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단 두세 사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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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1. 22.

에기노 바이너트(Egino Günter Weinert)_공동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

 

 

2020.9.6. 가해_연중23주일_감사성찬례

에제 33:7-11_시편119:33-40_로마 13:8-14_마태 18:15-20 / 여성선교주일

 

 

 

두세 사람이라도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혼자 보다는 둘이 외롭고, 둘보다는 셋이 힘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는 많은 부담을 갖습니다. 혼자 보다 둘이, 보다는 셋이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갈등의 요소 또한 점점 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군중 속에서 소외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소속감 때문에 안정감도 얻지만,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으로 인한 소외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욱 심하게 우리를 고독하게 만듭니다.

 

마태오가 설교집성문을 예수님의 행적들 사이사이에 편집해서 넣었다는 사실을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복음 18장은 그중에서교회설교라고 불리는 설교집성문으로 이루어진 장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교회를 표현하는 말이 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마태오복음 16장과  18 데서 나옵니다.

 

그래도 교회 알리고 교회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마태 18:17)

 

마태오가 제시하는 교회론의 핵심은 바로제자들이 중심이 교회 있습니다. 마르코가 오클로스(군중) 중심으로 하는 교회를 말하는 것에 대비됩니다. 그래서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인 표현들을 많이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의 무지몽매한 제자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군중에게 설교를 하신 후에 꾸짖지 않으시고 친절하게 제자들에게 비유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오가 그린 제자들은 나름대로확고한 의지와 소명감 갖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와 군중 사이에 중개자 역할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마태오복음은 제자들의 권위에 대한 배려를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자(사제) 중심의 교회에서 제자들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마련했습니다. 마태오 181~5절의 말씀이 그러한 장치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라고 하면서 제자들의 교만을 경계합니다. 이러한낮은 자의 권위 선포한 마태오는 그다음으로 크게 가지의 교회론을 제시합니다. 번째가작은 이를 배려하는 교회”(6~14)이고, 번째가교회 공동체의 형제 사랑”(15~35)입니다. 18 전반 부에 작은 이에 대한 배려와 개인의 죄에 대한 단호함 또한 강조합니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남을 죄짓게 하거나 시험 들게 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6~9절까지 말하고 나서, 만약 다른 사람을 시험 들게 만들면 영혼을잃어버린 양을 찾는 주인의 심정으로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노력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를 우리는되찾은 양의 비유”(12~14)에서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마태오 공동체의작은 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서는 12~14절의되찾은 양의 비유 대해 교회 공동체가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보여준 것입니다. 누군가 죄를 지었거나 실족했을 경우 먼저는 일과 관련된 당사자가 먼저 그를 만나 대화를 하라고 합니다. 만나서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잘못을 깨우쳐줄 일이 있으면 권면을 하라는 겁니다. 그러나 남의 잘못에 대해 권면할 때는 매우 신중함이 필요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을 얘기할 그것을 쉽게 수긍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없는 의무가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로마 13:8) 말씀은 무엇입니까? 사랑 없이는 결코 율법이 완성될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도 사랑 없이 상대에게 말하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율법은 자체로 신성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율법은 소리 나지 않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에 대한 사랑 없이 함부로 권면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일대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교회 공동체가 움직여야 합니다. 먼저는 두세 사람이 가서 권면하고, 그래도 되지 않을 때는 교회공동체(교회대표) 움직이라는 겁니다. 잃은 양을 되찾는 심정으로 영혼에게 교회가 있는 최대의 사랑의 권면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을 때는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마태오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18:18) 이는 마태오 16 19절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권한과 같은 권한입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권한은율법 해석 관련된 권한이라면, 여기에서 교회에 주어진 권한은 죄를 범한 자를 포용하거나 추방할 있는 권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도 매우 신중하게 교회가 사용해야 함을 마태오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되찾은 양의 비유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마태 18:14)라고 비유의 끝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에제키엘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해도 죽는 것을 나는 기뻐하지 않는다. 야훼가 하는 말이다. 죄인이라도 마음을 바로잡아 버릇을 고치고 사는 것을 나는 기뻐한다.” (에제 33:11)

 

이를 통해 우리가 있는 것은 죄인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추방보다는포용 방점이 맞춰있음을 있습니다.

 

쉽지 않은 임무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잃은 양을 포용하는 문제를 교회가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하며 마태오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너희 중에 사람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들어주실 것이다.”(19)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라는 마태오의 교회론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의인 사람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가 망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면 교회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마태오 공동체의 교회론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라도 모이면 무슨 일이든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을 맺는 교회. 기도하지 않는 공동체는 마태오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할   명의 잃어버린 어린 양이라도 놓치지 않고 교회가 품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도 기도하는 그곳에 주님께서도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공동체가 이토록 잃어버린 어린양과 소자에 대한 관심이 컸는지는 공동체가 처한삶의 자리 이해하지 않으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불가능하여 간단히 가지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마태오 공동체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아마도 시리아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민족의 정체성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던 공동체였습니다. 자기 민족으로부터는 정통 유대교를 버린이단자취급을 받았고, 반대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부터는 율법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서에보편구원론적인 표현반유대교적인 표현 교차되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유대교적인 율법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전권을 가지신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통해 본인들이 이제 새로운 율법을 가진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또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이방인 전도에도 열심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눈물 나는 이중의 노력 속에서 마태오 공동체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게 것입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자신의 유대 민족으로부터우겨쌈 당하는 마태오 공동체는 하나의 영혼이 교회의 기본 단위임을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품에 들어온 영혼을 결코 잃을 없다는 절박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은 바로 그들의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이름으로 모인 .

두세 사람이라도 모이면 기도하는 .

두세 사람이라도 모이면 예배하고 찬양하는 .

사람이라도 실족지 않도록 세심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며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섬기는 .

 

우리 교회는 과연 그러합니까?

사도 바울로의 말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로마 13:14) 사람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사랑의 의무 다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너무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아들이기는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받은 대로 남에게 베풀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렇습니까? 우리 마음에 사랑에 대한 공간이 너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 마음 안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번뇌입니다. 우리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번뇌 가득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공간에 여유가 없다면 사랑을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 법입니다. 사랑은 큐피드의 화살처럼 일순간에 스파크처럼 일어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만약 그러한 사랑을 기다리신다면 결코 그런 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없을 겁니다. 오늘 사도 바울로는 이를사랑의 의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공동번역에서 의역한 것이고 이를 원래의 의미대로 번역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이외에는 어떤 빚도 지지 마세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완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도 바울로는 율법의 수행보다는 믿음을 강조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사랑의 행함으로 완성된다고 동시에 믿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로 무장하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공동번역의 의역입니다. 헬라어 원어에는 부정과거 중간태 명령어를 사용합니다. ἐνδύσασθε (엔뒤사스떼) 입다’, ‘입장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그리스도를 덧입으라 뜻입니다. 중간태를 사용했으니 주어가 혼자 힘으로 능동적으로 동작에 영향을 끼쳐 그리스도를 입으라는 뜻은 아닐 겁니다. 영어나 우리말에는 고대 헬라어와 같은 중간태적 표현이 없어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중간태를 수동태적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고, 주어가 동작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재귀적으로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덧입는다는 말은 우리 스스로의 의지가 동작에 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덧입을 그리스도 또한 그러한 동작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 있을 겁니다. 전적으로 우리의 능동적인 의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성령의 도움이 동시에 작용할 우리는 그리스도를 덧입을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와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의지이면서 동시에 은총입니다.

 

두세 사람이라도기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사랑이 동기가 되어 영혼을 품을 있는 기도이길 원합니다.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를 덧입으면서 삶의 거룩함이 우리의 일상을 구원하는 길을 함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삶을 결단하고 기도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연중23주일 (가해) 성서 말씀(공동번역)

 

본기도

하느님, 우리보다 항상 앞서 가시며 이끌어 주시나이다. 구하오니,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을 주관하시어 언제나 바른 길로 가게 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에제 33:7-11

7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보초로 세운다. 너는 나에게서 경고하는 말을 받거든 그대로 일러주어라. 8 내가 죄인에게너는 사형이다.’라고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네가 죄인에게 버릇을 고치라고 타일러주지 않았을 경우에는 죄인은 자기 죗값으로 죽겠지만 사람이 죽은 책임을 나는 너에게 지우리라. 9 그러나 네가 죄인에게 마음을 바로잡아 버릇을 고치라고 타일러주었는데도 그가 마음을 바로잡아 버릇을 고치지 않았다면 그는 자기 죗값으로 죽겠지만, 너는 죽지 아니하리라.

10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일러라. ‘우리가 거역하며 저지른 자신의 죄에 깔려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산단 말이냐?’ 하는 자들에게 11 일러주어라. ‘내가 맹세한다. 죄인이라고 해도 죽는 것을 나는 기뻐하지 않는다. 야훼가 하는 말이다. 죄인이라도 마음을 바로잡아 버릇을 고치고 사는 것을 나는 기뻐한다. 그러나 너희는 돌아오너라. 나쁜 버릇을 고치고 돌아오너라. 이스라엘 족속아, 어찌하여 너희는 죽으려고 하느냐!’

 

시편 119:33-40

33  주여, 당신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을 가르치소서.
.     그대로 지켜 상급을 받으려 하옵니다.

34  당신 법을 깨우쳐 주시고 따라 살게 하소서.
.     마음을 쏟아 지키리이다.

35  나의 기쁨은 당신의 계명에 있사오니
.     길을 따라 곧장 살게 하소서.

36  마음을 잇속에 기울이지 않고
.     당신의 언약으로 기울게 하소서.

37  헛된 것에서 나의 눈을 돌리시고
.     당신의 길을 걸어 생명 얻게 하소서.

38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을
.     당신의 종에게 지켜 주소서.

39  당신의 결정은 은혜로우시니,
.     몸서리치는 모욕에서 건져 주소서.

40  당신의 계명을 나는 갈망하였으니,
.     정의를 세우시어 몸을 살려 주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로마13:8-14

8 남에게 해야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없는 의무가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9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출애 20:13-15, 17; 신명 5:17-19, 21 계명이 있고 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모든 계명은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여라. 레위 19:18 한마디로 요약될 있습니다. 10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11 이렇게 살아야 하는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 분이 잠에서 깨어나야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12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14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마태 18:15-20

15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사람이나 사람을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사람이나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여라.’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17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사람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들어주실 것이다. 20 두세 사람이라도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