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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그 연속창조의 과정 _ 대화와 통합이론으로 본 진화에 대한 나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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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12. 1. 11.


진화, 그 연속창조의 과정

-대화와 통합이론으로 본 진화에 대한 나의 입장-

 

채 야고보

 

이언 바버는 그의 책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에서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를 각각 갈등이론’, ‘독립이론’, ‘대화이론’, ‘통합이론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갈등이론은 종교와 과학이 절대로 같이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과 서로 상호간 결코 타협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종교와 과학의 근본주의에 입각한 갈등 등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독립이론은 두 분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각의 독립적인 특성, 즉 종교와 과학의 사회적, 문화적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는 방법론이다. 독립이론에서는 두 분야 사이에 접촉점은 찾을 수 없는 반면 서로 적대적이지 않다는 차원에서 갈등이론보다는 한단계 성숙한 방법이다.


이에 반해 대화이론통합이론은 과학과 종교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대화이론은 둘 사이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고, ‘통합이론은 둘 사이의 좀 더 체계적이고 밀접한 동반자 관계를 찾는 방법론이다. 갈등과 독립이론에서는 두 분야의 구별이 명확한 반면, 대화이론과 통합이론에서는 두 분야의 구분이 애매한 점도 있지만, 나는 이러한 방법론을 넘어 과학과 종교의 상호연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대화와 통합이론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두 분야가 결코 다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종교가 가시적인현상 세계의 문제를 다룰 때 불가시적인형이상학적인 방법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도 없으며 또 그 반대편의 과학 또한 그러하다. 과학이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의 문제에 답할 수 없는 것처럼 종교도 이 세상의 모든 가시적인 유기체들의 본질과 서로 얽힌 관계들을 다 설명할 수도 없다. 과학은 합리적 입장만 취하기 보다는 많은 증명되지 않은 세계에 대하여 열리고 겸손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종교도 더 이상 전지전능한하나님을 앞세워 세상에서의 학문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문제는 두 분야가 각각의 한계를 얼마나 솔직히 인정하고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여느냐 하는 것이다.


서구역사를 보면 종교와 과학 간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대두되었던 문제가 창조진화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래로 종교와 과학은 끊임없이 논쟁해 왔고 결국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과학이 온 세계에 대해 완전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승리감에 한때 도취되기도 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현대의 양자물리학이론으로 과학은 다시 이 세상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과제들을 남기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종교와 과학이 대화를 통하여 상호 보충적인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세와 같이 과학이 종교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것은 마땅히 배척되어야 하고, 이 세상의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다루는 두 분야가 동등한 선상에서 올바른 동반자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신학적으로 종교와 과학 간의 대화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자연의 신학과 과정 철학의 연속 창조와 진화에 대한 부분이다. 최초의 창조 이후,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세계에 관여하시면서 창조와 진화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이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이는 예수의 사건이 일회적인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계속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민중신학의 주장과 유사하다. 나는 하나님의 창조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고 그것이 다른 말로 진화이며 곧 연속창조라고 생각한다. 이언 바버는 자연의 신학이 자연을 하나의 역동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며 진화적인 과정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아서 피코크가 진화와 창조에 대해 하나님의 즉흥 연주라고 설명을 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역사가 나선형으로 점층적 전진을 해나가듯이 인류의 삶은 끊임없이 진화해 나간다. 이 진화에는 적인 것 뿐만 아니라 영과 혼적인 요소들도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진화를 기독교가 말하는 성화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진화하여 예수의 모습까지, 아니 최초의 아담의 모습이 회복될 때까지 진화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생명체들은 단순히 유전자나 환경의 영향들 속에 수동적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 아니라 매우 역동적으로 진화해 간다고 과정 철학은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강요만 하는 독재군주적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대화하고 창조의 역사를 함께 상의하면서 풀어가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을 신앙 할 수 있고 그분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신학과 철학에서 과학을 향한 화해의 움직임을 과학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화해의 손을 종교에게 내밀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코 순탄한 길은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종교에는 늘 카리스마적인 신비믿음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단해서는 안 될 것이 21세기에 우리 인류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 즉 환경오염문제, 동성애문제, 트랜스 젠더문제, 유전자 변이문제, 식량 문제, 전쟁과 핵 등의 문제들은 결코 과거와 같이 어느 한 분야의 일방적인 해결책으로 풀 수 있는 지엽적인 문제들이 아니다. 이는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과학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풀어 가야만 하는 문제들인 것이다. 이는 국경을 넘고 인종을 넘어 사회문화적인 차이를 넘는 범지구적인 문제이다. 만약 인류가 이 넓은 우주의 바다에 떠있는 지구라는 배에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지구 공동체의 일치된 연합의 중요성은 더 이상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이 지구호의 선장으로서의 역할을 과거로부터 해오셨고, 현재에도 하시고 계시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하실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