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염과 몽환 - 인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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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0. 8.

 
 濃艶 과 夢幻       농염과 몽환-권여현의 인도에 전율하다.

서울을 출발하는 날  한국의 하늘은 너무나 맑았다.

이 날은 잘 정돈된 도시와 맑은 물이 흐르는 한강과 푸른 하늘을 본 행복한 날이었다. 십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하늘은 깊은 감동이었다. 나는 인도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과연 인도는 이런 감동을 또 다른 감동으로 몰아갈 만큼 멋있는 곳일까라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곱 시간의 여행으로 도착한 여행자들의 마지막 여행지라는 인도의 델리Delhi 에는 등에 혹이 난 듯한 소들, 개들, 중국의 지방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허름한 건물과 주변풍경들과 대조되는 현대식 호텔이 있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개발과 자연, 그 모든 것이 혼재된 곳임을 미리 말해주고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땅에  흡수되어 있고 그 피부색은 땅 색깔보다 짙은 브라운이다. 나는 그들을 땅의 사람들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결코 인도에서 산을 본 적이 없다. 비옥한 평지의 땅은 구석구석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도시는 집들로, 도시 주변은 농토로 정리되어 있는데  마치 픽셀로 이루어진 그림과 같았다. 이렇게 넓은 땅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미니멀한 풍경의 농토정리가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신의 솜씨인가? 인도인에 대한 느낌은 땅 위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땅에 스며들어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들의 의상과 피부 빛은 어느새 한톤 낮아져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땅과 사람을 구분할 수없게 만든다.

인도인은 부처님을 닮은 얼굴과 볼록 나온 배에 상체비만의 체형들을 가졌다. 그리고 서구인들보다 훨씬 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

바라나시 Varanasi 에 오기 전에 나는 인도에 관한 많은 얘기를 들었다. 인도의 이미지는 나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역사책에서, 영화 속에서 나는 알게 모르게 인도를 접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라나시에서 본 인도는 상상 이상도 상상 이하도 아닌 상상 밖이었다. 도대체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범벅이 아닌가. 핵무기가 있고 IT 산업이 발전해 있고 비행기를 만드는 나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고 소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개들은 뛰어다닌다. 이 상황을 적절하게 코드화시키는 어휘가 있을까? 난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모든 자료에서 검색되지 않는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었다.  바라나시와 불과 1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부처의 사대 성지 중 세 번째 곳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곳, 사르나트 Sarnath에 있는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은 정말 노른자위였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바티칸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유럽의 대리석조각을 보고 나는 한국의 화강암 조각과 비교해 보면서 그 화려함 앞에 좌절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재료가 지배하는 조형성이라든지 자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의 심성을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유럽의 그 대리석의 빛깔이 인도의 샌드스톤sand stone 앞에서는 왜 그리도 싸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진흙의 느낌에 가까운 이 섬세하고 경도 높은 재료위에 정교하게 조각해놓은 상징물들은 그의 종교성 때문에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심볼릭 단계symbolic stage 인 하나의 거대한 대 타자가 되어있다. 심볼이 종교적, 정치적 교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볼 그 자체가 상징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나는 박물관에서 보았다. 라이언 캐피털Sarnath's Lion Capital 의 섬세함, 종교성, 힘은 내가 그렇게도 내 예술에서 주장해왔던 파워와 테크닉의 결합 그리고 동양사상에서 이야기하는 기의 내재가 이미 그 기둥에 구현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그 돌기둥 앞에서 나 자신이 작아짐을 느꼈다. 인도는 내가 접근할만한 그런 곳이 아니며 내가 묘사할만한 그런 가벼운 대상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인도 사람들의 모습에서 부처를 느꼈다.  바라나시의  강가(Ganga 갠지스 강)로 가는 그 길은 길이 아니었다. 그 느낌을 아는가? 인간이 강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묘한 흥분에 휩싸이는 느낌말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내가 떠내려가고 있음과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상황부조리를 아는가 말이다. 그 흐름은 범벅 그 자체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범벅 속에도 마찰 한번 없이 제각기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으며 제각기 만족 해 하고 있고 제각기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또 자기가 철학적으로 부재하는 그런 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늘어진 테이프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는데 나만 정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패닉상태에 빠진 나를 또 다른 내가 발견하는 상황부조리가 장시간 지속되었다. 볼 것과 찍을 것이 많아서 나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내손은 전율로 마비되어갔다.

브라만 다섯 명이 집전하는 성스러운 집회가 진행되는 맞은편에서 배를 타고 있는 나는 그들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와 현재, 빈과 부, 가치와 무가치, 존재와 존재하지 않은 것들의 경계가 흐려졌다. 나는 그 경계를 뚫고 불의 의식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죽어서 환생되지 않기 위해서 갠지스 강에 화장된 재를 뿌린다고 한다. 다시는 환생해서 이 땅에 오지 않기 위해서 갠지스 강에 버려진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해 보건데 계속 환생하는 것이 영원불멸일 것이다. 그런데 환생치 않으려고 갠지스 강에 재를 뿌린다니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을 끊는 행위란 말인가. 오늘 나는 불의 의식을 보면서 강가 강에서 어쩌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추구하는 홀리스피릿holy spirit의 격格과 그들은 전 생애를 바쳐서 추구하는 홀리스피릿은 차원이 다른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안전하다는 전제하에서 모험을 해왔다면 그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 모험을 해오지 않았던가. 강물은 세차게 흐르고 걷잡을 수 없는 비는 쏟아지는 데도 많은 사람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 오는 새벽에 나는 정열의 강 갠지스를 보았다. 빗방울은 점점 거세어지고 한 노인이 그늘을 피하기 위한 커다란 전통우산을 어깨에 짊어지고 빗방울을 피해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그 우산은 아마도 그의 6~70년 남짓한 인생동안 아마 그 노인을 지배하는 물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그가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그 노인은 그 우산에 의지해서 먹고 살았으리라. 그 노인과 작은 보트에서 물을 퍼내는 노인들에게 기구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삶의 터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미래의 삶이 다 무슨 소용일까? 더 나은 삶, 더 맛있는 음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하루하루 살다가 다시 윤회하면 되는 것인 것인데. 거의 2~3km나 되는 황갈색의 거대한 강가 강이 비를 맞으며 흐르고 있었다. 그 비 오는 강의 강한 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적절치 않았지만 나는 전율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말았다. 뭐랄까 그 움직이는 강은 몽환의 도시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멋있는 영에 유영이 아니라 나의 물리적인 파워가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 떠밀려감, 그 거대한 정신적 파워에 의해서 떠 밀려감이었다. 더욱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것은 강 건너 쪽 맞은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지 숲이 있을 뿐이다. 그 강 건너편에 건물이 있고 사람이 살고 있으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정말 다행스럽게도 강 건너편에는 단지 숲만 있을 뿐이다. 거친 빗줄기는 나의 가볍고 현대 문명에 젖어있으며 조금은 도도한 눈으로 단지 물질적인 풍요를 무기로 삼아 그들을 얕잡아 보는 사이비 신사적인 태도를 여지없이 깨끗이 씻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얼굴을 경외의 눈으로 쳐다보게 만들어 주었다. 강가의 화장터에는 타는 body에 대한 묘한 두려움이 있던 나에게 고맙게도 어제저녁 화장을 시작하여 지금은 단지 연기와 불꽃만 보일 뿐 body는 사라지고 없었다. 여기저기 피어나는 많은 불꽃들과 연기들과 냄새들과 오물들. 그리고 나무들 개들 소들, 이건 또다시 해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늘 이랬다. 이해하려하면 저만큼 멀어지는 연인처럼 몽환의 연속된 상황이다.

인도의 체험! 그것은 너무 많은 정신의 사람과 너무 광대한 규모의 모뉴멘트가 전율로 다가오기 때문에 상상이상이 아니라 상상 밖이다.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좁은 미로에서 나는 삶의 목표와 삶이란 것 자체가 미로라는 것을 느낀다. 건물들과 그 사이에는 많은 골목이 있고 많은 앙금이 있고 그것을 풀어 길을 찾아가는 행위가 삶인가 보다.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미로의 끝을 찾아 헤매는 과정자체가 인생인가보다. 첫날 본 인도는 신비로웠고 두 번째 본 인도는 경이롭고 세 번째 본 인도는 불가사이다. 볼수록 점점 알 수 없는 곳이 인도다. 아마 이 여행이 끝나는 날 나는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을지 모른다. 인도는 그런 곳이다.

문득 물질의 빈곤 정신의 풍요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아시안 보다 이 바라나시에는 많은 서구인을 만날 수 있다. 서구인의 정신적 열등감을 물질로 해소하려는 시도가 반복되는 곳이 바라나시다. 인도는 비옥함을 넘어선 농염함으로 다가온다. 농염한 토지는 짙은 사람을 만들어 냈고, 짙은 향료와 풍부한 농산물과 강한 맛의 조미료를 만들어 냈다. 농염하다는 것은 적당과 과다의 아슬아슬한 선에 대한 신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카즈라호Khajuraho에서 본 사원과 미투나 Mithuna의 군집은 장관이었다. 서쪽의 템플 군집들은 경이로운 조각과 그것의 초월적 종교성이 알토란처럼 보존되어있다. 왜 무슬람Muslim은 카주라호에 락쉬마나 사원Lakshmana Mandir과 깐다리아 마하데브 사원Kandariya Mahadev Mandir 등 서부 사원군을 파괴하지 않았을까?  아마 이런 해석도 가능할 듯하다. 정복자는 힌두이즘의 불경스러운 섹스를 통해서 얻는 현세 쾌락의 저질성이 힌두의 수행법임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종교적 모멸감을 의도한 정치적 음모가 가능하다. 다른 종교는 금욕과 절제와 참선을 통해서 지고의 선,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미투나의 속뜻은 성의 유희가 아니라 성의 이치를 깨달음. 즉 음과 양의 결합의 이치, 그것은 음 양의 합일을 통하여 우주성의 원리인 양자론적 진리를 설명하는 노장 사상에 다름 아니다. 나에게는 미투나 Mithuna의 포즈나 내용보다는, 그것들의 조형적인 완성도와  재료의 물질성이 더 보인다. 카주라호와 앙코르와트가 다른 점이 있다면, 앙코르와트의 그것은 거칠고 자연적이고, 인간의 손이 거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매우 파워풀powerful하다는 것이고, 이곳 카주라호 사원군의 그것들은 매우 디자인적이고, 좌우 대칭이고, 계산적이고, 디지털적이라는 것이다. 이태리 조각을 보는듯한 섬세함이 여기에 있다. 고운 분말로 구성된 샌드스톤sand stone은 아주 정교한 조각이 가능하다. 그러나 앙코르와트의 경우는 입자가 거친 샌드스톤이라서 기포가 생기면서 이끼가 만들어지기 쉽고 다소간의 마모가 있다. 그러나 그 결함만큼 의 장점은 큰 규모와 파워가 있다. 여기서 또 다른 한축인 한국의 화강암은 어떠한가? 그것의 정교함은 완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 불상은 경이로운 정교성이 세계를 감탄케 한다. 비교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재료의 농밀한 차이는 그 모든 환경이 인간의 문화와 역사와 종교까지도 관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를 제시해 준다. 아 지긋지긋한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다른 민족을 멸시하는 자기 민족 중심주의)이여!

인도인은 강한 원색을 사용한다. 그들의 의상은 매우 현란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색해 보이거나 튀지 않는 이유는 배경이 되는 지형지물의 색이 강하고 기름지기 때문일 것이다.  강한 브라운의 흙 색깔과  짙고 기름진 녹색의 나무와 풀들이 옷의 원색을 완화 시켜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원색이 사용된다면 저채도의 지형지물 때문에 매우 튀게 될 것 같다. 튀는 행동이나 튀는 사람을 거부해 오던 관습처럼 말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도인은 순박해 보였다. 나는 그들의  한쪽 눈에서는 천국에 이르는 계단을 또 한쪽 눈에서는 지옥의 늪을 보았다. 오르챠를 향하는 길가에서 만난 풍경은 스페인과 풍경과 아주 비슷했다. 스페인도 굉장히 넓은 광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는 질서 정연하게 심어져 있는 올리브 나무를 볼 수 있었다. 뚤레도의 고성지역에서 마요로카를 향해서 가는 길가에는 많은 올리브나무 숲이 기계화 영농으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땅도 비옥했다. 인디아는 그 보다 훨씬 비옥하고 짙은 갈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인디아는 우주의 생성 이전상태인 카오스상태이고 생태계의 자유로운 생장 자체이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한다기보다는 자연이 허락한 곳으로 인간이 겨우 비집고 들어가서 그들의 최소한의 삶을 위한 경작을 할 뿐이다. 땅은 닮아있으나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른 인도와 스페인의 차이에서 나는 동 서양의 가치관 차이를 읽을 수 가 있다.  오르챠의 고성들에는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지붕에는 동물의 시체를 기다리는 독수리 떼들과 까마귀들이 군집해 있다. 그리고 이끼 낀 지붕 사이에 많은 잡초들이 자라나 이곳이 지어질 당시의 영광을 무색케 한다. 관념은 퇴색되고 물질만 남았는가? 관광객의 발밑에 있는 이 돌 위에서 당시의 지배층들, 집주인과 아이들이 웃으면서 뛰어놀았을 것을 상상하니 천년 전의 소리가 메아리로 다가온다.

작은 계단과 그 곳을 조심스럽게 오르게 하는 지배자의 권위와 그 부인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곳 궁전의 건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한사람의 부귀와 권위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했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 돌을 꾹꾹 밟았다. 궁전은 아름답다. 언제나 아름다움은 희생위에 서는 법인가?  또 후세에서 후세로 이어지는 많은 사람의 감명을 담보로 건축주는 양심의 가책을 상쇄시키는가?  오르챠는 꼭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나 혼자 보기가 아까운 곳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늘 떠오르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현대와 고전이 공존할 것 같은 오르챠에는 과거만 있었다.

궁금했다. 과연 가우디는 타지마할 Taj Mahal 을 보았을까? 가우디가 타지마할을 보았다면 차가운 대리석의 좌우대칭에 인간의 숨결과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이라 혹평했을까? 아니다. 가우디는 침묵했을 것이다. 타지마할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컸고 너무 밝게 빛났다. 건축을 넘어선 조각품이었다. 정교한 예술품을 확대해 놓은 기념비가 타지마할이다. 정교한 좌우대칭과 철저한 통제, 절제된 건축선과 색채의 배합은 표현적 미니멀리즘을 완성했다. 뒤쪽으로 흐르는 거대한 강의 풍수지리는 마치 50~100km 밖에서 보이는 자금성의 반짝임처럼 이정표 같은 구실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철저하게 사랑의 노래와 왕의 권위로 지어졌다는 건물이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건축미와 빛나는 흰색과 반사되는 그 빛의 발광 때문에 그것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이 이 순수한 거대함 앞에서 조차 존재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을 한탄한다. 자금성과 비교해보고 또 알람브라궁전과 비교해 보았다. 이렇게 저렇게 재단해도 타지마할은 판단유보다. 모든 인도가 그렇듯이 또 다른 판단 유보가 내 앞에 놓여있다. 나는 처음으로 인도에서 거대한 산을 보았다.

델리의 꾸뜹 미나르 Qutab Minar 는 무슬램의 승리의 탑이다. 그러나 내 눈길을 끄는 것은 탑 주변을 둘러싼 건축물들이었다. 그것들에서 나는 폼페이에서의 경이로움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유분방한 외곽 건축물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이탑은 울릉도의 추산, 프랑스의 오벨리스크의 남성성과 권위와 힘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것은 탑이 아니라 마치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는 표상으로서의 세계였다. 여기가 인도의 마지막 여행지인 것 같다. 나의 여행은 마하트마 간디의 기념공원 앞에서 끝을 내게 되었다. 이곳에는 아무런 기념비도 없었다. 단지 깨끗하게 정돈된 잔디밭과 꺼지지 않은 불꽃과 줄지어 참배하는 사람들의 연속선만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는 인도의 진정한 시원始原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많은 왕조와 많은 이슬람과 후대의 갈등을 종식시키지 않았던가.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열되긴 했지만 인디아 자체는 마하트마 간디의 평등사상과 무저항 박애사상에 의해서 국가와 국가의 정초가 섰던 것 같다.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고 가지고 가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남을 미워하지도 않는 민족성의 표상 마하트마 간디! 그에게는 순응하면서도 자기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인디아의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바라나시에서부터 마하트마 간디의 무덤까지 나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인디아의 정신을 읽었다. 너무나 태연하게 공생하는 섭생들, 길거리의 소, 개, 돼지, 오리 같은 동물들과 자전거, 자전거릭샤, 오토바이, 오토릭샤, 자동차, 2층 3층의 버스와 트럭들, 경찰과 걸인, 순례자. 수도승, 아이들..영세상가와 수입차 판매상과 맥도널드, 맨발과 구두, 현대의상과 사디, 반자비,..

강한 태양과 푸른 하늘, 도도한 물길, 하늘과 붙은 지평선... 그 모든 것들이 범벅되어 과일로 자라고 농염하게 익어서 건들면 터져버릴 듯한 상태로 살아가는 민족, 인디아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땅을 닮은 사람들과 강한 색채의 풍광과 영혼이 유영하는 곳,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며 전율케 하는 곳, 인간과 신이 직접만나는 장소, 이곳 인디아를 여행하라고 사람들에게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한번 오게 되면, 반드시 두 번 세 번 계속 오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