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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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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5. 23.

 

2021. 5. 23. 나해_성령강림대축일_성공회 예산교회

사도 2:1-21 / 시편 104:24-34, 35 / 로마 8:22-27 / 요한 15:26-27, 16:4-15

 

 

 

성령의 역할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지난 5 13 목요일이승천대축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째 되는 날입니다. 전례력상 대축일은 주일보다 앞서므로 대부분의 교회는 이를 부활 7주일로 옮겨서 지킵니다. 그리고 승천일로부터 열흘째 되는 오늘이 바로 성령강림절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40일간의 사순절, 고난주간, 부활절, 50일간의 부활절기, 승천축일, 그리고 성령강림절. 누구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단순히 일상의 연속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개와 낮아짐, 고통과 두려움, 영광과 희망 등으로 가득한 90일간의 절기를 우리는 보냈습니다. 해의 4분의 1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승천대축일과 성령강림대축일은 신학적으로 루가의 기록에 근거합니다. 루가는 사도행전 1 3절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 동안 제자들에게 현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일째 되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고, 그로부터 열흘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복음사가 루가만 유일하게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사건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입니다. 루가의 관점에서는 승천은예수의 시대 종결을 의미하고, 성령강림과 함께교회의 시대 시작됐음을 말합니다. 루가는 성령을 존재론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한 루가는 성령을 철저히역할로만 설명을 했습니다. 루가가 성서를 기록할 때에는 아직 삼위일체론이 성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읽은 복음서의 요한 또한 루가와 비슷한 입장입니다. 다만 루가보다는 성령의 정체에 대해 조금 인격적인 구체성을 띕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요한 15:26)

 

협조자, 변호자; 파라클레토스 παράκλητος”  

그러나 이것은 존재론적 호칭이 아닙니다. 요한은 예수와 성령을 분리해서 설명하지 않았고, 성령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역할 방점을 두었습니다. 성령의 역할은 바로 부활절 이후에 교회공동체에서 예수의 현존을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콘첼만). 루가나 요한이나 모두 성령을 존재론적으로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상황 속에서 역동적인 활동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세기 이전에는 아직 교리적, 신학적으로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이 성립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이단들의 등장과 도전에 대한 변증으로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시 기독교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그들이 성령을 존재론적이기보다는물활론적(hylozoistic) 또는 역동적(dynamic)”(콘첼만)으로 이해한 이유를 같습니다. 갖은 핍박과 유대교와의 갈등과 절교의 상황 속에서 아마도 초기 공동체는 성령을 존재론적으로 경험할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처형과 오순절 이후 다양한 실존적 상황 속에서 성령을 역동적 현상으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한 현상들 속에서 초기 공동체가 성령을신자들을 도우시는 으로 인식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성령은 신학적 논쟁과 신앙적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처절한 속에서 실질적인 힘이고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요한 15:26b)

 

 

성령의 가장 역할은 예수에 대한 증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셨는데,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다시 오신다는 것을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증거 하십니다. 부활과 승천을 경험한 제자들은 성령의 강림으로 완전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예수의 처형 당시 뿔뿔이 흩어졌던 많고 비겁했던 제자들이 더는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요한 16:8)

 

그리고 진리의 성령께서는 율법의 불순종이 죄가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깨닫게 하시고, 하느님과 예수께서 하나가 것같이 우리가 예수와 합일하는 것을 정의라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예수의 부활로 이미 세상의 심판자가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주셔서, 우리를 죄와 심판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인간의 신학적, 교리적 진술들과 우리의 인식의 범위 안에 결코 묶이지 않으십니다. 결국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십니다. 이를 요한의 관점에서 말하면 바로사랑이라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요한 15:9)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듯이,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듯이 우리는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과 예수, 예수와 우리를 연결하는 끈끈한 연결점이 바로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고 성령께서 이를 우리 안에 가능하게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요한 15:12)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같이, 우리도 형제를 사랑할 있게 것입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사람에게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요한은 가장 귀한 것을 남을 사랑하는 바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기에 예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성령을 은사로 주셨다고 요한은 강조합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섬길 성령께서는 존재감을 관계 속에서 드러내십니다. 성령은 능력으로 우리의 행위와 함께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행하지 않는 , 사랑하지 않는 자는 결코 성령을 수도, 느낄 수도,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이를 이해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 1:8)

 

여기에서 말하는 성령의두나미스 δύναμις’입니다. 말이 영어의다이너마이트 dynamite’ 어원이라 폭발적이고,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것이 마치 성령을 전부 설명하는 것인 우리를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성서에 기록된 대부분의 성령의 역할이 특별한 현상과 신비한 능력을 드러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루가와 요한이 설명하는 하느님의 힘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몰아적 현상이나 방언과 같은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없을 사랑할 힘과 섬길 능력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두나미스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있는 용기이고 사랑입니다. 두나미스는 오직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곳에서만 작용하는 사랑의 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고린 13:2-3)

 

성령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방언을 하고, 병자를 고치고, 신비한 기적을 아무리 행해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광과 복음의 증언을 위해 주님께서 주신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성령의 역사도, 반대로 성령의 도움이 없는 사랑도 존재할 없습니다.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모두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성령께서 끊임없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의 진리를 현시한다고 말합니다 (콘첼만). 이러한 성령은 종말론적인 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지금 여기에서우리의 형제 사랑을 통해 계시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바로지금 여기에서드러나고 완전함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주님의 고별사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가시기 전에 본인의 죽음과 승귀(昇貴, Exaltation)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말에 실망과 좌절을 느끼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라나섰는데, 이제 스승마저 잃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같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들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요한 16:7)

 

그러므로 주님의 떠나심, 승천의 진실에 의해 우리는 그분의 성령을 받을 또한 동시에 약속을 받았습니다. 90일간의 절기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이제 다음 대림절 전까지 부지런히 우리의 일상에 충실하게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랑이 가득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자신보다 조금 남을 낫게 여기고, 자신의 가정뿐만 아니라 조금 이웃을 챙기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친절해지고, 짜증 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일상에서 조금 기도하며 우리의 일상이 나은 쪽으로 변화되어 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미 사랑할 있는 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은 쓰면 쓸수록 더욱더 충만하고 풍성하게 우리에게 다시 채워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이, 그리고 우리의 일상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한 은총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강림대축일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의 빛과 생명이 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 마음을 성령의 한없는 은혜로 채우시고,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맺을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도 2:1-21

1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곳에 모여 있었는데 2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러자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사람 위에 내렸다. 4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5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경건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6 소리가 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기네 지방 말로 들리므로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7 그들은 놀라고 한편 신기하게 여기며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셈인가? 9 가운데는 바르티아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메소포타미아, 유다,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에서 사람들도 있고 10 프리기아, 밤필리아, 이집트, 키레네에 가까운 리비야의 여러 지방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로마에서 나그네로 11 유다인들과 유다교에 개종한 이방인들이 있고 그레데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도 있다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저마다 자기네 말로 듣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하였다. 12 이렇게 모두 놀라고 어안이 벙벙하여도대체 어찌 영문인가?” 하며 웅성거렸는데 13 중에는 사람들이 술에 취했군!” 하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14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보고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유다 동포와 예루살렘 시민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생각해 보십시오. 15 지금 시각이 아침 아홉 시인데 어떻게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것입니다. 요엘 3:1-5

 

17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마지막 날에

.     나는 모든 사람에게

.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19  나는 하늘 높은 곳에서 표징을 보이며

.     땅에서 기적을 행하리니

.     피와 불과 짙은 연기가 일고

.     해는 빛을 잃어 어두워지고

.     달은 피와 같이 붉어져

.     마침내 크고 영광스러운 주의 날이 오리라.

21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시편 104:24-34, 35

24  주여,
.     손수 만드신 것이 참으로 많으나,
.     어느 하나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고
.     땅은 온통 당신 것으로 풍요합니다.

25   크고 넓은 바다,
.     거기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가 수없이 우글거리고,

26  배들이 이리 오고 저리 가고
.     손수 빚으신 레비아단은 당신의 장난감입니다.

27  때를 따라 주시는 먹이를 기다리며
.     모든 것들은 당신을 쳐다보다가

28  먹이를 주시면 그것을 받아먹으니,
.     손만 벌리시면 그들은 배부릅니다.

29  그러다가 당신께서 외면하시면
.     어쩔 줄을 모르고
.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지만,

30  당신께서 입김을 불어 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     누리의 모습은 새로워집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소서.
.     손수 만드신 , 주님의 기쁨이 되소서.

32  굽어만 보셔도 땅은 떨고
.     다치기만 하셔도 산들은 연기를 뽑는구나.

33  나는 한평생 주님을 노래하리라.
.     숨을 거둘 때까지 악기를 잡고,
.     나의 하느님을 노래하리라.

34  나의 노래가 주님께 기쁨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     그러면 나는 주님 품안에서 즐겁기만 하련만.

35  악인들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려라.
.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로마 8:22-27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3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24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26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27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요한 15:26-27, 16:4-15

15:26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증인이 것이다.”

4 “지금까지 내가 말을 너희에게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5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는커녕 6 오히려 내가 때문에 모두 슬픔에 잠겨 있다. 7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8 그분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 잡아 주실 것이다. 9 그분은 나를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라고 지적하실 것이며 10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고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를 나타내시는 것이라고 가르치실 것이고 11 세상의 권력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로써 정말 심판을 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실 것이다.”

12 아직도 나는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말을 알아들을 없을 것이다.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주실 것이다. 14 그분은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게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시리라고 내가 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