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아리랑뉴스

아리랑학회 2018. 9. 7. 09:46
<link rel="stylesheet" href="http://editor.daum.net/services/blog/css/contents4view.css?ver=1.1.114" type="text/css"/><link rel="stylesheet" href="http://editor.daum.net/services/blog/css/theme4view.css?ver=1.1.114" type="text/css"/>

토요일 저녁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러시아 쌍드뻬쩨르부르그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 후원 공연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교육사랑방 송순재 교수님이 초대권을 주셔서 후원금을 얼마간 내놓고 나왔다.

상드뻬쩨르부르그의 한인 4세 5세를 위한 청소년문화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 공연이어서 의미있었다.

 김예옥 교수 지휘로 연세 콘서트 콰이어가 1부 공연의 테이프를 끊었다.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는 조금 알고 있어서 ..그리고  농부가는 듣기에 좋았다.

 

 소프라노 한고은씨의 신아리랑과 you raise me up을 들었다.

 이 나탈리아 제151국립학교 교감 선생님이자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 대표. 러시아 한인 4~5세의 문화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영상물을 통하여 센터내의 어려운 생활과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대학생들이 나가서 자원봉사하고 정을 나누면서 눈물의 이별을 하는 모습 등이 보였다. 우리의 의지와 관련 없이 일제의 폭력하에 살다가 만주 와 간도, 그리고 연해주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근대 한국인들. 특히 연해주 한인들은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강압 정치하에서 이루 말로 다할 수없는 고통과 절망을 겪어야 했다. 그 후손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교육활동은 참으로 바람직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경기 명창 이희완 선생.

러시아 아리랑을 부른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왔나 / 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사할린 좋다고 내 여기 왔나 / 일본놈 무서워 내 여기 왔지

우리 조선은 따뜻한데 / 그 땅에 못살고 내 여기 왔나

우리 영감님 왜 왔다던가 / 나만 혼자 두고 자기만 갔네

 

( 18세 때 도로샤 흐조로스끄 탄광에 끌려온 남편을 따라왔다 모진 세월을 살아야 했던 정성애 할머니로부터 전해진 아리랑 )

 이희완 선생의 창으로 2부 공연이 시작되었다.

 

 한인 4세들의 소운무용단의 아라리춤 

 

 무향. 여인의 눈물과 한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엇중몰이신칼대신무. 

  긴 대나무에 흰 창호지를 오려 대 양끝에 술처럼 치렁치렁 매단 신칼을 양손에 들고 춤춘다. 마치 내림굿을 하듯 신칼로 하늘의 기운을 모으고 디딤새로는 지기를 이끌어 올려 춤꾼의 몸에서 천지가 합일하는 신이한 경험을 제공한다.

 

 

 창부타령을 부르는 이희완 명창

 

 

 풍물굿패 살판의 북춤마당-바람을 타고 나는 새야

 풍물굿패 참넋과의 공동 공연이다.

 

 

 왕기석 명창이 심청전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부르고 있다.

 

 김유경류 봉산탈춤보존회의 봉산탈춤 제2과장 먹중춤을 추고 있다.

 

 

 

 

 

 춤꾼 정주미의 주기도춤

 

 공연을 마치고 인사하는 출연자들

 

 

 

출처 : 동학, 영원한 에코토피아의 길
글쓴이 : 나무사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