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신라 적성비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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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20. 6. 28.

신라 적성비

단양 신라 적성비는 국보 198호이다

고구려 소속의 땅이었던 이 곳을 신라가 점령하고 세운 척경비로 신라 진흥왕의 교사를 받아 세운 비석이다

신라 진흥왕 6-11년 (545_550년) 경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흥왕이 직접 순행하여 세운 순수비는 아닌 것으로 추정되나 진흥왕 영토 확장과 백성 포용하는 순수비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비의 내용은 신라 진흥왕의 국경을 넓히는 사업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 아이차에게 상을 내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이와같이 신라에 충성하는 백성에게는 포상하겠다는 국가적 시책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 올라 보면 이곳이 요새임을 금방 실감하게 된다

강으로 둘러쳐진 천연 요새로 영남으로 이어지는 보급로와 연결되어 있어 신라로서는 군사적 요충지로 절대적 자리이다

이곳이 당시에는 적성으로 불리워졌음을 확인하는 역사적 가치로도 중요하다 

 

필자가 보기에 적성비에 새겨진 글씨가 정교할 뿐만 아니라 1500년이 지난 세월에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그 동안 비석이 흙속에 묻혀 있어 풍화를 견디어 낸 것으로 생각된다

보면 볼수록 세필로 쓴 비문 글씨가 명필일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1500년 전 우리 조상이 붓을 들어 쓴 글씨를 보는 듯하다 

선암계곡에 쓰여진 한 자가 넘는 중선암 옥렴대에 새긴 글씨는 300년 지난 지금 四郡江山 三仙水石은 물에 씻겨 반쯤 닳아 희미해지고 있는데 이곳 적성비의 글씨는 1500년 지난 오늘에도 楷書 세필의 묘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당장이라도 탁본하여 모필의 교본이라도 삼고 싶다

 

이 신라 적성비는 1978년 문화재 탐방자의 신발 끝에 묻은 붉은 황토흙을 털다가 이 비문이 적혀있는 비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1500년 동안 황토 흙속에서 긴 잠을 자다가 깨어난 것이다

비각을 세워 비바람은 막을 수 있게 하였다하나 앞으로 이 글씨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 이대로 괜찮을지 저으기 걱정도 된다

 

중앙고속도로 상행선 단양팔경 휴게소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휴게소에서 문을 내어 적성에 도보로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단양 적성비각

 

단양 적성에서 바라본 죽령길

 

소백산

 

단양 적성

 

단양 적성벽

 

단양 적성

 

단양 적성에서 본 남한강

 

단양 적성

 

단양 적성 전망대

 

단양 신라 적성 척경비문
단양 적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