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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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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설교문

2022. 4. 17.

2022.4.16. 토요일 부활 예식

구약 7가지 말씀 / 로마 6:3-11 / 시편 114 / 루가 24:1-12

 

부활의 증거’ (1)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안식일 다음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그 여자들은 준비해 두었던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들이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은 이미 굴러 나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주 예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루가 23:1-3)

 

사복음서는 동일하게 여인들이 예수의빈무덤 발견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부활에 대한 증언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부활 이야기들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부활에 대한 증언들을 간추려 있습니다. 증언들 이외의 것들은 초기 기독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덧붙여지고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러한 최초의 부활의 진술에 입각하여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해 살펴봤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는 대체로 사복음서가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 일치됐다는 점과 비교해서부활 대한 기록은 매우 상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보도도 때론 개인에게, 때론 명에게, 때론 제자 내부 그룹에게, 때론 거대한 무리들에게 나타났다고 보도됩니다. 증인들 못지않게 장소들도 다양합니다. 때론 집안에서, 때론 예루살렘 안에서, 때론 유대 마을에서, 때론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때론 갈릴리 등에서. 이러한 상이점들은 가지 관점에서 이해될 있습니다. 수난의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예루살렘이란 한정된 공간과 나흘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진행된 사건인 반해 부활 증언 이야기는 오랜동안 걸쳐 다양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교회의 다양한 필요에 의해 2차적인 손질이 가해졌기 때문에 진술의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원시기독교교회는 이러한 다양한 예수 부활 증언 이야기에 한정된 기간을 설정할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그것을 우리는부활절기라고 부릅니다. ,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일 아침부터 성령강림절까지의 50일의 기간입니다. 원시기독교공동체는 다양한 부활의 증언들을 이러한 시간적 한정 속에서 정리해 나갔습니다. 그것은 영지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외부적 요인과 교회 내부적으로도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고백의 일치를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였을 겁니다.

 

최초의 부활의 증언들은 아마도 매우 간단한 것들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어찌하여 네가 우느냐?”, “너는 누구를 찾느냐?”, “ 나를 핍박하느냐등입니다. 물론 부활하신 예수께서 증인들의 이름을 부른 것이 먼저이겠지요. “마리아야”, “요한의 아들 시몬아”, “사울아, 사울아등과 같이. 증인들을 부르시고 간단히 질문을 던지신 .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많은 종교적 체험 이야기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학적 형식일 겁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절대자를 만나는 인간의 경험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신과 인간의 만남 말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예수 부활 현현 체험은 예수의빈무덤 발견된 이후 급속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났을 개연성이 큽니다. 우리가 접하는 복음서의 진술들은 이러한 다양한 진술과 체험이야기들을 정리하여 기록한 것이지요. 

 

“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1 고린 15:4-8)

 

예수를 생전에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사도 바울로가 이를 기록할 당시에는 분명 부활의 증인들이 원시기독교공동체에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러한 증언들을 그들로부터 직접 전해 듣고 참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그가 예수 추종자들을 핍박하던 자로서 예수의 현현을 직접 체험했으니 또한 부활한 예수의 증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우리 교회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철저히부활의 증인들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부활의 증인들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아니라 매우 한정된 사람들에게 국한됐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믿을지 말지를 말입니다. 이는 부활에 대한 신앙의 고백과는 별개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문제입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도 저도 우리 모두는 부활한 예수의 현현을 직접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아주 드문 경우 예수에 대한 환상을 직접 체험하시는 분들도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활한 예수에 대한 증거와는 별개로, 개인적인 신앙 체험입니다. 우리 기독교 믿음의 시작이 되는부활 대한 근거가 실제적인 증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부활의 증인들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이 가진 역설이면서도 신비입니다. , 우리는 부활에 대한 어떠한 실제적 증거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증언한 사람들이 존재했고 우리는 그들의 진술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부활 신앙의 실제입니다. 그래서부활의 증인들 우리는사도(apostle)’라고 부릅니다. 사도는 헬라어아포스톨로스 ἀπόστολος’에서 유래된 말로보내심을 받은 뜻합니다. 예수 부활의 증언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부활과 관련된 우리 신앙의 가지 증거들을 발견합니다. 

빈무덤사도들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도 빈무덤 대해서는 반박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까지 우리는 지구 상에서 2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청년의 유골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떨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러한 것이 발견된들 그것과 우리의 예수님을 연관시키는 시도는 아마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빈무덤 발견한 여인들의 증언, 그들의 증언을 믿습니다. 성서에 여인들을사도 칭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최초로 부활을 증언한 사도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수제자들인 12 사도들의 증언을 우리는 믿습니다. 물론 늦둥이 사도인 바울로의 증언 또한 우리는 믿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와 똑같이 같이 연약한 사람들의 증언을 믿습니다. 증언들이 다른 어떤 실제적 증거보다 진실하고 진리이며 사실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증언은 그들의 핏값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부활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직접 느끼고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전해준사도들의 증언 믿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러한 사도들의 증언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부활의 증거를 이렇게부활의 증인사도들에게서 찾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을 신앙적 미신이나 현상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성적 잣대로 부활의 신앙을 폄훼하거나 곡해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부활의 진술의 신빙성 위에 있기에 확고부동한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성령 또한 증언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기 이렇게 모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40일간의 사순절의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뚫고 여기 이렇게 모인 우리들. 우리는 간절함 만큼이나 , 주님의 부활을 간절히 희망합니다. 교회 내에 예수님의 상징이 모두 사라졌던 지난 성주간 동안 성당 안은 어둡고 침울했고 쓸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상징들과 예배, 찬양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랑으로 성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부활을 소망하는 분들과 이렇게 함께 있으니 정말 행복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쁨을 주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서로 부활의 인사를 나눕시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전례독서: 토요일 부활밤 (다해)

 

본기도

하느님, 거룩한 밤을 주님의 부활의 영광으로 빛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교회에 부활의 은총을 내리시어, 세례성사로써 주님의 자녀가 이들의 마음을 북돋아주시고, 우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성실하고 진실하게 주님을 경배하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서신 독서_ 로마 6:3-11

3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4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것입니다. 5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것입니다. 6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죄에 물든 육체는 죽어버리고 이제는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 니다. 7 이미 죽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9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성시_ 시편 114

1    알렐루야!
.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     야곱의 집안이 야만족을 떠나올
2    유다는 그의 성소가 되고
.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치고
.     요르단 강은 뒤로 물러섰으며
4    산들은 염소처럼 뛰놀았고
.     언덕은 양처럼 뛰었다.
5    바다야! 어찌하여 도망치느냐?
.     요르단아! 어찌하여 물러서느냐?
6    산들아, 어찌하여 너희가 염소처럼 뛰며
.     언덕들아, 어찌하여 양처럼 뛰느냐?
7    땅이여, 너는 주인 앞에서 
.     야곱의 하느님 앞에서 떨어라.
8    그분은 바위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     바위로 하여금 샘이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복음서_ 루가 24:1-12

1 안식일 다음날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여자들은 준비해 두었던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2 그들이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은 이미 굴러 나와 있었다. 3 그래서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예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4 그들은 어찌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바로 때에 눈부신 옷을 입은 사람이 그들 곁에 나타났다. 5 여자들은 그만 겁에 질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여자들에게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전에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무어라고 말씀하셨느냐? 7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말해 주었다. 8 말을 듣고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9 무덤에서 발길을 돌려 열한 제자와 밖의 여러 사람들에게 와서  

모든 일을 알려주었다. 10 여자들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다른 여자들도 그들과 함께 모든 일을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11 그러나 사도들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부질없는 헛소리려니 하고 믿지 않았다. 12 그러나 베드로는 벌떡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몸을 굽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수의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는 어떻게 일인가 하고 이상히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