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마음에 심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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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god /신학이야기

2021. 8. 28.

2021. 8. 29. 나해_연중22주일

 

아가 2:8-13 / 시편 45:1-2, 6-9 / 야고 1:17-27 / 마르 7:1-8, 14-15, 21

 

 

마음에 심긴 말씀

 

 

채야고보 신부 /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오늘 복음서는 원래 본문에서 절들을 나눠서 읽었습니다. 관련된 주제의 절들을 모아서 읽은 거죠. 본문의 주제는 유대 전통에 대한 준수 여부로 예수와 율법사들 간의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7장에는 개의 유대교 인습 전통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중 가지가 오늘 읽은 본문에 있습니다. 하나는세정 규례(1~7)’이고 다른 하나는금기 음식 규례’(15, 18-23)입니다. 오늘 본문에 빠져 있는 부분은 9~13절의 물품을 하느님께 바쳐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코르반 규례 대한 것입니다.

 

부정한 뜻하는 헬라어 ‘κοινός 코이노스’ (1. common, shared, 2. Hebraistic use: profane; dirty, unclean, unwashed.)  특별한것에 반대되는 의미로일반적인, 흔한이란 뜻의 형용사인데, 히브리 전통에서는 이를 제례적 용어로  부정한, 불경스러운, 불결한이란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거룩한 것에 반대되는 뜻이지요. 오늘 말씀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제자들을 비판한 근거인조상들의 전통  ‘(유대교) 장로들의 전통 (τὴν παράδοσιν τῶν πρεσβυτέρων)’ 말합니다. 원래 구약에서 손을 씻는정결례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에게 주어진 규례였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세숫물을 담을 물두멍과 받침대를 놋쇠로 만들어 만남의 장막과 제단 사이에 놓아라. 그러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기에서 물을 퍼내어 손과 발을 씻을 것이다. 만남의 장막 안에 들어갈 때에는 물로 씻어야 죽지 않는다…..”( 30:18-21, 비교: 40:30-32)

 

이러한 규례가 유대교 장로들에 의해 확대 해석되어 서민들을 규제하는 규례로 발전한 것입니다. 단순히 위생적인 차원에서 손을 씻는 것을 넘어 사람들을 속박하는 종교적인 규범이 것입니다. 손을 씻고 씻고는 철저히 개인과 공동체의 위생과 관련된 것이지 종교적 규범으로 확대 해석되어거룩함과 부정함 구분 짓는 잣대가 아닙니다. 손을 씻고 씻고는 부차적인 문제 아디아포라 ἀδιάφορα’ 문제입니다.

 

아디아포라라는 말은 원래 스토아학파의 개념으로 선도 악도 아니고, 금지나 명령받지 않은 것을 가리킬 사용된 말입니다. 이를 멜랑히톤이 종교개혁 시기에 처음 사용하여 구원에 본질적인 것이 아닌 부차적인 것을 가리킬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성공회의 종교개혁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모든 갈등의 원인은 이러한 부차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있습니다. 성공회의 종교개혁은이신칭의 대한 신학적 투쟁이기보다는아디아포라 결정하는권위 대한 투쟁과 협의의 역사였습니다. 성서에 근거한 구원에 필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는 성서의 권위에 의존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차적인 문제에 있어서 논쟁의 여지가 너무 다분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서를 해석하는 권위는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를 비롯하여, 예복을 입는 문제, 기도할 양팔을 좌우로 벌리는 오란테(oranten) 자세를 취할 것인지의 문제, 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는양형영성체 것인지 아니면, 성체만 영하는단형영성체 것인지의 문제 등등.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초기 교부들의 권위와 초대 교회의 전통 의지하거나, “왕의 수의권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과 전통에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손을 씻는 문제와 관련한 아디아포라 문제를 인간의양심 연관시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양심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이사야의 말을 인용한 위선자라고 규정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위선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마르 7:6)

 

 

마음과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주님께서 유독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사의위선 대해 분노하시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이러한위선자 주님께서는회칠한 무덤’(마태 23:27)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겉만 번지르 하고 속은 썩은 시체가 있는 무덤 말입니다. 주님의 관점에서 보면 마음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바로 양심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양심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심어 놓으신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 2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온갖 악한 행실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으신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야고 1:27)

 

 

마음속에 심으신 말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이신칭의보다는 행위에 강조점을 둡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해진다는 논리이지요. 바울로나 야고보나 결국에는 똑같은 말을 하는 서로의 강조점이 다를 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양심대로 행동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데서 많은 갈등과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관점에 의하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은 먼저 자기 자신을 속이고 결국에는 하느님도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면 결국 어느 누구에게도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이는하느님 앞에 개인 수치가 아닐 없습니다. 야고보나 예수님이나 오늘 전례독서 본문들은 모두 이에 대해 단호하면서도 무척 엄중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이 더럽혀지면 그곳은 사탄의 거점이 되고 결국에는 온갖 죄악이 그곳에서 나온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마르 7:21-22)

 

 

이러한 것들이 모두 마음에서 나와 우리를 더럽힌다고 하니 결국 양심에 반하는 말과 행동이 낳는 결과가 모든 악의 근원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디아포라적인 문제를 본질적인 문제인양 타인을 속여 속박시키지 말고 양심에 반하지 않게 우리 각자의 마음에 심긴말씀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 양심에 심긴 하느님의 말씀에 우리는 어떻게 집중을 있을까요? 이러한 방법에 대해 아가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나의 임이 속삭이는 소리.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아가 2:10)

 

마치 신부가 신랑을 간절히 찾고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안에 심긴 하느님의 말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찾으라고 말합니다. 이는소피아σοφία’ 사모하고 사랑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열정을 연상시키는 말씀입니다. 철학을 뜻하는 헬라어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 문자적으로 "지혜에 대한 사랑" 뜻합니다. 사랑하다는필레인φιλεῖν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σοφία 합성된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너무 보고 싶어 애태우듯이 그런 마음으로 우리 양심에 심긴 주님의 말씀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나이 들어가며 연애와 사랑의 감정을 잃어버린 너무 오래되어 이러한 아가서를 읽을 때마다 감정이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를 확인하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게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에 맞나 싶고, 메말라 버린 저의 정서와 감정에 때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기억에서 아득해도, 사랑할 때의 간절함이 어떤 느낌인지는 희미하게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과 갈망을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제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열정과 집중력을 생각해보면 그때 어떻게 그럴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한 열정과 집중력을 회복해서 그것을 하느님과의 관계에 적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가서 기자의 감정까지 공감을 수는 없어도 간절함이 사랑의 행동을 추동한다는 사실만큼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을 깨우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여 주셔야 함을 깨닫습니다.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일어나오” (아가 2:10b)

 

그러할 우리는 우리 양심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기울일 있고, 양심에 반하는 행동과 말에 단호하게아니요라고 말할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연애가 쉽지 않듯이소피아 찾는 길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에 심긴 하느님의 말씀인양심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양심의 소리가 충돌할 , 양가적 감정이 생길 과감하게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결코 악독한 것들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니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야고1:22)

 

양심의 소리는 그저 듣기만 하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대로 따르고 실천하고자 의지를 발휘할 효과는 가시적으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규율도 우리 마음에 있는 양심의 법을 앞서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이성의 양가적 감정을 극복하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양심의 소리에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열정이 넘쳐서 서로를 세워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아멘.

 

 


전례독서: 연중22 (나해) 

 

본기도

하느님, 주님은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양심 바로 잡아주시나이다. 비오니, 성령의 감화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닫고,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아가 2:8-13

     (신부)

8-9 사랑하는 이의 소리,

      너머, 언덕 너머

     노루같이, 날랜 사슴같이

     껑충껑충 뛰어오는 소리.

      밖에 서서

      틈으로 기웃거리며

     살창 틈으로 훔쳐보며

10  나의 임이 속삭이는 소리.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일어나오.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11  , 겨울은 지나가고

     장마는 활짝 걷혔소.

12  산과 들엔 꽃이 피고

     나무는 접붙이는

     비둘기 꾸르륵 우는 우리 세상이 되었소.

13  파란 무화과 열리고

     포도 향기가 풍기는 철이오.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나와요.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시편 45:1-2, 6-9

1     마음에서 우러나는

     아리따운 노래를
      쓰는 선비의 붓끝으로 엮어

     우리 왕에게 바칩니다.

2    세상에 비길 없는 멋지신 임금님,

     고마운 말씀 입에 머금었으니
     당신은 영원히 하느님께 받은 분이십니다.

6    하느님의 영원한 옥좌에 앉으신 임금님
     당신 나라의 왕권은 정의의 왕권입니다.

7    당신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기에 당신의 하느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다른 사람 제쳐 놓고

     당신에게 부으셨습니다.

8    몰약과 침향과 계피로 당신 옷들이 향기로우며
     상아 궁에서 들리는 거문고 소리도 흥겹습니다.

9    당신의 사랑을 받는 여인들 중에는

     외국의 공주들이 끼어 있고
     오빌의 황금으로 단장한 왕후는

     당신 오른편에 있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야고 1:17-27

… 17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늘의 빛들을 만드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고 우리를 외면하심으로써 그늘 속에 버려두시는 일도 없으십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의 열매가 것입니다.

19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일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십시오.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십시오. 20 화를 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정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온갖 악한 행실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으신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22 그러니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23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얼굴의 생김새를 거울에다 비추어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사람은 얼굴을 비추어보고도 물러나서는 모습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25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을 살피고 꾸준히 지켜 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듣고 잊어버리는 일이 없으며 들은 것을 실천에 옮깁니다. 이렇게 실천함으로써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26 누구든지 자기가 신앙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혀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셈이니 그의 신앙 생활은 결국 헛것이 됩니다. 27 하느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마르 7:1-8, 14-15, 21-23

1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사람이 예수께 모여 왔다가 2 제자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원래 바리사이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들은 조상의 전통에 따라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었고 4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반드시 몸을 씻고 나서야 음식을 먹는 관습이 있었다. 밖에도 지켜야 관습이 많았는데 가령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 같은 것을 씻는 일들이 그것이었다. 5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하고 따졌다. 6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무어라고 예언했느냐?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7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가르친다.’칠십인역 이사 29:13

 

했는데 이것은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를 두고 말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14 예수께서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시고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는 말을 새겨들어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사본에 16 있음) 16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 21 안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23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