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단순하며 간결하고 밀도 높은 기도’-제자도와 기도

댓글 0

artNgod /신학이야기

2021. 10. 23.

 

2021.10.24. 나해_연중 30주일

욥기 42:1-6, 10-17 / 시편 34:1-8, [19-22] / 히브 7:23-28 / 마르 10:46-52

 

 

단순하며 간결하고 밀도 높은 기도

제자도와 기도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itist

 

기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마태오복음 6장에서위선자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인즉 기도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자기만족적인 것도 아니며, 오직하느님 앞에 개인으로 진솔하게 구할 것을 간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할 골방에 들어가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도가 하느님께 드리는 은밀한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할 수다스럽거나,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구할 바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 개인으로 나아가 진솔하게 그분을 응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주님의 기도 기도의 표본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너무 아는 바입니다. 정리해보면, 기도는 은밀히, 조용히, 간결하게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진실하게 자신의 전존재를 열어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단순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정말 단순합니다. 복잡할 필요도,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주님의 기도 기도의 표본이지 마치주문처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 기도의 구조와 틀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고, 우리의 구할 것을 구하는 기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응용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입니다. 은밀함, 조용함, 간결함, 진솔함, 감사함, 기대감이 기도 속에 녹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자비하신 분이시라는기대감’. 그러한 기대감과 희망 없이 기도는 결코 성립될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소망을 품고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응답에 대한 소망에는 바로 우리의 실천에 대한 결의 또한 포함됩니다. 모든 응답에는 우리의 행동과 실천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도만유인력 영향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떠한 일도 원인 없이 발생하는 법은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 예수 기도

 

이는 동방교회 전통에서 쉬지 않고 드리는 기도, 예수의 이름에 호소하는 기도, 마음의 기도로 유명한 기도 방법입니다. 이를 계속해서 반복하여 되뇌면, 쉬지 않고 기도를 하루 종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 17 나오는쉬지 말고 기도하라 사도 바울로의 권면을 따른 기도 방법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기도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마르 10:47)

 

예리고에 사는 시각장애인 바르티매오의 외침입니다. 그는 예수의 소문을 들어 예수께서 그곳에 오시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예수께 가까이 다가갈 없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거지였고, 의지할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체에 장애가 있는 것을하느님의 생각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신체적 장애에 대한 몰이해가 종교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목소리로 예수의 일행이 것을 듣고는 소리를 것입니다. 다가갈 없으니 소리라도 질러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발 자신의 소리를 들으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처음의 외침은 사람들의 소리에 가려져 버리고, 오히려 사람들의 꾸짖음만 돌아왔습니다. 그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부정한 사람이라도 소리치는 것조차 막을 사람은 없었으니깐요. 그의 번째 외침에 드디어 주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만났고 그의 소원을 주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르티매오가 외친 소리가 바로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간결했고, 명확했으며, 진솔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그는 예수를다윗의 자손으로 불렀습니다. 이쯤 되면 바르티매오의 깨달음이 제자들보다 앞섭니다. ‘제자들의 몰이해 비교해서 바르티매오의 고백은 정확하게 예수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예수께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제자들처럼 내세에서 예수님 좌우편에 앉게 달라고도 하지 않았고, 제자들처럼 제자들 중에 으뜸이 되고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께 구한 것은 그분의자비였습니다. 이미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구할 것을 아시는 예수님 앞에서 다른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눈을 뜨게 달라고 예수께 간청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구한 주님의 자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바르티매오가 눈을 믿음이 안에 있음을 보셨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바르티매오의 간절한 소망이 그에게 하느님 나라를  자신 안으로 이끌어 것입니다. 이미 그는 자신의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께서다윗의 자손임을 알아봤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의 육체적 장애를 치료하실 차례가 것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마르 10:52 a)

 

기도에는 이미 소망이 전제한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마치 씨앗이 열매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그러한 소망의 씨앗을 현재의 우리 마음 밭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망은 씨앗이 껍질을 트고 싹을 피우듯  현재에 균열을 만들어 미래가 현재로 침투해 오게 만듭니다. 그래서 소망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바르티매오가 오늘 복음서에 나온 것처럼, 번만 부르짖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바르티매오는 예수를 만나기 전부터 이러한 기도를 자신의 마음속으로 수만 되뇌었을 것입니다. 바르티매오의 외침, 그의 기도는 그날 하루 갑자기 충동적으로 드려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야기 이전의 바르티매오의 삶이 어떠했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그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신 데서 유추해보면 그의 믿음은 이미 예수를 만나기 전부터 시작됐다고 여겨집니다. 그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부터 아마도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 년인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만큼 오랜 시간을 하느님의 자비를 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그가 예수의 소문을 들었을 드디어 유대교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가 메시아를 만나는 순간이 왔고, 그의 오랜 기도가 빛을 발할 때가 것이지요. 바르티매오와 예수의 만남은 그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서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느꼈던 숱한 좌절과 실망들, 자신의 몸에 대한 비관과 죄책감,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배고픈 가난. 그는 배고픈 고통보다 유대교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신의 정체성이 괴로웠습니다. 굶어 죽어도, 죄인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이러한 많은 삶의 결들이 녹아 있는 압축되고 간결하며 진실된 밀도 있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의 외침에 주님은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셨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너를 구했다라고 오히려 그의 지난 모든 슬픔을 위로해주십니다. ‘그동안 네가 겪은 고통과 아픔은 하느님께서 이미 아신다. 견디고 참고 기도했구나. 그러니 치료는 나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너의 믿음 때문이다. 너를 구원한 것은 너의 믿음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입니까? 바르티매오는 평생의 고통과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가 받은 위로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와 같이예수 기도 단순하지만 개인의 모든 삶의 결들이 압축된 밀도 높은 기도입니다. 밀도는 사람의 삶이 통째로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한예수 기도 가진 힘과 진솔함에서 오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그것이핵폭탄 비견된다고 생각합니다. 1그램의 물질이 완전히 에너지로 전환되면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 기도 핵분열과 같은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기도의 밀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효과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간증으로 증명이 됩니다. 그래서 동방교회에서는 이를 기도의 전통으로 존중해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마르코복음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직전의 서막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바르티매오를 통해 그동안 감춰왔던 예수의 정체가 만천하에 선포됩니다. 마르코는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고 설명함으로써 마치 우리가역전앞이라 하여의미의 중첩 겹말을 사용하듯이, 같은 의미의 말을 반복했습니다. 원래바르 히브리어로 아들이란 뜻으로 바르티매오라는 이름이 자체가티매오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이는 마르코 공동체가 이방인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해줍니다. 유대 전통과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위한 마르코 저자의 배려입니다. 마르코복음에서는 요한복음과 달리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차례 방문하십니다. 자신의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방문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바르티매오의다윗의 아들이란 예수의 호칭은 마르코복음 전체 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몰이해설정 후에 거지 시각장애인을 통한다윗의 아들이란 고백은 향후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예고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다윗의 아들메시아를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고 십자가에 매달았으니 예루살렘에 있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천대하던 거지 바르티매오보다 못한 어리석은 자들로 판명이 납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돌이킬 없는 길을 들어서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르티매오는 그러한 주님의 길을 함께 동행합니다. 

 

예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 소경은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나섰다. (마르 10:52 b)

 

그는 눈을 후에 곧바로 예수의 제자도를 따랐습니다. 그의 향후 기록이 없어 우리는 그가 어떠한 삶을 살다가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간절히 기다려왔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그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자신이 메시아의 정체를 폭로한 사실 조차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사역을 감당한 것이지요. 제자도의 길은 그러한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같지만 은연중에 하느님의 섭리가 그의 삶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끊임없이 우리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가끔 여러분은 갑자기 누군가가 생각이 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일이 있었을 겁니다. 제자도에 들어선 사람은 자신의 의지보다 하느님의 의지대로 기도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초월의 신호(sigmals of transcendence”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제자도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간섭하는하느님 나라 침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감수성과 영성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러한 예민성은 스치는 바람처럼 수시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 기도 그러한 울림이 있을 주로 드립니다. 갑자기 생각난 일이나,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러한 기도를 드립니다. 하느님의 보호와 은총이 사람들과 함께하길 빌면서. 

 

오늘 바르티매오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제자도를 따르는지를 보여줍니다. 끈질기며, 단순하고, 간결하고, 진솔한 기도. 그리고 겉옷을 벗어던지고 예수를 따르는 그의 헌신. 바르티매오가 집어던진 것은 단지겉옷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그동안 그의 삶을 붙들어왔던 편견과 가난과 고통과 죄책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남의 시선으로부터, 율법의 족쇄로부터 드디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를 붙들고 있던 모든 강박에서 일시에 풀려난 것입니다. 제자도는 그러한 것입니다. 이전에 나를 붙들고, 나를 설명하던 내러티브들을 과감히 겉옷을 던져버리듯 벗어버리고 바르티매오처럼 주님을 따라나서는 . 이것이 제자도에 요청되는추종의 입니다. 바르티매오는 고난 받는 예수와 함께 이제 새로운 자신의 내러티브를 쓰기 위해 자신의껍데기 벗어던지고 예수를 따라나섰습니다.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시인의 외침이 바르티매오의 외침과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바르티매오와 같은 기도와 제자도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연중30 (나해)

 

본기도

하느님, 주님은 이들을 보게 하시고 연약한 이들에게 힘을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진리에 뜨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라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욥기 42:1-6, 10-17

1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2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3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머리로는 헤아릴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5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6    그리하여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10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니, 야훼께서 욥의 소유를 회복시켜 주셨다. 야훼께서 욥의 소유를 전보다 배나 돌려주셨다. 11 그의 동생들과 누이들, 그의 친지들이 찾아와서 그의 집에서 함께 먹고 마셨다. 동안 야훼께서 욥에게 내린 재난이 얼마나 괴로웠느냐고 동정어린 말로 그를 위로하면서 저마다 돈을 주고 금반지를 끼워주었다.

12 야훼께서 욥의 여생에 전날보다 더한 복을 내려주셨다. 사천 마리,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 암나귀 마리에다 13 일곱 아들과 딸도 주셨다. 14 딸의 이름을 예미마(‘비둘기라는 ) 하고, 둘째 딸의 이름은 케지야(‘육계향이라는 ) 하고, 셋째 딸의 이름은 케렌 하뿌아(화장할 쓰는 작은 상자를 의미) 지어주었다. 15 세계에서 욥의 딸들만큼 아리따운 여자를 찾을 없었다. 욥은 딸들에게도 그들의 오빠에게 것과 같은 유산을 나누어주었다.

16 욥은 백사십 년을 살면서 사대손을 보았다. 17 욥은 이렇게 수를 누리고 늙어서 세상을 떠났다.

 

 

시편 34:1-8, [19-22]

1     어떤 일이 있어도
.     주님을 찬양하리라.
.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
.     입에서 그칠 날이 없으리라.
2    나의 자랑, 주님께 있으니
.     비천한 이들아, 듣고 기뻐하여라.
3    나와 함께, 높으시도다노래 부르자.
.     모두 소리 맞춰 이름 기리자.
4    주님 찾아 호소할 들어 주시고
.     몸서리쳐지는 곤경에서 건져주셨다.
5    그를 쳐다보는 , 얼굴 빛나고
.     부끄러운 당하지 아니하리라.
6    가엾은 이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     주께서 곤경에서 건져 주셨다.
7    주님의 천사가 그를 경외하는 자들 둘레에
.     진을 치고 그들을 구해 주셨다.
8    너희는 주님의 어지심을 맛들이고 깨달아라.
.     그에게 피신하는 자는 되다.
19  올바른 사람은 불행이 겹쳐도
.     주께서는 모든 곤경에서 그를 구해 주시고
20   마디도 부러지지 않도록
.     고이고이 지켜주신다.
21  악인들은 행실로써 죽음을 당하고
.     의인을 미워하는 멸망하리라.
22  주께서 당신 종의 목숨을 구하시니
.     그에게 피신하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히브 7:23-28

… 23 다른 사제들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어서 사람이 사제직을 계속해서 맡아볼 수가 없으니 결국 사제의 수효가 많아졌습니다. 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히 사시는 분이므로 그분의 사제직은 영구한 것입니다. 25 이렇게 예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자의 일을 하시니 당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해 주실 있으십니다.

26 우리에게는 이렇게 거룩하고 순결하고 흠도 죄도 없고 하늘보다 높으신 대사제가 필요합니다. 27 다른 대사제들은 날마다 먼저 자기들의 죄를 용서 받으려고 희생제물을 드리고 다음으로 백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날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속죄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일을 한번에 이루신 것입니다. 28 율법을 따라 대사제가 사람들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율법이 생긴 이후에 하느님의 맹세의 말씀을 따라 대사제가 되신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히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마르 10:46-52

46 예수와 제자들이 예리고에 들렀다가 다시 길을 떠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보는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예수라는 소리를 듣고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8 여러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그들이 소경을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하고 일러주자 50 소경은 겉옷을 벗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다가왔다. 51 예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선생님,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52가라. 믿음이 너를 살렸다.” 예수의 말씀이 떨어지자 소경은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