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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관통하는 생명의 빵 - 성찬례의 영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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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7. 31.

2021. 8. 1. 나해_연중18주일

사도 베드로의 탈옥 (82일로 옮겨 지킨다)

 

사무하 11:26-12:13 / 시편 51:1-12 / 에페 4:1-16 / 요한 6:24-35

 

 

만물을 관통하는 생명의

성찬례의 영성 2

 

채야고보 신부 / 제주 한일우정의 교회, Artist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Κύριε, δός μοι τοῦτο τὸ ὕδωρ, (요한 4:15)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외침입니다.

 

“선생님, 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 Κύριε, πάντοτε δὸς ἡμῖν τὸν ἄρτον τοῦτον. (요한 6:34)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외침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외침은 인간 실존의 처지에서 우리가 있는 가장 솔직한 기도와 바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원히 풀릴 같지 않은 먹고사는 문제는 예수님 시절이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인류 역사상 현대만큼 인류가 풍요를 누린 적이 없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저만해도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결핍의 기억들이 새록새록한데 지금은 먹는 것으로 살이 찌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의 풍요 이면에는 지구 자원의 남용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착취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목마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원을 향한 시선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다시 오심 사이에중간기라는 시간적 간격을 염두에 두셨던 것일까요? 쉽게 말해서 주님의 다시 오심까지 이러한 실존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우리와 교회를 염두에 두셨을까요? 복음서의 예수의 발언들을 묵상해 보면 분명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제자들을 가르치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후에 하신 오늘 말씀은 이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요한 6:27)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고통받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를 물질로 풍족하게 채워주신 것이 아니라, 대신 물질 이면의영원성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먹고 배부른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 지닌 영원성이라는 것입니다. 배고픔도 고통스럽지만 그것은 영원성이 부재한 고통일 뿐입니다. 죽음과 함께 사라질 고통. 그러므로 썩어 없어질 양식에 목매지 말고, 대신 영원히 살게 하는생명의 ’, 하느님의 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러한 중간기의 기다림 속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말씀하십니다. 바로하느님의 입니다.

 

구원의 조건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요한 6:29)

 

주님을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답변은 하느님의 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의 질문 다음에 나온 답변입니다. ‘하느님의 위해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특한 같지만, 하느님 입장에서 보면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그분의 일은 전적으로 그분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하느님의 일을 위해 있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은 의에 대한 오해도 담겨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인간의 선행이나 율법의 준수가 구원의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조건에 따라 우리 개인을 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시며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따라 우리를 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개인의 능력과 외모, 배경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토기장이가 자신의 원하는 대로 그릇을 만들어 사용하듯 우리를 그분의 의지대로 지으시어 사용하십니다. 하느님 앞에 우리는 누구도 자신의 의를 감히 자랑할 없습니다. 인간은 그분의 의에 따라 은총 가운데 구원받지 결코 인간이 설정한 조건에 의해 구원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바로 구원에 인간이 참여할 여지를 완전히 배제하는 말씀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 하느님께로부터,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 구원의 조건이십니다. 이는 하느님 앞에 개인이 하느님 앞에서 갖게 되는실존의 양태 보여줍니다. 그것은 겸손과 감사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을 우리가 그분 안에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진정 하느님을 있게 됩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내재와 초월의 만남은 이렇게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러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영원성이 인간의 실존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하늘이 주신 양식인만나 먹고도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넘어 영원성과 연결됩니다. 결국 하느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다는 것은 유한한 인간이영원성 닿을 있는 가능성을 획득했다는 뜻입니다.

 

만물을 꿰뚫으시며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것만을 보시는 분이시니, 우리의 처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배고프고 목마르지만, 주님께서는 본인이 생명의 빵이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인식과 관점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인식에만 머문다면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정말 무의미한 것이 되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만물을 꿰뚫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오늘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에페 4:6)

 

여기에서만물 라는 말씀은 초월을, “만물 내재를 뜻하는 말임을 쉽게 이해할 있습니다. 그러나만물을 꿰뚫어 정말 생소한 표현이고,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꿰뚫다 διά라는 전치사를 여기에서는 속격과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관통하다 의미인데, 하느님께서 모든 만물을 관통하신다는 뜻입니다. ‘만물 만물 정적인 것에 비해만물을 관통하는 매우 동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양태를 보여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지만, 또한 우리를 관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다른 말로 그분은 세상 만물 속에 계시지만, 동시에 만물을 관통하시기 때문에 결코 만물 속에 붙들리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 만물 속에 머무시고, 관통하시고, 운행하십니다. 이는 마치 손으로 잡을 없는 바람이나 공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뜻하는 히브리어의דוח루아흐 헬라어의 ‘πνεῦμα퓨뉴마 바람과 관계된 단어들입니다. , 호흡, 공기, 바람은 잠시 머무를 때도 있지만, 이내 어딘가로 움직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관통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성령을 소유할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모두의 안에 계시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모든 안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표현 우리에게 주는 위험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받았다는 말보다 우리가 그분의 은총 가운데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우리말에서 수동태가 무척 어색하지만 우리는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이지 성령이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실존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를 관통하여 우리를 하나로 엮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통해, 그리고 다른 형제자매를 통해 하느님을 보게 되고 서로 상통하며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로완 윌리암스의 표현을 빌리면, 여기 있는 누구도 거울 없이 자신의 뒷모습을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없던 자기를 온전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반쪽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의해 드러납니다. 이것이 우리를 관통하셔서 우리 가운데 운행하시는 성령께서 사람과 사람을 엮으시는 방법이십니다. 우리는 혼자 구원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구원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에클레시아의 신비가 있습니다.

 

나눔의 , 기도의 자양분

그러나 우리 인간은 여전히 하느님을 우리 안에 붙들어 놓고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물을 달라, 빵을 달라는 의미는 이러한 주님을 우리가 우리 안에 가둬두려는 우리의 덧없는 시도로 봐야 것입니다. 단순히 배고픈 것이 아니라 주님을 소유하여 영원히 배고프고 싶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인해 살고, 먹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복된 삶을 꿈꾸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이 소망을 넘어 욕망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욕망은 우리를 좀먹어 들어오는 강력한 사탄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소금을 계속해서 쏟아내는요술 맷돌처럼 우리는 주님을 우리가 소유했다고 착각하며 우리 배가 가라앉는지도 모르는 주님을 이용해(?)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급급합니다. 결국 소금의 무게를 감당할 없어 가라앉은 배처럼 우리도 우리가 구하는 것을 감당할 없어 결국은 가라앉고 맙니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다시 서게 됩니다.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는 모든 것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것이 나와 하느님 앞에,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앞에 진실한 것인지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영분별이고 우리 자신을 살피는 방법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자기의 욕망을 비우고 남과 나를 동시에 살리는 기도일 겁니다. 하느님의 빵은 이러한 우리의 기도에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하느님의 생명의 나눔의 빵이고 사람을 살리는 빵입니다. 그것이 우리 기도의 자양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하느님의 생명의 빵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드리는 중보 기도로 생명력이 드러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성령께서 우리 각자를관통하시어하느님의 빵이 주는 생명이 우리 공동체 안에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몸속의 피가 순환하듯이,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순환이 이루어지면 원활한 자양분이 공급되어 건강한 몸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는 이러한 생명의 빵으로만 온전히 세워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생명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기 자신을생명의 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은 가장 적절한 중보 기도의 세메이온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 공동체 내에 자양분으로 흐를 있도록 우리가 서로를 위해 중보 기도를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할 서로의 기도로 변화되고 성장해 가는 우리 교회가 세워질 믿습니다. 저는 그러한 교회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아멘.

 

 


 

연중18주일 (나해) _ 전례독서

 

본기도

살아계신 하느님, 성자께서는 하늘의 말씀과 생명의 빵을 우리에게 주시나이다. 비오니, 살아있는 양식으로 우리를 먹이시어 힘을 얻게 하시고, 진리를 위하여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무하 11:26-12:13

26 우리야가 전사했다는 전갈을 받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곡을 했다. 27 곡하는 기간이 지난 다음, 다윗은 예를 갖추어 여인을 궁으로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그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다윗이 일이 야훼의 눈에 거슬렸다.

12:1 야훼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성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은 부자였고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도 소도 매우 많았지만, 3 가난한 이에게는 품삯으로 얻어 기르는 암컷 새끼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새끼 양을 자식들과 함께 키우며, 밥그릇에서 같이 먹이고 같은 잔으로 마시고 때는 친딸이나 다를 없이 품에 안고 잤습니다. 4 그런데 하루는 부잣집에 손님이 하나 찾아 왔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소나 양은 잡기가 아까워서, 가난한 새끼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5 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단에게 소리쳤다. “저런 죽일 !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6 그런 인정머리 없는 짓을 놈을 그냥 수는 없다. 마리를 배로 갚게 하리라.” 7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사울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8 나는 상전의 딸과 아내들까지 품에 안겨주었다. 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딸들까지 너에게 주었다. 그래도 모자란다면 어떤 여자든지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나를 얕보며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느냐? 너는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죽였다. 암몬 군의 칼을 빌려 그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로 삼았다. 10 네가 이렇게 나를 얕보고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아내로 삼았으니, 너의 집안에는 칼부림이 가실 날이 없으리라.’ 11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당대에 재난을 일으킬 터이니 두고 보아라. 네가 보는 앞에서 계집들을 끌어다가 사내의 품에 안겨주리라. 밝은 대낮에 계집들은 욕을 당하리라. 12 너는 일을 쥐도 새도 모르게 했지만, 나는 일을 대낮에 이스라엘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리라.’”

13 내가 야훼께 죄를 지었소.” 다윗이 이렇게 자기 죄를 고백하자 나단이 말하였다. “야훼께서 분명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임금님께서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14 그러나 임금님께서 야훼를 얕보셨으니, 우리야의 아내가 낳게 아이는 죽을 것입니다.” 15 나단은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시편 51:1-12

1    하느님, 선한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어지신 분이여, 죄를 없애주소서.

2    허물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     잘못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3     내가 알고 있으며
.     잘못 항상 앞에 아른거립니다.

4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만 죄를 지은 ,
.     당신 눈에 거슬리는 일을 몸입니다.
  벌을 내리신들 말이 있으리이까?
.     당신께서 내리신 선고, 천번 만번 옳습니다.

5     몸은 중에 태어났고,
.     모태에 있을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습니다.

6    당신은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니
.     지혜의 심오함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7    정화수를 나에게 뿌리소서, 몸이 깨끗해지리이다.
.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희게 되리이다.

8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소서.
.     꺾여진 뼈들이 춤을 추리이다.

9    당신의 눈을 나의 죄에서 돌리시고
.     모든 허물을 없애주소서.

10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주시고
.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주소서.

11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고
.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옵소서.

12   구원의 기쁨을 나에게 도로 주시고
.     변치 않는 마음, 안에 굳혀주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에페 4:1-16

1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3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4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5 주님도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6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각각 다른 은총을 알맞게 나누어주셨습니다. 8 성서에도,

.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     사로잡은 자들을 데리고 가셨고

.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셨다.” 시편 68:18

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9 그런데 올라가셨다는 말은 또한 아래의 세계에까지 내려가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그리로 내려가셨던 바로 그분이 모든 것을 완성하시려고 하늘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11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12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 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3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14 때에는 우리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인간의 간교한 유혹이나 속임수로써 사람들을 잘못에 빠뜨리는 교설의 풍랑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것입니다. 15 도리어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이 되어야 합니다. 16 우리의 몸은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와 같이 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요한 6:24-35

… 24 그런데 군중은 거기에서도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아 가파르나움으로 떠났다. 25 그들은 호수를 건너가서야 예수를 찾아내고선생님, 언제 이쪽으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는정말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께서는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 30 그들은 다시무슨 기적을 보여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그들을 먹이셨다. 칠십인역 시편 78:24(출애 16:15; 느헤 9:15 참조)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 먹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3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들어두어라.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너희를 먹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내려주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33 하느님께서 주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

34 말씀을 듣고 그들이선생님,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하자 35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