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예수, 그 새로운 인간_프란츠 알트의 현대인을 위한 예수전을 읽고...

댓글 0

artNgod /신학이야기

2012. 1. 20.


***8년 전에 쓴 글인데, 다시 읽으면서 많은 반성을 해봅니다. 그 동안 내 자신이 너무 게을렀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다시 순수함을 잃어가는 걸까? ***


프란츠 알트의 현대인을 위한 예수전 (김윤옥,손규태 역, 새겨레, 1991, 서울)을 읽고





예수, 그 새로운 인간

 

채창완



 

예수는 순응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저항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이다. (현대인을 위한 예수전 p.24)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 시위 장소에는 늘 시위를 선동하는 궐개그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투쟁의 의지를 담은 그러한 그림들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과 잠시 동안 함께 일을 했던 적이 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활동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무척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안기부의 감시 대상이 되었고, 또 때로는 잡혀가서 고문을 받거나 징역을 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의 두려움은 아주 개인적인데 있었다. 혹 그런 일을 하다가 잡혀가 받을 고문이 두려웠고, 또 그로 인해 받으실 부모님의 상처가 두려웠다. 그래서 어쩌면 우연히(?) 알게 된 기독교에서 나름대로 도피처를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정치적인 문제보다 하늘의 하나님 나라에 열중했던 교회의 분위기는 나로 하여금 세상의 불의에 대해 눈을 감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나는 그 후 그렇게 10여년을 비겁하게(?) 침묵하고 지냈다.

 

나는 불안 때문에 순응했다. 귀찮아서,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니까, 또 직업상의 불리함 때문에 또 나를 바꾸어야 하는 모든 불안 때문에 나는 침묵했다. 나의 사고의 전환을 가장 방해한 것은 나의 병적인 양심이었다……….치료제는 신뢰다. (현대인을 위한 예수전 p.169)

 

프란츠 알트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크면 클수록 인간에 대한 불안은 적어진다고 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게 해준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두렵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 용기가 부족해서 두렵고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두렵다. 왜냐하면 내 안에 온전한 예수의 상()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해 온전히 알기 전에 어떻게 우리는 상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예수의 상과 다른 새로운 예수의 상을 알트의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통합된 부드럽고 온화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어린 아이의 순진함을 강조하며 그들로부터 배우시는 겸손한 예수님, 천대 받던 이방여인의 말 속에서도 깨달음을 발견하시고 이를 인정하시는 자상한 예수님, 그리고 유대 사회의 모순과 불의에 당당히 저항하셨던 용기 있는 예수님. 나는 알트가 제시한 다양한 인간 예수의 상에 책을 읽는 동안 점점 빠져들었다. 내가 그 동안 알아왔던 도그마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예수의 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2000년 전 유대 땅을 걸어 다녔던 30대의 한 가난한 청년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내게 다가왔다. 그 또한 30대에 내가 고민하는 것과 같은 자신의 실존 문제,가족에 대한 염려, 그리고 종교적 불의와 사회적 모순에 대한 고민 등을 겪은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대접 받지 못했던 여자, 어린 아이, 이방인, 세리 등 가난한 민중과 함께 먹고 그들로부터 배우고 함께 아파하고 치료하며 살다간 그였다. 그는 유대사회에 순응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저항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죄인의 친구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은 그였기에 유대 사회는 그를 좀처럼 수용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인자(人子)이심을 강조하셨다.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복음서의 내용들이 카리스마적인 예수를 강조하기 위해 후대에 삽입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 즉 사람의 아들임을 자처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인간의 아들 청년 예수, 이 새로운 예수의 삶을 통해 나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도그마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예수님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많은 의문들이 이로써 풀릴 것 같다. 그리고 믿음과 실천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서 우리에게 그 본을 보여주셨다. 인류가 도그마적인 예수를 선택한 순간 2000년 동안 인간 예수는 철저히 십자가 위에서 고통 받고 계셨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아직 육적인 부활을 하시지 않으신 것이 분명하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 그것은 이러한 인간 예수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할 때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예수의 신성을 핑계 삼아 말씀의 실천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최초의 새로운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삶은 자신들의 삶을 꿈꾸지 말고 자신들의 꿈을 살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과 삶은 근본적으로 행위를 지향하고 있다


인간 예수에 관심을 갖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