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학회 활동/해외아리랑답사

아리랑학회 2015. 7. 4. 13:36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님, 기미양 사무총장님과 그외 관계자 여러분과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송옥자회장님과 단원들이 2015.03.09(월)오전4시에 일본 오키나와-아카시마섬 아리랑 답사와 주민들의 교류와문경새재아리랑 중심으로 세계적인 아리랑평화음악제 추진 위해 떠났습니다.

 

<아카지마아리랑평화음악제> 추진단

단장:기미양 (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주요사항

1. 오키나와(류큐(琉球))는?

오키나와는 고려시대부터 우리와 교류한 독립국가 유구왕국이다. 일본은 류큐(琉球) 왕국(1429년 호족세력 통합-일본·중국·조선 중개무역국)을 1879년 일본 사쓰마번이 강제합병(1차 유쿠 처분)시키고, 1872년 일본 야마토(大和)정부가 통합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군의 일본 본토 육상전을 저지시키는 사석(捨石戰)의 희생양으로 삼았고, 1945년 종전 후에서 미국 군정으로 넘기고, 1972년에는 일본에 흡수하면서도 미군기지로 남겨둔 것에 대한 항변이다.

우리도 1905년 보호조약을 맺어 외교권을 제한하고 1910년 합병시켜 45년까지 식민지화 하여 수탈하고, 3년간 미군정을 실시하게 했고, 1948년 분단시킨 것이 일본이니 우리와 같은 처지였다. 그래서인지 이승만대통령이 1956년 강영훈 육군소장에게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키나와에 들러 따끔하게 독립정신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네. 오키나와가 원래 대한민국과는 가까운 사이였는데, 이 사람들이 또 일본 치하에서 살려고 그러는 모양일세. 그들에게 우리의 예를 들면서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게.”

2. 우리 징용군부와 위안부 희생

오키나와 전쟁은 6월22일 일본 남서제도를 담당했던 32군 대장의 옥쇄로 종결되었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잔류 일본군은 8월15일 이후까지 류쿠 열도 각지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해 많은 주민들의 희생시켰다. 희생자는 일본군 9만8000명, 미군 1만4000명, 조선인 군부 및 종군위안부 1만명, 오키나와 주민 9만8000여 명·····!

아! 오키나와 아라시로 토시아키 평화기념공원의 오키나와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평화의 초석>(2009)에는 희생자의 이름들이 인각되어 있다. 오키나와현민 149,171명, 미군 14,009 영국군 82명, 대만 34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82명, 대한민국 364명! 총 24만명!

그러나 일본군이 강제연행한 위안부 중 조선인 51%, 중국인 36%, 일본인 12%라는 기록을 견주면 조선 출신 위안부는 최소 460명, 최대 660여명에 이른다.

3. ‘아라리’가 어떻게 전파되었나?

일본의 고대 음악·무용 연구서인「가무음악약사」(歌舞音樂略史)’는 일본의 고대 답가(踏歌) 밭매는 소리 ‘아라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아라리의 교류를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류큐(琉球)의 밭매는 소리 아라리는 류쿠어로 ‘새가 소리를 내다’ 또는 새가 ‘울다(鳴)’라는 의미인데, 조선에서 전해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아라리’는 오키나와((琉球国/Rūchū kuku/1429~1879)와 닿고 있다. 이 ‘아라리’의 오키나와 전파는 우리와의 역사적 교류가 깊음을 알게 한다. 아라리는 청동기 후기 쯤, 육로와 해로를 통해 소금길이 열린 백두대간 강원·경북 일대에 예·맥·한족(濊貊韓族)의 결합 종족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단조로운 몇마디 말을 단순한 리듬에 얹어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다가 리듬을 형성하고, 주술성(呪術性)과 신호성(信號性)을 담아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형성된 노래이다. 곧, 산의 반향음인 ‘메(山)아리’로서 산신(山神)의 화답으로 인식하여 확산되며 불렸다. ‘아~리~’ 또는 ‘아~라~리’를 되풀이 한 것이고, 이 ‘아리’ 또는 ‘아라리’는 원초적이고 단순한 ‘소리’·‘노래’·‘말’의 뜻이었다.

4. 삼별초군, 홍길동일파의 잡단이주, 아라리를 전파시켰나?

유구국 임금의 무덤 속 건물에 쓰였던 암기와에서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癸酉年高麗匠人瓦匠造)란 글명문이 확인된 것이니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오키나와에서 출토된 13세기 고려 명문 기와! 이 기와가 고려 삼별초군이 쌓은 진도 용장산성 출토 기와와 같다? 이 시기 우리나라에서 오키나와에 집단적인 이주가 있었다? 이주를 할 수밖에 없는 특수 집단이다?

이 의문에서 떠오르는 것은 삼별초와 이들의 집단이주이다. 그동안 우리는 삼별초 최후에 대해「고려사」의 내용을 의심해 왔다. 즉, 지금까지 교과서는 삼별초가 800여 년 전 몽골 침략군에 끝까지 싸우다 1271년 진도에서 배중손이 진압되고, 잔여 세력이 제주도로 갔으나 1273년 김통적 세력마저 소탕되어 진압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가슴 속에 지녀 온 삼별초란 누구인가? 민족의 전사, 야습(夜襲)·복병(伏兵)·협격(俠擊)의 빨치산 역사 원조, 고려 무장 사병집단이 아닌가? 이런 삼별초군이 진압당하여 흔적도 없이 섬멸되었다? 이는 믿기지 않는 기록이고,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계유년(1273)에 제주도에서 탈출한 삼별초군이 상당수 오키나와에 표착해 세력을 형성했다는 것이 된다. 표류기록을 통해 추정하면 제주도에서 해류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은 규슈와 오키나와다. 동서로 1천km에 달하는 오키나와 열도는 제주도 남쪽으로 평균 780~800km 떨어져 있다. 유속이 빠른 해류를 타면 보통 열흘에서 보름, 빠르면 일주일 안에 제주에서 오키나와에 도달한다. 이 뱃길을 이 시기에 건너가 새로운 삶을 꾸렸을 집단은 바로 삼별초군이 아닐 수 없다.

5. 홍길동일파의 유구국 이주

연세대학 설성경교수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위해 두 권의 논문집을 냈다.”라고 했다. 그 단 한 줄의 문장은 바로 “홍길동이 오키나와에 갔다.”이다. 실존인물 홍길동이 오키나와로 건너갔다는 주장이다.

홍길동(洪吉童, 洪吉同, 1440~1510)은 전남 장성군 황용면 아차실(亞次谷)에서 홍상직(洪尙直)과 관기 옥영향(玉英香/소설에는 관비 춘섬) 사이에서 난 서자로, 1500년까지 충청도 공주 무성산(公州 茂盛山)을 근거지로 의협(義俠)활동을 한 인물이다.

일본의 학자들도 ‘오야케 赤蜂 홍가와라’는 도래인(渡來人)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홍길동은 유구국 사서『球陽』과 몇 년의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조선과 유구에서 각기 강도나 모반자로 관찬 역사에 기록된 ‘홍길동’과 ‘오야케 홍가와라’가 동일인이며, 그는 ‘홍길동’으로 전반부 인생을 살고, ‘오야케 아카하치 홍가와라’로 후반부 인생을 살다간 한일의 민중영웅이다. 진보적인 민권운동의 기수로 의적 활동으로 집권층에 항거한 특출한 삶의 궤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리고 이를 따른 2천여 명의 무리는 민요를 삶의 노래로 향유한 농투산이들로 이들이 ‘아라리’를 전파시킨 것이 된다.

6. 아카섬, ‘아리랑고개’와 ‘문경새재’

태평양전쟁 때 제일 먼저 미군이 상륙하여 큰 희생이 있던 아카섬에 ‘아리랑 고개’가 있다. 조선인 징용 군부와 조선인 위안부들이 바다를 보려고 고개에 올라서 아리랑을 부른 곳이다. 지금도 지역민들이 아리랑을 부른다.

실제의 아리랑고개인 문경새재와 ‘역사의 고개’인 아카섬 ‘아리랑고개’와의 교류를 추진하다. 문경에서도 6, 25때 미군, 한국군, 중공군, 북한군이 대량 희생을 된 곳이고, 이 섬도 가장 많은 미군과 일본군과 조선인 징용자와 위안부가 희생된 곳이다.

7. 세계적인 아리랑평화음악제 추진

우리로서는 고대에 아라리가 전파되었고, 근대에는 슬픈 사연으로 아리랑고개가 생긴 오키나와 아카섬에 ‘아리랑’ 주제 평화음악제를 세계 평화음악인들과 개최하려고 한다. 이번 답사는 현지 인물들과 이를 논의하기 위해 간다. 특히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와 아카섬 주민들과 교류를 추진하고자 한다.

(주)세종해외관광여행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북로79번지(오등동)

SE JONG OVERSEAS TRAVEL CO., LTD. ☏.(064)747-0411. FAX.(064)748-0413

서울지사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44-2 태양빌딩 505호

여 행 일 정 표

단 체 명

(사)한겨례아리랑연합회 탐방단

인 원

25명

여 행 기 간

2015년 2월 09일-12일(3박4일)

1인당요금

여 행 지 역

일 본

(오키나와(나하).아카시마(阿嘉島).)

일 자

지 역

교통편

시 간

여 행 일 정

식 사

제1일

(월)

인 천

나 하

나 하

OZ 172

(아시아나)

전용버스

08:00

09:40

11:55

19;00

인천국제공항 3층 “아시아나항공카운터” 앞 집결

오키나와향발, 인천국제공항 출발

오키나와 나하공항 도착..

“한국인 위령탑(韓國人慰靈塔)(”태평양전쟁시 오키나와 전선에서 사망한.

한국인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평화비)

“히메유리자료관 및 기념탑”

일본 제32군사령부방공호 등 주변전쟁유적지

“시라유메노 탑(간호학교. 간호원들의 위령탑)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중:기내식

석:현지식

호텔 : 로와지르호텔-온천욕

제2일

(화)

오키나와

나 하

아카시마

(阿嘉島)

나하

전용버스

페 리

페 리

전용버스

09:00

10:00

11:30

14:30

16:00

18:00

호텔조식후.오키나와 나하 항 으로이동

나하 항 페리탑승(약90분소요)

아카시마(阿嘉島) 항 도착

아카시마 시찰-도보(아리랑고개.위안소였던“난푸소건물”등)

아카시마 항 출발.

오키나와 나하토마린 항 도착

특별강연-오키나와와 아리랑(오키나와 회관/김연갑)

석식후 호텔체크인 휴식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호텔 : 로와지르호텔-온천욕

제3일

(수)

나 하

북 부

나 하

전용버스

08:00

14:00

19:00

호텔조식후

미군기지의 활주로와 탄약고가들여다보이는“카데나 미치노에키”(휴게실)

“ 만좌모”(万座毛)만명이 앉을 수 있는 잔디밭으로 코키리 코모양을 한

단층과 절벽으로이루어진곳

“츄라우미 수족관”

(수조크기로는 일본 최대규모.세계에서두번째 로 큰수족관)

“해양박람회 기념공원”(1975년개최된“EXPO”를기념해서만든국영공원)

미제10군사령관 바그너 중장의 비

카카즈 타카다이에서 후텐마기지전망

“청구의탑(청구란 한반도를 일컫는 말로 조선인의 위령비)

구 해군사령부 시설견학

나하시 제일마키시 공설시장(나하의부엌)

종합토론-전체 참석자 토론(오키나와 회관)

석식후 호텔투숙

조:호텔식

중:현지식

석:현지식

호텔 : 로와지르호텔-온천욕

제4일

(목)

나 하

인 천

전용버스

OZ 171

(아시아나)

08:00

11:00

13:00

15:20

호텔 조식 후

“아부치라가마”(전장270미터의동굴로 600명의부상자.군인.간호학생들이

순직한동굴)

하에바루 문화센터

관람후 나하 공항으로 이동(약20분소요) 출국준비

인천향발 오키나와 나하공항 출발

인천공항도착후 해산.................

조:호텔식

중:현지식

(공항)

참석:(사)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송옥자 회장외 단원

※ 상기 일정은 항공기 및 현지 사정에 따라 다소 변경 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글쓴이 : 아리랑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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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악보가 뱃노래다
gindoarilang

아리랑 악보를 서양에 알린 헐버트의 아르렁,은 1896년이다

코리안 보컬뮤직,이란 제목의 이악보에는 아리랑,이란 단어는 없다

그런데 이보다 십년앞선 누이에게 보낸 편지악보가 있어 들여다 보니

-아어렁 아어렁 애헤라디여 얼싸-라고 나오는데 이두악보가 비슷하다

음도 가사도 뱃노래나 노동요와 일치하는데 악센트를 넣어불러보면

에헤라 에헤라 에헤라디여 얼싸-로 아리랑이 아니다

이것을 문경시,와 무슨교수랑 아리랑회 김이사가 아리랑,이라 우긴것이다

이악보는 경복궁 중수할때 (농어민의 노동요) 로 불렀던 힘을 맞추던 노래가 틀림없는것은

배띄워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에라디여-뱃노래에 가사를 곁들였다

고종의 밀사로,육영회 교사로,한글을 정비한 한글박사 헐버트께서 아리랑을 아르렁으로

잘못썼을리가 없으며 이시기에 나라의 큰일은 경복궁 중수로 온백성들이 부역을 하였고

현대의 새마을 노래처럼 나라차원에서 권장되고 또 전래해 오던 토속민요다

이 뱃노래를 아리랑,이라며 새아리랑,을 만들어 문화재라며 우기니 황당하다



우리역사에 기록된 아리랑,과

한글로된 우리말 노래 아리랑,은

-아리/와 아라리/ 두사람이 고개를 넘어간다,로 시작되는데

일본군에게 쫓기는 스리,네 가족의 애닯은 한이 들어있다

이것은 아리,랑/의 기록중 일부입니다 http://blog.daum.net/jamessx/50

정든님 아리,와

그랑 떠난 아라리,는 누구이길래

스리의 이노래는 이리도 애절한가?

한민족이면 꼭알고 넘어가야할 아리,랑/은

반만년 우리역사에 가장 서러운 기록을 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