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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선감학원 위령제 "아! 선감도"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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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9.


세계 최고의 대체농어업 물고기수경인삼 귀농사업정보

http://blog.daum.net/ansantour/12381397 








SBS 관련보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37&aid=0000097817

연합뉴스 관련보도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6747200 

안산투어 다음블로그 http://blog.naver.com/gscity/220726151377


바닷가 자갈돌도 우리하고 놀고요
푸른하늘 별들도 우리하고 놀아요


(아끼고 사랑하자 우리들의 동무들)
정다웁게 잘 자라자 선감학원 형제들



1.악명 높은 선감도 "어린이강제노동수용소"

 

민수는 그날 형들과 물고기잡이 하며 냇가에서 놀려고 양주읍내로 나갔다. 민수나이 10... 형들을 민수를 무척이나 귀여워 해 주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 주곤 했다.

 

양주읍내의 형내집에 거의 도착했는데 길에서 어떤 아저씨들이 아이들을 세워놓고 나이를 적고 집을 물어보고 부모님의 이름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간 민수에게 그 사람들은 다짜고짜 나이와 집을 물어보며 여기 있는 아이들과 같이 가면 재미있는 놀이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고 했다.

 

민수는 곧 집에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그 아이들과 같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인천에 모여든 아이들은 천막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주먹밥을 먹은 다음 이윽고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며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 그 뗏목배는물고기는 안 잡고 하루종일 해안선을 따라 도착한 곳은 어느 알 수 없는 섬이었다. 그 섬에는 사람도 거의 안살고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뗏목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어느 곳으로 가라고 재촉했다. 그 곳에 가보니 아이들이 수백명이나 와 있었고 표정도 없이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밤은 무서웠고 아이들은 두려움에 말이 없었다.

 

민수는 세상이 갑자기 모두 바뀐것만 같았다. 집에 데려다 달라고 울며 매달렸지만 선생님들이 이제 집에는 갈 수 없다고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올데와는 달리 이곳은 너무나 무서운 곳이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며 산에 가고 싶다고 해도 못가게 했다. 집에 가두어 놓고 하루종일 일만 시켰다. 그러나 배가 고파서 일을 할수 없었다.

 

몇 달을 엄마와 아버지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민수는 너무나 배가 고프고 집에 가고 싶어 잡도 자지 못하고 몸이 아팠다. 어떤 친구는 울다가 배가 고파서 산으로가서 독풀을 먹고 배가 아파서 죽기도 하고 병에 걸려서 약도 못 먹고 죽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선생님들은 형들을 시켜 아이들을 뒷산에 구덩이를 파고 흙으로 덮어버렸다. 민수는 너무나 무서워서 선생님에게 집에 보내달라는 말을 할수도 없었다.

   

몇 달을 엄마와 아버지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민수는 너무나 배가 고프고 집에 가고 싶어 잠도 자지 못하고 몸이 아팠다. 그런데 먼저 와 있던 어떤 형들이 밤에 물이 들어오면 섬에서 헤엄쳐서 육지로 가면 집에 갈수 있다고 했다.

 

어느날 밤 물이 들어오고 학원의 울타리를 넘어 탈출한 형들과 친구들은 물살이 거친 캄캄한 바다를 건너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이 너무나 빨리 흘러 바다 한가운데로 떠내려 갔다. 먹은 것이 없어 힘이 없는 형들과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고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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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 선감학원


세계적으로도 그 이름이 없고 악명 높은 성인 수용소보다 더 작혹한 학원이라는 어린이 강제노동수용소...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잔혹한 역사문화, 풍속문화 청소와 은밀한 인종청소는 드디어 아이들에게까지 마수를 뻐쳤다. 조선민족의 씨를 말리기 위해 독립운동가의 자손과 반체제인사의 자손, 그들 사회의 불순분자 자손, 부무잃고 굶주린 부랑아 등 힘 없고 가난한 농촌과 빈민가의 어린아이들부터 점점 솎아내며 학원이라는 이름의 교육기관을 가장하여 화성군 앞바다의 선감도라는 작은섬(현재 안산대부동)에 어린 아이들을 싣고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 속에 강제노동을 강요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도 거의없이 반항아들과 탈출하려는 아이들에 대한 무차별적 매질과 배식금지의 고문을 자행하며 수 많은 아이들이 일제의 강요된 세뇌교육 속에 청년이 되어 징병자로, 노역자로 섬에서 끌려 어디론가 실려 나갔다. 그 고통의 날들을 견디지 못한 냐약한 아이들이 병과 굶주림과 바다로 탈출하다 수 없이 죽어갔다. 은밀성이 철저히 보장된 제한된 섬안에서 일제는 그들이 마음껏 가장 잔혹한 방법과 비 인간적 수단을 동원하여 조선인들의 정신과 몸을 철저히 유린하기에 이른다.

 

이 학원의 교사로 있던 일본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하라 히로미쓰 옹은 자신의 평생 죄를 잊을수 없어 해방후 부모를 따라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조선의 섬, 선감도에서 태어난 이하라를 받아주는 일본아이들과 사회는 없었다. 점령지에서 태어난 자신들의 동족마져 철저히 배격하는 일본사회에서 환멸을 느끼던 이시하라는 자신이 죽기 전에 선감도에서 보고 느낀 친구들의 슬픔과 고통을 반드시 책으로 써서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이하라 히로미쓰씨는 트럭운전과 노동, 야채장사 등 사회적 외면을 받으면서도 일본에서 아선감도!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이어 한국어어로 행림출판사에서 1995년에 번역 출판되어 현재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의 모섬에 붙어 있는 선감도의 역사속에 매장되어 있던 어린이강제노동수용소의 원한 맺힌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이후 선감학원 출신의 많은 생존자들은 사회적 약자였던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그 이야기를 차마 말하지 못하다가 이하라선생의 책을 통해 살아서 더 이상 묻어두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에 이하라 선생과 뜻을 같이하는 안산지역사연구모임 회장인 정진각 전 햔양대교수와 함께 헌금을 모으고 추모제를 지내며 안산시와 경기도에 수없이 탄원하고 추모사업을 건의하여 어제 공식 추모제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3. 선감학원생 추모문화제의 배경

 

역사와 문화는 우리 스스로가 캐내고 알려 잘못을 바로잡고 잘못된 문제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외세의 강력한 침략에 수천년간 순응한 탓에 강자에게 숙이거나 도피하는 피동적 자세를 보여왔다.

 

동족의 어린 새싹들을 무참히 고문하고 노동으로 죽인 이 거대한 민족적 인권유린 문제는 조선인, 아니 한국인이 아닌 한 일본의 평범한 양심가로부터 시작 되었다. 우리지역에서 20여년전부터 이 문제에 대한 추모사업의 추진을 위해 안산시에서도 오래전부터 위령비와 추모제를 진행하고자 공청회와 예산편성도 했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행정기관의 무책임한 자세로 이 선감도 어린 영혼들의 억울한 죽음은 양식 있는 일본 시민들과 한국 국민들이 중심이 되어, 경기도와 안산지역의 젊은 생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여 선감도지역의 지도자들과 생존한 선감학원생들의 용기있는 참여로 억울하게 죽은 어린학생들에 대한 추모문화제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안산 지역사 연구모임 회원들을 비롯한 일부 뜻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2014년 5월 29일, 이하라상을 모시고 첫 제막식 겸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하라상은 아듬해인 2015년 제2주기 추모제에 참석하여 선감학원생들에 대한 강한 추모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날 행사에서 안산 지역사 연구모임의 정진각회장은 대부도의 역사 속에 묻혀있는 일제시대의 대부면장 김완수 송덕비에 대하여 입을 열었다. 1928~1945년까지 대부면장을 역임한 김완수 면장은 부천통운조합을 경영했다. 철저한 친일파였던 그는 조선총독부의 특권으로 독점적인 해운운송 사업을 하다 1945년 과적과 초과 승객으로 대부도 주민들이 탄 제1 통운호가 침몰해 300여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마을마다 같은 날 통곡소리에 쌓여 줄 초상을 지냈다며 대부도민의 또 다른 역사를 증언했다.


정진각 회장은 일제강점기 긴 시간동안 면장을 하며 선감학원으로부터 각종 섬주민들에 대한 일제의 강제수탈에 앞장섰다는 말을 했다. ”그런 김완수 면장의 송덕비가 세워진 불과 몇 년후 수백명의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어린학생들이 세월호에서 무참하게도 침몰사고를 당했다며 아픈 역사를 말하다 분한 감정이 복바쳐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박은옥, 정태춘씨는 이날 오후 7시 경기착작센터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된 추모공연에서 전날밤 채은옥씨가 이 충격적인 역사저 비극을 보며 많이 울었다며 자신도 어떤 노래를 해야할지 몰라 가슴속에 멍하기만 하다는 말로 선감도 어린이강제노동수용소의 참담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가수 채은옥씨는 이날 공연도중 역사적 비극에 대한 사건들을 일본과 대부도에서 보게 되어 무척 가슴아프다며 이러한 비극을 우리민족이 이닌 일본인들에 의해서 밝혀지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 이광수(gscity@naver.com 010-9189-7018)


행정자치부 스토리작가(정부혁신 국민정책공모 대상)

상록수영화제 집행위원회 영상위원장(기획자 2006~현)

2005년 안산시티투어 여행사업 개발제안자 

안산시 "물고기수경인삼단지" 개발기획 총괄

안산관광안내 사이트, www.ansantour.co.kr  대표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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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추모시


감도의 아이들

 

고요한 바닷가 이름 모를 낮선 땅

형제 품을 떠나 고통의 날 수십년

어린아이는 부모를 울부짖다 쓰러져 간다.

 

검푸른 밤 바닷로 뛰어든 굶주린 어린아이들

갈망은 주검이 되고 슬픔은 한에 맺혔도다

 

한민족을 침탈한 무지비한 총칼 앞에

짓밣힌 인생살이 백발되어 한맺힌 삶

 

! 선감도여, 민족의 부끄러움이여!

빼앗긴 나라, 민족의 처절한 고통

묻힌 아이가 절규한다. 선감도를 보라고!

   

  

이광수

        



이하라 선생과 친구들의 한맺힌 선감학원이야기



그들의 절규가 시작된 곳... 선감도 선착장은 오늘도 말이 없다.

대부도 해양생태관광마을 가이드인 보련사 선오스님의 안내로 선감학원의 슬픈이야기를 담은 순례의 길은 시작되었다.

선감도 선착장에는 외로운 조각배 한척이 물을 기다리고 앉아 있다. 마치 선감아이들이 물이 들어와서 탈출의 시간을 기다리는 듯... 

죽음의 지옥으로 향하는 길, 원생들이 갇혀 있는 숙소로 가는 길..

사람들은 말이 없다. 약속이라도 한듯... 뗏목배에서부터 공포에 떨며 걸었을 이 길.

불과 1제곱킬로미터의 좁은 거주지에서 이들의 슬프고 외로운 망향의 절규는 끝 없이 이어져 갔다.

물고기가 지천인 섬바다에서. 왜 그들은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을까..? 농산물과 가축 등 노동의 결과물은 입찰을 통해 팔려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게 돌아온 댓가는 굶주림과 학대였다. 

관광가이드와 다른 대부도문화해설사. 어두웠던 역사를 반추하는 그들의 진지한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겸손하고 엄숙하게 한다. 

길가에 익어가는 탐스러운 체리열매를 보면서도 순례자들은 차마 그것을 따 먹지 못한다. 역사란 오늘과 연결된 한 줄의 끈이리라.. 


아이들이 절망속에 잠을 청했을 숙소들을 바라보며 순례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란 과연 무언이란 말인가..?

지금은 농가로 변한 아이들의 숙소, 한참을 응시하던 그들의 입에서 긴 한숨소리가 들린다.

안산 디지털문화고등학교의 효린양을 비롯한 학생 영상제작팀이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오늘의 현실을 또 긴 역사가 되리라..  

그 역사의 현장에 설립된 옛 학생직업기술학교 자리에 경기창작센터가 들어섰다. 오늘의 추모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문화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아픈 역사, 너무나 미안하고 복수에 불타는 마음... 차라리 붉은피를 뿜고 흘리며 저항하는 모습이었으며, 갸냘픈 몸으로 한줌의 흙이되어 원한마져 찾을길 없는 분노심을 모두의 가슴에 깊이 새기리라!


아이들의 영혼을 짖밣았던 자리에 들어선 경기창작센터, 고통의 역사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국내외 예술작가들의 산실 


경기창작센터에서 불과 2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감학원 당시 부원장의 사택,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들어선 집안의 풍경. 마치 아이들을 위로하려는 듯 정원에는 작은 작품들이 놓여 있다. 

겨우 10살이 넘은 어린 아이들을 날마다 죽음의 현장으로 내몰며 가족들과 편안히 살았을

비인간성의 극치를 보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현재 거주하는 주민이 심어 놓은 담장의 장미에는 붉은 오월의 꽃이 필어나 아이들을 위로해 주고 있는듯 하다.


수백, 아니 천명도 넘게 묻혀있을 아이들의 무덤을 등지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강제노동을 총괄했던 자리인, 경기창작센터 전경.

경기창작센터와 아이들의 묘가 있는 중간에는 선감도 어촌체험마을이 있다. 왜 여기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먹이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의문만이 남는다. 

an anarchist ! 국가란 무엇인가? 정부란 무엇인가? 지배와 피지배의 다툼속에서 무수한 인간이 고통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이라면 난 차리리 아나키스트가 되리, 극단적 정의의 파시스트가 되리, 조선이라는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무책임한 사보타지를 한 역사적 과오의 결과가 그들이 국민으로 칭하는 대상의 자식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군부든 군국주의든, 억울한 그들 어린 넋들의 절규는 지금도 끝난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정신은 지금 살아있다.

수백명, 그들은 이제 말이 없다. 이제 이 슬픈 역사를 누가 말해야 할까..?


조국의 나약한 역사속에 사라진 아이들이여! 그대들이 누워 있는 이 곳은 동작동 국립묘지보다 더 위대하리라!

슬픈 영혼들이여, 해방후 최초의 위령제를 위해 큰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이제야 찾아 왔으니

부디 용서하고 용서하길 기원하는 바이다.



충신을 버린 나라의 방조자들로 인해 빼앗긴 생명들, 우리도 반드시 침략자가 되어 기어이 백배로 갚으리 너의들의 억울한 죽음을 !!!  

안산시청에서 20~30분마다 한번씩 탄도로 들어가는 시내버스 123번, 경기창작센터에서 내려서 묘지로 5분정도 더 걸어오면 된다.

저 멀리서 순례자들이 걸어오고 있다.

반가운 내누이, 내 엄마, 내 아버지가 오고 있다. 아이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

울고 서 있는 아이도 있다. 왜 이제야 오냐고...

그들의 손에 위로의 휘장이 들리고 아이들을 달래는 소리를 연주하며 걸어오고 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다.

이제 하나가 되리... 아이들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

너희들의 어미도 오고, 아비도 왔다. 너의 슬픔을 달래고 안아주려고 우리가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울지말고 편히 잠들라 착한 아이들아...

슬픔에 겨운 어미는 가슴속의 눈물을 흘리고 산비둘기 구구구 슬피도 울어대는데...  이제야 찾아온 어미를 용서해 다오...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고...

제로서 70년 굶주림을 달리주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원을 들어주고...

사죄와 통탄의 역사와 시간에 대한 용서를 빌며...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로하고 있는 사람들...

피골이 상접한 주린 배를 채워 먼 길을 떠나 보내려고...  이제 너희와 만날적엔 많이 많이 같이먹고 놀자구나...

한명이라도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빌면서...

음식과 과일과 노자돈을 모아...

먼 하늘 가는길 부디 외롭지 않기를...

함께 모여 인사하고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어둠속에서 울던 아이들이 한명 한명 모두 모여...

밝고 맑은 나라로 편히 올라가도록 하늘계단 만들어...

다시 이 땅에 내려오면 울지 말고 행복하라고...

세상슬픔 겹겹이 묻은 너의 발을 씻고 손을 씻고 마음을 씻어...

한명 한명 모두 다 같이 새털처럼 날아 올라라...

구름 저 높이 뜬 하늘계단 밣고 누워있던 한맺힌 땅 내려다보며 세상의 작은고통 부디 잊고 넓고 푸른 하늘위 구름꽃 되어 둥실둥실 날아가거라... 

그곳에서 꿈속에서도 그리웠던 부모형제를 만나기를..

너의 슬픔 위로대주던 산새들과 뻐꾹이 소리 우지지니 이젠 마지막 이별의 노래를 부르나 보다. 잘 있어라 산천아 바다야 새들아, 새봄의 배고픔 달래주던 고마운 진달래야, 나는 이제 바람되어 구름되어 저 높은 곳에서 너희를 살펴주리라.




간곡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혹시라도 깨어나지 못한 친구들을 찾아서 어서 일어나 훨훨 날아가라고...

노잣돈 천냥모아 친구들이랑 배고프지 않게 잘 나누어 쓰라고 태워 올리며...

이 별....

이제 하늘과 땅에서 영원히 너희들을 기억하며 추억속에서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리...

밤 하늘길, 위로의 노래를 들려주는 모두의 시간

세상에서 있었던 고통의 날들도 회상하며

자유의 해방이 아닌 사뭇치는 그리움과 굶주림과 구타에서의 해방을 빌며 ...

그 해방의 순간을 기억하며 하늘과 땅에서 다 함께 노래를 하는 시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미안함과 불타는 복수심과 책임이 아직 남아있으니...

이제 우리들의 무지와 무관심을 용서해 달라고 하늘로 올라가는 고운 너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너희들에게 양심으로 고백한 이하라와 그의 단짝친구 홍성민친구는 지금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추억보다 아픈 이별을 말하고 있다

훠이 훠어이~~ 한마리 새하얀 학이 되어..

이제 슬픔의 곡조는 희망의 메아리가 되어 려므나.

= 대금연주자 박기형 선생=

하나의 연이되어 두둥실 저 하늘로 높이 날아가고파..

부부가수 : 정태춘, 박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