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산꾼 산행기/대한민국 명산 산행기

천지인 2015. 2. 28. 20:07

징비록 투어와 안동 천등산 봉정사 탐방과 산행 (1)




징비록 투어(하회마을, 병산서원, 부용대,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 등)




2015년 2월 26일 가족 여행




새벽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불리는 안동이다.



그동안 몇 차례 들렀던 안동이기도 하다.








화천서원 인근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간간이 비가 내리고 있다.



화천서원



부용대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석



화천서원



부용대 오름길 주변은 잘 가꾸어진 송림이다.



소나무 숲 사이로 화천서원이 한적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용대 정상이다.



아직 빗방울이 멎지 않았다.

여기가 하회마을 전망대인 부용대(▲64m)다.
















부용대는 절벽이다. 충남 부여에 있는 낙화암을 연상하면 될 듯하다.




아직 탐방객이 없어...




천지연에게도 하회마을을 보여준다.





이제 겸암정사로 이동한다.









겸암정사

겸암 류운룡 선생이 1567년에 지은 정사다.























처음엔 경계하고 짖더니, 이내 친해졌다. 

아쉽지만 작별...







다시 부용대에 올랐지만, 여전히 흐린 날씨다.



일단 내려간다.



낙동강 다리 위에 삼일절 태극기가 펄럭인다.



먼저 병산서원으로 간다.



비포장 길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신 병산서원

철종 때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고 한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도 살아남은 사원이기도 하다.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방문했었다고 한다. 

그 때 기념식수라고...


















곧은 나무 굽은 나무 함께 어우러져 기둥역할을 잘 하고 있는 모습에서 뭔가를 배운다.















밤에 불을 밝히던 정료대라고 한다.













이 문(내삼문) 안에 존덕사란 사당이 있다. 









배롱나무가 특이하다.















존덕사




















통나무 계단





병산서원을 기억하며...









병산서원 뒤로 화산(▲327m)이 자리잡고 있다.












어락정



유장한 낙동강



하회마을로 들어선다.




















하회마을에서 다시 부용대 아래 옥연정사로 이동한다.

오늘 여기 온 이유가 바로 이 옥연정사를 제대로 보기 위함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임란 이후 이곳에서 징비록을 저술하셨다고 한다.























옥연정사 뒤로 보이는 야산이 바로 부용대다.



옥연서당







옥연정사에서 바라 본 하회마을








부용대 절벽아래로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는 왜 <징비록>을 꼭 남기고자 했을까?

<징비록>을 피맺힌 유산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한 이유는 무엇인가?


옥연정사


......


후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들려주고자 하는 것 같다.






















옥연정사 뒤로 부용대로 오르는 된비알 길이 있다.



오늘도 낙동강물은 하회마을을 감아돌아 흐르고 있다.

역사도 그렇게 또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침보다 탐방객이 많아 좀 활기차다.

날씨도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었다.
















아~ 부용대...



저 배가 하회마을-부용대 사이 탐방객들을 실어 나른다.



저 쪽(강 오른편)에 겸암정사가 있는데, 여기선 잘 보이지 않는다.



하회마을



멀리 하회마을에 있는 교회가 보인다.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이 보인다.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이다. 

그런데 저 종택은 선생 사후 그의 문하생과 지역 사림에서 선생을 추앙하여 도움을 주어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생전 선생께서는 평생을 청백하게 지내셨다고 한다.



원지정사

서애 선생이 부친상을 당하여 낙향한 후, 서재로 쓰려고 지은 정사라고 한다.



충효당과 원지정사





빈연정사

만송정이라는 솔숲 너머 겸암 류운룡 선생이 서재로 쓰려고 지었다는 빈연정사가 보인다.




다시 화천서원으로...









화천서원은 겸암 류운룡 선생을 기리기 위한 서원인데,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되었다고 한다.

그 후 최근에 다시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화천서원과 옥연정사는 거리상 가깝다.

하지만 병산서원은 여기서 좀 거리가 있다.






참고자료: KBS 해당 드라마 방송화면 중에서...

사적 제260호 병산서원의 모습







서점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안동 하회마을 안내도







아래 자료 출처: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1320000,37


징비록 관련 자료


사진보기





징비록

종 목 국보  제132호

명 칭 징비록 (懲毖錄)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필사본/ 고본

수량/면적 1책

지정(등록)일 1969.11.12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 한국국학진흥원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유영하

관리자(관리단체) 한국국학진흥원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김성일과 동문수학하였다. 명종 21년(1566)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예문관검열, 공조좌랑, 이조좌랑 등의 벼슬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장군인 권율과 이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고, 화포 등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을 세울 것을 건의하고 군비확충에 노력하였다. 또한 도학·문장·글씨 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가 죽은 후 문충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안동의 병산서원 등에 모셔졌다.


이것을 저술한 시기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유성룡이 조정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지낼 때 전란 중의 득실을 기록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과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 및 제해권의 장악에 대한 전황 등이 가장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필사본『징비록』은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필자 손자의 요청으로 인조 25년(1647)에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또한 이것은 숙종 21년(1695) 일본 경도 야마토야에서도 간행되었으며, 1712년에는 조정에서『징비록』의 일본유출을 금할 정도로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았다.


이 책은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난중일기』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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