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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Places for the Word [Church Architecture] by James F. White and Susan J.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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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13. 1. 28.

James F. White and Susan J. White, Church Architecture (p.p.25~32 / translated from English by James Chae)


 

 


말씀을 위한 장소 (Places for the Word)

 

말씀의 예배에는 여러 가지 특정한 장소와 공간이 필요한데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세가지 만 언급한다. 그것은 설교단, 집전자 석, 그리고 제단 앞 공간인데 이는 다양한 형식으로 각각 작용한다.

 

[1]설교단(pulpit)과 강대상(lectern)

설교단(pulpit)의 위치와 디자인은 말씀의 예배의 집전과 경험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것의 중요한 근본적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의 낭독과 설교의 중심이며 또한 이 예배의 다른 부분들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이 설교단과 강대상(lectern)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현재의 경향은 이 둘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강대상은 중세 교회 건축물의 빅토리아 풍의 유물로서 중세 수도사들에게 유용한 것이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강대상은 설교단이나 독서대와 같은 예배 중심부의 한 부분으로 되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강대상의 중요한 건축적 기능은 내진[1](內陣 chancel)의 반대편에 있는 설교단과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강대상은 예전의 중심으로서 성경을 봉독하는 곳이지 설교를 하는 곳은 아니다. 독립된 하나의 강대상은 오늘날 매우 드물다.

신학적으로 설교단과 강대상의 구별은 별 의미가 없다. 강대상에서 말씀을 봉독하고 다른 편에 있는 설교단에서 성경을 펼치는 것은 비신학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이러한 구별에 의한 대칭은 빅토리안들에게 조차도 칭찬 받을 것이 못 된다. 오히려 어떤 교회에서는 이 강대상의 위치에 세례대를 놓음으로 더욱 기능적인 대칭적 균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설교단의 디자인과 외형적 치장은 작은 독서대에서부터 설교자가 설 수 있는 거대한 설교단까지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설교자를 감싸는 와인글라스 설교단”, 설교자가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책상 형태의 설교단등이 있다. 현재에는 설교자의 수첩이나 원고 그리고 성경책 등을 놓을 수 있는 단순한 크기와 형태의 설교단도 선호된다. 이 경우 성경책이나 설교원고 등을 놓을 수 있는 약간의 경사진 설교단의 선반이 중요하고 그 나머지 것은 단순히 지지대 역할 만을 한다. 어떤 경우는 설교자의 편의상 회중에게 보이지 않게 선반을 둬서 설교자가 물컵이나 시계, 메모 등을 놓을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작은 크기의 움직일 수 있는 설교단을 선호하는데 이는 임시적이고 너무 격식이 없어 보일 위험이 있어 피할 필요가 있다.

설교단의 크기는 매우 중요한데 현재 설교의 권위를 내세우는 기념비적인 크기의 설교단이 사라지고 있고 지나치게 설교자를 높이는 경향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탈지배적인 설교단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나 설교자가 교회의 뒷좌석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설교단의 적절한 높이는 확보되어야 한다. 명심할 것은 설교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곳이지 누구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장소가 아니다는 것이다.

성경책과 설교 간의 시각적 결합은 매우 바람직하다. 종종 이 성경책은 낭독될 때를 제외하고는 설교단 전면의 작은 선반 위에 놓여진다. 여기서 성경책을 가져 다가 설교단 위에 놓고 봉독 한 후에 설교 직전에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은 설교와 성경봉독 간의 연결성을 잘 드러내 준다. 성경책이 놓이는 위치는 설교단이지 제단 위가 아니다. 성경책을 진열하기 위해 설교단의 선반을 디자인 할 때는 성경책이 직각으로 놓이는 것을 지양하고 성경책이 잘 제본되고 또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야 한다.(See Figure5)



또 고려해야 할 사항은 설교자 마다 키가 다름으로 설교단의 선반부분의 높이 조절이 가능하게 하거나 설교자가 설 수 있는 발판 등을 준비하는 것이다. 조명은 설교자의 얼굴에 그늘이 지지않도록 설치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상한 설교자도 잘못된 조명에 의해 악마적인 얼굴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는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도록 설치하는데 설교자의 옷에 부착하는 핀마이크가 무난할 것이다.

설교단의 위치는 회중석 공간과 성가대 공간의 배열과 밀접하다. 설교자는 회중 들과 성가대 모두를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야 하고, 그 위치에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노트와 회중의 얼굴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반대로 회중들이 자신의 얼굴과 손을 쉽게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2]집전자석(presider’s chair)

성경봉독과 설교의 중심으로서의 설교단의 중요성은 종파를 초월하여 이견이 없지만 집전자석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를 내포한다. 집전자석이 중요한 예전적 중심으로서의 기능을 갖는 것은 최근에 발전된 방식으로 로만 가톨릭이 예배를 비성직자화(평신도화? to declericalize)하는 시도의 과정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집전자가 예배 중에 서있지 않고 집전자석에 앉아 있음으로써 예배의 인도권를 봉독자들(readers)이나 기도 인도자들(leaders of prayer), 그리고 음악담당자들에게 각각 위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소하게 여겨질지라도 예배의 인도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집전자석은 군림하는 왕좌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회중이 쉽게 볼 수 있는 겸손의 자리이어야 한다.

반대로 개신교도들에게는 집전자석이 오히려 권위적인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 이를 없애는 많은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19세기에는 세 개의 커다란 집전자석들이 회중석을 마주보고 커다란 단 위에 놓였는데 그것들은 크고, 너무 장식적이며 추하여 개선의 첫번째 목표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성직자석은 주로 성가대석과 구별되는 형태로 회중을 마주보지 않고 예배단의 중심을 향해 놓인다. 이는 이전에 비해 덜 권위적이고 추하지 않다.

그렇다면 집전자석에 대한 개신교의 입장에 대해 가톨릭의 입장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이러한 양측의 입장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궁극적으로 사회통제와 관련한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로마 가톨릭이 성직자들을 위한 의자를 두는 것은 사회 통제 감소를 상징하는 것이다. 개신교에서 성직자석을 숨기는 것 또한 이와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물론 모든 개신교나 가톨릭의 성직자들이 이러한 비권위적인 형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착석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지도적 역할을 위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교회건축위원회나 성직자가 성직자석에 대한 의논을 진행하기 전에 그들 자신들에게 성직자를 예배에서 어떻게 두드러지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각자에게 질문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예배의 봉사를 담당하는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여기서 나온다.

예배에 있어서 성직자석은 언제나 필요한데 어떤 이는 성가대석과 유사한 것을, 또는 성가대 공간의 한쪽 부분을 좋아한다. 더 급진적으로는 성직자가 다른 사람들이 예배를 진행하는 동안 회중석에 자신의 가족과 함께 앉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건물에서나 실현 가능한 것이다. 더 나은 방법은 아마도 수수해보이면서도 움직일 수 있는 의자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할 경우 그 의자들이 회중을 향해 위치하든 그렇지 않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통 한 사람의 집전자가 있지만 예배마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성직자들이 필요함으로 여러 개의 집전자석이 필요하다. 또한 성찬식과 같은 예배를 도와줄 장로들과 집사들, 그리고 평신도 회장, 기도 인도자, 복사, 성가대 인도자 등과 같은 사람들의 자리와 위치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되면서도 말씀의 예배 인도의 중심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수수한 집전자석은 높은 등받이나 차양이 있는 왕좌가 아니라 반드시 의자이어야 한다. 알맞은 조명과 의자 근처에 마이크를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성공회 지역 교회에는 주교가 방문할 경우를 위해 전통적으로 주교좌를 두기도 하는데 이는 회중석으로부터 가려져서 주교가 부재할 시에는 회중들로부터 외면된다. 이러한 주교좌는 아마도 주교 또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집전자석으로 대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설교단과 세례대의 경우와 같이 집전자석은, 특히 비워있을 때, 말씀이나 성찬례의 상징이 될 수 없고 바로 집전하는 사람이 곧 그 상징이 된다. 그 집전자는 집전자석이나 어떤 특정한 위치에 묶여있지 않다. 빈 의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즉 설교단은 성경책을 놓아두는 곳이고 세례대는 물을 담아두는 곳으로 그 내용물들이 거룩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수수한 집전자석은 더욱 참여적인 형식의 예배로 나아가는, 아마도 개신교와 로마가톨릭 공동체가 모두 받아 들일 수 있는 하나의 표징이 될 수 있다.

 

[3]제단 앞의 공간(space before the altar-table)

이 공간은 예배 인도자가 회중에게 인사하거나 공지사항을 말하거나, 또는 헌금을 받을 때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공간이다. 또한 인도자가 구두로 말하거나 예전문을 낭독하는 것, 그리고 예배의 시작 기도도 여기서 이루어진다. (로마가톨릭의 경우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집전자석에서 이루어진다.)

제단 앞의 공간은 회중 공간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접근이 용이해야만 한다. 이곳에 있는 계단은 여러 사람들이 이 위치로 움직이는 다양한 경우를 대비해서 이 공간의 앞의 전체를 가로지르게 연장되어야 한다. 이 계단은 측면으로부터 단을 내려가게 하는 것보다 회중석을 향하도록 위치해야 한다. 이것은 시작적으로, 수용(환대)과 참여를 상징하는 중요한 표시이다.

적절한 조명과 마이크를 연결할 바닥 콘세트가 이곳에 필요하다. 꽃이나 화분 장식, 촛대 등도 여기에 놓일 수 있다. 각 절기 마다 필요한 것들을 이 공간에 장식하기 위해서도 충분한 공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이 공간이 혼잡하지 않도록 충분한 크기의 공간 확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1] 제단 주변의 사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