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모호성과 애매성의 개념 착종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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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

2013. 11. 11.

 

모호성애매성의 개념착종에 관한 고찰

 

                                                                                                                                        서범석

 

1. 서론

 

문학이론은 문학창작과 문학비평 그리고 문학사라는 3자와의 관계에서 상호 보충 또는 상호 침투(浸透)의 작용을 통하여 함께 변화·발전하는 공존과 상생의 틀 속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문학이론은 3자의 변증법적 발전의 산물인 동시에 3자의 발전을 견인하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이론이 논리적 객관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혼란을 부추기고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가 될 것이다. 이론을 전개하는 과정의 학술용어 역시 객관적으로 타당한 개념으로 사용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명료한 개념에 합당한 용어 사용이 엄밀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문영역에서 필수적임은 첨언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대 어떤 문제에 대한 합리적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견해가 충돌하게 되고 그러한 역사가 쌓여 오류가 수정 또는 보완되어 이론이 정립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 되는 것도 숙명적인 것이다. 한국 현대시론에서도 어떤 개념이나 용어 등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그에 따른 진통이 계속되고 있는 것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시나 시어의 특성을 설명하는 용어 가운데 모호성(模糊性)’애매성(曖昧性)’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용어의 개념 착종 현상은 실로 난맥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둘을 의식 없이 혼용하기도 하고, 둘 중 어느 하나만을 쓰기도 하고, 아예 둘을 철저하게 이분하여 다루기도 한다. 나아가 둘을 합쳐 애매모호성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다의성(多義性)’이나 난해성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착종 현상을 보는 독자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현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두 용어의 착종현상을 고찰하고 개념을 명료화하여 문제해결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용어의 혼란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글을 필자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대개 의식하지 않고 모호성또는 애매성이라는 용어를 혼용하거나 각자의 주관에 따라 어느 하나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상을 마냥 두고 볼 일은 아니기에 본고는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의도에서 쓰여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용어의 개념 착종현상은 무엇보다 영국의 비평가 엠프슨(William Empson)‘ambiguity 이론을 소개하거나 인용하는 과정에서 학자에 따라 모호성, 애매성 또는 다의성 등으로 다르게 번역하여 사용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단어들의 개념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특별한 의식 없이 사용하거나 인식의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에 본고는 한국의 현대시론을 다룬 저서들에서 이러한 용어들의 개념이 착종되어 있는 혼란스러운 현상을 살펴보고 이 용어들의 올바른 개념에 대하여 고찰하여 향후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본고는 먼저 각종의 시론서들을 검토하여 어떻게 의미가 착종되어 있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두 용어의 개념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사전류를 바탕으로 검토한 다음, 혼란을 극복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차례로 진행될 것이다.

 

 

 

2. 다양한 착종 양상

 

1980년대 이후에 발간된 각종의 시론서에는 모호성이나 애매성에 대하여 대분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용어의 정확한 개념에 대하여는 관심을 별로 갖지 않고 기술함으로써 문제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다의성’, ‘중의성’, ‘애매모호성’, ‘난해성등의 용어와 혼용하면서 그 개념착종현상은 그야말로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혼돈의 양상에 대하여,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우, ‘모호성이나 애매성중 어느 한 쪽만 사용하는 경우, 둘을 별개의 개념으로 구별하여 쓰는 경우 그리고 난해성’, ‘다의성’, ‘중의성’, ‘애매모호성등의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2.1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우

 

대부분의 국어사전에는 유사한 의미로 풀이된 모호성애매성이 실려 있다. 따라서 이 두 용어의 개념을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난해성’, ‘다의성등의 이웃 언어들까지 섞어 씀으로서 혼란의 양상을 배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이러한 현상의 몇 가지 예를 찾아 살펴보자. 홍문표의 󰡔현대시학󰡕시어의 애매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의미를 상징하는 언어는 일상적 용법을 벗어나 애매성obscurty을 지니게 마련이다. …… 물론 시어가 아니라도 언어는 애매성의 요소가 있다. 울만은 언어학적 견지에서 동음이의어나 또는 하나의 소리에 여러 가지 의미가 결합되는 어휘적 다의성polysemy을 지적한 바가 있다. 그러나 시어에 있어서의 애매성의 원리는 일상적 언어의 특수한 예가 아니라 …… 리처즈가 언어의 두 가지 용법으로 참과 거짓을 밝히는 과학적 언어와 정서와 태도의 효과를 위하여 사용되는 정서적 언어를 지적하였을 때부터다. 정서적 언어란 지시 대상에 있어서의 오류가 아무리 크다고 하여도 태도나 정서에 있어서 효과가 큰 것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정서적 언어는 서로 모순 충돌 되는 사물을 한 문맥 안에 수용하기 때문에 시어의 의미가 모호해지는 것은 당연한 생리다. 다시 말하면 합리적 일관성을 지닌 객관적 언어와 감정적 일관성을 지닌 시적인 언어와의 상반된 거리에서 시어의 애매성은 드러나게 된다.(밑줄 필자)

 

홍문표는 시어의 애매성을 설명하면서 다의성모호하다를 개념상 특별히 구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애매성을 영어 ‘obscurity’로 병기하면서 뒤이어 엠프슨의 ‘ambiguity’를 역시 애매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시어의 애매성모호성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과 ‘ambiguity’‘obscurity’의 개념 차이도 없다는 저자의 생각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차호일의 󰡔현대시론󰡕 역시 시어의 애매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단어 또는 한 문장 구조 속에 두 개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경우를 가리켜 시어의 다의성, 또는 애매성이라 한다. 이런 시어의 애매성(모호성)은 시만이 갖는 특권이라 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니까 다의성, 애매성, 모호성이라는 세 용어를 모두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용어의 혼용은 그 용어들의 개념이 동일하다는 것과 따라서 어떤 용어를 써도 좋다는 허용적인 태도의 반영이라 하겠다.

 

2.2 ‘모호성애매성중 하나를 사용하는 경우

 

이는 ‘ambiguity’의 개념을 우리말로 모호성으로 할 것이냐, 또는 애매성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시론서에서 맨 먼저 이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정한모의 󰡔현대시론󰡕시어의 구조적 특질외연과 내포’, ‘생략과 부연-모호성’, ‘시의 음악성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그러므로 이러한 凝縮省略活用은 때로 模湖性(ambiguity)招來하기도 한다. 科學的 文章에서 이 模湖表現誤謬이지만 에서는 意味를 풍부하고 多樣하게 해 주는 複合的 効果誘發하게 하는 것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응축과 생략에 의하여 시어는 모호성을 띤다는 것인데, 이는 엠프슨의 이론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모호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전에 김기림, 조지훈, 김사엽, 신선규, 서정주, 박두진, 김춘수, 등과 이후의 김남석, 채규판, 오세영, 윤재근, 문덕수, 손광은, 권혁웅 등의 시론서가 보이지만 이들에게서는 모호성이나 애매성등의 용어 사용은 보이지 않는다.

권기호의 󰡔현대시론󰡕은 현대시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엠프슨의 ‘ambiguity’모호성으로 번역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강홍기는 󰡔엄살의 시학󰡕에서 엠프슨의 ‘ambiguity’를 역시 모호성으로 번역하여 시의 모호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모호성이 산출되는 원인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시어의 다의성(多義性), 구문 구조의 애매성, 고도의 은유, 상징성, 시의(詩意)의 비의성(秘意性), 고의적 비문(非文), 졸문(拙文)’ 등에서 그것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모호성의 원인을 고찰한 후 마무리 부분에서 현대시의 애매성 내지는 난해성의 요인에 대해 지적했다.”라고 씀으로써 모호성애매성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는 한국의 시론가들이 이 둘을 구분하여 쓰는 경우라도 부지불식간에 혼용하는 것으로 그 만큼 의미의 착종이 심화되어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여타 시론서에서는 엠프슨의 ‘ambiguity’모호성보다는 애매성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이승훈의 󰡔시론시어의 애매성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어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시적 언어의 애매성(ambiguity)은 언어의 시적 기능을 살피면서 도출했던 자의성의 개념과, 시적 언어의 구조성을 살피면서 도출하던 복합기호적 특성, 곧 웰렉과 워렌이 지적한 의미의 애매모호성이라는 개념에 의하여 드러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애매성이면 애매성이지 애매모호성은 또 무엇이냐는 것이다. 둘이 같은 의미라면 굳이 의미가 중첩되는 동어반복적 용어를 사용하여 혼란을 불러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용직·장부일의 󰡔현대시론󰡕, 장도준의 󰡔현대시론󰡕, 박진환의 󰡔현대시론󰡕, 최승호 등이 공저한 󰡔시론󰡕 그리고 김혜니의 󰡔다시 보는 현대시론󰡕 등도 엠프슨의 ‘ambiguity’애매성으로 번역하여 시어의 특성을 소개·설명하고 있다.

 

2.3 ‘모호성애매성을 구별하여 쓰는 경우

 

최근의 경향이지만 모호성애매성을 명확히 구분하여 다른 의미로 규정하고 별도의 항목으로 나누어 다루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김영철의 󰡔현대시론󰡕애매성(ambiguity)’모호성(obscurity)’을 별개의 것으로 규정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 책은 시의 특성을 설명하는 제2장에서 다섯 번째로 난해성과 애매성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1) 난해성, 2)애매성), 3)모호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난해성은 별개의 의미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논외로 하지만, ‘애매성모호성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다. 이 책은 애매성(ambiguity)하나의 시어나 문장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현상으로, 모호성(obscurity)시 자체에 대한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애매성은 다의미성(多意味性)’으로, 모호성은 명료성의 대립적 개념으로 이해불가능성(理解不可能性)’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이분법을 온전히 수용하기 힘든 이유는 첫째 ‘ambiguity’의 개념이 ‘obscurity’와는 다르게 명료하게 이해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고 둘째로 한국어 애매성모호성이 이처럼 명확하게 의미가 구별되는가로 요약된다. ‘애매성모호성도 명료성과는 거리가 멀기는 마찬가지이고, 둘 다 다의미성에 포괄되며, ‘이해불가능성난해성과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 본고의 판단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시어나 문장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애매성)이나 시 자체에 대한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모호성)나 의미론적 명료성의 결핍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한국어 모호성의 개념은 알쏭달쏭하거나 흐리터분하여 분명하지 않고 희미하다는 뜻이지 이해불가능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뒤에 밝히겠지만, 이러한 문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자리에서 사용되는 모호성애매성은 그 의미자장이 동일한 것이다.

이기반의 󰡔현대시론󰡕 역시 시어의 특성을 다루는 자리에서 모호성애매성을 다른 것으로 나누어 취급하고 있다. 이 책 역시 김영철의 󰡔현대시론과 같이 ‘obscurity’모호성으로, ‘ambiguity’애매성으로 바꾸어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둘의 개념도 김영철과 대동소이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모호성이 미학적인 근거에서 설명된다면 애매성은 어학적인 근거에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서 설명되고 있는 두 용어는 모두 미학적 견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어학과 문학(미학)이 그렇게 떼어놓고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그것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ambiguity’가 어학적 차원이 아닌 미학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은 명백한 일이 아닌가.

김영철과 이기반의 󰡔현대시론󰡕모호성애매성을 구별하여 시어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애매성의 원전으로 삼고 있는 엠프슨의 ‘ambiguity’의 일곱 가지 유형은 모두 다의미성을 갖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 비명료성의 영역에 기초하고 있은 것이다. 나아가 부분적으로는 이해불가능성의 영역에 포괄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나 시어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모호성애매성을 별개의 것으로 개념 규정하여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2.4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

 

 

김종길의 󰡔시론󰡕난해성을 설명하는 곳에서 말라르메와 같은 詩人十九世紀後半에 있었다는 것은 現代詩難解性이 한 원인이 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現代詩曖昧性를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로 생각한 말라르메에 비롯한 傳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난해성애매성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김진우는 󰡔시와 언어󰡕에서 시어의 다면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중의성(重義性)’모호성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애매모호라는 말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중의성다의성에 포함될 수 있고,다의성애매성혹은 모호성과 함께 난해성의 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매성모호성이 동일개념이냐 아니냐만 따지면 된다. 다만 애매모호성역전앞과 같이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 용어이다.

 

이상과 같은 혼란현상은 사전류에서도 유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이상섭은 애매성으로, 이명섭은 다의성으로 ‘ambiguity’의 개념을 풀이하고 있다.

 

 

3. 두 단어의 개념

 

위에서의 논의를 통하여 모호성(模糊性)’애매성(曖昧性)’이라는 두 용어가 혼용되고 있으며, 때로는 많은 경우 의미가 착종되어 있음을 알았다. 요는 이 두 단어가 의미상으로 다른 것이냐 같은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즉 시나 시어의 특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둘을 구분해서 써야 하느냐, 아니면 구분할 필요가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용어가 동의적 개념이라면 어느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를 따져 볼 필요가 제기된다.

먼저 자전(字典)에서 자의(字意)를 살펴보면, ‘모호에서의 는 법, 모양, 본뜨다, 무늬, 모범 등의 의미를 거느리고 있다. 는 풀[], 끈끈하다, 풀칠하다, 흐리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모호하다는 것은 어떤 규범이나 형상이 풀칠을 한 것같이 분명하지 않고 희미하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애매에서의 는 가리다, 가리워지다, 흐리다. 희미하다, 어둡다 등의 의미를 거느리고 있다. 는 새벽, 어둡다, 어리석다, 탐하다 등의 이미를 가진다. 따라서 애매하다는 것은 어둡거나 빛이 흐리어 선명하게 보이지 않음의 뜻이다. 결국 자의를 보면 모호애매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는 유사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전에 나타난 어의(語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판이 1938년에 나온 문세영의 󰡔우리말 사전󰡕을 비롯한 몇 가지 사전에 있는 내용을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애매 : 1. 분명하지 아니한 것. 2. 아무 잘못한 일이 없는데 책망을 받는 것.

모호하다 : 분명하지 않다. 흐리터분하다.

문세영 편 󰡔우리말 사전󰡕

 

모호성 : 여러 뜻이 뒤섞여 있어서 정확하게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기 어려운 말의 성질. [] 애매성

애매성 : 1. 희미하여 분명하지 아니한 성질. 2. 시구 따위에서의 단어나 문장이 단일하지 아니하고 복합적이고 다의적인 의미를 갖는 성질. [] 모호성

국립국어연구원 편, 󰡔표준국어대사전󰡕

 

모호성 : 여러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흐리터분하고 알쏭달쏭한 말이나 태도의 성질. [참고] 애매성

애매성 : 1. 분명하지 아니하고 희미한 성질 2. 문학어떤 단어나 문장이 단일하지 아니하고 복합적이고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성질. [참고] 모호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편, 󰡔고려대한국어사전󰡕

 

위에서처럼 사전류에 나타난 두 단어의 의미를 비교해 보면 본래 동일한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즉 문세영의 경우는 아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고, 나머지 두 사전에서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성질분명하지 아니하고 희미한 성질로 기술되어 둘을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들은 문학용어로서 사용할 때는 모호성으로 하지 않고 애매성으로 등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사전 편찬자들은 문학에서의 ‘ambiguity’의 개념을 애매성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문학전공자들의 시론류에서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혼돈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용어의 어원을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김민수의 󰡔우리말 어원사전󰡕애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애매 ; 희미하여 분명하지 못함.

[어원] ()曖昧含糊, 模糊(漢蔡邕, 釋海 : 所謂覩曖昧之利, 而忘昭晳之害)

[변화] ()曖昧 > () > 애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애매는 한자어로서 본래 모호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모호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직접 들어온 단어이고, ‘애매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라서 혹자는 애매가 일본식 한자어이기 때문에 모호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경순은 애매를 가짜 동족어로 보고 이 단어가 한국어에서는 희미하여 분명하지 아니 함”, 일본어에서는 はっきリしないこと(분명하지 않음)”의 의미로 쓰인다고 비교표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일본어 曖昧는 한국어의 모호模糊와 같은 뜻을 가진 말이다. 원래 우리말에서 애매하다불분명하다는 뜻의 한자어 애매曖昧하다가 아니라 순우리말로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였다.”고 한다. 따라서 애매보다는 모호가 분명하고 우리말에도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장승욱도 애매하다의 뜻을 아무 잘못이 없이 추궁 당하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 아무 죄도, 발못도, 관련도 없다.”라고만 풀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의 내용을 축약하면 본래 순우리말에서는 애매가 불분명하고 희미하다는 의미가 없었으며 근래에 와서는 모호애매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애매는 일본식 한자어이니 모호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참고로 영어의 ‘obscurity’‘ambiguity’의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두 단어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OBSCURITY

1 : one that is obscure

2 : the quality or state of being obscure

 

AMBIGUITY

1 a : the quality or state of being ambiguous especially in meaning (see ambiguous)

b : a word or expression that can be understood in two or more possible ways : an ambiguous word or expression

2 : uncertainty

―󰡔Webster's Ninth New Collegiate Dictionary󰡕

 

영어에서도 크게 보아 두 단어의 의미는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obscurity’는 불명료한 성질이나 상태를 넓게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ambiguity’ambi() +guity(의미)의 합성어로 의미의 불명료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특히 단어나 문장의 의미가 이해하기 곤란하거나 어려울 때 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불명료성을 이르는 문학적 용어는 ‘obscurity’보다는 ‘ambiguity’가 적당한 것이고 따라서 앰프슨도 ‘ambiguity’라는 용어를 쓴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 다만 이 용어를 번역하여 문학적으로 사용할 때 모호성애매성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가 문제로 남을 뿐이다.

 

 

 

 

4. 혼란 극복을 위한 대안

 

이제 우리는 문학에서의 ‘ambiguity’개념을 설명하고 교육할 때 우리말로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혼란스러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지 논의하여야 할 차례이다.

먼저 정리할 것은 다의성’, ‘중의성’, ‘난해성’, ‘애매모호성등의 용어이다. 일단 애매모호성은 불필요하게 의미를 중첩하여 사용하는 일이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중의성다의성은 앞에서 밝힌 바대로 중의성 다의성의 관계를 이해하고 사용하면 될것이고, ‘난해성은 의미 차원이 다른 것이므로 문맥에 맞게 사용하면 될 일이다. 다만 이 용어들을 ‘ambiguity’개념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쓰지 말아야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ambiguity’개념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고 있는 모호성애매성에 대한 대안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모호성으로 통일하여 사용하는 방안

이 방안은 앞에서 검토한 바대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으로 애매성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나아가는 것이 학문의 취지에 맞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애매성으로 통일하여 사용하는 방안

일본식 냄새가 난다 하더라도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애매성으로 통일하자는 방안이다. 이러한 생각은 현실순응적 태도라 하겠는데 이미 우리 국어사전에도 애매성이 올라 있고 대다수의 국민들도 애매성가짜 동족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언어의 사회적 특성상 이제 애매성을 완전히 몰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하고 애매성으로 통일하여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모호성애매성둘 다 쓰는 방안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두 단어는 같은 의미이니 동의어로 생각하고 혼용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방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호성 따로 애매성따로 나누어 두 개념을 다르게 언급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둘을 혼용하는 방안은 엄밀성과 통일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술영역에 있어 합당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혼란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다.

넷째, 영어 ‘ambiguity’를 그대로 사용하는 방안

혼란스러우면 차라리 영어 ‘ambiguity’를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사용하자는 방안이다. 처음이라면 몰라도 이제 와서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이를 대치할 용어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동조하기 어렵다.

이렇게 대안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네 가지로 상정해 볼 때, 셋째와 넷째는 구태여 고민하여 찾아낸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첫째와 둘째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이다. 이제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핵심은 가짜 동족어애매성;을 정식 학술용어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학술적으로 역사적으로 하자가 없는 모호성으로 사용할 것인가. 본고는 후자 즉 모호성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자 한다. 이 문제를 두고 고심하거나 교육을 하여야 할 사람은 국어국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국학을 하는 이들이 민족적 주체성을 지키고 학술영역에 남아 있는 일제의 찌꺼기를 걷어내는 일에 앞장서야 함은 당연한 책무로 판단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착종현상에 대한 대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ambiguity’개념을 다룰 때 이의 번역어로 난해성’, ‘중의성’, ‘다의성’, ‘애매모호성등을 사용하지 말자.

둘째, 시나 시어의 특징을 저술하거나 교육할 때 모호성애매성을 별도의 개념으로 나누어 다루지 말고 한 가지 용어로 통일하자.

셋째, ‘ambiguity’라는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일본식 한자어인 애매성을 쓰지 말고, ‘모호성으로 사용하자.

 

 

 

 

5. 결론

 

한국의 현대시론 논의에서 엠프슨의 ‘ambiguity’ 이론은 여러 시론류에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의 번역 및 저술 과정에서 개념의 착종현상이 나타나 혼란스러운 실정이다. 이에 본고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여러 양상을 현대시론 저술들을 토대로 찾아보고, ‘모호성애매성의 개념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여 보았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시론서들에 나타나는 다양한 착종양상을 살펴보았다.

(1)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우

홍문표와 차호일의 경우처럼 모호성애매성의 개념을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우인데, 이들은 두 용어의 개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 어떤 것을 써도 좋다는 허용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2) ‘모호성애매성중 하나를 사용하는 경우

권기호, 강홍기 등은 ‘ambiguity’의 개념을 모호성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승훈, 김용직장부일, 장도준, 박진환, 김윤정, 김혜니 등 많은 사람들은 애매성이라는 용어로 쓰고 있다.

(3) ‘모호성애매성을 구별하여 쓰는 경우

김영철, 이기반 등은 모호성애매성을 별개의 개념으로 파악하여 시어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애매성은 다의미성으로, ‘모호성은 이해불가능성으로 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4)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

김종길, 김진우 등은 ‘ambiguity’의 개념을 난해성’, ‘다의성’, 중의성‘, 애매모호성등으로 혼용하고 있다.

 

3장에서는 모호성애매성의 개념의 차이를 찾아보았다.

본디 우리말에서 애매하다는 말은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였던 것이나, 근래에 와서 모호하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애매하다는 말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일본식 한자어로서 가짜 동족어이다. 영어에서의 ‘obscurity’‘ambiguity’도 서로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4장에서는 혼란 극복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여 보았다.

첫째, ‘ambiguity’개념을 다룰 때 이의 번역어로 난해성’, ‘중의성’, ‘다의성’, ‘애매모호성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시나 시어의 특징을 저술하거나 교육할 때 모호성애매성을 별도의 개념으로 나누어 다루지 말고 한 가지 용어로 통일하여야 한다.

셋째, ‘ambiguity’라는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일본식 한자어인 애매성을 쓰지 말고, ‘모호성으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본고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는 결국 우리들의 민족의식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할 것이다. 국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로서 민족의 주체성을 수호하고 일제 식민주의통치가 남긴 찌꺼기를 걷어내고 학문의 엄정성을 지켜나가는 일은 바로 우리 모두의 책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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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 [비평의 빈자리와 존재 현실](박문사, 201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