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우리의 시간은 안녕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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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5. 1.

 

2021.1.24. 나해. 연중3주일

요나 3:1-5, 10_ 시편 62:5-12_ 1고린 7:29-31_ 마르 1:14-20

 

 

 

 

우리의 시간은 안녕합니까?”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오늘 성서정과의 말씀은 모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요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요나 3:4)

 

시편은 어떤 일이 닥칠 때를 경고합니다. 

백성들아, 어떤 일을 당하든지 너희는 하느님을 믿어라. ( 62:8)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형제 여러분, 말을 명심하여 들으십시오. 이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1고린 7:29)

 

그리고 마르코는 예수의 공생애의 시작을때가 되었다.”라고 선포합니다.

때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마르코는요한의 마무리하고,  요약문(Summarion)” 삽입하여예수의 설명할 준비를 합니다. ‘요약문 앞에 나온 이야기와 뒤에 나올 이야기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삽입문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의 활동을 간략히 요약하고 뒤에 나올 이야기를 암시합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이제 요한의 때는 지나갔고 예수의 때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때의 시작은 바로 이러한시간의 선포로부터 시작됩니다. “때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여기에서 하느님의 , 하느님의 시간은페플레로타이 Πεπλήρωται’, ‘이미 왔다.’ 표현됩니다. 물론현재완료형수동태(또는 중간태)”입니다. 반면 하느님의 나라는에기켄 ἤγγικεν’,  가까이 왔다.’ 입니다. 이건현재완료형능동태입니다. 현재완료형 시제를 사용하지만, 뉘앙스는 약간 다릅니다. 하느님의 때는이미왔고(수동태), 하느님의 나라는거의왔다.(능동태) 라는 뜻입니다.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르코가 예수에게 적용한 하느님의 때는 구약의 예언의 성취를 말하는 것이라 있습니다. 메시아의 출현의 성취 말입니다. 이제 예언이 성취되었으니,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의 공생애를 통해 드러날 것이고, 마지막 때에 완전히 드러날 것입니다.

 

마르코는 도치법을 사용해서 되었다. 때가라고 표현합니다. 헬라어페플레로타이 카이로스 Πεπλήρωται ὁ καιρὸς” 에서 의미하는카이로스 정확히 하느님의 시간의 현존 예언의 성취를 말합니다. ‘카이로스 헬라어 일반 용법에서결정적인 상황이나결정적인 순간 뜻합니다. 이에는 긍정적, 부정적 의미가 모두 포함됩니다. 그래서기회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물론 윤리적인 의미와도 연관해서 사용됩니다.  70인역에서는 단어를 히브리어에트’(‘eth)모에드’(mo'ed) 번역으로 사용됩니다. 아람어로는 zenan이라 합니다. 여기에서도시간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순간 의미합니다. 다만 윤리적인 의미보다는하느님의 시간, 하느님의 비중이 있습니다. 결국 카이로스는하느님에 의해 정해진 결정적 의미로 생각하는 무난합니다. ( 헬라어에서 시간을 뜻하는 다른 말로는크로노스χρόνος” 있습니다. 이는 계측 가능하고 특정 가능한 시간을 말합니다. 크로노스가 시계적 시간, 물리적 시간을 말한다면, 카이로스는질적 시간이라 있습니다. ) 

 

마르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를 이러한 시간에 대한 선포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하느님의 때에는 종말과 현재의 긴장감 속에 우리가 이를 인식하고 함께 동참할 것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마르코는 요한의 시간을카이로스 전조로 봅니다. 그리고 예수의 세례는 시작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하느님의 카이로스로 들어선 것입니다. 예수는 돌이킬 없는 발을 디딘 것입니다. 다시 뒤로 돌아설 없는 시간으로의 진입. 그것이 마르코가 감지한 카이로스 안에 담긴 긴장감입니다. 이제 예수는 하느님의 카이로스를 보고, 붙잡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시간이 예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예수를 십자가까지 이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로 완성될 시간입니다. ‘카이로스 역사적 예수의 운명이 여기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카이로스는페플레로타이 Πεπλήρωται”, 선포의 순간에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의 시간과 하느님의 시간이 하나입니다. 그의 소명은 오직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시간의 성화 후에 제자를 부르신 이야기가 놓인 것은 마르코의 치밀한 편집의 결과입니다. 예수께서는 카이로스를 함께 공유할 사람들이 필요하셨다는 점이 여기에서 강조됩니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로 우리의 2020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일 예배가 어려워지고, 모든 성무일과가 탄력을 잃었으며, 교회가기피시설또는혐오시설 되었습니다. 미스테리온, 성사(μυστήριον, Sacrament) 마치 힘을 잃은 것같습니다. 핍박의 시대에도 교회가 이처럼 무기력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만나는 사람들이 조심스럽고, 만지는 물건들이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쓰고, 가능하면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남을 연기합니다. 만남이 줄고, 움직임도 줄고, 관계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시간은 점점 남에게 간섭받지 않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마음만 먹으면 시간을 자신에게 맞게 사용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은 안녕합니까? 많은 회의와 미팅이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많은 일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우리는 번거롭기는 해도 전보다 많은 시간을 가지게 것은 분명합니다. 불필요한 만남이 줄고, 불필요한 쇼핑이 줄고, 불필요한 여가생활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보다 많은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은 안녕합니까? 우리에게 자신이 관리할 있는 시간이 생겼지만, 우리의 시간은 과연 안녕합니까? 

 

예수께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자신의 시간을성사 진입시키셨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우리의 시간은 어떻습니까? 단순히 크로노스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힘든 시간도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며 시간을 견디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시간이 성사가 되도록 우리의 시간을 일상 속에서 조금은 다르게 만들 기회를 지금 우리는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코로나는 우리에게 삶의 전반을 돌아보고, 바꾸라는 도전을 해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때는 새로운 시간 개념에서 시작됩니다.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시간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카이로스는 우리가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특정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이 온전히 하느님의 시간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때를 분별하는 우리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의 개념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관점도 바뀌는 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하느님의 카이로스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못느끼는 것일까요? 그것은 카아로스의은폐성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에 것은 보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가려,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9:39) 주님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는 보고, 누구에게는 은폐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찾는 방법은 마르코의 표현을 따르면 간단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입니다. 너무 자주 들어 귀에 못이 박힐 정도입니다. 회개, 복음, 성화, 기도, 말씀, 예배 등등... 그래서 중요성이 우리에게 희미해져 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생각부터 돌아보길 권합니다.

 

여러분의 일상은 안녕합니까? “뭐이 중헌디?” 영화곡성에서 전종구의 효진이의 말입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본질을 놓치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것을 찾아 헤맵니다. 정말 무엇이 중요할까요? 여러분의 시간은 카이로스로 진입했습니까? 카이로스가 하느님의 때이니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결정하실 일일까요?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카이로스가 임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고후 6:2) 라고 사도 바울로는 말합니다. 이는 정확하게 마르코가 제시한 시간관과 일치합니다. ‘카이로스 바로 여기 일상의 시간, ‘크로노스속에 드러납니다. 드러난다 함은 그것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것을보고, 붙잡고, 받아들이신 처럼, 하느님의 때는 우리의 능동성을 요청합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부수적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할 있다면, 이제 결단할 시간만 남은 것입니다. “아디아포라ἀδιάφορα” 스토아 사상에서 나온 말이지만, 우리 성공회 영성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서에서 드러난 복음과 관련된 본질적인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부수적, 부차적인 , 아디아포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디아포라가 아니라본질적인 , 디아포라διαφορά” 무엇입니까? 우리의 시간,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사랑, 우리의 믿음을 제외한 모든 것은 어쩌면 아디아포라라 있습니다. 복음이 말하는 구원의 본질을 따라 우리의 시간이 성사가 되도록, 우리는 하루의 일상을 전적으로 하느님의 카이로스에 진입하도록 우리의 자세와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전인격과 삶의 일대 전환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회개 μετάνοια’ 담긴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복음 정확히 마르코가 제시하는 예수의 공생애에서 드러났습니다. 그것이 성서가 말하는 본질적인 , “디아포라입니다. 그것이 마르코 복음을 오늘날 읽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되어야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 중에 비본질적인 , 아디아포라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시간을 본질적은 것으로 나아가게 것인지, 우리 각자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선택은 우리 앞에 우리의 책임으로 놓여있습니다. 주님께서 카이로스 앞에서 겸허하게 시간 속으로 진입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의 시간도 위기의 시간에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연중3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은총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회개하라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들처럼 옛생활을 버리고 생명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요나 3:1-5, 10

1 야훼의 말씀이 또다시 요나에게 내렸다. 2어서 도시 니느웨로 내가 일러준 말을 그대로 전하여라.” 3 요나는 야훼의 말씀대로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굉장히 도시로서 돌아다니는 사흘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4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가 하루 동안 돌아다니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 외쳤다. 5 말에 니느웨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없이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단식하게 되었다. … 10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시편 62:5-12

5    영혼아,

.     오직 하느님 속에서 고이 쉬어라.
.     나의 희망은 오직 주님에게 있나니,

6    그분 홀로 나의 바위, 나의 구원이시며
.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7    구원과 영광은 하느님께 있으니
.     나의 견고한 바위되신 주님께 피신하리라.

8    백성들아, 어떤 일을 당하든지

.     너희는 하느님을 믿어라.

    마음에 있는 걱정일랑

.     하느님께 쏟아 놓아라.
.     하느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다.

9    사람들은 숨결에 지나지 않으니,

.     높다는 것도 실은 거짓말,
.     모두 합쳐 저울에 올려 놓아야

.     역시 숨결보다도 가볍다.

10  남을 억압하면서 되리라고 믿지 마라.

.     남의 것을 빼앗아 살려는 생각도 버려라.
.     재물이 쌓인다고 거기에 마음 쏟지 마라.

11  하느님께서 한마디 말씀하실  
.     나는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12  힘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며 
.     인자하심도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주여, 당신은 사람에게
.     행실대로 갚아주시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고린 7:29-31

29 형제 여러분, 말을 명심하여 들으십시오. 이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30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사람은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31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과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15때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

16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시고 17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 예수께서 조금 가시다가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20 부르시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배에 남겨둔 예수를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