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분리와 격리의 역설

댓글 0

artNgod /신학이야기

2021. 5. 15.

 

 

2021. 2. 14.  나해_연중 6 주일_감사성찬례

열왕하 5:1-14 _ 시편 30 _ 1고린 9:24-27 _ 마르 1:40-45

 

 

 

분리와 격리의 역설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지난 2 6 통계를 보니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233 명이고, 확진자는 1 명이 넘었습니다. 여기에 완치자가 5940 명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은 제외하더라도, 세계 인구 중에분리와 격리 경험한 사람이 1 6천만 명에 육박한다고 있습니다.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사회와 공동체, 가족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분리된 경험을 개인들이 이렇게 많다는 뜻입니다. 소설 <페스트> 알베르 카뮈는 이러한 개인의 사회적격리분리괴로운 휴가”, “도리 없는 귀양살이등으로 표현했지만, 이는 아름다운 문학적 수사이고, 실제로 그러한 고통 속에 처한 개인은 실로 처참한 실존의 한계 속에서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소외된 ”, “격리된 라는 자기 인식과 함께인간적인 체온으로부터 차단된(알베르 카뮈)” 철저한 고독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1 6천만 명과 관련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통까지 포함하면 상상할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분리와 격리 고통받고 있는 것입니다. 마디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국경과 인종, 빈부의 차이를 넘어 차별(?) 없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만큼의 전염력은 아니지만 과거에 나병은 이러한분리와 격리 공포를 극단으로 보여주는 전염병이었습니다. 나병을 헬라어로는레프라λέπρα’라고 합니다. 형용사형은레프로스λεπρός’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는 단어가 모두 사용됩니다. 그러나레프로스 원래 어원은레피스λεπίς’생선의 비늘 뜻합니다. 그래서레프로스비늘이 있는, 더러운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병 환자의 피부가 감염에 의해 문드러지거나 비늘처럼 갈라지는 현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나병의 감염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옛날부터 최근까지 통념적으로 감염자와의 접촉을 통해 감염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에 나병 환자들은분리와 격리 통해 사회적 통제와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일했던 같습니다. 레위기 13장에는 나병에 대한 발견과 처리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일단 나병환자로 진단이 되면부정한 판명이 나고, 격리해 필요도 없이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기록들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그 살갗에 생긴 병은 이미 만성이 된 피부병이다. 그러므로 사제는 그를 부정한 자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니, 격리해 둘 필요도 없다. (레위 13:11)
악성 피부병 환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윗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야 한다. (레위 13:45)
병이 있는 동안은 그는 부정을 벗지 못한다. 부정하니만큼, 그는 진지 밖에 자리 잡고 따로 살아야 한다.(레위 13:46)

 

여기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부정한이란 단어는 70인역에서아카파르토스ἀκάθαρτος’라고 합니다. 이는신체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청결이나 순결하지 못한 상태를 뜻합니다. 헬라 문화에서 단어는 신들과 관계하는 부정적인 제의 용어로 사용됩니다. 구약에서도 이러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유대 문화에서는거룩함 더욱 강조되며 제의적인 것에 더해 윤리적인 부정함이 추가됩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부정하다 것은 모든온전한것들로부터의분리’, ‘단절’, ‘격리 뜻합니다. 부정한 사회적 공동체, 종교적 공동체, 그리고 가족들로부터분리된 ”, 버림받은 입니다. 그러므로부정한 종교적으로저주 받은 자로 취급되었습니다. 특히 나병은 이러한 부정함의 가장 극단의저주차별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외출할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수염을 가리고 다녔으며; 길에서 마주오는 사람들을 만나면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외쳐 상대를 피해 가거나, 상대가 피할 시간을 줘야 했습니다. 차별과 혐오도 이런 수치스러운 것은 없을 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복음서 본문을 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됩니다.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40) 마르코가요약문 없이 바로상황 묘사 하는 바람에 우리는 이야기의 전후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병환자가 어떻게 예수께 접근했는지 의문입니다. 앞에서 읽어드린 레위기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길에서 사람들을 마주치면나는 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소리쳐야 하는 나병환자의 율법적 의무를 무시하고 그는 곧바로 예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주변에 사람이 많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은병행구절 마태오복음 8 1절에는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사람들이 뒤따랐다요약문 사용됩니다. 루가는예수께서 어느 동네에 계실 ”(루가 5:12)라는 문구를 삽입하여상황묘사 합니다. 마르코가 생략한 부분을꼼꼼한마태오와친절한루가는 설명을 첨부한 것입니다. “마을에 계셨고”, “사람이 많았다.” 마태오와 루가는 분명사람이 많았다.”라고 상상한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마르코가 침묵을 했어도, 마태오와 루가가 생각했던 대로 예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합니다. 나병환자는 사회적, 종교적 격리 조치를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동조하셨던 예수도방역수칙 위반입니다.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사람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병환자와 예수는 당시의방역수칙 철저히 어겼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냥 무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사자들은 그렇다 쳐도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척 당황했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나병환자의 상식을 이런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오늘의방역수칙에도, 예수님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격리 수칙에도 맞지 않는 이러한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예수님이시니 용서가 되는 건가요? 마르코의 침묵은 이러한 점에서 빛을 발휘합니다. 사회적 방역수칙을 어긴 예수와 나병환자의 행동을 마르코는 철저히기도와 고백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무릎을 꿇고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주실 있습니다.”라고 외친 것은 그의 고백이며, 기도였습니다. 마르코복음에서 신앙 고백이고 기도입니다. 마르코 1 24절에서 우리는 이미 악령의 가증스러운 고백을 들었습니다.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그리고 마르코는 오늘 마르코복음 1 마지막에 처음으로 개인의고백적 외침 소개합니다. 악령과 나병환자의 고백은 이렇게 서로액자 이루면서 상반되게 드러납니다. 하나는분리와 단절 원하는 악령의 외침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분리와 격리로부터의 해방을 간절히 바라는 개인의 외침입니다. 마르코는 이러한 고백적 대비를 통해 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전염병에 대해 우리 교회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직면해 있습니다. ‘분리와 격리 협조하라는 요구 말입니다. 그것이 코로나 시대에 상식이고 종교의 의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 좌석의 20% 출석하라고 하면 그대로 따르고, 5 이상 모임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대로 따릅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주저합니다. 일상의 생활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불편은 일상이 되어 버렸고, ‘분리와 격리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마르코의 교훈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기도는분리와 격리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상식과 방역수칙은 우리의 일상과 행동을 규제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믿음과 기도까지분리와 격리시킬 없습니다. 이런 팬데믹 시대에 우리의 행동은 규제받을 있지만, 우리의 영혼과 믿음은 그러한 통제와 규제로부터 자유합니다. 제가 심히 염려하는 것은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믿음과 신앙까지분리와 격리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은 정말 믿음에 안전합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말미암아 여러분의 신앙도하느님과 거리두기 하시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마르코는 나병환자의 방역수칙을 어기는 행위를 기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분리와 격리 여러분의 영혼까지 믿음으로부터 격리를 시킨 것은 아닙니까?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안전과 가족의 안전만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교회가 우리 교인들의 안전만을 챙길 , 우리는 그러한신앙적 거리두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 교회가 방역 수칙을 어긴 것을 보면 쉽게 비난하면서 마치 우리는 사회에 협조하는 상식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들이 방역 수칙을 어겨 코로나에 걸렸다고 해도, 아무리 그들의 자업자득이라 해도, 여러분은 그들이분리와 격리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에 마음 아파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불편하다고 불평을 하면서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는 해보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비난할 자격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난보다는 기도하고, 미움보다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진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의분리와 격리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 거룩함을 위한 자발적분리와 격리이어야 합니다. 미움에 대해, 비난에 대해, 혐오에 대해 우리 자신을분리와 격리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는 마태오나 루가보다도 예수의 감정 표현을 전달한 복음사가입니다. “예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마르 1:41) “측은함손을 대심 예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측은함 해당하는 헬라어는 ‘σπλαγχνίζομαι 스프랑크니조마이입니다. 동정이나 자비를 느낄 사용됩니다. 단순과거분사수동태이므로 예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나병환자의 기도와 행동이었음을 있습니다. “손을 대시며 단순과거직설법중간태 ‘ἥψατο헵사토입니다. 원형은 ‘ἅπτω하프토입니다. 단어가 재미있는 것은 중간태일 때만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 표현대로만지다입니다. 일반 용법으로는점화하다, 불을 붙이다. 묶다, 참여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것에 불을 붙이듯이, 어떤 것을 만지는 일은, 어떤 영향을 끼치거나,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단어입니다. 예수께서 손을 대심은 앞에 나온측은함 행동으로 발현된 것입니다. 방역수칙을 어기고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수 앞에 나온 나병환자.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놀라운 고백과 기도.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는 깊은 감동과 연민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도 사회적인 통념과 방역수칙을 무시하고 나병환자에게 절대로 해서는 되는 손을 대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사랑의 표현이고 행동이며기적의 프로세스입니다. 고백과 기도; 측은함과 손댐; 모든 종교적 터부(tabbo) 사회적분리와 격리그리고 혐오를 파괴하는 이러한 당돌한사랑의 프로세스 마르코는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친절하게도 치료 후에 나병환자에게 율법이 요구하는대로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레위기 14 2~10절의 내용을 근거로 합니다. 나병환자는 치료되었다고 여겨지면 사제를 만나 제물을 바치고 정결례를 행하여 정하다는 확증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목욕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오늘 1 독서의 나아만 장군의 예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사제에게만 보이고 소문을 내지 말라고 했건만, 치료받은 나병환자는 이를 소문을 내고 맙니다. 여기에서분리와 격리 역전이 일어납니다. 소문의 결과, 앞으로 예수께서는 마을과 회당보다는 마을로부터분리와 격리되셔서 외딴곳에 자주 머물러 계시게 됩니다. 결국 나병환자는분리와 격리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이제 예수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분리와 격리속에 몰아넣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의 활동은 소문 때문에 제약을 받았지만, 그의 기도는 그러한분리와 격리속에서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분리와 격리속에서 고통받던 나병환자의 해방과분리와 격리속으로 자신을 던지신 예수님. 기도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러한분리와 격리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평생을 사회로부터의 자가분리와 격리속에서 살면서 세상을 위한 기도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분리와 격리.’ 하나는 방역을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를 위함입니다. 

 

코로나로 말미암아 우리의 일상이 위협을 받고 있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기도로 코로나의 위협에 대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분리와 격리 시간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기도를 위해분리와 격리시킨다면 우리는 어쩌면 오늘 나병환자처럼 다른 신앙의 가능성을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병환자의 아픔과 그가 평생 동안 격은분리와 격리 고통을 예수께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기도와 사랑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일상이 사회적으로분리와 격리 체험하고 있는 지금, 이제 우리의 신앙과 영혼이 그러한 자유함 속에서 다시 기도를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님께서 나병환자의분리와 격리 대신해서 자기 자신을 그러한분리와 격리속에 넣으신 것같이, 이제 우리가 그러한분리와 기도속에서 기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코로나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제 기도로 코로나에게 반격을 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분리와 격리 경험하고 있는 많은 확진자들; 시간도 병원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많은 감염자들; 코로나로 사망한 가족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유족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헌신하고 있는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과 많은 봉사자들; 아직도 코로나 진단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국가들; 세계 인구의 70% 백신을 맞아야 사태가 종결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세계적인 연대로 이러한분리와 격리 벗어나기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사회적 연대 속에서 상식을 따르되, 우리의 기도는 조금 공격적으로 코로나 퇴치를 위해 주님의 본을 따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난보다는 기도가 앞서야 겁니다. “σπλαγχνίζομαι 스프랑크니조마이” “측은한 마음으로,  “ἥψατο헵사토” “손을 대시며”; 이것이분리와 격리 통해분리와 격리 이기는 우리의 기도 전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사회적 연대, 그리고 백신과 치료제를 통해 우리 모두의 일상을 되찾는 날을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연중6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병든 이들을 고치시고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나눔과 섬김을 통해 어려움 속에 있는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열왕하 5:1-14

1 시리아 왕의 군사령관으로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왕이 매우 아끼는 인물이었다. 야훼께서 나아만을 들어 쓰시어 시리아에 승리를 안겨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병환자였다. 2 시리아 군이 이스라엘을 쳐들어갔다가, 한번은 거기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는데, 나아만 장군은 소녀를 아내의 하녀로 삼았다. 3 어린 하녀가 자기의 주인에게 일렀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시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그가 나병쯤은 쉽게 고쳐주실 텐데요.” 4 말을 듣고 나아만은 입궐하여 왕에게, 이스라엘에서 소녀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더라고 아뢰었다. 5 말을 들은 시리아 왕이 말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를 써줄 터이니, 장군은 가보시오.” 이리하여 나아만은 달란트, 육천 세겔, 벌을 가지고 가서 6 왕의 친서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였다. 친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본인은 이제 편지를 들려 본인의 신하 나아만을 귀하에게 보냅니다. 부디 그의 나병을 고쳐주십시오.” 7 이스라엘 왕은 서신을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신이란 말인가? 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달라고 하니, 이것은 그가 나에게 싸움을 걸려고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대들은 점을 분명히 살피시오.”

8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를 나에게 보내주십시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주겠습니다.” 9 그리하여 나아만은 마차를 몰고 엘리사의 집에 이르러 대문 앞에 멈추었다. 10 엘리사는 사람을 내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강물에 일곱 몸을 씻으시오. 그리하면 새살이 나서 깨끗하게 것이오.” 11 나아만은 화가 치밀어 발길을 돌리면서 말하였다. 생각에는 적어도 그가 나에게 나와서 자기 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부분을 손으로 만져 나병을 고쳐주려니 했다. 이럴 수가 있느냐? 12 다마스쿠스에는 이스라엘의 어떤 강물보다도 좋은 아바나 강과 발바르 강이 있다. 여기에서 된다면, 거기에 가서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크게 노하여 발길을 옮겼다. 13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를 막아 서며 말하였다. “만일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장군께 시켰더라면 장군께서는 일을 분명히 하셨을 것입니다. 그는 장군께 몸이나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으로 내려가서 일곱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그러자 새살이 돋아 그의 몸은 마치 어린아이 몸처럼 깨끗해졌다.

 

 

시편 30

1    주여,

.     나를 건져주셨으니

.     높이 받들어 기리나이다.
.     원수들이 나를 보고

.     비웃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    나의 하느님,

.     살려 달라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고
.     병들었던 몸을 고쳐주셨습니다.

3    주여, 목숨 지하에서 건져 주시고
.     깊은 구렁에 떨어지지 않게 살려주셨습니다.

4    주님을 믿는 자들아, 찬양노래 불러라.
.     그의 거룩하신 이름에 감사기도 바쳐라.

5    그의 진노는 잠시뿐이요

.     어지심은 영원하시니 
.     저녁에 눈물 흘려도 아침이면 기쁘리라.

6    마음 편히 지낼 때에는 스스로 말하기를
.     이제는 절대로 안심이다 하였는데,

7    나를 어여삐 여겨,

.     위에 든든히 세워 주시던
.     주께서 외면하셨을 때는

.     두려워 어쩔 몰랐습니다.

8    주여, 몸은 당신께 부르짖으며,
.     당신의 자비만을 구하였습니다.

9     몸이 피를 흘리고 속에 묻힌다 해서
.     당신께 좋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티끌들이 당신을 찬미할 있으리이까?
.     당신의 미쁘심을 알릴 있으리이까?

10  주여,

.     애원을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소서.
.     주여, 부디 도와주소서.

11  당신은 나의 통곡하는 슬픔을

.     춤으로 바꿔 주시고
.     베옷을 벗기시고

.     잔치옷으로 갈아입히셨습니다.

12  이는 영혼이 끊임없이

.     주님을 찬미하라 하심이니
.     , 나의 하느님,

.     은총 노래에 담아 영원히 찬양하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고린 9:24-27

24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25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27 나는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놓고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르 1:40-45

40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주실 있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41 예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그렇게 해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자 42 그는 나병 증세가 사라지면서 깨끗이 나았다. 43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면서 44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가 깨끗해진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여라.” 하고 엄하게 이르셨다. 45 그러나 그는 물러가서 일을 널리 선전하며 퍼뜨렸기 때문에 때부터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예수께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