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학회 활동/아리랑특강

아리랑학회 2014. 10. 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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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금요일 오후 2시-4시까지 김연갑 아리랑 연합회 이사장이 상주아리랑의 형성과 가치에 대한 주제로 상주문화원 금요시민강좌에서 특강을 했다.








출처 : 빛마당 산책
글쓴이 : 빛마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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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상주시


< 정선 아리랑 시원의 오류에 대하여>



후세백작 2014.11.08 11:00
정선 아리랑의 원류의 오류에 대하여 저의 생각을 필 합니다.
정선 아라리의 시원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라는 가사를
인용하여 만수산이란 단어 하나에 정선 아리랑은 고려말 "이 초"의 후학들이 정선으로 단체
낙향하며 불렀다 한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의 상한선을 600년 전으로 잡는다는 발상에 (김연갑 저 "아리랑"에서)
본인 후세백작은 문제를 제기하며 아리랑에 관하여 문학박사고 누구고 이렇게 아리랑의
이해에 아둔함을 나타내며 무슨 연구란 말들이...

저의 블로그 "후세백작의 지평'을 검색하시여 "카테고리" 평창 아리랑"편을 보시면 그 답이
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만수산~" 이 600년전 전오륜 일행이 불렀다고 무엇으로 증명합니까??
지금까지 모든 아리랑의 논문들은 어느 한편에선 너무나 부족하고 답답한 면을 감추고 있다.
그것에 관한 저의 생각을 개진하였습니다.

즉, 그 가사의 문체적 이해와 아리랑의 모든 가사는 자신의 서정적 애환을 그리고 있지
서사적 내용은
전혀 없다는 점의 위배와 또한 고려말 시대상황에 이야기들,,,

전오륜 패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집단으로 정선 땅으로 갔다면 이방원은 후일을 도모하는
집단이란 생각에 가만두지 않았슬 것이란 점에 오히려 전오륜 패도 그 점 모를 리가 없었슬
테고, 지금의 우리들이 이 600년 전의 역사를 모르는 무지함을 나타내는 점인 것입니다.

저의 글에 이러한 역사적 시대 상황과 아리랑이란 문학적으로 서정적 묘사로 그 가사의
다각적 이해의 글이 있습니다,

그럼 그 "만수산' 가사는 어디서 불렀슬까요??
또한 정선 아라리의 가증스러운 면은 홍 교장의 정선 교육청 "학습자료"에서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엉터리 이론으로 김일성식 세뇌교육의 가면을 벗고 학문을 진실로 대하기
바랍니다.

이 세상 누구라도 "만수산"이라는 아리랑 가사에 대하여 논쟁을 하고 싶다면 부디
"후세백작의 지평에 댓글로 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래 주소의 링크는 저의 [만수산 아라리 가사에 대한 분석적 이해]의 글입니다.
http://blog.daum.net/kkks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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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대명제로 아리랑은 무엇이고 무슨 뜻일까?
근세기 100여 년간의 아리랑의 연구및 해석들은 제각각들이다. 그리고 저마다 아리랑의
해석 및 원조라 한다. 하지만 아리랑은 고대사회로부터 출발이라는 시각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기에 제마다 아리랑의 원조라 함은 오류이며, 국지적, 분파적 아리랑의 이해란 생각이다.

그럼 아리랑의 뜻은 무엇이며 그 시원은 언제 부터일까?
아리랑의 뜻의 직역은 고개 넘다라는 내용일 텐데 누구든 정확하게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것에도 아리랑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우리민족 최대의 언어이다.

우리 민족 최대의 정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恨이라 할 수 있다.
이 恨을 내재하고, 표출하는 언어가 아리랑이다.
즉, 아리랑은 민초들의 애달픔의 恨을 머금는 가락이며 우리네 서정인 것이다.

우선 이만하고 여기서 정선아리랑의 가증스러운 문제를 제기해 봅니다.
맥스이론의 구분법에 영서지역의 영월, 평창, 정선 일대의 메나리조 산의 아라리(아리랑)가
외부 문화 저촉에 의하여 변화되고 그 기능상 산의 아라리을 퇴화시키면서 변조되는
정선 아리랑은 가증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 정선 아리랑은 태백의 산간의 메나리조 산의 아라리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있다는
통속의 서술은 전 혀 맞지않는 무식의 소치란 점이다.

정선 아라리는 산의 일상의 생활에서 그 기능성을 저 버리고 바람난 처녀가 도회지 바람에
제 격을 이탈한 옛 음 그대로 산간지방 생활의 리듬의 정통성 고수가 아닌 이단의 아리랑이란
점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평창 아라리와 정선 아라리를 비교하여 보자.

원래 이 두 지역은 같은 공간과 동일 시간대의 동질의 아리랑이었지만 아직 평창 아라리는
후렴이 없다.

이 후렴이 퇴화하였는지, 미 발생적인지에 대한 의견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정선 아라리도
평창 아라리 처럼 원래는 후렴이 없었다. 즉 동일 공간의 하나의 아라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선 아라리는 지금도 후렴없이 부르다가 차츰 후렴이 불리어지는 것은 진화도 아닌
모방단계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개산조 아리랑이면서도 아리랑의 원조라 이야기함은
큰 오류이다.

태백산맥 영서지방의 아라리(이 지방 사람들은 아리랑을 스스로는 아라리라 부른다)는
메나리조 산간 지방의 아라리로 고래로부터 전해지는 원음에는 후렴이 붙지 않는다.

원래 후렴이 없었던가 아니면 쇠락한 것일까는 다음 문제로 삼고 우선 이 지면에선 지금도
후렴이 없이 불리워지는 평창아라리의 특색과 정선 아라리를 비교하고자 함이다.
후렴이란 가락의 맥을 잇고 다음 메김조 노래 준비를 함이지만 노랫가락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는 인상적인
가락인데 지금껏 평창아라리는 촌스럽기만 하고 이 후렴이 없이 부른다.

왜 그럴까?
이 지역의 아라리는 맥스 이론의 구분법으로 메나리조 산의 아라리입니다.
메나리조라 함은 가락의 장단을 말함이며 밀양아리랑의 노동요같은 흥을 붙 돋아주는
정자소리 조나 진도 아리랑의 육자베기 조에 대응하는 강원도 산간일대의 가락으로 옛
고구려풍의 웅장한 맛을 기조로 하는 오음계 중 둘째음이 길게 떨어지며 탄식을 머금는 강릉의
오독떼기나 삼척의 메나리 조 음계 모두 통칭 메나리 조라 하며 산간지방의 일상의 일과 휴식등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의 기능을 다하는 가락을 통칭하며 오늘도 한줄의 아라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정선 아라리도 평창과 인접하여 동일한 바운드의 공간과 동일 시간대에 불리워진 아라리로
정선 아라리도 원래는 평창아라리와 동일한 가락으로 후렴이 없었다가 구한말 이 산간오지에
뗏목경기로 외부인들이 들어 오며 아라리에 후렴이 붙게 되는 과정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김연갑의 "아리랑" 책을 인용하면 60년대까지도 후렴 없이 부르곤 하였으며 지금도 돌려가며
부를 때는 후렴없이 부르기도 한다고 하며 이때 다음 가창자가 가락 첫머리를 떠올리지 못하면
시간 벌이로 후렴을 부르곤 한다는 글을 인용합니다.

가령 가상적이지만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동네 여럿이 모여 아라리를 부르고 놀때 서로 주고 받고 매김 아라리를 부르다 보면 동일한
후렴은 어찌보면 지루하기만 하여 스스로 꼬리를 잘라가는 쇠락과 또한 산의 아라리란
들에서처럼 집약적 노동이지 못한 혼자의 노동, 나물 뜯고, 김 멜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부르곤 하는데 가사의 재미에 비해 후렴은 동일성이기에 번복적 요소를 지니기에 후렴은
자연 도태되는 것이란 점이다.

그래서 후렴이 없는 평창아라리는 그 템포가 조금 빠르지만 정선 아라리는 다시금 후렴을 붙여
부르면 자연 템포가 후렴이 없슬때보다 후렴의 영향으로 그 템포가 느려지는 것이다.

이렇듯 평창 아라리는 산의 아라리로 이 산간지역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일상의 노동에 따른
템포도 맞추는 그 기능성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지만 정선 아라리는 산의 아라리로서 외부의
영향으로 후렴을 달며 산의 아라리의 기능성을 버리고도 산에 남아있는 아라리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시골 처녀, 도회지 패션의 영향을 흉내내는 일일 텐데 그러고도 아라리의 원조라
함은 논리 모순의 언어도단이란 점이다.

이러기에 평창아라리는 이 산간지역 민초들의 일상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는 아라리로
세련되고 숙련된 소릿꾼만이 아닌 민초 모두가 기쁠때나 슬플때도, 일을 하거나 쉴때도 즐겨
흥얼거리는 가락 이전에 아라리는 생활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이 평창아라리는영서지방의 삱간에서 불리워 지는 옛 원음 그대로의 기능을 다하며 원조란
오늘도 불리워 지는 가락으로 삶의 표출의 조형적 언어인 것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