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협 블라디보스토크 문학 탐방기 최재형 선생 독립운동사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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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

2017. 9. 16.

현대 시협 블라디보스토크 문학 탐방기 ( 5 )

최재형 선생 독립운동


  우스리스크에는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최재형 선생이 최후까지 살던 집이 있다

이 집은 연해주 항일 독립 운동의 본부였다


최재형 선생의 러시아 이름은 뻬돌쏘오 최삐찌카이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나 아버지 최흥백 형 알렉세이와 함께 연해주 남부 진신허 마을로 이주해 살았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 러시아령 노무키에프스크로 이주하여 귀화하였다


상업으로 재산을 모아 도헌(읍장에 해당하는 벼슬)이 되어 자금을 은행에 예치하여 이자로 동포 자녀 1명씩을 상테페테르부르그에 유학 시켰다

러시아 해군 소위로 경무관 통역관이 되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가며 동포들을 규합하여 독립 운동을 총괄 지원하였다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 당하여 군인들이 러시아령으로 넘어오자 격문을 작성하여 의병과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1만 루블이 모여지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 과 함께 600명의 의병을 훈련시켜 함경도 신아산 회령 영산에서 일본 수비대를 격멸시켰다


동의회라는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하여 회장으로 활동하였고 대동공보라는 신문을 발행하여 동포들의 항일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신한촌에서 홍범도, 이종호 등과 함께 권업회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동포들에게 직업을 제공하여 터전을 마련하게 하였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지원하게 된다. 최재형에게 찾아온 안중근에게 성능 좋은 권총을 준비해 주고 이토 히로부미 사살 장소로 하얼빈으로 지정해 주어 거사후 일본이 아닌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조치하여 변호사를 준비하여 대비한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일본 법정에서 재판받고 사형을 선고 받자 안중근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안중근 의사의 가족을 보호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재러 한인대표를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할 것을 계획하고 이를 추진하였다. 그 해 상해 임시 정부가 수립되자 재무청장으로 선임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재러 독립군 부대를 설립하여 사단장이 되어 러시아군과 함께 치열한 시가전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헤이룽강성(흑룡강성)의 일본 헌병대에 압송되는 도중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일본군 추격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이곳 현지에서는 다른 어느 독립투사보다 최재형 선생을 항일 독립운동의 대부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재산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지 러시아 도헌이라는 직책으로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독립운동을 뒤에서 든든하게 뒷받침할 수 있었지 권업회 활동으로 고려인에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제공했지 안중근 의사를 지원해서 거사를 할 수 있도록 바로 뒤에서 지원하였고 무엇보다 당시 고려인들이 믿고 의지하는 버팀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끝까지 최재형 선생과의 연결을 자백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인 조상의 피에 맺힌 고난사가 이어진다

스탈린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37년 8월 21일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을 카자흐 공화국 및 우즈베크 공화국 등지로 강제 이주한다는 정책을 편다

이유는 일본의 간첩 활동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데 있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생김새가 비슷해서 간첩 색출이 어렵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이 외에도 자치구 독립 등 고려인의 집단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고 고려인에게는 농업 기술이 우수해서 중앙아시아 지역 농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력 공급이 이유였다


171,781명의 고려인들이  124편의 열차에 강제 이주하게 된 사건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강제 이주 열차의 환경은 극도로 열악하였고 동물들을 실어 나르는 화물열차로 이주시켰다

객차는 이층으로 1개의 난로에 30명 정도가 배치되었는데 열차 이동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카자흐 공화국 우쉬토베는 강제 이주 첫 정착지였다. 신생 공업도시인 우쉬토베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새로 이주한 곳에서 고려인들은 토굴을 파고 움집을 짓고 사지에서 살아 남아야 했던 처절한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이렇게 중앙 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벼농사를 지으며 목숨을 이어갔다

이러한 고려인 강제 이주 조치는 스탈린이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 국가에서나 가능했던 민족 강제 이주 정책은 고려인들의 생활 기반이었던 극동지역에서의 토대를 흔들어 버린 붕괴였다

고려인들이 카자흐 우즈베크 공화국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에 집중적으로 이주하게되어 유라시아 지역에 한민족이 살게 되었고 후일에 고려인들의 뛰어난 역량으로 소련 사회에서 인정 받는 민족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후르시초프는 1955년 고려인의 정치적 법적 명예 회복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혹독한 환경과 정치적 탄압속에서 고려인들은 아리랑을 부르면서 회한을 달랬다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소설 현장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국내에서 농촌 어촌 산촌의 서민들이 부르는 토속적인 애환을 노래하는 아리랑 가락이 이국을 떠돌던 해외 동포들에게는 아리랑에서 힘을 얻어 고난한 생명력을 불러 일으켜 한을 달랬던 것이다

어쩌면 해외 동포들에게 아리랑은 더 절실하게 한민족이게 하는 우황청심환 같은 만병통치약이었지 모른다

이번 연해주를 방문하면서 아리랑에 대한 깊이를 더욱 심화 시키는 계기가 됨을 밝힌다

여기 카메라에 담긴 소중한 자료들을 좀더 분석해서 아리랑을 연구하는데 활용할 계획이다


이 블로그 아리산방이 이에 걸맞는 활동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할 것 같다.




  고려인문화센터 내 역사관


  고려인 문화 센터


















     김용언 이사장. 지은경 부이사장. 안기찬 시인.






















                             위국헌신군인본분




  권업회 임원록


  소중한 자료들
















                            아리랑


































  한국 교포 몇분이 우리 민속 무용을 연습하고 있었다




  장미 열매라고












  최재형 선생 최종 거주가옥


  최재형 선생이 돌아가시기까지 살았던 집이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인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다




  이 집은 개인에게 팔렸다가 다시 정부에서 구입하여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 뒤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는 듯 기초

공사를 하고 있는데 건물이 들어서고 나면 현재의 구조와는 아주 다르게 변질될 것 같다.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최재형 선생 고택을 수리하고 있었다


  앞쪽에서 뒷편으로 옮겨 지으려는 듯 뒷편에 기초공사를 하고 있다


  최재형 선생의 집 내부를 살펴 보니 실내 구조는 재산가 답게 잘 되어 있으나 비좁은 감이 있었다



  최재형 선생 집 내부구조








  공사하는 현지인에게 집 좀 잘 지어 주라고 부탁하면서 같이 촬영하다







  최재형의 집


  당시에는 좋은 집이었을 것 같다


  우스리스크 가로수


  수이푼강. 이 강변에 서니 이상설. 최재형 선생들이 생각나 감회가 새롭다


  수이푼강변 이상설 유허비가 있는 강변이다. 50m 부근에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다.


  수이푼강은 발해의 옛 영토 연해주를 흘러 아무르강(헤이룽강)으로 합류하여 오츠크해로 흐른다


  이곳은 늪지대라 도로를 벗어나면 바로 물구덩이 늪이 나온다


  이상설 선생 유허비


                          이상설 선생의 한이 서린 송화강변 유허비






  어쩌면 그 난세에도 굽히지 않고 꿋꿋한 역사관을 견지할 수 있었는지


   정신재 시인이 씩씩하게 낭독하다 


  묵념






  수이푼강변에서 이상설 최재형 선생을 추모하며


  수이푼강변은 늪지대로 온통 진흙투성이다


  이상설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수이푼강


  수이푼강변 유심한 억새


  도로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늪지대


  도로옆 물 웅덩이


  늪


  수이푼강변 풍경


  수이푼강 줄기


  저기 흐르는 수이푼강물은 우리 선각자들이 조국 독립을 외치다 숨져간 눈물일 것이다



















  자작나무숲


  아무르강(흑룡강)에 다다르다


  아무르강이 옛 발해 땅을 적시고 ..








  현지식 샤슬릭 식당


  여기서도 보드카로..






  아지무트 호텔


  아지무트 호텔 앞에서








  젊음의 거리


  유원지 같은 젊음의 거리. 나베레즈나야 거리




   새벽 산책으로  젊음의 거리로 나섰다










  산책 나온 여류 시인들과도 만나고.


  동해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유원지 시설도 보인다




  푸드 트럭


  젊음의 거리 조각들


  투박하면서 이미지가 좋다


  친근감을 주는 작품들






















                      마타포프 선장




  아지무트 호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