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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바라 봄은 사랑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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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5. 16.

 

2021. 4. 4.  나해_부활대축일_감사성찬례

사도 10:34-43_ 시편 118:1-2, 14-24_ 1고른 15:1-11_ 요한 20:1-18

 

 

 

바라 봄은 사랑입니다.” (1)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공관복음서들은 대체로 무덤 사화부활 현현 사화 하나로 묶어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를 따로 나눠서 기록을 했습니다. ‘ 무덤 사화에서 요한은 베드로와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등장시켜 막달라 마리아와 더불어 무덤에 대한 증인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덤을 확인했지만,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는 믿지 못했고애제자보고 믿었다 기록합니다. (8-9) 그러나 애제자가 시신이 사라진 사실을 믿은 것인지, 아니면 부활을 믿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래서 애제자가 부활의 번째 증인이라고 말하기가 애매합니다. 그런 다음에 막달라 마리아의부활 목격 이야기 나옵니다. 여기에서 부활의 번째 증인이 막달라 마리아임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요한은 부활의 증거로 증인들이 목격한 진술을 제시합니다. 모두 무덤을봤고’, 흩어져있는 수의를봤으며’, 막달라 마리아 홀로 입은 천사들을봤고’, 그런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녀는 직접봤습니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사도들이 목격한 증언 외에는 다른 어떠한 객관적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있다면 복음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사실, 예수의 무덤이 비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헬라인들은 매우 시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헬라어에서 실제로듣는 관련된 단어가아쿠오 ἀκούω’ 밖에 없지만, ‘보는 관련된 단어는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성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호라오ὁράω 에이돈 εἶδον”이란 단어입니다. 헬라인들은 인간이 감각적인 지각에서 영적인 지각으로 나아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본다는 영적인 것이라 생각했고, 플라톤도 영혼의 눈으로 신을 성찰한다고 했습니다. “신은 듣고 믿어야 대상이 아니라 성찰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영지주의 조차도 불가시적인 신을그노시스(γνῶσις 지식, 탐구)’ 의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히브리어의 경우보다 의미의 단어는라아ראה인데 70 역에서 단어를 모두호라오또는에이돈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도 단어가보다 의미와 더불어 신의현존 체험하는 것과도 관계가 됩니다. 

 

신약성서를 살펴보면 보는 것과 관련된 단어가 듣는 것보다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신약은보는 대한 생리적, 감각적인 의미에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보는 것과 감각적으로 보는 것의 구분을 전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은 듣는 , 선포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등장인물이본다 그것이 헬라인들 만큼 디테일하게 구분해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오늘 베드로와 애제자와 막달라 마리아가 것에 대해 그것이 영적인 것이냐, 아니면 감각적인 것이냐, 아니면 실제적인 것이냐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 보입니다. 환상이든 실제든 오늘 등장인물들은 모두보았다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토마가 직접 예수의 옆구리와 손의 상처를 보고 만져야 믿는다고 것은 분명시각적인 중시하는 헬라적 배경을 가진 요한 공동체의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토마가 의심이 많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부활의 1차적 증인들도 모두봤다 믿음의 근거를 것을 보면, 예수의 부활을 보지 못한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헬라적 관점을 요한은믿음 연계시키길 원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의예수의 고별사 살펴보면본다 의미를 믿음과 연관시키는 것을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게 되겠고 얼마 안 가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 한 내 말을 가지고 서로들 논의하고 있는 것이냐?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울며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19하-20)

 

요한의 진술은본다는 믿는다는 사이에 미세한 긴장 관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토마에게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후에 믿느냐아니면보기 전에 믿느냐이것이 부활 현현 사화를 읽는 요한공동체의 고민이었을 겁니다. 요한은 문제를 어떠한 강요 없이 보는 것과 믿는 것의 의미를 하나로 통합한 , 부활을 직접 보지 못한 후대의 교회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부활하신 예수를보지 않고 믿는우리가 복되다고. 

 

마태오와 루가는 예수께서막달라 마리아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마르코와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단독으로 예수께서 현현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요한이 초기 전승인 마르코를 따른 같습니다.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현현을 체험한 이야기를 통해 짧지만 깊이 있게 개인의 믿음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슬픔과 절망에 사로잡힌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확인한 제자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서 좌절하여 울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을 만나 예수의 시신을 찾고자 그들에게 하소연까지 합니다. 그녀의 절망은 그녀가뒤를 돌아본후에나 반전을 맞이합니다. 그곳에 예수께서 서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예수를 바로 알아보지 못하고동산지기 착각합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에도 부활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평소에 예수를 부르던 대로 아람어로라뽀니라고 부릅니다.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를 과거의 주님으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아마도 죽은 나자로가 살아 돌아온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겼던 같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간다는 말과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들은 후에야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는 모두 막달라 마리아의봤다 진술에 의존하며 그녀의 믿음이 정확히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동하며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보는 것은 믿음을 추동합니다.

 

부활의 증인들은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실체를 예수의 부활을 통해 드디어 보게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도 오늘 읽은 1고린도서 15장에서 많은 증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고 설명하며 마지막으로팔삭둥이같은 자신에게도 부활하신 주님께서나타나셨다 기록합니다. 이때 바울로가 사용한 단어도 요한이 제자들에게 사용했던봤다 단어와 똑같은호라오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를신적 수동태 사용하여 하느님께서 보여주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공동번역은나타났다 번역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로도 결국보고 깨달은 입니다. 실제로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현현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은 영적인 것이고 그것은 믿음과 관련됩니다. 그러나 요한이 말하는 보는 것은 그냥 우리가 감각적으로 대상을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대상을 보고, 보이는 그대로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으로 걸러내고 그것을 새롭게 자기 안에서 자기의 것으로 형상화하여 표현합니다. 고흐가 사이프러스 나무를 밝은 태양빛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린 것도, 그가 밤하늘에 별들이 소용돌이처럼 휘도는 표현한 것도 모두 그의 마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에서 불꽃을, 그리고 밤하늘에서 별들의 소용돌이를 실제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보는 것을 우리 기독교 영성에서는관조(contemplation)’라고 부릅니다. 관조는 대상의 외형만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깊이 있게 묵상하며 봄으로써 존재의 이면에 감추어진 부분들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존재의 보이지 않는 깊은 곳까지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킬 있습니다. 그러나 관조도 그냥 봄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사랑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우리 앞에 있는 대상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아니면 물체이든 무엇이든 간에 말입니다. 관조의 시작은 대상에 대한 사랑이며, 관심이고 의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레논의 노래 가사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노래로 부를 수도 있지만, 여러분에게 부담을 드릴까 노래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Oh my lover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 생애 첫사랑인 그대여
My eyes are wide open,
눈이 활짝 뜨였습니다.
Oh my lover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생애 첫사랑인 그대여
My eyes can see,
나는 이제 볼 수 있어요

 

I see the wind,
난 바람을 보고
Oh I see the trees,
오, 난 나무들을 봐요
Everything is clear in my heart,
모든 것이 이제 내게 분명해요.
I see the clouds,
난 구름들을 보고
Oh I see the sky,
오, 난 하늘을 봐요
Everything is clear in our world,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명확해요.

 

오노 요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레논은 사랑의 아름다운 체험으로 세상을 달리 보게 됐음을 고백했습니다. 사랑은 대상을 보는 우리의 방식을 이렇게 바꿔 놓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 분명 예수를 가장 사랑했던 제자입니다. 그것이 그녀의 영광입니다. 부활의 증인 말입니다. 그녀는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그분의 발을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닦았던 사람입니다. 결국 사랑이 그녀로 하여금 주님의 부활을보게했습니다. 사랑은 하늘을, 바다를, 우리 주변 사람들을 전혀 새롭게 보게 만듭니다. 예수의 부활을 보지 않고 믿는 우리들, 우리는복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부활하신 주님을 실제로 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도 이미 부활을 봤던 증인들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요한복음을 이해할 없다고 했던 저의 말을 기억하십니까? 결국 요한은보는 믿음과 사랑을 하나의 고리로 엮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아침에 우리는 부활의 기쁨과 함께 우리의 사랑을 주님께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고백 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아름답게 변화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부활대축일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다음 세 기도 중 하나를 드립니다.

  1. 영광의 하느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어 죄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생의 문을 열어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우리도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2. 영광의 하느님,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생 주님만 섬기게 하소서.
  3. 영광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어 놀라운 권능을 교회에 전해 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교회가 죄와 죽음에 매인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선포하고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도 10:34-43

34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35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36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그것은 만민의 예수 그리스도를 시켜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입니다. 37 이것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비롯하여 유다 지방에 걸쳐서 일어났던 38 나자렛 예수에 관한 일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주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자기를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로 정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43 모든 예언자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시편 118:1-2, 14-24

1    주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는 어지시다.
.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    이스라엘 문중아, 노래 불러라.
.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4  주님은 나의 나의 노래
.     나의 구원이시다.

15  의로운 사람들의 집집에서
.     터져 나오는 승리의 함성

16  주님의 오른손이 번쩍 들렸다.
.     주님의 오른손이 힘을 떨치셨다.

17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     주께서 하신 일을 널리 선포하리라.

18  주께서는 나를 벌하시고 벌하셨지만
.     그러나 죽게 버려두지는 아니하셨다.

19  정의의 문을 열어라.
.     내가 들어가 주님께 감사기도 드리리라.

20  이것이 주님의 문이니,
.     의인들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21  나의 기도 들으시고 나를 구해 주셨으니
.     주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22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우리 눈에는 놀라운 ,
.     주께서 하신 일이다.

24   날은 주께서 내신 ,
.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고린 15:1-11

1 형제 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 복음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되새겨주려고 합니다.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들였고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은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것입니다. 3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5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8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요 하느님의 교회까지 박해한 사람이니 실상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10 그러나 내가 오늘의 내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의 덕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사도보다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것입니다. 11 내가 전하든지 다른 사도들이 전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요한 20:1-18

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여자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3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4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6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9 그들은 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0 제자는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11 한편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12 옷을 입은 천사가 앉아 있었다. 천사는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울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누군가가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14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예수께서 거기에 계셨다. 그러나 그분이 예수인 줄은 미처 몰랐다. 15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이 동산지기인 알고여보셔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셔요. 내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께서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라뽀니!” 하고 불렀다. ( 말은선생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나는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하느님이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전하여라.” 하고 일러주셨다.18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일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