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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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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4. 14.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그리스도 이콘 (사진출처: google 이미지)

 

2020.11.22. 가해_왕이신 그리스도 주일_연중34주일_감사성찬례

에제 34:11-16, 20-24 _ 시편 100 또는 95:1-7 _ 에페 1:15-23 _ 마태 25:31-46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 세실리아(로마의 순교자, 230년경) / 봉천동나눔성당 축성

 

 

 

 

왕이신 그리스도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왕이신 그리스도 누구를 지칭합니까? 당연히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가난한 미혼모의 어린아이로 세상에 오셔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던 분이 어떻게 되십니까? 물론 마태오복음에 따르면유대인의 찾아 동방에서 동방박사의 예방을 받은 것을 보면 아기 예수는유대인의 으로 불려도 좋을 같습니다. 그러나 루가복음을 보면 가장 가난한 목자들의 예방을 받았고, 천사들은 아기 예수를구세주 오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는으로 다른 하나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구세주 묘사되어 있습니다. 왕이라는 이미지와 가난한 이들의 구세주라는 이미지가 사람에게 동시에 적용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있는 사실은  왕이신 그리스도역사적 예수 아닌교회의 신앙적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기도에는 그리스도께서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만왕의 되셨다고 합니다. 에제키엘에서는 떼를 돌보는 목자”’ 묘사되었고, 에베소서에서는 모든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 가지신 통치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복음서에서는영광스러운 왕좌 앉을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심을 선포하는 말씀들입니다. 정리해보면  ”, “목자”, “통치자”, “주권자등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 교회의 고백이란 것을 전제한다면, 존재론적인 질문보다는 우리는 먼저 그가 통치하는 나라 또는 영토에 대한 신학적 질문을 해야 같습니다. 그것이 호칭에 대한 오해를 피하면서 교회의 고백을 신앙과 이성의 차원에서 살펴볼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가 미치는하느님 나라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마태오는 이를 유대인들의 표현에 따라 완곡한 표현으로하늘 나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서 신학자 레온하르트 고펠트는 이를산상설교의 팔복주기도문 통해 이성과 신앙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 있습니다. 그의 관점에 근거하여 제가 묵상하고 정리한 내용들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팔복에서 제시하는 여덟 가지 복의 특징은 결국굶주림고통에서의 해방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과적으로 결핍과 고통이 없는 새로운 세상, 평화와 의의 세상 뜻합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는 오직 하느님의 주권에 의해 도래하며 그것이 이뤄지는 때는 가까운 미래이며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현재로 침범해 들어옵니다. 그러나 우리 실존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악이 판을 치고, 굶주림과 고통은 끝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결핍과 고통이 없는 새로운 세상 하느님의 나라는 어떻게 현재에 도래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그분을 믿는 사람들과의 친교와 사귐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현재성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고백하며 그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개인을 하느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현존하는 세상 질서의 여러 변동들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도래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질서 속에서 너무 미미하여 쉽게 간과되곤 합니다. 그러나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 예수의 선포와 함께 시작되었고, ‘잃어버린 어린양 찾는 마음으로 고통받는 개인들을 찾아다니시던 예수의 발길을 따라 조금씩 세상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궁정으로 가서 왕을 설득하거나 광장에서 민중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키셨을 겁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법보다 느리고 인간에게 미련해 보이는 하느님의 방법으로 천하보다 소중한 개인들 속에서 그의 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하느님의 나라 통치 안에 들어가는 곳마다 개인에게는하느님의 은사 주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침을 받고, 어떤 사람은 귀신이 쫓겨나고, 어떤 사람은 걷게 되고, 어떤 사람은 보게 되고, 어떤 사람은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오실 그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라고 제자들을 보내 질문했을 ,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11:5~6)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개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멍에를 짊어지우고 율법 아래에서 심판의 날을 기다리라고 가르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현재에서 확장해 가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율법과는 완전히 독자적으로, 권력 구조와 관계의 변화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자유이고 공동체적으로는해방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변화의 결과로써 도래하지 않고 개인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의지의 결과이고 우리 개인의 고백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의 복판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표지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그때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마태24:36)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는 24장에서 노아의 방주 때를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요한 3:8) 모르는 바람처럼, “동쪽에서 치면 서쪽까지 번쩍이는”(마태24:27비교) 번개처럼, 개인의 심연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개인은 하느님의 통치가 미치는 땅끝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그리고 사역의 근거의 틀은 오직하느님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하느님 나라 위해하느님께 드리는 간구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도팔복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하느님의 통치 속으로 받아들여질 모든 근심과 죄의 짐이 덜어진다는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통치 안에서 개인의 육체적, 영적 삶의 측면을 완전케 하는 새로운 관계 형성하게 됩니다. 근거는팔복 그러하듯하느님의 약속 모든 사고의 틀이 담겨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간구의 성취가 아주 미미할지라도 예수의 사역 속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하느님의 나라 이미 예수의 사역 속에서 성취되고 있었고, 땅에 하느님의 통치가 실제로 도래하는 것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지닌 시간성은지금 그러나 아직이라는 말로 표현될 있습니다. 미래는 끊임없이 현재로 침투해 들어옵니다. 현재는 우리의 믿음을 통해 끊임없이 미래에 관여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하느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신학적으로 정리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시대에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나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하느님의 나라의 미래 어떠한 형태로 현재에 관여하게 될까요? 이를 말하기 전에 먼저하느님의 나라의 미래적 성취 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미래의 완성이라는 견지에서 그것은 결코 파라다이스가 아니라예수와의 친교, 하느님과의 종말론적 식탁 교제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말씀을 통해완성의 때가 친교의 자리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들어라.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마태8:11비교) 

 

너희는 나라에서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것이다.”(루가22:30)

 

이러한 이미지는 이사야 25:6에서 전조를 봅니다.

 

위에서 만군의 야훼, 모든 민족에게 잔치를 차려주시리라. 살진 고기를 굽고 술을 익히고 연한 살코기를 볶고 술을 말게 걸러 잔치를 차려주시리라.”(이사25:6)

 

예수의 식탁 교제하느님 나라에서 중심이 되는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어디까지나친교 대한 메타포일 겁니다. 도래하는하느님의 나라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술을 부대 넣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과의 관계성이 아닌 전혀 새로운 관계성입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실존적 경험의 연속 선상에서 이해될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코복음 12장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형수가 동생과 결혼해야 하는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 예로 들어 부활을 비판했을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마르12:25)

 

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실존 체계임을 있습니다. 그것은 번째 창조가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새로운 창조입니다. 번째 창조는 이로써 완성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래의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어떻게 현재의 역사와 자연에 관여하는 것일까요? 현재 우리가 대면하는 역사와 자연은 오직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가 현재에 비칠 (침투할 ) 실상이 드러납니다. 밝은 빛을 비추면 어둠 속이 밝게 드러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빛으로 세상을 투사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통치가 현재에 미치는 방법입니다. 그러한 통치는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뤄지며, “의미 있고 견실한 실존생명 그들에게 허락됩니다. 악과 죄에 물든 세상에서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동터오는 통치에 의해 던져진 아래에서 세상에서의 창조주의 선하심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밝히 비춰주었던 것입니다.”(고펠트) 그러한 아래에서 악은 자신의 힘을 여실히 드러내는 법입니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어둠 또한 더욱 짙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마귀를 쫓아낼 마귀의 힘을 빌려 쫓아냈다고 비난했습니다.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처럼 마태오 기자는 이원론적으로 이를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주인님, 밭에 뿌리신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주인의 대답이원수Ἐχθρὸς 그랬구나!’ 하였다.”(마태13:27~28)

 

가라지의 비유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마태오가 사용한원수 헬라어 원어는 ‘Ἐχθρὸς엑트로스입니다. 형용사로는싫은, 혐오하는이란 뜻이고, 명사로는, 원수입니다. 그렇다고 마태오 기자가 모든 악의 책임을사탄에게 돌리고자 했던 것도 아닙니다. 이는악의 기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악의 권세도 철저하게 세상의자연 질서 영역 안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면 잎이 자라듯이 악도 땅에 뿌려지면 자라고 성장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세상은임박한 하느님의 나라와 통치 의해 비칠 윤곽이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아래에서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분명하게 판명이 납니다. 

 

하느님의 통치와 그의 나라가 현재에 투사되는 가장 강력한 예를 들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와 예배와 섬김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일마다 드리는 감사성찬례는 정확하게 이러한예수의 식탁 교제 재현합니다. 재현한다 함은 과거최후의 만찬 기념(ἀνάμνησις 아남네시스) 하는 것일뿐더러,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식탁 기대하는 것입니다. 식탁은 모든 차별과 신분을 허뭅니다. 잔치에서는 모든 신분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먹고 마시는 법입니다. 그리고 식탁을 나눈다는 것은 같은식구 된다는 의미입니다. ‘식구 혈연으로 맺어진가족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의 사역 동안에 항상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신분을 허무는 식탁의 교제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식구들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통치의 기술이고 이를 통해 식탁 교제가 이뤄지는 곳마다 현재가 미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나 빵을 나누며 몸을 이룹니다.’ 성찬례에서 우리가 영하는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이상 창조 세계의 한계에 묶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창조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시작되었듯이 우리는 주일 이러한 고백과 함께 새로운 창조를 매번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그러한 사랑의 식탁을 우리의 이웃과 사랑으로 나눌 효용성은 극대화됩니다. 효용성은 우리의 믿음에 의해 추동되며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해 확증됩니다. 약속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믿는 모든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24:4)

 

왕이신 그리스도 대해 묵상하다 보니 결국하느님 나라그리스도의 통치 대한 이야기로 흐르게 됐습니다. 오늘 설교의 내용이 어렵지만, 댁에 가셔서 우리 교회 카페에 올린 저의 설교 원고를 천천히 읽어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결국 하느님 나라의 통치의 빛으로 현재를 끊임없이 비추면서 시대에 요구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우리가 맺는 것입니다.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 단순히 우리 개인의 잘못을 뉘우치는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악과 죄로 물든 세상을 그리스도의 통치의 아래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잘못된 위에 있을 자신을 돌이킬 있는 용기; 이웃의 필요에 먼저 다가가는 선한 마음; 미미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베푸는 작은 선행과 친절들; 그러한 것들이 조금씩 모여 언젠가는 커다란 물결을 이루어 세상을 더욱 밝게 만들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가해_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본기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만왕의 되셨나이다. 비오니, 세상에 자유를 주시어 주님의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과 통치 안에서 모든 민족이 하나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에제 34:11-16, 20-24

11 야훼가 말한다. 보아라. 나의 양떼는 내가 찾아보고 내가 돌보리라. 12 양떼가 마구 흩어지는 ,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나는 양떼를 돌보리라먹구름이 덮여 어두울지라도 사방 흩어진 곳에서 찾아오리라. 13 민족 가운데서 데려오고 나라 나라에서 모아들여 본고장으로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 산으로 이끌며 시냇가로 인도하고 사람 사는 어디에서나 기를 것이다. 14 좋은 목장을 찾아다니며 기르리라.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이 목장이 되면 그들이 좋은 목장에서 쉬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산에서 기름진 풀을 뜯기도 하리라. 15 내가 몸소 양떼를 기를 것이요, 내가 몸소 양떼를 쉬게 하리라. 야훼가 하는 말이다. 16 헤매는 것은 찾아내고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리라. 상처입은 것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나도록 먹여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주겠다[A]. 이렇게 나는 목자의 구실을 다하리라.

… 20 그래서 야훼가 말한다. 이제 몸소 살진 양과 여윈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리라. 21 너희들은 약한 양들을 모조리 옆구리와 어깨로 밀쳐내고, 뿔로 받아 우리 바깥으로 쫓아 흩어버리기까지 하였다. 22 그러나 나는 양떼를 구해 주어 다시는 노략질당하지 않게 하리라. 내가 양과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리라.

23 내가 목자를 세워주겠다. 그는 나의 다윗이다. 그가 양떼를 돌보는 목자가 되리라. 24 야훼가 몸소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나의 다윗이 그들의 영도자가 되리라. 야훼가 말하였다.

[A] 히브리어 본문: “멸망시키리라.”

 

 

시편 100

1     세상이여,

.     주님께 환성을 올려라
.     마음도 경쾌하게

.     주님을 섬겨라.

2    기쁜 노래 부르며 그분께 나아가거라.
.     주님은 하느님, 알아 모셔라.

3    그가 우리를 내셨으니,

.     우리는 그의 , 그의 백성 
.     그가 기르시는 양떼들이다.

4    감사기도 드리며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     찬양노래 부르며 안으로 들어가거라.

    주님 어지시니 감사기도 드리며
.     이름을 기리어라.

5    그의 사랑 영원하시니
.     미쁘심 대대에 이르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또는 시편 95:1-7)

1    어서 주님께

.     기쁜 노래 부르자
.     우리 구원의 바위 앞에서

.     환성을 올리자.

2    감사노래 부르며 앞에 나아가자
.     노랫가락에 맞추어 환성을 올리자.

3    주님은 높으신 하느님,
.     모든 신들을 거느리시는 높으신 임금님,

4    깊고 깊은 속도 그분 수중에,
.     높고 높은 산들도 그분의 ,

5    바다도 그의 , 그분이 만드신 ,
.     굳은 땅도 그분 손이 빚어내신 ,

6    어서 허리 굽혀 경배드리자.
.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느님,

.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     이끄시는 양떼,

.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에페 1:15-23

15 나는 여러분이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16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17 나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것인지를 알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9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20 [A]하느님께서는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21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22 [B]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A] 시편 110:1

[B] 시편 8:6

 

 

마태 25:31-46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 앉게 되면 32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33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것이다. 34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37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은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1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속에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언제 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러면 임금은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6 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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