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아리랑뉴스

아리랑학회 2018. 10. 3. 20:52

진도아리랑을 지키는 사람(2)

고향의 문화밭(향전) 일구는 박병훈선생

문화는 끊임없이 인간에 의해 전승 보전되면서 또한 생성을 반복하기도 한다. 진도의 문화밭은 거친 돌자갈 고랑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어왔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선각자, 열정을 갖고 일궈온 분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전승되는 아리랑은 60여종 3600수에 이른다. 이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은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이다.

진도아리랑은 대표적인 남도민요이다. 진도에서는 흔히 '아리랑타령'이라 부른다. 진도에서 발생한 노래이나 수십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불린다.

이런 말이 있다. “노래 못하면 진도 사람이 아니다”고 할 정도로 진도 사람들은 노래를 잘 하고 즐겨 불렀다.

예전에는 들에서 일하던 여자 들이 지나가는 남자 앞에 짚으로 엮은 멱서리를 던져 놓고 노래를 청하는 풍습도 있었다. 남자가 노래 한 가락을 잘 뽑으면 새참 대접도 받지만, 쭈볏거리거나 하면 꼼짝없이 온갖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진도에서 아리랑을 들을 수 있는 곳은 국립 남도국악원, 진도 향토 문화회관, 진도 문화체험장 등이다. 모두 여행자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다.

이 진도아리랑을 널리 보급하는데 가장 앞장 서 온 이가 향전 박병훈(80)씨이다.

의신면 향교리에서 수보당 약방을 운영하면서 진도향토사를 연구하던 박병훈씨는 주변의 진도아리랑을 즐겨부르는 아짐네들을 불러모아 진도아리랑보존회를 결성하게 된다.

진도아리랑보존회는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진도아리랑 가사 750 여수를 찾아 <진도아리랑 타령 가사집>을 발간 하였다. 지금도 새로운 가사가 계속해 탄생하고 있다.

박병훈 진도아리랑보존회 회장은 "진도 아리랑은 한마디로 한을 흥으로 승화시킨 그러한 노래라고 설명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도 아리랑은 신명이다라고 말씀드립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진도아리랑 사설의 기본 성격은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전형적인 전라도의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다. 떠는 음, 평으로 내는 음, 꺾는 음. 이렇게 세 부분의 음을 뼈대로 하여 음계가 구성되고, 발성법이나 가사 발음법도 그런 음들을 잘 표현하도록 발달하였다.

장단은 세마치 장단이지만, 조금 빨리 부를 때는 중모리 장단에 맞추어 부른다. 사설 내용에 욕이나 상소리, 익살 등이 응집되어 부인네들의 야성을 거침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또한 도서지방의 지역성을 표출하고 있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사설의 형식은 2행 1연으로 되어있는 짧은 장절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분장체 장가(長歌)이다. 가창방식은 기존 사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설이 창자(昌者)에 의해 계속적으로 덧붙여질 수 있는 선 후창 형식의 돌림노래이다. 여기서 돌림노래란 여럿이 부를 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메김소리를 하고, 나머지 맞는 소리(맞음 소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창 방식은 집단노동요의 전형적인 가창방식과 일치한다. 때로는 처연하고 유장하게, 때로는 능청능청 휘감기거나 신이 나서 날뛰면서, 또 때로는 왈칵 쏟아져 나오는 듯, 부르는 사람이나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색깔을 띠며 갖가지 삶의 주름살을 훓어냈다.

혼자서 길게 뽑아 부를 떄는 신세타령이 되고, 여럿이 목을 합쳐 부를 때는 삶의 응원가가 되었다. 이처럼 진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진도 아리랑은 때로는 세련된 비유와 묘사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매우 직설적이고 외설적인 가사도 많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으응 아라리가 났네(후렴)

문경(전) 세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 어기여차 어야디여라 노를 저어라

노다 가세 놀다나 가세 저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 가세

님은 죽어서 극락을 가면 이내 몸도 따라 가지 지장보살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갈 길을 내가 왜 왔던고

하도 많아서...가는 데마다 가사가 다르고, 잘하는 노랫꾼은 수십 대목 쯤은 한 자리에서 엮어낸다. 또, 한번 노래판이 벌어지면 이 사람이 끼어 들고, 저 사람이 거들고 하면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씻김굿을 하는데, 시작하기 전에 진도아리랑이 한차례 벌어지기도 한다.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진도아리랑보존회에도 한층 활기를 띄고 있다. 서울과 정선 등지로 수회 초청공연을 다녀오기도 했다. 진도문화원에서는 매년 문화의날을 맞아 진도아리랑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박병훈 회장은 해방이 된 1945년~85년까지를 진도아리랑의 전승기라고 하며 58년 정의현(진도국악원 원장)선생이 지도아리랑 가사 29수를 수집, 「국악교재」에 처음으로 실었으며 72년 진도초교 민속조사단(김소남)이 68수를 「월간 진도」에 실었고 76년 진도군지에 37수를 수록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85년년 전국 최초로 진도아리랑보존회가 결성되고 진도아리랑 가사 770수를 수집, 4차례에 걸쳐 책자로 발간하여 중흥기를 이끌었다는 평이다.

90년 진도아리랑 ‘경창대회’를 개최하고 93년 진도민속예술단이 창립, 박회장의 주도로 가장 웅장한 민요비인 ‘진도아리랑비’가 첨찰산 밑 사천리에 세워졌다. 그 동안 300여회의 각종 활동으로 대내외에 선양하여 왔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펴며 자료정리에 몰두하고 있는 박 회장은 이미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었으며 각종 향토사연구로 진도군민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 진도아리랑이 더욱 체계적이고 새로운 가사 발굴, 공연 연희방식 연구 등을 위해 보다 많은 동호인들이 모여 명실상부한 진도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재탄생되어야 할 때이다.

진도 아리랑에 얽힌 전설

진도의 한 당골에 세습 박수가 되는 것을 비관한 총각이 있었다. 총각은 사랑하는 처녀와 혼약을 남긴 채 진도에서 도망쳐 버린다. 진도를 도망친 총각은 상민이었지만 덩치 좋고 훤칠하게 생긴 탓에 양반집에서 머슴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주인집에는 예쁜 처녀가 있었다. 이 처녀는 집안에서 남정네를 못 보다 머슴의 사내다움을 보고 그만 반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었고, 그런 사랑놀음은 이내 부모들에게 들통이 나서 야단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총각은 다시 쫓겨나게 되었고 여기에 처녀도 보따리를 쌌다. 둘은 문경고개를 넘어 다시 진도로 들어오게 되었다.

와보니 옛날의 처녀는 턱을 고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들은 양가집 며느리를 맞게 되었다고 야단이었다. 이 통에 기다렸던 처녀는 눈물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노래가 <진도 아리랑>이라고 했다.

구전되어 오던 진도아리랑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우리나라 대금의 명수인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 출신 박종기(1879~1953)선생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신청에서 박종기 선생을 비롯하여 박진권, 박동준, 채중인, 양홍도 등이 함께 모여 아리랑을 작사 작곡하였고 박종기 선생이 진도 아리랑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문화재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본군 출신 남계 박진주, 인간문화재 박병천, 민속에 조예가 있는 구춘홍의 말이다. 이와 같은 진도아리랑은 밀양아리랑이나 정선아리랑 보다 독특한 가락이있고 가사내용이 님에 대한 내용이며 묘한 흥취가 있어서 다른 아리랑보다 우월하게 평가된다. 진도아리랑의 장단은 세마치 장단이며 선율은 시나위형으로 중머리 장단에 불리어진다. 특히 진도아리랑은 가사보다는 그 여음의 묘미가 특색이 있다.

우리 선인들의 얼이 깊이 깃들어 있는 진도 아리랑 타령은 그 가락과 멋과 묘한 흥취가 타 아리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점이 있다.

남도 소리가 대부분 그렇듯이 진도아리랑은 가락이 구성지고 장엄해서 소리하는데 힘이 든다. 태양이 서산에 지는 것이나 '님'이 이별을 하고 떠나는 것은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 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세상 일이란 뜻대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진도아리랑은 이기고 굴려서 내는 소리가 특징이다. 찰떡 이기듯, 구슬 굴리듯 굴리는 소리, 짓이긴 추사체의 글씨처럼 뱃심에 힘을 들여 굵은 목을 눌러서 끈끈하고 차지게 이겨내야 제맛이 난다.

진도아리랑은 또 끈끈하면서도 굴리는 두 상극의 소리를 동시에 소화해 찰싹찰싹 달라붙고 휘휘 감겨드는 곡예의 예술을 부린다. 낭창낭창한 가락, 하늘대는 장단, 나긋나긋 감칠맛나게 흥청대며 넘어가는 소리, 감기고 푸는 흥과 신명의 소리가 진도아리랑이다.

정선아리랑은 담백하고 산뜻한 맛이 있다. 가는 올 삼베의 질감과 색감을 정선아라리는 담고 있다. 늦가을 영마루 넘어가는 한 조각구름의 흐름, 억새밭에 연한 자락을 끌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리고 새벽녘 흐늘거리는 얕은 강물의 물살소리, 이것이 정선아라리의 숨결이다.

밀양아리랑은 뚝심이 있고 투박스럽다. 지게목발 장단이 그렇고 바가지 물장구가 그렇다. 당다쿵 당다쿵 거대한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 거인들이 무리지어 지팡이로 하늘 기둥을 치며 휘돌아 가는데서 밀양아리랑은 제 멋, 제 흥을 피운다. 정선아리랑이 설렁거린다면 진도아리랑은 낭창거리고 밀양아리랑은 콩닥거린다.(인용)

진도아리랑 가사에 얽힌 이야기

“문전세재”란 인생의 고갯길 표현, 각계 주장 쏟아져

안방과 부엌을 연결한 쪽문, 부엌과 마당을 이어주는 부엌문, 죽어서 마당에서 북망으로 떠나는 대문이 ‘세 고개’ 축제장이 아닌 언론과 메스컴에 연일 ‘진도아리랑’이 울리고 있다.

먼저 광주광역시 강운태시장이 오는 가을 제1회 세계아리랑축제를 준비하는 가운데

“진도아리랑 가사의 일부를 바꿔야 한다”라는 주장을 강하게 내놓았다.

진도아리랑 가사 중 일반적으로 알려진 ‘문경새재’는 잘못된 발음이며

진도 현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촌로들이 ‘문전세재’로 불렀다는 향토사학자들의 잇딴 제보와

국정음악교과서에 수록된 가사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을 적극 받아들인 입장이다.

진도에서 수십년 동안 진도아리랑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박병훈(전 진도문화원장) 향토사학자를 비롯 국악인 강송대(70.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씨 등은 물론 진도아리랑을 연구해온 송 현, 김상유 씨 등도 같은 맥락에서 교과부가 적극 가사개정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진도아리랑에 웬 뜬금없는 ‘문경새재’냐,

섬 여인의 일생을 은유한 ‘문전세재’로 바꿔 불러야 한다.”라는 요지다.

지난 13일 오후 진도문화해설사인 장재호(62)씨도 각종 자료들과 타당성을 강조하며

강송대여사로부터 뜻을 같이한다는 확답을 받고 이날 자리에서 뜻밖의 놀라운 사실도 확인했다.

진도지역에서 대단한 식자로 널리 알려진 강 명창의 할아버지가 생전에 자주 아리랑을 부를 때

“문전세재넌 웬 고개인가”라고 분명히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오는 10월에 세계아리랑축전을 여는 광주시는 “호남을 대표하는 민요 <진도아리랑>의 가사 중 ‘문경새재’는 애초 ‘문전세재’가 잘못 전해진 것”이라며 “문헌고증과 현지 채록을 통해

문화유산을 바르게 이어가겠다”고 이미 밝혔다.

광주시가 문제를 제기한 대목은 <진도아리랑>의 첫번째 매김 소리인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이다.

전라남도 진도 전통민요에 생뚱맞게 경북 문경의 새재가 등장할 리 없고, 아무리 고개가 험해도 넘어가면서 쉬면 되지 눈물까지야 나겠느냐는 반론이다.

이 가사는 중학교 3학년 국어, 중학교 2학년 음악 교과서 등에 그대로 올라 있다.

문경새재를 흔히 ‘조령(鳥嶺)’이라고 하지만 언어학자들은 ‘사이 재’의 압축으로 보고 있다.

진도아리랑보존회(회장 박병훈)도 “1980년대 당시 70~80대였던 조공례(박동매 모)·

이근여(강송대 모.) 최소심(둔전리. 이상 모두 작고)등 진도 국악인 10여명한테 채록한 가사는 모두가 ‘문전세재’”라고 확언했다.

특히 보존회는 ‘문전세재’가 “진도 여인의 기구한 인생살이를 안방과 부엌을 연결한 쪽문,

부엌과 마당을 이어주는 부엌문, 죽어서 마당에서 북망으로 떠나는 대문 등

세 문을 굽이굽이 넘는 눈물고개로 은유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주장은 진도군의회 장재호 전 의원과 송 현 한국음악연구소 대표 등에 의해 잇따라 제기됐다.

이런 움직임은 중학교 국어와 음악 교과서에 실린 <진도아리랑>의 가사에 대한 수정 요구로 이어졌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고칠 만한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아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먼저 광주시가 교과부를 설득해 가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시는 1930년대 이전의 문헌이나 음반을 찾고, 진도 현지의 구전 가사를 채록하는 등 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국악작곡가인 김상유(42)씨는 “학교가 아니라 현지에서 배운 이들은 다들 ‘문전세재’로 부른다”며

“왜곡이 재생산되지 않도록 교과서를 바로잡아야 맞다”고 강조했다.

광주시 안기석 대변인은 “전남 진도 민요에 경북 문경에 있는 문경새재가 등장할 리 없고,

실제로 진도 여인들의 억척스럽고도 기구한 인생인 고갯길을 담아 낸 표현으로 알고 있다.” 면서

“생뚱맞게 문경새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도군측에서는 진도문화원에서 각 마을을 돌며 현지 채록, 간행한 「우리동네 소리꾼들」에 수록된 가사들과 이 전에 ‘예향진도’(진도문화원)에 실린 논문 등을 모아 정식적으로 교육부에 가사 교정을 요구하는 작업을 박병훈 장재호 박남인씨 등이 추진 중이다.

(자료제공 예향진도신문/박남인 주필)

 

(1)박병훈회장(진도아리랑 보존회) 프로필

연도

프로필

비고

1936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 출생

1962

매약상 허가 취득

1970

약종상 시험 합격(약업사)

1984

사단법인 진도문화원 부원장

1985

진도아리랑 보존회 조직(회장)

1988

한민족 아리랑 연합회 부회장 겸 진도지회장

1989

민속무용 강강술래의 최고 기록을

무정 정만조의 [은파유필]에서 발굴 발표함

1990

사단법인 진도문화원 원장

1993

진도아리랑비 건립 추진 위원회 위원장

1994

한국민속학회 회원

1994

국사편찬 위원회 지역사료 조사위원

2000

한민족 아리랑 연합회 부이사장

2007

진도군지“연혁사” 편집

 

(2) 민요 아리랑 연구

 

연도

내용

비고

1989

민요 아리랑 어원소고(전남문화 창간호)

1989

아리랑 속에서 노다가세(금호문화 4호)

1990

아리랑의 기원과 만가의 [넘자소리](전남매일)

1991

민요 아리랑과 만가[넘자소리]의 비교 고찰(월간공간 1월호)

1991

아리랑연구 필요하다(문화부 장관에게 드린 건의서)

건의서

1995

진도아리랑 가사 소고(예향진도 29호)

1997

민요 아리랑 어원 연구(진도아리랑 가사집)

2002

진도아리랑 (대동문화,통천 제21호)

2011

진도아리랑 후렴“쓰리쓰리랑” 시정을 과기부 장관에게 건의

건의서

2011

“아리랑 학회” 창립기념 심포지움(서울 인사동 기독교회관)에 “아리랑 사업 이렇게 해왔다“ 발표함

 

(3) 저서, 수상

○ 논문

► 아리랑 기원과 어원연구등 200여편

○ 저서

► 진도군 연혁사 1972. 전남대 도서관

► E.S.P의 본질 연구 1984. 태종출판사

► 진도아리랑 가사집(1~4집) 1986. 진도문화원

► 진도군 향토사 자료 영인본(1~3집) 1992. 진도문화원

► 예향진도(23~31호) 1992. 진도문화원

► 진도아리랑(박병훈, 김연갑 공저) 1997. 범우사

► 동양해몽 전서 1996. 도서출판 민

► 새로 쓴 천자문 2002. 민 미디어

► 칠전리 마을지 2002. 마을지위원회

○ 수상

► 1962년 “노라호 태풍시 인명구조 표창” [경찰서장]

► 1990년 “제2회 전남향토문화상” [문화원연합회]

► 1990년 “남도문화재 최우수상(민속)” [전남지사]

► 1992년 “남도문화재 발굴 우수상” [전남지사]

► 1997년 “진도군민의 상” [진도군수]

► 2002년 “의신청년회 공로패” [청년회장]

► 2003년 “의신청년회 공로패” [청년회장]

출처 : 예향진도신문
글쓴이 : 자운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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