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바람과 술 2008. 6. 15. 06:36

서론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주요 시각예술은 건축, 회화, 조각이었다. 그것은 유럽 사회의 가장 부강했던 군주, 왕가, 귀족, 교회, 상인, 국가 또는 시의회, 동업조합 등과 같은 개인 및 집단, 제도 등의 실질적 후원으로 융성했다. 그때와는 상당히 달리, 오늘날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순수예술도 아니라 대중매체이다. 산업의 발전,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발달 및 도시화한 소비사회의 돌연한 출현은 순수 예술가들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쳐왔던 사회적 맥락을 돌이키지 못할이만큼 바뀌 놓았다(조각이나 회화보다 건축이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한결 적게 받았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기계가 사회적, 과학기술적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수행했다. 예술을 일체의 이데올로기나 정치, 또는 계급투쟁 등을 초월한 가치권 내에서만 예술로 간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으나,이념과의 관련을 검토하지 않고서 예술을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 주요 용어 및 개념

 

서구에서는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고급'과 저속'으로, 또는 순수예술, 공예, 산업디자인, 대중매체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같은 분류는 단지 우리가 그 각각의 대상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서와 같이, 정신적 현상으로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책이나 교육제도의 실행사항들, 문화기관, 또는 화랑, 미술관 등의 내적 활동의 방면에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순수예술 작품과 대중매체의 산물은 그 질적 척도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아무튼 순수예술을 고급문화로, 대중매체를 저속문화로 간주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고급.저속 문화의 구별은 근본적으로는 사회가 그 자체 내부에서 계층의 분화와, 부(富), 교육의 불평등을 산출해내는 사회적, 경제적 요인들과 연관지울 수 있다.

순수예술

: 고대와 중세에는 우리가 '시각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을 신발제조나 요리와 동격인 의미의 유용한 기술로서 간주했다. 18세기에 와서는 예술의 현대적 체계, 즉 다섯 가지 유형의 예술군(藝術群)-회화, 조각, 건축, 시, 음악-이 제도화된다. '순수'라는 용어는 아름다움, 능숙함, 빼어남, 우아함, 완벽함, 그리고 어떤 실제적 차원의 유용한 가치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것 등을 함축하고 있었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대중문화를 구별짓는 것은, 과학기술 자체가 아니라 재료 및 도구가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그 방식과 그에 상응한 형식적 관례에 따라, 또 그 속에서 작품이 제작, 분배, 소비되고 마침내 분류되는 사회제도인 것이다. '순수예술'과 '응용예술' 사이의 구분은 종종 공리.비공리적이라는 대립적 개념을 근거삼아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순수예술이라는 것을, 그 실용적 기능은 제쳐두고 오로지 미적 쾌감으로만 간주하려는 사고방식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여러 세기에 걸쳐 시각예술은 유럽 지배계층의 이해관계의 시녀 노릇을 해 왔고, 또 그러한 이해의 맥락에 따라 투자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순수예술은 주로 사회 중간계층의 관중에 의해 감상되고 부양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것은 또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순수예술이 지속되고는 있지만, 어떤 점에서 그것은 전산업사회(前産業社會)가 형성시켰던 것 가운데 지금껏 남아 있는 하나의 '잔재'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딱히 어느 분야에 속한다고 하기 애매한, 순수예술의 바로 그 주변적 성격이 작가 편에서의 독립성과 자유라는 측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한편, 그것은 또 작가로 하여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정치적 의식을 갖고 비판적 자세를 취할 수 있게도 한다. 순수예술과 대중매체 사이에 구분이 있다는 것은 그 둘 사이에 어떤 상호작용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우기 예술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들도 대중매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을 수는 없다.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 '매스 미디어' 즉 대중매체라는 용어는 방대한 규모의 문화 소비자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의 전문화된 문화 생산자 사이를 중개하는 문화 분배 및 소통의 현대적 체제를 의미한다. 각 대중매체의 공통적 특징은 정보를 기록하고 보급하며 복제하는 기술적 장치의 사용이다. 과학기술과 기술복제의 긍정적인 면은 문화에 엄청난 민주화를 가져왔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은 수백만의 사람들을 그저 누군지 알지도 못할 타인에 의해 생산된 문화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켰다는 점이다. 대중매체라는 형식과 내용을 통해 대중이 민주적 발언을 한다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란 극도로 한정되어 있다. 대중매체는 메시지를 위에서 및으로 정해진 방향으로 퍼부어대는 수직적 기능에 입각해서 전파된다. 대중매체의 힘은 중앙집권적으로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공동체 예술과 매체 운동의 뚜렸한 목표는 매체의 형태를 분권화하려는 것이다. 마샬 맥루한은 새로운 매체 발명의 효과는 그것이 낡은 매체를 예술적 방향으로 돌려 놓으려는 데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고급문화나 순수예술은 보통 대중문화의 반대급부로서 '소수집단'의 문화개념으로 간주된다. 소수 집단의 취미와 관심거리들이 제공되는 것은 매우 제한된 범위지만, 그것을 관습적 틀에 맞춰 관례화된 유형으로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대중매체는 기존의 문화적 구분과 계층구조를 재연하고 그 유�성을 확인시킨다. 좌익 이론가들은 '대중문화' 개념은 곧 신화이며 그 신비화는 부르주아 사회학자가 고안해낸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그들은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문제를 오해하고 있다. 1. 그들의 견해는 대중 자체가 대중문화의 자원이라는 점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2. 그들의 주장처럼 대중매체의 관중은 결코 하나의, 같은 부류의 완전한 통일체가 아니다. 오히려 대중은 언제나 다양한 층을 형성하면 분화되어 있다. 모든 대중매체의 산물이 전적으로 저속성을 띠는 것만은 아니다. 대중매체 내부에도 개인적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허용하는 기회가 확실히 실재한다-사실상 독창성, 예술성, 심미적 호소력 등이 각자 분담된 기능을 해내는 데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런 대중매체에서 활동하는 전문인들의 예술적 자유나 독립성은 순수예술가들이 '구가하는' 그것에 비할 때 매우 제한된 것이다. 대중매체의 전문인들은 익명의 장인들이 아니라 그 이름들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집단적, 협동적 제작방식 때문에 작품이 한 개인의 작업으로 간주되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와 그 밖의 이유들 때문에, 대중매체의 전문인들은 통상 예술가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2. 대중문화를 이용하는 예술

 

대중문화에 대해서 순수 예술가들은 긍정적이거나(수용), 부정적이거나(거부), 혹은 모호하며 복합적인 반응(자신이 선택한 매체의 특수성에 역점을 두는 동시에, 대중매체로부터의 영향을 반영하는 특색을 제시하거나)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미니멀 아트와 펀더멘털 페인팅Fundamental painting(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같은 조류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있었다. 펀더멘털 페인팅은 대중매체와의 곤혼스런 경쟁에 직면한 회화가 스스로의 정체를 지키려는 최후의 안간힘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화 그 자체는 재확인된 셈이지만, 회화 스스로의 볼모화라는 대가를 치르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가장 명쾌하게 제시되었던 경우는 팝아트에서이다. 팝 아티스트들이 인상주의, 혹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 작업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현대 도시민들에게 들판, 나무, 산 들을 뜻하는 것으로서의 '자연'이 거의 완전히 인공적으로 구축된 빌딩과 실내, 도로 표지판, 신호물, 포스터, 신문,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등의 세계로 대치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매체로 포화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팝 아트는 대중문화를 해석한다

: 팝 아티스트들이 결코 단순한 모사가(模寫家)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예술가들이란 종종 그들의 예술로써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 '반영'란다고 이야기된다. 이와 같은 특별히 광학적인 은유는, 마치 외관을 맹종하여 기록한다는 듯한 의미를 은연중 내비치므로 부적절하다. 차라리 '굴절'이라는 표현이 한결 만족스런 은유임을 증명한다. 차라리 '해석'이라고 부른다면 그보다 휠씬 나을 것이다.

팝 아트는 추상표현주의를 재가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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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의 형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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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의 정치학

: 1957년, 해밀튼은 대중문화의 계율이라 생각되는 사항들을 열한 가지로 분류하여 묶어 보았다. 1. 통속적일 것(대중을 위해 고안된) 2. 일시적일 것(단기간에 해결되는) 3. 소비적일 것(쉽게 잊혀지는) 4. 저렴할 것 5. 대량생산될 것 6. 젊음에 관한 것(청소년을 겨냥하여) 7. 재치가 있을 것 8. 성적 매력을 보일 것 9. 참신할 것 10. 매혹적일 것 11. 대형 사업일 것. 예술가가 대중적 이미지를 대중문화의 일부로서 편입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생산, 소비, 분배의 총체적 양상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가령 그렇게 될 경우, 그때에는 예술가들이 순수예술의 일부가 되는 일이 자동적으로 마감될는지 모른다. 팝 아트에 대한 적절한 이해는, 팝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작품을 대중문화의 맥락보다는 순수예술의 맥락에 놓이도록 확보했던 그 특별한 수법을 간파해야만 가능하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1950년대와 60년대 구미 소비사회의 풍조를 간명하게 요약해 주느 표어이다. 팝 아트는 이 소비사회에 일면 긍정적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산업사회에 맞는 산업예술(이를데면 팝 아트)을 제작하기 위해 예술적 생산방식을 산업화한다는 것이 워홀의 명민함이었다. 워홀은 작품을 순수예술권 내에서 판매하려면 유일성의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함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의 실크스크린 기법은 예술적 생산과 산업적 생산 사이의 절충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개인주의와 개성적 표현이라는 이념의 지배를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서로 다른 점이, 그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획득한다. 광고는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반면, 그 산업체에서는 개인주의가 무시되는 대량생산을 추구한다. 유사성, 평범성, 익명성, 상투형 등이 바로 대부분 순수 예술가들이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중문화의 특성이다. 워 홀은 "비지니스 아트는 예술 다음에 오는 단계이다. 나는 스스로가 상업적 예술가이기를 주장했고, 이제는 비지니스, 즉 예술 사업가로서 끝마무리를 지으려한다. ... 사업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가장 매려적인 종류의 예술이다. ... 돈을 번다는 것은 예술이며, 일한다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은 최상의 예술인 것이다"라는 이야기 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전문 예술가가 제작한 예술작품의 대다수는 상품화된다. 일말의 진실성을 담고 있는 묘사는 필연적으로 그 사회의 허위와 모순을 드러내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변용

: '억압받던 것의 복귀'라는 표현은 문화에 있어서 일종의 획기적 약진을 시사한다. 그러나 팝 아트가 사실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일까. 누가 상업적 예술과 춘화를 결멸했다는 말인가. 팝 아티스트가 멸시받던 소재를 다시 표현한다는 아이러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대중문화에 대해 다소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즐기는 가운데, 그것에 초연한 듯하지만 실은 아이러니에 찬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그것을 소재의 자원으로 발굴하는 예술가는, 그들의 이른바 '한 수 높은' 관점을 철회하지 않고서도 순수예술의 영역 속으로 대중문화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천시받던 소재가 폐품에서 예술로 변모했고, 마찬가지로 소수집단의 문화가 자체의 엘리트주의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가운데 그 정반대적인 것을 수용했던 것이다.

꾸르베, 반 고호 그리고 민중 이미지

: 꾸르베나 반 고호 모두가, 보더 너른 대중 관객에 접근하기에는 이젤 회화의 생산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이해했다. 그들은 자신의 회화 스타일 속에 민중적 가치를 통합시킴으로써, 그리고 매체를 민중적 이미지의 방향으로 전이시킴으로써 이젤 회화의 엘리트주의와 투쟁했다. 여기에서 이들의 예술적 기획이 1950년대 및 60년대 팝 아티스트의 그것과는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1. 대다수 팝 아티스트들은 정치적으로 좌파적 동기를 결여하고 있었다 2. 1950년대에 이르러 대중문화의 본질이 변화되었다. 즉 팝 아티스트의 소재는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예술로서 이해되고 민중예술이 아니었다. 어떤 진정한 민중적 형식의 예술을 발전시킨다는 일은 '팝'이라는 상표를 붙인다거나,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식으로 해결 될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중문화의 간접적 영향

: 오늘날 사회에서는 인간의 주체성마저도 일부에 있어서는 대중문화의 상투형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주관주의에 몰두하거나 전통적 장르로 도피해 들어감으로써 소재를 대중매체에 양도하는 전략은 대중매체가 제시한 예술에의 도전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 양식있는 대책이란 비판적인 어떤 것이다.

 

3. 예술을 이용하는 대중문화

 

사업계와의 접촉으로 몇몇 팝아티스트들은 보다 많은 고객을 위한 작품의 대량 복제 작업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업들이 팝 아트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절시킨 것은 아니다. 팝 아트가 성공을 거두자, 이 사조는 다른 순수 예술가들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니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광고업은 순수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산업이다. 사진가들이 광고물에 차용했던 회화적 은유의 '언어'는 수세기에 걸쳐 유럽 화가들이 개발해 왔던 것이다. 결국 순수 예술가들이 확립시킨 전통을 색채사진술이라는 매체가 지속시키고 확장시킨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보다 더욱 미묘한 방식으로 순수예술의 요건을 개발함으로써 광고가 순수예술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예술, 특히 전위예술은 전통적 가치관이나 예술적 관습, 그리고 그 '언어'에 대한 질문방식에 있어 주목될 만하다.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 내부에서 형식적 실험이나 창조적이고 기발한 탐구, 즉 대중매체 자체의 이용이 조심스레 통제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본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일 것이다. 대중문화 내부에서도 팝 아트의 거울-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즉 그들 자체의 목적을 위해 현대 순수예술의 동향을 활용하는 대중문화 산물들이 있다. 대중매체의 뚜렷한 속성의 하나로 매일매일 거대한 양의 물자를 소비하는 그 악어와 같은 식욕을 들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순수예술도 그런 물자의 일부에 속한다. 대중매체가 순수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흡수, 활용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대중매체의 관점에서 보면 순수예술은 다른 여러 사회적 활동 장치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4. 기계적 복제와 미술

 

현대적 제조방식을 통한 대량 복제의 가능성이 순수예술의 '전반적 가치 구조'를 침식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기계화는 예술의 신비를 일소시킬 위협이 된다. 예술가들이 항상 다양한 종류의 도구를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계가 한층 정교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도구의 발전일 뿐이다. 회화적 복제란 예술작품의 의미에서, 그 질료적 바탕을 제거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일종의 정보의 한 단위가 되며, 몽타쥬라는 메카니즘을 거쳐, 원작자가 결코 예상해 본 적 없는 용도에 가담하는 것이다. 사진술 자체가 회화의 종말을 야기시키지 않았는 데도 1839년 이후로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미디어의 증식은 회화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고, 또 그 사회적 위상도 변화시켰다. 대량산업생산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전산업적, 기예적(技藝的) 가치를 새로이 음미하는 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공예권의 작은 르레상스를 촉발시켰다. 벤야민이 제안하기를, 작가의 작업과 실천에는 유기적이며 조직적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한 작가의 작품은 하나의 모범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다른 필자들에게 지침이 될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개량된 장치로서 그들의 재량에 맡겨 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 고급문화 : 긍정인가, 부정인가

 

예술이 사회의 모순을 표현해야 할 것이라는 아도르노의 확신에 찬 주장은, 예술가는 리얼리스트이어야 하며 따라서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진단으로 생각할 수 있을느지 모른다. 과거의 문화가 성취했던 것들은 그것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히 유용해야 한다. 그러나 필수적인 요청은  그 어떤 유포도 단순한 예술 감상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예술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조성하려면, 예술작품이 제작된 그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지식이 미적 감상에 동반되어야 한다.

 

6. 문화 다원주의와 후기 모더니즘

 

모더니즘은 서구에서 거의 125년간 실제 예술적 활동 무대를 지배했던 미적 이념이다. 그 주요 전제 및 주제의 골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모더니스트들은 새로운 기계류와 과학시술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빅토리아풍의 예술 및 디자인의 양식적 무정부주의와의 절충을 거부했다. 따라서 그들은 새 시대 상황에 걸맞는 새로운 형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모더니스트들은 '형식은 기능에 따른다'는 원리에 기초하여, 새로운 스트일 즉 현대적 스트일과 새 재료, 새 기술, 새 기법이라는 강권적 의무의 창출이 불가피했다고 믿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같은 원리에 근거한 예술 및 디자인은 스타일 없는 것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2. 모더니스트들은 새 시대의 동이 텄다고, 즉 현대의 도래를 믿게 된 이후로 과거의 역사, 전통과의 전적인 결별을 집요하게 강조했다.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가치는 고상함과 독창성이었다. '일단 지나가 버린 것은 거부하라'는 명제가 모더니스트라는 신세대가 따라야 할 규범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자체의 전통이 되었다 3. 모더니스트들은 장식이나 의장을 프리미티비즘의 잔재이며 잉여분이라는 이유에서 거부했다. 그들은 기하학적, 유기적 형식을 선호했다. 즉 단순성, 명증성, 통일성, 순수성, 질서, 합리성 등의 가치를 신봉했다 4. 모더니스트들은 국가적, 지역적, 또는 풍토색 짙은 스타일을 거부했다. 그들은 모더니즘의 교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국제주의적 스타일의 입장에 섰다 5. 모더니스트 건축가와 다지이너들은 미래의 예술을 제작하고 있다는 듯이 공언했다. 그들은 빈번히 사회주의적 이상에 고취되었으며, 그 자체 속에서 인간행위를 개선시키게 될 하나의 멋진 신세계의 창조를 위해 구질서를 타파하고자 했다. 모더니스트들은 오직 그들만이 최선의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태도 때문에 그들은 대중의 취향이나 애호 사항을 제쳐두고, 대중에게 자신들의 해결책을 강요하려는 경향을 보이곤 했다. 물론 극도로 일반화되긴 했다 하더라도, 모더니즘에 포함되는 일체의 경향들이 이상과 같은 성격만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그 예외이다. 1960년대 후반에 와서 상당수의 비평가들은 모더니즘이 고갈되었고 한때의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모더니즘은 하나의 역사로 다루어진다. 찰스 젠크스의 설명에 따르면 후기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타협을 암시한다고 한다. 즉 그 배경에 깔린 의미는 명백한데, 그것이 무엇을 대신하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후기 모더니즘 시기에도 모더니즘은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후기 모더니즘의 전형성은 무엇인가? 우리의 예상대로 그것은 많은 모더니즘의 교의를 역전시키고 수정한다. 1. 각 시대의 오직 하나의 스타일만을 갖고 있다는 모더니즘의 사고방식은 스타일의 다원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의해 거부된다. 절충주의, 이종교배(異種交配)의 복합적 스타일이 유행한다. 단독의 스타일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법은 없다 2. 모더니즘까지 포함하여, 역사와 전통은 다시금 유용한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인용을 통해 재등장하는 복고 스타일, 꼴라쥬 기법, 그리고 과거의 스타일로의 회귀 및 그 풍자, 모방 등이 있다 3. 장식과 의장은 다시 수용된다 4. 복합성과 모순 그리고 모호성이 단순성, 순수성, 합리성을 대신하는 가치들이다. 고급예술가 저속예술,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혼용은 세련도와 지식 수준이 서로 다른 관중들에게 다층적으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식의 건물 제작방식으로서 권장된다 35. 후기 모더니스트들은 의미와 관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건축과 디자인을 일체의 다른 종류의 진술을 작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언어'로서 취급한다 6. 후기 모더니즘에서는 예술의 기본 성격인 '작품의 상호 참조성'이 고양된다. '작품의 상호 참조성'은, 모든 문학작품 혹은 예술작품은 은연중에나 공공연하게나, 다른 다양한 작품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암시하며 논평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용어이다. 어떻든 후기 모더니즘에는 적지않은 긍정적 측면들이 있다. 1. 오늘날 문화의 전대미문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기민하게 인식하고 있다 2. 어떤 시대 어느 시기에도 여러 세대가 공존하고 있으며, 각기 다른 시대로부터 유래된 사물과 건물리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분별력을 갖추고 있다. 양식적, 문화적 다원주의에 대해서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1. 긍정적 반응, 풍부하고 건강한 다양성. 소비에트 연방에서와 같은 예술의 전체주의적 단일화에 반대하는 것으로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전형적인, 선택의 자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2. 부정적 반응, 스타일의 무정부주의, 매너리즘의 국면, 과거에 대한 불건강한 천착,얄팍하고 피상적임. 합의를 창출하는 데 무기력한 분열적.퇴폐적 사회의 지표 등등. 정치적으로 다원주의는 개방적 철학이다. 그것은 사회란 숱하게 서로 다른 정치적, 종교적 성향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으로 구성된다는 사상을 고취시킨다. 이 사상이 뜻하는 바는, 모든 성향들은 동등한 장점을 갖고 있으며 모두 유용하다는 것이다. 문화적 다원주의가 가리키는 것은-어떤 이들이 명백히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예술과 문화의 지배계층이 운용하는 그 지배에 끝장이 났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계층과는 다른, 또다른 요인의 영향력-세대, 종교, 인종, 성, 국적, 교육 등의-이 인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단 하나의 지배적 스타일만이 있던 기간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배 자체는 지속되고 있다. 존 체자커가 말하듯이 다만 그 지배의 수단이 다를 뿐이다. 다원주의라는 말은 우리 시대의 순수예술의 바탕이 되는 매체, 스타일, 장르의 중복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 용어이다. 보다 넓은 뜻으로는 순수예술이 여러 문화활동의 하나로 간주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사용되어 왔다. 용어의 그와 같은 사용이 암시하는 바는 순수예술이 제공하는 문화적 경험이 대중매체가 제공한 그것보다 더 나을 것도, 그렇다고 더 나쁠 것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순수예술은 그 독자성, 개별성, 개성적 표현 및 수공의 기막힌 수준으로 인해 여타의 것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그것은 대중매체보다 더 다양화되어 있고(사실상 보통을 벗어난 괴짜로서), 형식적 창의력이 풍부하며, 어떤 경우보다 비판적이다. 대중매체 이미지의 상투형을 활용하는 예술작품은 또한 그 소재와의 메타 언어적 관계로 해서 다른 문화적 산물과 구별된다. 이런 여러 근거로 미루어, 순수예술을 인류 문화의 보다 특수한 한 가치로서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합당해 보인다.

 

7. 대안

 

대중매체가 문화를 지배하는 시대에 있어서 예술적 실천은 고유한 권리를 갖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예술가는 문화의 적극적 생산자이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다. 예술가는 지배 이념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있는 특권적 사회 집단이 아니다. 사실, 정치적으로 체제를 신봉하거나 혹은 반동적인 작품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바로 이런 작가들의 활동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예술, 특히 추상적인 것으로서의 예술이 무비판적 찬양 속에 신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혁명중이거나 또는 혁명을 거친 사회를 제외한 그 밖의 사회에서의 좌익적 예술의 실천에는 세 가지의 원칙적 유형이 있다. 1. 노동운동 2. 공동체 3. 예술계.

존 하트필드와 포토뭉타쥬

: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장비를 제공하고, 지식과 수법을 그들과 나누려는 예술가라면 예술이 절대적 자율의 세계라는 생각을 선뜻 포기해야 한다. 차라리 그들은 독자적 창조자로서가 아니라 촉매자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떠맡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팀웍이나 집단적 제작 과정에서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구분은 잠정적으로나마 해소되는 것이다.

아마튜어 사진과 노동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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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벽화

: 지역사회 벽화가 다른 유형의 공공미술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작가와 지역 주민들과의 상호교류의 소산이며-여기에서 제작 과정은 그 최종적 결과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따라서 지역주민들의 소망, 역사, 삶, 문제거리, 관심사, 가치관 등을 표현하며 이웃간의 공동체 의식을 지지하고 배양하기 때문이다. 벽화는 십년 이상 보존될 것이므로 지역 주민의 동의가 매우 중요하다.

여권신장파 예술가 및 그 밖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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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중매체 시대의 예술

 

9. 도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