑이 많아 웃저고리를 잊어버린 채 고을로 내달렸던 소장수와 해물장수의 이야기를 하면서 환한 웃음을 짓는다. 이에 질세라 역사역구가인 정진각선생도 바지를 잊어버린 것도 재미있지만 바지개나 받이가 변형된 말이 아니겠느냐며 나름의 이유를 설명한다. 함께한 이들이 이같은 풍자에 말을 잊고 재미있다는 듯 눈들이 초롱초롱 하다.

안산지역은 수리산맥을 통해 남북과 동으로 이어지는 산길루트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수리산은 본래 "독수리"의 "수리"를 의미하는 단어로서, 마치 조정을 독수리와 같은 날카로운 부리의 모습으로 노려본다고 하여 “수리산”이라고 붙였는데 실지 수리산 정산바위를 보면 서울을 향해 독수리의 부리와 같은 모습의 바위가 금방이라도 날아올라 쪼아댈 것만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구전과 미신이 사실처럼 통했던 옛날의 정서를 알 만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곳 안산지방은 地天明의 지혜를 가진 정치인과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많이 배출된 곳인가 보다!.

3.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던 성태산 시루봉

사람의 마음은 자기일이나 자기지역과 연관지어 생각하기를 좋아하나 보다. 유천형선생이 성태산 봉우리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며 “이곳에서 앞쪽으로는 표암 강세황선생의 집이 있었고, 우측으로는 만권씩의 책을 간직한 경성당과 청문당이 있어 강세황선생과 김홍도가 곧잘 이곳 성태산에 올라 서호(지금의 시화호)를 바라보며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사실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심증과 물증은 반드시 같을 이유는 없다. 이곳에 살았던 강세황선생과 청년 김홍도가 이곳을 올라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노적봉 산 위에서 월피동과 고잔들녘을 바라보던 김홍도가 황포돗단배가 드나들던 월피나루를 그림그리고, 성포동이나 대부도에서의 대나무발 가두리잡이 그림의 영감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실학사상을 세상에 펴신 성호 이익선생과, 글과 그림을 가르치던 선비학자 강세황선생 그리고 조선의 3대 화가인 단원김홍도가 이곳에서 달과 바다를 보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두근거린다.

떠 오른 시한수를 읋으며.. 

 

비원에서 -ansantour-

고즈녁한 우중오후 도심 속 궁내를
자조와 비탄으로 되새김치며
새소리 벌레소리에 숨 죽이는 날

지난날의 영화로움 간 곳이 없어
찌든 역사 멍든가슴 흔적을 찾네

낯 모를 이방인들 이 곳을 찾아
새삼스레 옛 정취에 미소를 짓고

어린아이 우는 소리 역사를 깨워
무심한 우리들을 채찍질 하네


4. 산에 잠들어 계신, 독립만세를 주도한 안산의 유익수선생

일동에서 출발한 답사길의 마지막인 정재초등학교로 가는 내리막 길에 독립만세의 주역인 유익수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유익수선생은 고종 7년인1870년 지금의 부곡동에서 태어나 일제하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암면과 군자면, 수원군 반월면(半月面) 등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살이로 병을 얻어 1926년 사망한 분이다. 옛길답사를 목적으로 한 길이었으나 유익종선생의 조카인 유천형선생의 안내를 전해들은 우리는 멀게만 느껴지던 안산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어렴풋이나마 실감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선생도 3.1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에 10살이었으므로 항일민족독립의 정신이 싹트기 시작하여 이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흐른뒤 안산의 샘골(지금의 본오동 상록공원)에 손수 강습소를 짓고 오야마로 대표되는 일본 정보경찰의 감시를 받아가며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하여, 최용신선생이 사망한 해인 1935에 샘골을 찾은 당시 항일문학가이자 영화감독이자 시인이요 소설가인 “심훈”선생으로 하여금 소설“상록수”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남기게 된다.

5. 김홍도가 드나들던 만권당의 역사를 돌아보며

수리산자락을 내려와 정채초등학교를 돌아 수인선산업도로를 우측으로 돌아 조금내려가니, 부곡동으로 접어드는 “청곡길”이라는 4미터 내외의 작은도로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수인산업도로의 작은 표지판에는 “경성당”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십여분을 걸어 올라가니 고속도로 아래로 작은 터널이 보인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소를 기르는 우사가 있다. 소똥 냄새를 맡으며 30여미터를 오르니 갑자기 멋진 한옥이 나타난다. 집의 대문이며 툇마르며 기둥에는 온통 글씨로 가득하다.

경성당!
이곳이 바로 조선왕조 시대에 일만권의 책이있던 만권당 즉, 경성당과 이웃의 청문당이다. 이 두 곳은 불과 300여미터 남직 지근거리에 위치하고, 각각 1만권의 책을 보관(직접연구하고 쓴 책)하고 있었으니 조선말기에 실학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1만 권의 서책을 지닌 곳이 전국에 4곳뿐이었다는데, 그 가운데 2곳이나, 그것도 서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조선을 통틀어 절반이상의 책이 있었던 것이다.!


山高華帽峰下居簪纓之族村深覆釜谷中有鐘鼎之家

(높은 산 화모봉 아래 빗살처럼 모여 사는 한 가문, 이들이 사는 깊은골 부곡에는 집들이 솥발처럼 들어섰구나)

툇마루 위에는 건축사를 기록한 경성당기록(竟成堂記)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경성당이라는 명칭이 적혀 있었다. 이 집은 김가진이란 분이 지은것으로서 그는 1846년에 태어나 1922년 상해에서 사망하였는데 안동 김씨로서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한 분이라고 한다.

이 집의 역사는 柳重序(1779~1846)라는 분이 아들(1823~1887)의 살림을 내주면서 지어준 집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복원한지 약 200여년이 된다고 한다. 현재는 안산시의 초대 문화원장을 지내시고 반월공단 조성시 지역문화유적 조사를 총괄하신 유해역선생을 이어 안산시사 3권을 편찬하신 아들 유문형선생이 사셨던 곳으로 "안산시사" 편찬 후 2000년에 타계하여 안산시 향토문화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현재 이 집을 지키고 있는 유문형선생의 부인이신 권보남 선생이 이곳을 찾는 왕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집의 외부 기둥에는 특이한 문구들이 보인다. 宣廟賜牌之局寸土勿輿於他人(할아버지께서 주신 땅은 한 줌도 남들에게 주지 말라), 星祖定礎之基十世相傳于後裔(성조께서 터 잡으신 곳을 후세까지 보전하라)는 글자들이 적혀있어 이 집과 터를 아끼고 보존하려는 선각자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마당 한켠에는 맛있는 물이 펑펑 솟아나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바로옆 옷나무 뿌리아래서 솟아나고 있는데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는 옷나무샘물은 위장병에 좋은 효험이 있다고 하여 안산시민을 물론 서울등 인근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물을 얻으려 찾아와 경성당보다도 더 유명해진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6. 경성당과 청문당, 그 찬란한 정신문화의 보석

경성당과 청문당은 조선시대에 규장각과 더불어 각각 1만권의 책을 보유중이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 권보남선생이 사시는 경성당과 불과 3백여미터 떨어진 청문당에도 1만권의 책이 있었다고 하니 당시 책을 만들기조차 어려운 시대로서는 2만권이라는 숫자는 가히 놀랄만한 장서가 아닐수 없었다. 이 책은 성호이익선생으로부터 한양에서 내려온 표암 강세황선생과 동네 코흘리개들을 모아 글과 그림을 가르치던 강세황선생의 눈에 띄게된 단원김홍도(어릴적 호는 “서호 김홍도”)등 당대 유명한 문인과 사상가 및 화가를 낳은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경성당의 권보남선생에게 인사를하고 나와서 불과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동쪽편에 있는 청문당으로 들어섰다. 이 곳은 안산시가 새로 보수한 이후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경성당과 사람이 살지 않는 청문당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왠지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삭막한 옛날의 적막함만이 흘러나온다. 일행이 들어서니 여기저기 거미들도 도망을 친다. 경성당과 같은“ㅁ”형의 안마당에는 우물이 있었다. 과거 화려했던 시절 수많은 선비와 학생들이 들락거리며 만권당의 글읽는소리로 가득했을 것을 생각하니 세월의 흐름이 참으로 무상하기만 하다

후손이신 유천형 선생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건강한 목소리와 정확한 기억력으로 방문자들의 질문이나 역사적 사건과 지역의 특징과 유래를 빠짐없이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역사기록의 전문성이 절실함을 새삼 느껴본다. 기록이 없이는 아무것도 추측하거나 연구할수 없다는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가져본다.

우리 안산시는 이처럼 한민족의 유산으로 자랑할만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지역문화의 발전에 활용하지 못하는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 흔한 시티투어 관광객들이 한번도 강세황선생과 김홍도가 공부했던 중요한 역사속의 실제현장을 둘러보지 않았고 시민들에게 홍보하지 않았으니 행정에서의 역사는 그저 잠자는 시간에 불과한것인지 궁금하지 않을수 없었다


----------------------------------------------------------------------------------------------------------
epilogue

-사라져 가는 노인은 투표권이 있으나 미래자원인 문화재와 청소년은 투표권이 없다-

어느 지역이나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고장의 자긍심이 있다. 우리 안산시도 우리고장의 인물이나 역사에 대한 수많은 자료와 자랑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기록과 묘소에 존재한다. 살아있는 실존은 정적인 역사로 존재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문화는 갈도 닦어야 한다. 끊임없이 들추어내고 살아가는 생활과 교육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지역의 위대한 선각자들을 외면하고 있을 때, 오늘의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으며 후세의 기록에서 소멸되어 간다. 오늘의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이다. 새로운 이벤트성 문화를 강조하기 이전에 세계와 나라를 호령했던 우리지역의 인물들을 찾아가 보자 아니 찾아내 보자.

우리가 우리시의 역사를 20년이라고 강조하는 순간 우리민족사를 빛낸 위대한 정신문화는 소멸되어 간다. 성태산성이 불필요한 정책에산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며, 선인들의 생가가 문화복원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정치와 정책이란 보이는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가 시민정서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야 한다.

한 시민이 역사의 현장을 들러보며 눈물과 한숨을 쉬고 합장을 하는것을 보았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경외심이다. 유구한 세월은 위대한 인물만큼이나 경외감과 숭배성을 갖는다. 인공적인 행사와 이벤트가 난무하는 이시대, 문화도시와 소프트파워를 꿈꾸는 미래도시 안산시가 역사를 통해 도시문화의 위대성과 정신문화의 선진도시로 나아가길 기원해 본다.

지역문화테마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한다. 우리를 알려면 지역문화를 알아야 한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해진다. 함께 해주신 단원과 수평 문화연구시민들과 열정을 다해 역사를 일깨워주신 유천형선생께 감사드린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지도해주신 정진각선생과 김갑곤님에게도 감사드린다.

-끝-

 

----------------------------------------------------------------------------------------------------------

관련자료가기

성태산성 영상과 글 보기
http://www.camuser.kr/?document_srl=32466&mid=hdv_video  

성태산성 복원에 관한 안산시청 민원글
http://iansan.net/01_sub/body02_02.jsp?NT_ID=251&SEQ_ID=81998&flag=VIEW&page=-5  

유천형 전 문화원장의 기고문 - 성태산성을 복원하자
http://ansan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35  

안산의 옛길걷기 여행-청룡사와 천태산성 답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77935 

안산지역사 연구모임 - 천태산성에서 청문당까지 답사기행문
http://cafe.daum.net/ansanhis/Btth/30?docid=1EFc4|Btth|30|20100606122104&q=%BC%BA%C5%C2%BB%EA%BC%BA&srchid=CCB1EFc4|Btth|30|20100606122104  

http://cafe.daum.net/ansanhis/Btth/32?docid=1EFc4|Btth|32|20100719170643&q=%BC%BA%C5%C2%BB%EA%BC%BA&srchid=CCB1EFc4|Btth|32|20100719170643  

http://cafe.daum.net/ansanhis/BtXY/5?docid=1EFc4|BtXY|5|20080618092413&q=%BC%BA%C5%C2%BB%EA%BC%BA&srchid=CCB1EFc4|BtXY|5|20080618092413

http://cafe.daum.net/book-read/Qzs1/444?docid=1FKwY|Qzs1|444|20101002100121&q=%BC%BA%C5%C2%BB%EA%BC%BA&srchid=CCB1FKwY|Qzs1|444|20101002100121  

성태산성 조사용역 입찰공고
http://cafe.daum.net/sunghohak/xSK/21?docid=oNqF|xSK|21|20040829150338&q=%BC%BA%C5%C2%BB%EA%BC%BA&srchid=CCBoNqF|xSK|21|20040829150338  

안산지역 산성답사 기행문
http://cafe.daum.net/culturemoonhwa/KXzT/686?docid=19jkB|KXzT|686|20100208225050&q=%BC%BA%C5%C2%BB%EA%BC%BA&srchid=CCB19jkB|KXzT|686|20100208225050  

카페 "안산옛길" - 천태산성~정재초등학교까지 약도포함
http://cafe.daum.net/saltroad/9arV/7?docid=1KK94|9arV|7|20100911192720&q=%BC%BA%C5%C2%BB%EA%BC%BA&srchid=CCB1KK94|9arV|7|20100911192720  

안산이야기 - 옛길촬영
http://blog.daum.net/ajunajun/12094639?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ajunajun%2F12094639  

경기지역 성곽조사 현황 - 안산시편
http://blog.daum.net/coreai84/13388001?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coreai84%2F13388001

경기도에 있는 산성자료
http://blog.daum.net/js8888/8857738?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js8888%2F8857738

안산옛길 사진 및 단문
http://www.cyworld.com/illmi2/3112741  





 
 
 
  






 
   



 
 
 
 




 
  

 

------------------------------------------------------------------------------------------------------

성태산성 발굴 복원하자
유천형 <전 안산문화원장/향토사학자>

2010년 07월 15일 (목) 11:08:28
안산타임스 webmaster@ansantimes.com

성태산성은 상록구 일동 안산1대학 동북쪽 후면 성태산 정상에 위치해 있는 산성이다. 안산지역은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시대는 백제의 영토였다. 그 후 고구려와 신라로 변경되었으며 서로 접전을 치른 곳으로 고려 통일 후 안산이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

안산은 해안가의 중요지점과 주요 교통로로 일대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성태산성은 이러한 전략적 차원의 일환으로 축성된 산성일 것이다.
우리 고장 안산은 선사시대 이래 수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는 지역임은 이미 학계를 통해 잘 알려졌으며 또한 문화유적들이 훼손되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도 지난 2000년 3월 필자에 의하여 안산의 성태산성이 최초로 발견돼 학계는 물론 시민들에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지표조사를 맡았던 당시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배기동 박사에 의하면 삼국시대 출토된 성 이라는 사실과 또한 많은 유물이 산성내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성태산성과 같은 문화재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 부가가치로 엄청난 우리 자산임을 알아야 한다.
문화재란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자산이며 얼이다.

이러한 문화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줄 책임이 있으며 또한 후손들은 물려 받을 권리가 있다.
문화재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선심행정이 이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문화재 발굴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현상이 속출하고 있어 너무나 안타깝다.
단기적 이익사업에 치중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재 보호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긴 안목으로 지방문화의 미래를 설계하는 성숙된 문화마인드가 지금처럼 중요한 때가 없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가 힘이 되고 국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천년은 문화가 개인생활의 중심이 되고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국가정책의 핵심 목표가 되어 문화적 창의성이 개인과 국가사회를 움직이는 가치의 중심이 되는 세기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귀중한 성태산성이 1550년만에 새로 발견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며 안산시민의 행복인가.
성태산성은 이미 지표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축조된 성 임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다량의 유물이 산성내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 성은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산성임도 확인되었다.

발굴조사 복원을 서두르자
따라서 성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발굴조사가 시급하다. 이 성이 발견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이와 같은 소중한 문화재를 어떻게 10년 이상 방치할 수 있는가.
발굴조사 후 성태산성을 복원함으로서 사회교육이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에 다 같이 힘을 모아보자.
안산은 조선후기 영.정조 시대 문예 부흥기를 주도했던 지역임이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는 우리 안산시민의 자랑이요 긍지다.
즉 조선후기 예원의 총수였던 강세황을 비롯한 그 제자 단원 김홍도의 활동무대가 안산이었으며 실학의 거장 성호 이익의 개혁사상은 정조 개혁정치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학문과 예술의 무형의 문화유산에 성태산성과 같은 유형의 문화유적을 함께 가꾸어 나가 과거의 문화적 정기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의무와 사명인 것이다.

새 안산시장과 의회는 이와 같이 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재요 또한 10년 이상 방치되었던 성태산성 발굴 복원을 서둘러 보자.
이러한 문화행정이 시민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가장 소중한 일이며 시민의 정신적 행복이며 애향심을 갖게 하는 첫 걸음이다. 또한 시민의 애향심은 지역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간곡히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