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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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5. 16.

 

2021. 2. 28.  나해_사순 2주일_감사성찬례

창세 9:8-17_ 시편 25:1-10_ 1베드 3:18-22_ 마르 1:9-15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τὰ τοῦ Θεοῦ ἀλλὰ τὰ τῶν ἀνθρώπων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기원전 2세기 헬라 제국(셀레우코스 왕조) 황제 안티오쿠스 4 때의 이야기입니다.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을 핍박했던 악명 높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유대인들로 하여금 봉헌하게 했고, 이방인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방종과 향락을 즐기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축제도 지킬 없었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유대인이라 말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유대인들은 헬라 문화를 강요받았고,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제받았습니다. 

 

어느 유대인 율법학자 하나인 엘르아잘이란 나이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헬라인들이 강제로 그의 입을 열어 돼지고기를 먹이려 했습니다. 그는 태형을 맞을 각오를 하고 그들 앞에서 돼지고기를 뱉어버렸습니다.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잃을 각오를 것이지요. 그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그를 살리고 싶어 율법에 어긋나지 않은 고기를 제물로 바친 고기라고 속여서 먹는 시늉만 하라 했지만, 그는 또한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죽음을 각오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당장에는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을 피할 도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용감하게 죽어 나잇값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는 모진 매를 이겨 고통 속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이는 성서의 외경인 마카베오 하권 6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6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그는 자기의 죽음을 젊은이에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포들에게 용기의 모범과 덕행의 본보기로 남기고 죽었다.” (2마카비 6:31) 마카베오서는 이러한 안티오코스 황제의 폭정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유다 지파 마카베오 가문과 유대인들의 활략상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날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우리의 크리스마스 시즌과 비슷한 시기에해피 하누카(Happy Hanukkah)” 하여 유대교 최대의 축제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제자 최초의 고백인베드로의 고백 8 29절에 나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고백 후에 예수의제자 함구령 나오고, 그다음이 오늘 본문으로 이어집니다. 시작은제자 특수교육입니다. 교육의 내용은 그동안 함구해왔던그리스도 비밀 드러내는수난 예언입니다. 핵심은 고난 받는 인자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재림 대한 부분은 빠져있습니다. “수난 예언 마르코 복음에만 군데서 나옵니다. 오늘 본문 8 31 그리고 9 31절과 10 34절입니다. 

 

부분을 읽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모르지만, 신학자들 간에는 많은 논쟁이 있었던 부분입니다. 과연 수난 예언전승이 실제 역사적 예수께로 소급이 되는가?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실제로 이러한 예언을 하셨는까?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많은 학자들이 수난 예언사후 예언으로 인정합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한 후에 마치 그전에 사건의 발생을 예언했던 것처럼 기록하는 것을사후 예언이라 합니다. 예수의 죽음 이후에원시 그리스도교회에서 예수의 고난 사건을 이렇게 예언으로 정리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우리의 신앙적 고백과 역사적 예수 사이에 너무 커다란 간격이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마르코가 사후에 기록을 다듬어서 정리했다는 것은 편집비평으로 사실일 가능이 큽니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과 다른 많은 복음서의 전승 자료들은 예수의 삶이 죽음으로 이를 수밖에 없었던 많은 정황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황 증거들은 모두 예수께서 생전에 그의 죽음을 충분이 인지하셨을 것이라는 추측의 근거들입니다. 다음의 증거들은 신학자 예레미야스가 제시한 자료들을 참고한 것들입니다.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알제불의 힘을 빌어 마술을 행했다는 고소(마르 12:24). 이럴 경우 유대교에서 돌을 맞아 죽을 있는 죄였습니다; 중풍병자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해서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고소를 당합니다.( 마르 2:7) 경우도 유대교에서 죽음입니다;  이외에도 거짓 선지자라는 비난 ( 마르 14: 65);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 등입니다. 거기에다가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성전을 뒤집어엎기까지 하셨습니다. (마르 11:15-16) 성전을 모독하는 죄는 유대교에서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불경스러운 죄였습니다. 예수의성전 정화 사건 예수가 죽임을 당하는 결정적인 근거를 유대인들에게 제공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전승 자료들의 정황들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자신의 사역 전반에 걸쳐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앞에서 읽어 드렸던 율법사 엘르아잘의 이야기는 예수님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말해주는 일화라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에서는 죄사함에 대한 가지 주요 수단이 있었습니다. 1) 법률상의 죄를 범했을 하는 회개, 2) 회개와 제사의 금지 규정을 어긴 죄를 속죄하는 대속죄의 제사, 3) 1) 2) 해결할 없는 죄를 속죄하는 고행, 4)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힌 죄에 대한 속죄로서의 죽음 등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4)속죄의 죽음입니다. 범죄자라 할지라도 형이 집행되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하면 속죄의 힘을 갖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의 죽음이 나의 모든 죄들을 위한 속죄 (카파라 kapparah, atonement) 될지로다.” 죄인의 죽음이 정도로 속죄의 힘을 발휘할 있다면 의인의 죽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에는속죄를 위한 순교 칭송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고 속죄의 길을 열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사제인 가야바가 예수를 고발하는 제사장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요한 11:50) 그러므로 사람의 죽음은 앞에서 봤던 엘르아잘의 경우와 같이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속죄의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했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의수난 예고다음에사탄이란 치욕적인 모욕을 듣는 장면은 아마도 초기 전승에까지 소급되는 같습니다. 사실이 아니면 이런 기록을 통해 예수의 수제자를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마르코는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이란 구절을 사용하여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나섰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물론 병행구절인 마태오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마태 16:23) 루가는 아예 부분을 생략해버립니다.(루가 9:22) 물론 마르코의 것이 초기 전승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수난 예고베드로의 수모이야기와 함께 접목이 상황어(아포프테그마)” 분류할 있습니다. 수난 예고와 베드로의 수모 이야기를 접목하여 구체적 상황을 설정하고 주제를 명확이 드러내는 편집적 방법입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이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이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인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의 추종 자세 대한 예고 역할을 합니다.

 

베드로의 수모이후에 나오는 34절에서 38절의 말씀은  단절어 집성문이라 부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개의 문장으로 전승들을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의 추종 자세라는 주제 하에 하나로 수집한 것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연관성이 없는 말들이지만, 하나로 묶어놓으니 주제를 드러냅니다. 연결 순서를 보면고난- 목숨 - 종말 - 재림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 전체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마르 8: 35) 

 

“必死則生(필사즉생) 幸生則死 (행생즉사)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순신 장군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죠. 요한복음에도 유사한 말씀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요한 12: 25)

 

마르코가 사용한목숨 해당하는 헬라어는푸쉬케 ψυχή” 라고 합니다. 이는호흡 또는 목숨(breath)’, ‘(soul)’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복음을 위해목숨까지도 내놓으라는 말씀입니다. 목숨을 내놓아도 결코 그리스도인은 영까지 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목숨까지 내놓으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든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말씀일 겁니다. 박해의 시대에는 그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고, 오늘과 같이 기독교가개독교 욕을 얻어먹는 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먼저 자신을 희생하여 사랑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희생의 삶을 살라는 말일 것입니다.

 

남을 위해 뭔가를 포기하고 내려놓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진 같습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 남보다 잘되고자 하는 경쟁심; 남에게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우월감과 공명심; 이미 가졌어도 많이 갖고 싶은 탐욕; 나와 자신의 가족만 편하고자 하는 이기심; 희생과 섬김보다는 은총과 축복만 갈구하는 기복신앙 .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같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점점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고 위로와 축복을 소비하는 친선 모임이 되어가는 같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기준이 율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아잘은 신념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돼지고기를 거부했습니다. 타협의 기회가 있었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대해 정도의 사랑과 신념이 있었던 그를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인복음 대해 나는 어느 정도의 확신과 헌신이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고기를 먹고 먹고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부차적인 문제일뿐입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아디아포라(ἀδιάφορα) 하는데, 종교개혁자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사용한 말입니다. 이는 성서에 명령받지 않았고, 금지되지 않았으며, 인간 구원과 연관성이 없는 사안들을 말할 사용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마태 6: 25) 옷과 음식은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단지사람의 이고 아디아포라인 것입니다. 

 

예수를 추종하는 자의 자세는 분명합니다. 자기 자신과 목숨은사람의 이고아디아포라일뿐입니다. 그러면 본질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복음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따르고 싶으십니까?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천하기에는 매우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아디아포라라고 선포하신 것을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목숨, 의식주 문제, 명예와 자존심 등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갑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도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 주님께서도 아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복음과 예수님보다 그러한 것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발생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서가 말하는사람의 입니다.

 

베드로는 사람의 하느님의 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분에 대해 매우 단호하셨습니다. 그냥 없는 소리 !” 하시면서 타이르시면 일을,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너무나 단호한 표현을 쓰셨습니다. 사람의 하느님의 거스리는사탄의 이란 뜻입니다. 결국 우리가 아디아포라에만 집착하는 순간 그것은사람의 ’, ‘사탄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이득과 주장만 펼친다면 그것은 분열과 미움,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모든 분열과 갈등은 본질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아디아포라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었습니다. 

 

마르코가수난 예고하느님의 연결해서 편집한 의도는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희생사랑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하느님의 이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본질적인 것들. 그러나 예수의 삶이 이러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시는 표징(σημεῖον) 됨은 부정할 없는 사실입니다. 표징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의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마태 26: 39) 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일이 무엇인지 예수께서는 분명히 아셨고, 우리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셨고, 우리는 길에서 흔들리고 주저하며 어정쩡하게 살아갑니다. 듣고 배운 대로 행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천하기 싫어서 많은 교리와 신학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기 어려우니 오히려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우리의 지혜와 이성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 같습니다. 한마디로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지요. 마치 예수님을 위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일을 먼저 생각했던 베드로처럼.

 

사순 2주일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며 여러분이 하느님과 약속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그것을 실천하고 있으신지요? ‘하느님의 사람의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하고 있을 우리지만, 그래도 우리 주님을 우리의 표징으로 삼아 올바른 우리 삶의 방향을 설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순절이 그러한 방향을 결단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사순2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수난하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신실한 믿음으로 주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창세 17:1-7, 15-16

1 아브람이 구십구 되던 해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신이다. 너는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살아라. 2 나는 너와 사이에 계약을 세워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4내가 너와 계약을 맺는다. 너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5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리니,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 6 나는 너에게서 많은 자손이 태어나 민족을 이루게 하고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 7 나는 너와 후손의 하느님이 되어주기로, 너와 대대로 뒤를 이을 후손들과 사이에 나의 계약을 세워 이를 영원한 계약으로 삼으리라.

15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분부하셨다. “ 아내 사래를 사래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그의 이름은 사라이다. 16 내가 그에게 복을 내려 너에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리라. 그에게 복을 내려 많은 민족의 어미가 되게 하고 그에게서 민족들을 다스릴 왕손이 일어나게 하리라.”

17: 1 “전능한 신”은 히브리어로 ‘엘 사따이’ אֵ ל ַׁשַׁדי

 

 

시편 22:23-31

23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찬미하여라. 야곱의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돌려라.

    이스라엘 후손들아, 앞에 모두 머리를 조아려라.

24  내가 괴로워 울부짖을 귀찮다 외면하지 않으시고 탄원하는 소리 들어 주셨다.“

25   회중 가운데 주님을 찬송함도, 주께서 허락하심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무리 앞에서 나의 서원 지키리라.

26  가난한 사람 배불리 먹고 : 주님을 찾는 사람은 그를 찬송하리니 그들의 마음 길이 번영하리라.

27   세상이 주님을 생각하여 돌아오고 만백성 모든 가문이 앞에 경배하리니,

28  만방을 다스리시는 주님께 모든 왕권이 있으리라.

29   속의 잠든 이들도 앞에 엎드리고 먼지 속에 내려간 자들도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30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 오고 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이름을 세세대대로 전하리라.

31  주께서 건져주신 모든 일들을 오고 오는 세대에 길이 전해주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로마 4:13-25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세상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켰다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기 때문에 하신 약속이었습니다. 14 만일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상속자가 있다면 믿음은 무의미하게 되고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15 법이 없으면 법을 어기는 일도 없게 됩니다. 법이 있으면 법을 어기게 되어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마련입니다. 16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상속자로 삼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베푸시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에게 약속을 보장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성서에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창세 17:5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창세 15:5하신 말씀대로만민의 조상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창세 15:623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다.” 하는 말씀은 비단 아브라함만을 두고 하신 것이 아니라 24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들까지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25 예수는 우리의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마르 8:31-38

31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 32 예수께서는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던 것이다.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된다고 펄쩍 뛰었다. 33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

34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을 자리에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35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때문에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36 사람이 세상을 얻는다 해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37 사람이 목숨을 무엇과 바꿀 있겠느냐? 38 절개 없고 많은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또는 마르 9:2-9)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고 3 옷은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희게 없을 만큼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 4 그런데 자리에는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서 예수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5 베드로가 나서서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셨으면 합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6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겁에 질려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엉겁결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7 바로 때에 구름이 일며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이는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시편 2:7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8 제자들은 주위를 둘러 보았으나 예수와 자기들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사람의 아들이 죽었다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단단히 당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