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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 부활의 소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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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설교문

2022. 4. 23.

 

2022.4.24. 부활2주일

사도 5:27-32 / 118:14-29 / 묵시 1:4-8 / 요한 20:19-31

 

문이 잠겨 있었는데도

부활의 소명 (3)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교회, Artist

 

“계시는 이성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폴 틸리히

 

부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신자들에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그냥 믿지요.”라고 대답하십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것뿐인데 그것이 쉽게 믿어지다니요. 물론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은총으로 그러한 믿음이 생기셔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부활 쉽게 믿어지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당신이 부활을 믿으신다면부활의 능력대로 살고 계신가요? 부활의 믿음과 부활의 믿음을 살아내는 것은 과연 차이가 있나요? 부활을 믿는 신자들이 많은데 여전히 우리 교회들은부활의 잃어가고 있을까요? 이를 어떻게 우리는 이해해야 할까요? 부활을 믿는 신자들이 많은데 정작 교회는부활의 잃고 모양이 걸까요? 만약 교회가 부활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면 결국 그것은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닐까요? 아니면 믿음대로 살지 않은 우리의 잘못일까요?

 

이제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부활을 믿으신다면 부활의 실재또한 믿으시나요? 아니면 부활의 증언 또는 케리그마를 믿으시나요? 어려운 질문인가요? 물론 신학적 물음입니다. 그냥 믿으면 되지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워하시면 말은 없지만, 이성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믿음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를 안다면성서, 이성, 전통 자랑하는 우리 성공회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물어야 것입니다. ‘부활의 실재 믿는다는 것은예수 현현 실제로 우리 마음이나 생각이 아니라 우리 밖에서 일어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실재를 보았든, 환영을 보았든, 꿈을 꿨던 이는 물리적으로, 실제적으로부활의 사실 또는 부활의 현상 믿는 것입니다. ‘부활의 케리그마 믿는다는 것은 부활을 통해 선포된 내용 또는 증언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이성과 마음에 의존한 것으로 우리 안에서 동의된 믿음입니다. 둘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요한복음에만 기록된토마의 의심 이야기 우리에게 믿음에 차이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처음에 예수의 빈무덤을 막달라 마리아가목격했다고 요한복음은 진술합니다. 후에베드로와 다른 제자 무덤으로 달려가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다음 처음으로 다시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의 현현을 목격하고 제자들에게 사실을 알립니다. 소식을 듣고 제자들은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소식이 그들에게 기쁨보다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제자들과 마리아 사이에 놓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마리아는부활의 실재 말한 것이고, 제자들은 마리아의부활의 증언 들은 것이지요. ‘부활의 실재 목격하거나 경험한 것은 사실 여부를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환상을 봤을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고, 너무나 개인적이라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할 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 입장에서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녀가 실재는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의심하고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실제로나타났다고 요한복음은 기록합니다. 번째 주님의 현현입니다. 

 

번째 현현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을 주님께서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번째 부활의 증언인 마리아의 증언에는 의심과 두려움을 가졌지만, 이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실제로나타나시니 그들은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라고 합니다. 실재와 케리그마 사이에 이렇게 간극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마침 제자 토마는 부재중이었나 봅니다. 그는부활의 케리그마에도, 부활의 실재 현현에서도 소외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주님을 봤다고증언 했지만, 도저히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건을 답니다. “나는 눈으로그분의 자국을 보고, 손으로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는부활의 케리그마보다부활의 실재 보길 원했습니다. ‘부활의 실재부활의 증언에서 모두 소외된 토마로서는 아마도 가장 합리적인 요청이 아닐 없습니다. 또다시모든 문이 잠겨 있는상태에서 주님께서 토마에게도 현현하십니다.  그리고 토마의 요청대로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토마가실제로 상처에 손을 대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화가 카라바지오가 그린 그림에서는 토마가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보는 장면이 너무 리얼하게 표현됐지만, 실제로 성서는 이에 대해 침묵합니다. 아마도 문맥상 토마는 감히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대지 못했을 겁니다. 이는 다음에 나오는 그의 고백을 보면 쉽게 추측할 있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요한 20:28)

 

이는 토마가 고백한 요한복음 그리스도론의 핵심 진술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를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으로 여겼던 제자들은 이제 자신의 스승인 예수가, 부활한 예수가 그들의주님이시고 그들의하느님이심을 고백하게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예수와 부활한 예수 간에 불연속성을 제거하는 엄청난 고백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정확히 토마의 고백이면서도 동시에 원시기독교공동체의 고백이기도 것입니다. 아마도 토마는부활의 실재앞에서 감히 그분의 상처에 손을 엄두도 냈을 겁니다. 그의 눈앞에 계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원시기독교공동체가 부활의 신앙을 통해 다다른 그들의 결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교회의 주님이시고, “교회의 하느님이십니다.

 

처음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부활이 목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순서는 처음은 막달라 마리아이고, 그다음이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순서로 목격이 되었는지는 우리는 확인할 없습니다. 단지 성서의 기록대로 우리는 뿐입니다. (부활의 현현을 보도한 복음서들은 모두 하나같이 구약의 하느님 현현 사건이나묵시문학적 환상의 유형 모티브로 차용합니다. 문학적 장치로 보면 틀은 명확합니다. 처음에정체 알림 있고, 그다음에위탁 또는 약속' 있으며, 마지막에는사라짐 있습니다. 부활 현현 전승들은 스테반이 그리스도의 환상을 것처럼,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신령한 예수님의 광채를 체험했던 것처럼묵시문학적 현현 기록 일치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활의 현현을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간극이 존재했을 것이고, 부활의 목격담은 기쁨과 함께 공동체 내에서 혼란 또한 야기시켰을 겁니다. 현대 교회에서도 신의 현현 체험 또는 기적 체험을 사람들 때문에 교회 내에 경이로움이 더해지지만 논란 또한 발생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토마는 대다수의 무경험 신자들의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부활의 현현을 체험하지도, 그들의 부활의 케리그마도 믿지 않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도 부활의 케리그마에서 소외되어서는 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기쁨은 모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실재와 케리그마 사이의 커다란 심연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아마도 원시기독교공동체나 지금 현대 교회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믿는 자는 믿고, 믿지 않는 자는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또는 믿는 사람들의 경우도, 어떤 사람은부활의 실재 믿고, 어떤 사람은부활의 케리그마 믿습니다. 누구는 부활의 상징을 믿고 누구는 부활의 능력을 믿습니다. 부활의 케리그마가 지닌해방의 능력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별문제를 느끼는 분들도 많은 법입니다. 이것이 부활절기를 보내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지점에 다다릅니다. 우리의 부활 신앙이 어디에서 출발하든 시작은 우리가 아니라 결국에는성령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은 제자들이 예수 현현을 목격한 부분에 집중되어 그분의나타나심 대한 강조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적지만, 대부분의 복음서들은 주님의나타나심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동형 동사 형태가 이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 편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편에서 인간의 실존으로돌파되는 사건이라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것도 먼저 주님이십니다. 절망과 슬픔에 빠진 마리아에게 주님께서 먼저 부활을 알려주셨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의심 때문에문이 잠겨 있었는데도제자들에게 나타난 것도 주님이십니다. “문이 잠겨 있었는데도라는 말은 단순히 실제 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것은 의심과 불신앙과 두려움 그리고 무관심으로 닫혀있는 우리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짧은 이성과 편견 그리고 우리의 체험의 한계에 갇힌 우리 자아의 문이기도 합니다. 모든 닫힌 것은돌파되기 전에는 가운데로 나올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모든 편견과 불신앙과 우리의 무지를돌파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것은 초월이 내재로돌파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이것은 인간의 실존 안에서만 이해되는 우리의 믿음이라 있습니다. 사건의 실재는 결코 우리의 믿음이나 신학적 연구의 전제가 없습니다. 실재는 우리의 이성과 이해를 통해상징화되는 과정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적 상징에는 역사적 사실이 어느 정도 포함된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일은 가지입니다. 첫째는평화 전하신 것이고, 번째는소명 주신 것이며, 번째는성령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부활 메시지입니다. 부활의 내용, 부활의 케리그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실제로 보고 믿든, 보고 믿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본다는 것은 처음에는 예수 부활의 증언에 신빙성을 더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활 사건은 자연스럽게케리그마 전해지게 마련입니다. ‘부활의 메시지평화, 소명, 성령으로 요약됩니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감을 잡을 있습니다. 핵심은소명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으신 분으로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주셨던 소명 부활을 통해 교회에게 주어집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은 교회의 소명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사건입니다. 이제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신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교회를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목적은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 평화는 하느님과 인간이 화해하는 평화이며, 사람과 사람이 서로 화목하는 것이고, 미움과 질시, 갈등을 무너뜨리는 평화입니다. 초월과 내재가 부활의 메시지 속에서 하나가 됩니다. 이러한 소명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절기는 자연스럽게성령강림절 이어집니다. 틸리히의 말처럼 초월의 하느님과 성육신의 로고스가 모두성령으로 연합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이 결국 하나임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활의 능력이 하느님의 능력임을 인지하면서 능력대로 살아낼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소명이고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 개인의 소명입니다. 최소한 우리가 부활을 믿는 신자라면 이런 소명에 대한 뜨거운 결기가 보여야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생각과 믿음 안에 숨어있는수줍고 소극적인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모든 두려움과 의심과 편견을 깨는 실제적인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부활의 소명을 받은 자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입에서만 맴도는 옹알이가 되어서는 됩니다. 그래서는 부활의 능력대로 결코 없습니다. 부활을 살아내는 . 그것을 우리 일상 가운데 표현하고 살아내는 . 주님이 오실 그때까지. 우리는 그런 소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메시지를 전할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평화 외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부활2 (다해)

 

본기도

살아계신 하느님,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놓고 우리를 기다리시나이다. 구하오니, 우리를 이끄시어 모든 의심의 벽을 넘어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흘리신 주님의 상처를 보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사도 5:27-32

27 그들이 사도들을 의회에 데려다 세워놓자 대사제가 이렇게 심문하였다. 28예수의 이름으로는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는데도 당신들은 어쩌자고 예루살렘에다 당신네 교를 퍼뜨리는 거요? 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울 작정이오?” 29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지도자와 구세주로 세워 당신의 오른편에 높이 올리셔서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성시_ 시편 118:14-29

14  주님은 나의 나의 노래
.     나의 구원이시다.
15  의로운 사람들의 집집에서
.     터져 나오는 승리의 함성
16  주님의 오른손이 번쩍 들렸다.
.     주님의 오른손이 힘을 떨치셨다.
17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     주께서 하신 일을 널리 선포하리라.
18  주께서는 나를 벌하시고 벌하셨지만
.     그러나 죽게 버려두지는 아니하셨다.
19  정의의 문을 열어라.
.     내가 들어가 주님께 감사기도 드리리라.
20  이것이 주님의 문이니,
.     의인들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21  나의 기도 들으시고 나를 구해 주셨으니
.     주님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22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우리 눈에는 놀라운 ,
.     주께서 하신 일이다.
24   날은 주께서 내신 ,
.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25  주소서, 주여, 구원을 주소서.
.     주소서, 주여, 승리를 주소서.
26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     찬미 받으소서.
.     우리가 주님의 집에서 당신을 축하하리라.
27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신다.
.     나뭇가지 손에 들고, 줄줄이 제단 돌며 춤을 추어라.
28  당신은 나의 하느님이시오니,
.     당신께 감사기도 드립니다.
.     당신은 나의 하느님이시오니,
.     당신을 기리옵니다.
29  주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는 어지시다.
.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묵시 1:4-8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그분과 그분의 옥좌 앞에 있는 일곱 영신께서, 5 그리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며, 위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6 우리로 하여금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당신의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서 영광과 권세를 영원 무궁토록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7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다니 7:13
.    
모든 눈이 그를 것이며
.    
그분을 찌른 자들도 것입니다.
.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    
가슴을 것입니다. 즈가 12:10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8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_ 요한 20:19-31

19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0 그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21 예수께서 다시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하고 말씀하셨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나는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어보고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안에 모여 있었는데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7 그리고 토마에게 손가락으로 손을 만져보아라.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28 토마가 예수께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수없이 행하셨다. 31 책을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