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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학회 2018. 12. 27.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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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글학교 현실과 지방학교의 부활> 

 

(코르사코프제2중학교 한글반 기념사진) 

 

(사할린=한인소식) 사할린 중심부 가장 많은 하역물량이 선적되는 부두로는 코르사코프 항구다. 코르사코프시는 인구 3만4천839명에 한인 2500명이 거주하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40년도부터 강제징집에 동원된 이래 망향의 한으로 점철된 70년 사이 사할린 주요도시에 분포되어 있는 탄광지역과 코르사코프시는 사할린 한인들에게 있어 뼈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소련군이 상륙한 홈스크 항에서부터 해방과 동시에 가장 많은 한인들이 몰려든 곳도 코르사코프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강포럼이 2007년 대우건설 협찬과 성금을 모아서 서울 미대의 작품을 의뢰해서 '망향의 언덕'에다 배를 형상화한 위령비를 세워 명소가 된 곳이기도 하다.

 

사할린의 수출입 물동량 대부분을 소화해내는 곳이며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는 42km, 침엽수가 많고 어업이 왕성하며 투나이, 오호츠크, 부세호수 등 휴양지로 손꼽히고 있다. 

 

반면 유즈노사할린스크를 벗어나면 소도시의 낙후된 모습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 곳에도 오랜 전부터 한글학교가 있었다. 하지만 63년 조선학교가 폐쇄되고 88올림픽까지 한글학교는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무했다.

 

그러다 한인단체가 형성되고 서서히 고개를 든 한글학교가 사할린에 문을 열게 되었다. 신지식인의 교육학자에 의해 대학에서 첫 신호탄을 올렸고 그 이듬해 일반학교에서 문을 연 한글학교는 복원하기에 박차를 가했지만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한국교육원이 들어서고 한글학교는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자립하게 되었고 모국어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게 된 동기이다. 그 여파는 물론 TV로 비친 낯선 조국이 있었고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할린 한인들은 조국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남쪽이 고향인 1세 한인들은 평생 가슴에 묻어 둔 조국이었지만 국교수교가 없었던 관계로 대부분 북한이 선전한 책동에 휘말려 한국은 거지가 창궐하는 나라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어 교육은 더없이 비약했고 간간이 북한으로부터 입수해 온 조선어 책자로 학교는 연명해 왔다. 그로부터 개방이 되고 한국어 교육도 순차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체 한인인구 3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한글학교가 사할린의 현실이다. 그간 정부의 재외동포 한글사업으로 다소 활기를 찾았지만 인구에 비하면 체계적인 교육이 떨어진 형편이고 숱한 연수교육도 실시되었지만 거의가 일회성에 불과했다.

 

5년 전만하여도 한국어 보급은 비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분명 1세로 이어진 모계사회가 형성되었을 것인데도 40-50대 한국어 수준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심지어 60대 어른들도 한국어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야 급속도로 발전한 이유는 사할린동포영주귀국이 크게 뒷받침한 결과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개방 이래 한국어 교육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지 않고 상하 곡선을 이룬 이유는 이들에게 모국어가 생계로 이어지는 불확실한 장래성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모국어는 등한시됐고 수시적 상황에 이르기를 반복하다보니 대체적으로 안일했다.

 

근간에 들어서 인터넷 보급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고 한국문화 행사가 수시로 개최되고 청소년 연수교육에다 모국과의 왕래가 점차 많아진 까닭에 현지신문들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했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올바른 한글학교가 몇 있었지만 2007년부터 시작된 집단영주귀국으로 하여금 내 놓아라 하는 한글교사가 제다 한국으로 갔다. 금지옥엽 지탱해온 지방의 한글학교도 문을 닫았다.

 

현재로선 경력 있는 교사가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국립대학교의 한국어학과와 동양어문학교, 루고워예 등 지방의 코르사코프 한글학교가 유지된 상태이다.

 

이는 교사양성을 한다는 허울만 있을 뿐 실질적인 교사양성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글학교의 발전도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사양성은 우후죽순 많으나 교사자립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생계가 우선 보장되어야 하는데 수업시간 만큼 교사의 노동력에 비해 임금이 턱없이 작고 교사지원금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까닭도 있다고 본다. 정부예산이 많다고 하지만 관할 유지비는 엄청나게 많고 실지 전달되는 교육비 예산은 그에 비해 30-40%에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교사양성이 체계적으로 성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한 번쯤은 고려해볼 문제이다. 우선은 수없이 많이 실시되는 연수교육에도 왜 교사는 없는가 하는 점이다.

 

탐낼 교사자리가 아니어도 좋다. 모국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대로 된 연수 교육법을 개발해 한글을 가르칠 사명감을 불어주어야 하고 노동력에 가하는 대가가 수반될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테면 정부예산으로 이루어지는 현지 유지비의 일부를 축소하고 축소한 만큼의 경상비를 한글학교에 투자한다면 나름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고, 교사의 사명감을 심어주고 학교의 장기적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가장 염려스런 부분은 현지인에 밀려 제대로 업무처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정작 한글학교로 가야할 지원금이 엉뚱한 곳으로 지급되는 것 또한 깊이 생각하여야하고 사소한 운영경비이라도 절약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을 덜어주는 것이기에 운영과 품위유지비의 출처를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매사 돈으로 해결할 바에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 국가예산은 너나 할 것 없이 꼭 필요한 곳에 써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언제 사할린에 있는 모 재외기관의 한글학교 실태를 본 적이 있다. 정규과목과 비정규 분석, 학생 수, 학교 등이 기재되었는데 그로 치자면 사할린한글학교는 세계 어느 지역 한글학교보다 우수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또한 한국어 수업이 원활히 움직여 해외 한글학교의 필요성이 확산될 소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다운 교사는 없고 학생 수와 학교는 늘어나고 있다는 평이다.

 

점잖게 지적하자면 다소 부풀인 점이 많다고 본다. 사할린의 한글학교는 교사양성이 우선이고 적은 돈이라도 예산지원금을 제대로 활용해야 수급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자립으로 운영할 여건이 없는 실정이 사할린이다. 강제징용이라는 특수한 사정에 고립된 상황이 지배적이다 보니 베푸는 것이 아직은 인색하다. 자력이 공생하지 않는 이상 한글학교의 부활은 지극히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냥 퍼 주기보다는 자력의 공생이 어우러지면 교사양성도 자연히 이루어 질 수 있는데 현 상태의 고수로는 십 년을 이룬 것이 고작 이 수준에 다다르니 안타깝기만 하다는 것이다.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제2외국어에도 한국어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인임에도 한국어를 선택하지 않고 신흥국 언어를 선택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단 한 명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사명감을 줄 교육 기반을 조성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 속에도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학교의 부활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코르사코프 제2중학교이다. 이 학교는 교장과 부교장이 사심 없이 한국문화를 받아들이고 엄청 좋아하고 있다.

 

올 4월에 열린 한국문화 및 한국어페스티벌 축제는 관할공관의 지원금 없이 자체 준비해 역대 가장 빛나는 한국어축제로 승화시켰다. 지방이라서 현지 한인언론사도 찾지 않은 조금은 씁쓸한 자리이었지만 오히려 일본의 NHK와 러시아 언론사가 치열하게 보도한 경향이 있었고 사할린을 대표하는 중등학교의 한글반이 참석해 보다 알찬 축제가 되었다.

 

작은 축제이었지만 선전이 되고 관심이 모이는 곳에 치중하는 졸속 모양새를 갖춘 위정자의 모습이 한글교육에도 확연히 잠재하고 있다는 것에 많이 실망했다. 우선 도움이 되면 기사화하고 그렇지 않으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고도 재외기관의 책임을 다하였고 언론의 참모습이었는지 묻고 싶다. 좀더 각성하는 마음자세와 변화가 절실히 요구됐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어축제를 활성화하고 한국을 빛낸 인물이 어디 교장과 부교장 선생뿐 이었겠나 싶다. 이는 전적으로 한글교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 곳에 오늘의 김길수(사진) 한글교사가 있었다. 한인3세로 젊은 교사인 김길수 교사가 운영하는 코르사코프 한글학교는 2006년 지역 한인회의 도움으로 시작해 전 주블라디보스토크 전대완 총영사와 전 한국교육원 김윤수 원장에 의해 개설된 한글학교이다.

 

초대교사로 오점순 교사에 이어 재작년부터 한글교사에 공채된 김길수 교사는 조부의 유별난 한국어 교육에 기초를 익혔고 전문대학 졸업 후 러시아에 진출한 삼육 대학에서 한국어수업을 받았다.

 

현재 저학년 영어교사와 전 학급 한글교사로 있는 김길수 교사는 해마다 인기절정으로 치닫는 한글교육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교사의 열정에 앞서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자세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유독 다문화 가정이 많은 지역이지만 한인보다는 러시아 학생들이 더 적극적이고 의욕을 보여 한국어 수업이 매번 즐겁기만 했다. 열성적인 어린 학생들은 한국문화에 반해 한국어 연극놀이에 가담해 줄 것을 떼를 쓰는가 하면 눈물로 하소연하며 한글배우기를 원하고 있다.

 

또 한 학생은 한국어수업이 너무 재미나서 그 날 배운 한국어를 방과 후 가족들을 모아놓고서 일장 연설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고 했다. 실지 수차례 학교를 관심 있게 방문해서 느낀 것이지만 학생들의 한국어 수업은 타 학교완 남달랐다.

 

해외에 살면서 어디 가슴이 뭉클한 것이 이것 뿐 이었겠는가만 자연스럽고 평범하게도 그 학교에서 발견한 것은 원인 모를 감정으로 알권리를 대변해야할 이유를 가졌다는 것을 먼저 떠올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 학교의 자랑스러운 모습에 가슴이 벅차고 순수한 러시아인 학생의 한국어 의욕이 오래 동안 기억되었다.

 

작년 서울의 홍익대학교 봉사활동이 이 학교에서 진행되었다. 홍익대 학생들의 봉사활동이 체계적이고 알차기도 하였지만 방학 중임에도 전교 학생들의 인기를 받으며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고 교육봉사 수업마다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학생들은 더욱 한국문화를 이해하였고 깊이 한국어를 사랑한 계기가 되었다. 이들에게 한국어수업은 일상과 같은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는 듯 했다.

 

이런 뿌듯한 광경을 사할린 외진 변방 토마리 지역에서 보았다. 역시나 지방학교로 현존하는 한글학교로는 가장 인기 있는 학교로 존재했다. 지금은 한글학교는 없지만 그 때의 한글교사의 자리는 영원히 남아있다. 바로 영주 귀국한 사할린 한글교사의 선구자로 기억되는 허남훈 선생이다.

 

그 빈자리를 지켜보면서 한글교사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나 노심초사 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잘된 학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여건을 갖추고 한글학교의 면모를 지닌 인상적인 학교가 코르사코프2중학교 한글학교인 것 같았다. 똑같은 상황에 지방학교이면서 표 나지 않게 맡은 바 책무를 다하며 교사의 사명감을 몸으로 익히는 허남훈 선생을 보는 듯 하였기 때문이다.

 

적은 보수에도 탓하지 않고 온갖 비리가 전해져 수모를 당하여도 오직 한글교육에 임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젊은 선생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했다. 그는 간간이 한국어통역도 하며 한국어 실력을 부양해 나가고 있다. 단지 한국어 선생이라는 직책 때문에 별 이상한 술수에 휘 말렸고 소문이 난무하여서도 본인의 임무를 다했다. 오히려 러시아인 교장과 부교장의 관심과 사랑으로 힘을 지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국가에서 지급되는 정규교사의 월급이 45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참 가슴이 아프다. 이런 현실로도 가장을 책임지고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어떤 지원과 자구책이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부족한 실력이기에 더 많은 문법을 익히고 낱말을 숙지해 아이들에게 가르치길 원했다. 보통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해 여덟 시까지 수업에 임하면서도 한 번도 피곤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고 한국어 수업에는 힘이 솟아난다고 했다.

 

동료 교사들도 한 목소리로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어 수업도 타 학교에 비해 상당히 많았다. 이런 학교는 더욱 보살펴 주어야 한다. 러시아 학교이면서 교육부에 등록된 정식 한글학교가 있는 학교는 많지 않다. 지대한 관심만이 학교가 존재한다. 적은 지원이라도 성의껏 공조하고 관할 재외기관이 적극 나서야 학교의 존립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르사코프 제2중학교 한글학교 반에는 훈민정음이 있다. 홍익대 학생들이 손수 그려 놓았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또 한국관련 지역행사에도 발 벗고 나서는 모습에서 학생들에게 단순 한국이 친근하고 한국어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선생이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글학교 탐방은 이곳 사람들보다 더 찾았고 사할린 외진 곳을 다 돌아다녀 보았다. 지방 한글학교의 부활은 매우 중요하고 고무적인 사례다. 탁상에만 의존하지 말고 직접 교사들과 체험하고 교육부와 잘 소통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것이 우선이며 사할린한글학교를 더 이상 잃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해마다 사할린교육부의 정책에 의해 위태한 한글학교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되어, 재외동포의 교육도 머지 않아서는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초석이 될 소지가 있는 만큼 부활하는 지방한글학교의 발전이 가속화되길 소망해본다.

 

말로는 만리장성도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지만 애초 그런 발상은 가지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본다. 숱한 한글교육 사업이 난무하지만 실질적인 혜택을 받고 지속적인 교육의 모태를 마련하는 사업이 추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kn-sakhalin]

출처 : sakh.haninnews
글쓴이 : 해오라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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