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댓글 0

artNgod /신학이야기

2021. 4. 20.

 

 

 

2021.1.3. 나해_성탄2주일 

 

예레 31:7-14_시편147:12-20_에페1:3-14_요한 1:(1-9)10-18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10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16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 17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오늘 본문을 세례자 요한에 대한 언급 부분만 빼고 읽어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초대 교회에서 고백하던찬가라는 것을 이해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학자들은로고스 찬가 부릅니다.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요한1:1) 정확하게 창세기 1 1절을 연상시킵니다. ‘ 아르케베레쉬트 모두태초에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요한은 분명 선포를 듣는 사람들에게창세기 연상시킬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의 로고스 선포는 창세기 선포에 대한오마주이며시퀄(sequel)’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선포가 이상 인간에게 커다란 위로나 감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요한복음이 쓰여지던 시기나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변화 인한 환경의 재앙과코로나 19’ 앞에 무기력한 인류.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이렇게 불안정할까? 선하게 창조하신 세상은 이렇게 악이 넘쳐날까? 가난과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과 재앙은 끊이지 않고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속에서 한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아담과 하와의 때문이라는 중세의 교리는 이미 비종교인들에 의해 폐기된 오래입니다. 요한의 시대와 같은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종교적 탄압은 없지만, 현대는 시대보다 치명적으로 우리 기독교의 근본 교리와 우리 믿음에 도전을 해옵니다. “ 하느님께서는 침몰하는 세월호 속에서 간절하게 드리는 아이들의 기도를 외면하셨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 제가 자주 묻는 기도 중에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너무나 불안정하여 다시 창세 전으로 돌아간 같습니다.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위에 뒤덮여 있었고...”(창세1:2)

 

오늘 읽은로고스 찬가 프롤로그로서 모든 요한복음의 신학적 주제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요한복음의 배경에 대해 잠깐 언급해야만 같습니다. 학자들은 요한의 이름으로 신약성서의 다섯 편의 책을요한계 문헌이라 합니다. 모두 유사한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요한 학파라고 부릅니다. 아마도요한으로 불리는 주님의애제자 이러한 학파의 창시자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한복음이 써진 시기는 서기 90~110 사이로 추정됩니다. 서기 85 써진 것으로 여기는바빌론 탈무드 의하면 이미 기독교는유대교의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아마도 시기 즈음 기독교는 유대교와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의 반유대교적 성향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집필 장소는 소아시아의에페소 추정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헬레니즘 문화의 다양성이 지배하던 에페소에서 그들에게 맞는 문화적.사상적 코드로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방법을요한공동체 고민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영지주의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당시의 사람들도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얻은 것이 바로이원론입니다. ‘신의 세계 (플레로마,πλήρωμα)’물질의 세계 (힐레,ὕλη, 질료)’ 나눈 것이지요. ‘신의 세계에서 나온 (포스)’ 물질의 세계에 닿으면 바로 현상적인 세상 코스모스(κόσμος)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빛이 현상의 세계 물질 속에 갇히는데, 이를 구원할 천상의 구원자가 와서그노시스 (γνῶσις, 영지)’ 알게 하여 마침내질료속에 갇힌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지주의 신화가 말하는 구원관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에는 다양한 내용과 신화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이원론적인 세계관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세상은 부조리와 악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을선한 창조했겠는가? 결국 그들은 부조리한 세상은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결국 세상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질과 육의 세상에서 극단적인금욕생활 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더욱 방탕하게 세상을 즐기며 살든지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노시스 깨닫기 전에는 영의 자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노시스 깨닫게 도와주는 자가 바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로고스 찬가 담긴 영지주의식 사상을 부정할 없습니다. 이는 요한 공동체의삶의 자리에서 드려진 공동체의 고백입니다. 요한 공동체는 유대교의 핍박보다도 공동체에 뿌리 깊은영지주의 영향 때문에 몸살을 앓았습니다. 예수의 인간성을 부정하고 그의 신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분리 그리스도론가현설 넘쳐났습니다. 이는 요한계 교회의 분열을 가져올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 요한복음은 작성되었습니다. 

 

다음은 요한의 생각을 나름대로 묵상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시계 수리공처럼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냥 내버려 두셨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하느님이 아니라 악의 신이 세상을 창조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부조리와 악에 대해서 결코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함께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봅시다. 태초에 하느님이 창조하셨다는 말씀 대신에 처음부터말씀 함께 계셨다는 점을 한번 상기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지혜가 함께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혜가 바로 여러분이 말하는 로고스라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로고스의 존재를 철학과 이성을 통해 어렴풋이 인정하지만, 실체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십시오. 로고스가 실체를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했던 로고스가 이제 우리와 같은 실체를 지니고 우리 앞에서 살았고, 먹고 마시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했습니다. 모세는 기껏해야 하느님으로부터율법 받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그분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그대로 지니시고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은하느님의 영광 것입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모세는 하느님의 영광을 보기를 두려워했지만, 우리는 그분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아직도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난 일곱 가지 세메이온(표징) 이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한번 해봅시다.’

 

이게 요한복음의 프롤로그에 담긴 요한의 의도일지 모릅니다. 물론 저의 버전입니다. 요한은 로고스 찬가 이후에 곧바로 일곱 가지의세메이온 나열합니다. ‘세메이온’(σημεῖον, 표징) 그대로, 로고스 찬가에서 설명한하느님의 영광 드러난 사건을 통해 표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기적의 놀라움을 강조하면서 그분의 영광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하느님께서 버리신 것이 아님을 이를 통해 강조합니다. 창세 그분과 함께 했던 영광이 이제 고통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요한의 세메이온이 말하는 의미입니다. 영광이 비록 세상을 창조 때처럼 일순간에 바꿔놓지는 않았지만, 이미 인류는 그분의 영광을 체험해왔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이 , 간절히 원하던 일이 이루어질 보통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특히 경기에서 우승을 사람이나, 어떤 수상식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게 보통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 겸손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고, 그분의 영광이 드러났다고 감격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영광이지 결코 요한이 말하는영광 아닙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분의 영광은 우리의 고통과 아픔 가운데 드러난다고. 그것이 요한이 말한 일곱 가지 세메이온, 표징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우리가 말하는축복가운데 드러나지 않고, 고통과 좌절과 절망 속에 놓인 사람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는 속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요한이 말하는 하느님의 영광이 지닌 역설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와 극심한 고통 하에 놓인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요한이 보여준 세메이온을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접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일곱 가지의 세메이온을 남겼지만, 2 년의 교회의 역사는 이러한 절망한 사람들을 통한 세메이온 위에 존재해 왔습니다. 아픔과 고통은 결코 남이 대신해주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영광은 인간에게 희망을 줍니다. 삶의 본질이 고통이라면 절망은 사망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러한 인간의 고통의 실존 가운데 드러났다고 오늘 요한은 말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요한1:14) 하느님의 영광이 그분을 통해 인간 고통의 실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에서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무너지고, 그분의 영광은 모든 고통받는 자들의 희망이 됩니다.

 

우리가 삶의 고통을 서로 함께 나눌 , 고통의 무게를 줄일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라는 외침에 우리는 결코 답을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고통 가운데 그분의 영광이 함께 눈물지으며 고통받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고, 그것이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이상의 이유를 저는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통해 드러난 그분의 영광의 빛을 우리 삶의 아픔 속에서, 고통받는 이웃 속에서 다시 찾아야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이 제시한하느님의 영광 드러난 일곱 가지의 세메이온을 이어서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계속해서 채워나가야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 절망 가운데 우리가 발견하는 세메이온들을 이제 남들과 나눠달라고. 이것이 성탄 2주일을 보내는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말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아기 예수를 통해 봤던그분의 영광”. 영광은 결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우리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빛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의 원인을 전문가들 만큼 그럴싸하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의 작은 세메이온을 하나씩 모아가다 보면, 우리는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무엇인가를 느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삶의 작은 세메이온들이 모여 마지막에 그분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성탄2주일(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도 빛과 사랑 안에 살면서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예레 31:7-14

7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환성을 올려 야곱을 맞이하여라.

    야훼께서 당신 백성을 구해 주셨네.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을 구해 주셨네.’

     종주산 위에서 이렇게 소리 높여 찬양하여라.

8    보아라, 내가 북녘 땅에서

     그들을 데려오리라.

      끝에서 모아오리라.

     소경, 절름발이,

     아기 가진 여자, 아기 업은 여자도 섞여

      무리를 이루어 돌아오리라.

9    그들은 울면서 떠나간 길을,

     위로받으며 돌아오리라.

     넘어지는 사람 하나 없도록

     탄탄대로로 해서 시냇물가로 인도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큰아들이다.

10   민족들아, 야훼의 말을 들어라.

.     멀리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여라.

.    이스라엘을 흩으신 이가 다시 모아들이시어,

.     목동이 양떼를 지키듯이 보살피신다.’

11  그렇다. 야훼가 야곱을 해방시켰다.

.     이스라엘보다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해 내었다.

12  이제 그들은 시온 언덕에 와서 환성을 올리리라.

.      야훼가 주는 선물을 받으러 밀려들리라.

.     밀곡식, 햇포도주, 올리브 기름에다

.     양새끼와 송아지까지 받으리라.

.     마음 또한 동산같이

.     다시는 시들지 아니하리라.

13  그렇게 되면 처녀는 기뻐하며 춤추고

.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라.

.     나는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     근심에 찼던 마음을 위로하여 즐겁게 하리라.

14  사제들은 먹여 기름기가 돌게 하고

.      백성은 좋은 것을 먹여 배부르게 하리라.

.     이는 말이라, 어김이 없다.

 

 

시편 147:12-20

12  예루살렘아, 주님을 기리어라,
.     시온아, 너희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13   성문, 빗장으로 잠그시고
.      안의 백성을 축복하시니,

14   강토, 평화로 지켜 주시고
.      곡식 진미로 너를 배불리신다.

15  당신 말씀을 땅에 보내시니
.      말씀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16  양털 같은 흰눈 내리고
.     재와 같이 서리 쌓이며

17  우박이 덩어리로 쏟아질 ,
.      추위를 어느 누가 감당할손가?

18  당신 말씀 보내시어 모두 녹게 하시고
.     바람 불게 하시어 흐르게 하신다.

19  당신 말씀을 야곱에게 알리시고
.     법령들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으니,

20  다른 민족은 이런 대우 받지 못하였고
.     당신 법령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에페 1:3-14

3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 4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있게 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6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8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9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놓으셨던 계획대로 것으로서 10 때가 차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것입니다11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14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 1:(1-9)10-18

 

1. 말씀과 창조

1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2. 말씀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증거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것이다. 8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3. 세상에서 말씀에 대한 반응들

9 말씀이 빛이었다.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10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것이다.

 

4. 말씀에 대한 교회의 고백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치기를그분은 뒤에 오시지만 사실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분을 두고 말이다.” 하였다.

16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받았다. 17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18 일찍이 하느님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3절과 4절은 “모든 것은 말씀으로 생겨났고 생겨난 것 중에 그분 없 이 생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이렇게 옮길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