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하느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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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3. 5.

Rendering of the Tribute Money_by Masaccio_1425. Fresco Brancacci Chapel, Santa Maria del Carmine, Florence, Italy (사진출처: http://www.subkorea.com/xe/17276 )

 

2020.10.18. 가해_연중29주일_감사성찬례

출애 33:12-23 또는 이사 45: 1-7 / 시편 99 또는 시편 96:1-9 / 1데살 1:1-10 / 마태 22:15-22

루가(복음사가) 1019() 옮겨 지킨다.

 

하느님의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마태오 복음 21:23~27 보면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의 권한을 문제 삼아 논쟁을 벌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은 이에 이어서세금 문제 대한 논쟁 이야기입니다. 마태오는 논쟁 다음에부활에 대한 논쟁’, ‘계명에 대한 논쟁’, ‘그리스도에 대한 논쟁 연달아 배치합니다. 5개의 논쟁 이야기입니다. ‘권한’, ‘세금’, ‘부활’, ‘계명’, ‘그리스도 유대교의 가장 핵심적인 신학적 내용이 아닐 없습니다. 여기에세금 대한 문제는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서 가장 민감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바리사이파 율사들이 직접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자신들의 제자들과 정치집단인 헤로데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예수께 보낸 것입니다. 그들은 친로마 세력들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시에 리더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고자 했던 같습니다. 로마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었던 거지요. 그런 위험한 질문을 오늘 예수께서는 받은 것입니다. 세금 납부를 지지하면 일반 민중의 반감을 사게 것이고, 세금 납부를 반대하면 반로마 세력으로 몰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정말 야비한 질문이 아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금에 대한 불만이 무척 많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와 성전세, 토지세와 통행세, 그리고 로마에 바치는 주민세 . 대략 수입의 1/3 내야만 했습니다. 특히 주민세는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으로 어린이와 노인을 12 또는 14세부터 65세까지의 주민이 내는 세금입니다. 그리고 주민세는 로마 은전 데나리온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니 세금 문제는 정말 민감한 주제가 아닐 없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22:21)

 

예수의 대답은 교묘하게 논쟁을 비켜갑니다. 로마 황제 테베리우스(기원후 14~37) 얼굴이 새겨진 동전은 황제의 것이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은 무엇입니까? 종교와 정치를 구분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성과 속을 구분하는 것입니까? 그런 해석이 지금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역사비평과 편집비평 관점에서 말씀을 묵상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함을 발견합니다. 황제의 권한은 작은 동전으로 특정되면서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고, 그것이 유통되는 지역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어떤 것도 특정되지 않고 열려있습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본문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황제의 동전과 같이 지상의 것에 국한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느님의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이고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하느님의 황제의 포함하는 전체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사물이나 물건에 한정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황제의 것은 고작 물질과 로마의 통치가 미치는 곳에 국한되지만 하느님의 것은 전부를 포괄하고 이상입니다. 

 

그리고 다른 해석은 하느님의 것은 바로사람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말입니다. ‘하느님의 통치 사람을 통해 전해지고 확장되며 계승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드려야 한다는 의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마태22:37)라는 말씀과 연관될 있습니다. 바로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모두 만질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만질 있고, 눈으로 있는 것은 소유가 가능한 유한 것이지만, 만질 없고, 눈으로 없는 것은 무한합니다. 그것은 오직 사람을 통해 전해지고 느껴지고 드려질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걸음 나아가 보겠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말씀은 수사법 대구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대구법은 서로 비슷한 내용을 병립시켜 대칭적인 구성으로 긴장감을 일으켜 주제를 강조합니다. 앞과 뒤의 내용과 형식은 비슷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카이사르의 하느님의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뒤에 나오는 주제를 더욱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카이사르의 것을 언급하시면서 데나리온의 은전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카이사르의 물질로 환원될 있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동전. 로마 황제의 초상은 황제와 동일시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로마의 통치가 미치는 곳마다 황제의 동상을 세워 백성들로 하여금 경의를 표하게 했던 겁니다. 황제가 동시에 모든 곳에 있을 없으니 황제의 동상과 이미지가 황제를 대리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상징은 대상을 매개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막강한 황제의 권한과 권위도 한갓 물질에 국한됨을 극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하느님의 어떠한 물질로도 환원될 없음을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결코 세상의 것으로 이미지화될 수도 없고 물질이나 사물 속에 가둬지지도 않습니다. 카이사르의 권위는 물질 속에 한정되지만, 하느님의 것은 어떤 것으로도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라고 단호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카이사르와 하느님은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신 것입니다. 다음 시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야훼께서는 하늘을 만드셨다.  앞에 찬란한 영광이 감돌고 계시는 곳에 힘과 아름다움이 있다”. (시편 96: 5-6)

 

야훼께서 왕위에 오르시니 민족이 떠는구나. 거룹들 위에 올라앉으시니 땅이 흔들리는구나. 야훼는 시온에서 위대하시고 만백성이 그의 높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리니, 그분은 거룩하시다.”(시편99:1~3)

 

웅장한 시편은 하느님의 권위와 영광 그리고 힘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역사와 우주를 주관하시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전능하신우주적인 신론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인격적인 넘어서는초월적인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하느님의 초월적인 것에 닿아 있습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하느님의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사람이며, ‘초월적인 이며 그리고 그의영광입니다. 시편 967절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힘과 영광을 야훼께 돌려라. 민족들아, 지파마다 야훼께 영광을 돌려라.” (시편96:7)

 

하느님의 그분의 영광입니다. 영광은카보드(בוד, kavod)’라는 히브리어를 70인역에서 헬라어독사 δόξα’ 번역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습니다. ‘독사δόξα’ 원형은도테인δοκεῖν’으로 원래생각하다’, ‘가정하다’, ‘~인것처럼 보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명사형인독사기대’, ‘예상’, ‘의견’, ‘신념이란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독사는영광glory’이란 의미를 지니면서 예배적 용어가 되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믿음의 표현이고 이는 하느님의영광 관련됩니다. 그러므로영광 우리가 표현하는진정한 믿음 포함합니다.  하느님의 으로 가장 합당한 것이 바로영광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드리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신령과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예배 가운데 현존함으로 개인적인 것이기보다 오히려 공동체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공동체가 하나 되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가능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하느님의 존엄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가 하느님의 쉐키나(현존) 체험할 야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존엄한 모습 지나갈 , 너를 바위굴에 집어넣고 내가 지나가기까지 너를 손바닥으로 가리리라.”(출애33:22) 

 

 

하느님의 영광을 대면했던 모세조차도 그의 존엄한 얼굴은 없었습니다. 타보르산에서 예수님의 빛나는 영광 앞에 영광의 광채가 너무 눈이 부셔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얼굴조차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우리가 감당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광채 밖에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영광을 대신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그러므로 말은 이상 속된 것과 성스러운 것을 구별하는 말이 아닙니다. 말은 이상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뜻하는 말도 아닙니다. 오랜 기독교 전통은 이러한 의미로 말을 사용해왔습니다. 이것은 구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카이사르의 것도 결국에는 하느님의 것에 종속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의 것은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말미암아 영광이 나타났습니다.”(요한 17:10)

 

하느님의 것은 결국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 우리 믿음의 사람들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요한복음17장에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것은 그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고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영광을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 자신이 주인이고 싶지만, 주인의 자리를 우리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이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를 통해 거룩함으로 나아가고 우리의 진실한 삶을 통해 하나씩 성화되어 갑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는혼자 드리는 것이 아니라우리함께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하느님의 그분의 영광이 지닌 공동체적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리에 함께하는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연중29 (가해) 1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굳센 믿음으로 인내하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출애 33:12-23

12 모세가 야훼께 아뢰었다. “이제 당신께서는 저에게 백성을 이끌고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파송을 받아 저와 같이 분이 누구신지 아직 가르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너는 잊을 없는 이름, 너는 눈에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13 제가 정녕 당신의 눈에 드셨다면, 저의 길을 부디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앎으로써 항상 당신 눈에 들게 해주십시오. 민족이 당신의 백성인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친히 너를 데리고 가서 너를 편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야훼께 다짐하였다. “만일 당신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우리도 여기를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하십시오. 16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신다면, 저와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마음에 들었는지 어떻게 있겠습니까? 함께 가셔야만, 세상의 모든 백성보다 저와 당신의 백성을 우대하신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17 야훼께서 모세의 말을 받아주셨다. “너야말로 과연 마음에 드는 자요, 잊을 없는 이름이다. 지금 네가 청한 것을 들어주리라.”

18 모세가당신의 존엄하신 모습 보여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자 19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 모든 선한 모습을 앞으로 지나가게 하며, 야훼라는 이름을 너에게 선포하리라. 나는 돌보고 싶은 자는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고 싶은 자는 가엾이 여긴다.20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 21 야훼께서 이르셨다. “여기 옆에 있는 바위 위에 있어라. 22 존엄한 모습 지나갈 , 너를 바위굴에 집어넣고 내가 지나가기까지 너를 손바닥으로 가리리라. 23 내가 손바닥을 떼면, 얼굴은 보지 못하겠지만 뒷모습만은 있으리라.”

 

 

또는

 

 

이사 45:1-7

1    야훼께서 당신이 기름 부어 세우신

.     고레스에게 말씀하신다.

.   “내가 너의 오른손을 잡아주어

.     만백성을 앞에 굴복시키고

.     제왕들을 무장해제 시키리라.

.     앞에 성문을 활짝 열어 젖혀

.     다시는 닫히지 않게 하리라.

2    내가 너를 이끌고 앞장서서

.     언덕을 훤하게 밀고 나가리라.

.     청동성문을 두드려 부수고

.     쇠빗장을 부러뜨리리라.

3    내가 감추어두었던 보화,

.     숨겨두었던 재물을 너에게 주면

.     너는 알리라, 내가 바로 야훼임을.

.     내가 바로 너를 지명하여 불러낸 이스라엘의 하느님임을!

4    나의 야곱을 도우라고

.     내가 뽑아 세운 이스라엘을 도우라고

.     나는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     나를 알지도 못하는 너에게 작위를 내렸다.

5    내가 야훼다. 누가 있느냐?

.     나밖에 다른 신은 없다.

.     너는 비록 나를 몰랐지만

.     너를 무장시킨 것은 나다.

6    이는 나밖에 다른 신이 없음을

.     뜨는 곳에서 지는 곳에까지 알리려는 것이다.

.     내가 야훼다. 누가 있느냐?

7    빛을 만든 것도 나요, 어둠을 지은 것도 나다.

.     행복을 주는 것도 나요, 불행을 조장하는 것도 나다.

.     모든 일을 야훼가 하였다.”

 

 

시편 99

1    주께서 왕위에 오르시니,

.     민족이 떠는구나.
.     거룹들 위에 올라앉으시니,

.     땅이 흔들리는구나.

2    주님은 시온에서 위대하시고
.    
만백성 위에 우뚝 솟으신 ,

3    만백성이

.     그의 높고 두려운 이름을 찬양하리니,
.    
그분은 거룩하시다.

4    능력의 왕이여,

.     당신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고
.     공의와 법을 세우시어
.     야곱의 가문에 바른 기틀을 잡으셨습니다.

5     우리 하느님을 기리어라.
.     그분의 발판 아래 엎드려라.

.     그분은 거룩하시다.

6    모세와 아론이 그분의 사제들,
.     사무엘이 그의 이름 부르는 사람이니
.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으면,

.     그분은 응답하신다.

7    구름기둥 안에서 그들과 말씀하시매
.     일러 주신 계명과 법을 그들은 모두 지켰다.

8    , 우리 하느님,

.     그들에게 대답해주셨습니다.
.     당신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벌하시면서도
.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9     우리 하느님을 기리어라.
.     거룩한 아래 엎드려라.
.     우리 하느님은 거룩하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또는

 

 

시편 96:1-9

1     노래로 주님을 노래하여라. 세상아, 주님을 노래하여라.

2    주님을 노래하고 이름을 찬양하여라. 우리를 구원하셨다. 기쁜 소식 날마다 전하여라.

3    놀라운 일을 이루시어 이름을 떨치셨으니 민족, 만백성에게 이를 알리어라.

4    높으신 주님을 어찌 찬양하랴. 신이 많다지만 주님만큼 두려운 신이 어디 있으랴.

5     족속이 섬기는 신은 모두 허수아비지만 주께서는 하늘을 만드신 분이시다.

6     앞에 찬란한 영광이 감돌고 계시는 곳에 힘과 아름다움이 있다.

7    힘과 영광을 주님께 돌려라. 민족들아, 지파마다 주님께 영광을 돌려라.

8    예물을 들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라.

9    거룩한 광채 입으신 주님을 경배하여라. 땅은 앞에서 무서워 떨어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데살 1:1-10

1 바울로와 실바노와 디모테오는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살로니카 교회 여러분에게 편지를 씁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빕니다.

2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 모두를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3 여러분의 믿음의 활동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꾸준한 희망을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끊임 없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4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택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그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이 그저 말만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굳은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지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6 여러분은 많은 환난 중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뿐만 아니라 주님까지 본받았습니다. 7 그래서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신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8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방에 널리 퍼져 나갔으니 이야기는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9 우리가 여러분에게 갔을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는 오히려 그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10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날을 여러분이 고대하게 되었다는 것도 그들이 널리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장차 닥쳐올 하느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실 분입니다.

 

 

 

마태 22:15-22

15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러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궁리한 끝에 16 자기네 제자들을 헤로데 당원 사람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하신 분으로서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꺼리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을 압니다. 17 그래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18 예수께서 그들의 간악한 속셈을 아시고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의 속을 떠보느냐? 19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나에게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데나리온 닢을 가져오자 20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21카이사르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자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22 그들은 말씀을 듣고 경탄하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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