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새가정> 2021.5월호 vol.743_ "존재의 자리-바라 봄" _채야고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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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그림이야기

2021. 5. 6.

채야고보 _ Sitz des Seins #26_pencil,acrylic on linen. 53x73cm

 

존재의 자리_바라 봄

 

채야고보 신부(Artist/성공회 사제)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보는 세상을 모두 똑같이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가 보고 싶은 것, 아는 것을 보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화병에 담긴 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각자가 보고 느낀 것을 나눠보면 서로 다른 경험을 말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누구는 꽃의 색을, 누구는 꽃의 잎사귀를, 누구는 꽃의 모양을 말합니다. 사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빛의 굴절에 의해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마음과 관심이 반영된 적극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눈으로 보고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대상을 자기 안에 한번 더 걸러서 표현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흐가 사이프러스 나무를 불꽃처럼 그린 것도,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빙빙 도는 소용돌이처럼 그린 것도 그가 대상을 마음의 눈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제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불타고, 밤하늘의 별들이 휘도는 모습을 보았을 겁니다. 결국 마음으로 대상을 본다는 것은 대상을 관조하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관조(官租 Contemplation)는 대상을 외형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통해 존재의 이면을 살피게 합니다. 본다는 것은 눈의 기능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채야고보 _ Sitz des Seins #6_pencil,charcoal,acrylic on linen. 41x53cm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요리를 하려고 감자를 손에 쥐었습니다. 감자를 특별히 생각했던 것도 아니데, 그냥 식재료일 뿐인 감자가 그날은 제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의 목소리처럼 “저를 그려주세요”라는 감자의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느꼈던 감자의 묵직함과 질감 그리고 존재감은 그동안 제가 봐왔던 감자가 아니라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감자와 교감했던 그 짧은 순간... 저는 감자가 “있음”에 대해, “존재의 자리”에 대해 깊은 묵상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존재 체험’이라 부릅니다. 그때부터 감자를 ‘관조’하며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소소하고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모든 존재에게는 그들만의 자리가 있어야겠지요. 너무 흔해서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자신들의 존재를 내게 알려올 때, 나는 그들에게 그들만의 자리를 마련해 줘야만 했습니다. 나의 '존재의 자리(Sitz des Seins)'는 그렇게 해서 탄생합니다."(작가 노트 중에서)

 

채야고보 _ Sitz des Seins #7_pencil,charcoal,acrylic on linen. 53x72.5cm

 

살면서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제대로 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평범한 감자가 그렇게 살아있는 존재로 제 앞에 자리한 것입니다. 감자 안에 담긴 생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자 눈을 통해 싹을 피우고 자신의 자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합니다. 그래서 감자에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싹이 자라면 자랄수록, 감자의 수액은 점점 줄어들어 말라가며 쪼그라듭니다. 그러면 죽음의 그림자가 감자에 드리워집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새싹을 통해 생명의 빛을 점점 드러냅니다. 그것은 마치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피를 쏟으신 우리 주님을 연상시킵니다. 자기를 비우고(κένωσις 케노시스), 내어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살리신 예수님. 감자는 자신의 신성을 내려놓은 예수의 성육신과도 유사합니다. 그렇게 감자에게 주어진 존재의 자리, 그것은 바로 생명과 죽음의 경계였습니다. 

 

" '존재의 자리(Sitz des Seins)'에서 '자리'는 바로 '삶의 자리(Sitz im Leben)'입니다. 그것은 존재를 둘러싼 모든 유무형의 세계이며, 시간이고, 공간입니다. 모든 존재는 바로 그 '삶의 자리' 속에 녹아있고, 삶은 모든 존재들의 실존의 형식이지요. 그러므로 '존재의 자리'는 존재와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사유를 드러냅니다." (작가 노트 중에서)

 

채야고보 _ Sitz des Seins #13_pencil,acrylic on linen, 80x117cm. 2013

 

생명과 죽음의 경계는 곧 초월적인 세계와 현상적 세계의 경계이고 그곳이 모든 ‘존재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경계에 우리들의 ‘삶의 자리’가 놓여 있기에, 모든 존재의 실존은 삶의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결코 삶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마치 감자가 자신의 자양분을 흡수하며 새로운 싹을 통해 생명을 이어 가듯. 하나의 씨앗이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자의 ‘자기 비움(κένωσις)’은 동시에 ‘감자의 영광’이 됩니다. 마치 치욕의 십자가가 우리 인간을 구원하는 영광의 십자가가 되듯이 말입니다.■

 

 

채야고보 _ Sitz des Seins #15_pencil,charcoal,acrylic on linen. 73x73cm

 

 

 

 

표지는 이서미 선생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