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수요 1분 묵상] 복음의 신비-마르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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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선/나의 시선들

2022. 1. 26.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준다. 그것은 그들이 ‘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마르 4:11-12

 

우리는 왜 전도를 못할까요? 복음적인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또 복음적인 메시지도 남에게 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르코복음이 쓰여지던 당시 마르코공동체 또한 이러한 심한 좌절에 빠진 것 같습니다. 주님의 때는 더디오고, 전도는 생각처럼 쉽지 않고, 핍박은 날로 늘어가고… 그때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마르코는 이를 ‘미스테리온(신비)’이란 말과 ‘파라볼레(비유)’라는 말을 써서 설명을 한 것입니다. 누구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누구는 거부하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인 거죠. 그러나 복음서를 묵상하다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복음을 가르치셨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복음처럼 살지 않고, 또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려움만 더 부각되는 것이지요. 우리 주님께서는 실제로 복음처럼 사셨고, 먹고 마시셨고, 말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니 ‘미스테리온’이나 ‘파라볼레’라는 신학적 용어로 우리의 게으름을 포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복음은 말과 행동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살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라고 자신 있게 복음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