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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너머의 교회”- 부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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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설교문

2022. 5. 14.

2022.5.15. 부활5주일

사도 11:1-18 / 시편 148 / 묵시 21:1-6 / 요한 13:31-35

 

 

종교 너머의 교회”- 부활(6)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교회 , Artist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묵시 21:3-4)

 

오늘 2 독서의 말씀은 종말론적인 언급이지만, 이는 부활의 완성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제 하느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고, 영광이 사람 가운데 거하신다는 선포입니다.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이 유한한 존재인 인간과 함께 동거하신다는 선포. 말씀을 출애굽기 19장의 말씀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말씀이 가진 급진적인 생각을 읽을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시나이산에 임하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셋째 날 야훼는 온 백성이 보는 가운데 이 시나이 산에 내리리라. 너는(모세) 이 산기슭을 돌아가며 표를 해놓고, 아무도 이 산에 오르거나 이 산기슭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하며 이 산에 발을 들여놓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일러주어라.” (출애 19:11-12)

 

요한계시록에서 언급된하느님의 영광출애굽기 언급된하느님의 영광 모두 동일한영광입니다. 초월자의 영광 말입니다. 그러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고 출애굽기는 말합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야훼 하느님은 오직 모세와만인격적인 관계 가집니다. 이스라엘 백성과의 인격적 관계는 이후에십계명 통해서 설정됩니다. 쉽게 말해십계명 지키면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간에나와 라는 인격적 관계가 성립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간에는 정확하게십계명만큼의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아담 간에선악과만큼의 거리가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말은 아직 하느님과 사람 간에 완전한 인격적, 사랑의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 과도기적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방금 읽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보십시오. 하느님의 영광이 사람들과 함께하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이상 죽음도 눈물도 고통도 없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만남의 제약도 없습니다. 조건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이 인간과 항상 함께하십니다. 하느님과 인간 간에 완전한인격적 관계 완성된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거리감은 오직 사랑을 위한, 대화를 위한거리뿐입니다. 대화는 의해 가능하고, 하느님의 말씀이신로고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인간이 응답할 있는 거리. 그것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의 사귐입니다. 이는 히브리 성서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없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인격적 만남은 바로 부활을 통해 시작된 것입니다. 부활은 모든 비인격적인 관계를인격적인 관계 회복시키는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이전에 있었던 모든비인격적인 것들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곳에는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인류의 염원이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느님의 영광은 반드시성자의 들림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는 영광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영광은 성자 하느님이 철저히 사망의 권세 아래 놓여야만 얻어지는 영광입니다. 성자 하느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고, 하느님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고별담화 하시면서 미래형을 사용하여영광스럽게 하실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확신이 있으셨기에십자가의 고난 감내하실 있으셨을 것입니다. 존재가 완전히비인격적으로 되는 순간. 고통의 순간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순간이란 역설이 오늘고별담화 담긴 신비입니다. 이러한 신비를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 이전에는 전혀 깨달을 없었습니다. 부활은 고난과 고통 없이는 이루어질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일관되게 표현되는예수의 들림 대한 언급은 모두 그분의 영광과 관련된 말들입니다. ‘십자가로 인한 들림’(십자가 고난), ‘죽음으로부터의 들림’(부활), ‘성부께로 되돌아가심으로써의 들림’(승천). 요한은 성자 하느님의 영광을 이러한들림으로 표현합니다. 그러한들림으로 하느님과 예수 간에 서로를 영화롭게 하는 영광의 인격적(위격적)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에서 사용하는위격,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 말은 우리말로인격으로도 번역될 있는 단어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요한 13:32)

 

사람의 아들의 들림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으니, 이제 부활로 말미암아 아들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부와 성자께서 위격 안에서 하나의 영광으로 상호 소통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우시아(οὐσία)이지만, 성부와 성자는 상호 영광으로 서로의 위격이 구분됩니다. 이로써 삼위일체 신학의 기본 틀이 갖춰집니다. 그분의 들림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오심이 가능하기에 성부, 성자, 성령의삼위일체관계가 성립됩니다. 관계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계명 근거합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과거 시나이산의십계명으로 시작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아닌사랑의 계명으로 새롭게 설정된 관계입니다. 이것이 부활을 경험한 원시기독교공동체가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 사건을 신학적으로 풀어간 과정입니다. 여기에서 원시기독교공동체는 과거 유대교와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이 아닌사랑의 율법으로 결성된 공동체로 말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사랑의 실천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사랑 요한복음의 중심 사상이면서 요한복음공동체의 근본이 되는계명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우리가 세례를 받고 견진을 받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은 우리가 헌금을 드리고 교회에 봉사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사랑 실천할 때입니다. ‘사랑 모든 율법과 교리와 신학보다 앞섭니다. 부활 절기에 우리가 이러한사랑의 계명 대한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은 부활의 증인은 거룩함의 담지자이고, ‘거룩함의 담지자 하느님의 거룩함을 내적으로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임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막연히 개인적 느낌이나 믿음 또는 체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고 부활을 살아내는 것은 우리가 부활의 능력인사랑 실천할 때뿐입니다. 그래서 모든인격적 관계 회복되는 곳에는 사랑이 모든 관계의 중심이 되고, ‘윤리적인 실천의 요구 우리의 자유의지의결단 요청됩니다. 결단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자유 의지이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를 틸리히는궁극적 결단이라 부릅니다. ‘궁극적이라 함은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속에서 가져야 최고의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어떠한 결단보다 우선하는윤리적 결단이며실천에 대한 결단입니다. 결단을 해야 인간은 행동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 형제와 다투고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님의 무덤을 바위로 봉인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지 예수를 십자가로 끌고 사람들이 이제는 아닙니다. 과거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이상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십시오.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곁에 계신 분들을 높여주시고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이 나음을 인정하십시오. 서로 용서하시고 서로를 품어주십시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외면하지 마시고 도움과 사랑을 베푸십시오.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를 낮추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아들이 순종함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 아버지가 다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 것처럼, 여러분의 순종으로 주님께서는 오히려 여러분을 높여주실 겁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용납하십시오. 하느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셨으니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것이 부활이 가진 힘이고, 부활의 자비이며, 부활로 말미암아 회복되는 하느님과 우리, 나와 우리 공동체 간에인격적 관계 시발점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 일찍이 유다인들에게 말한 대로 이제 너희에게도 말하거니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요한 13:33)

 

이제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와  남겨진 예수 공동체 간에는 또다시 적정한 거리가 설정됩니다. 거리는 오직성령으로 연결된 거리입니다. 그래서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은 신학적으로 하나의 사건입니다. 이것이 부활로부터 시작된교회 시작이고, 부활-승천-성령강림이라는 일련의 사건에 대해 교회가 교인들과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변증 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성서신학자이고 천주교 사제였으나, 급진적인 교회 비판으로 파문을 당한알프레드 르와지(Alfred Firmin Loisy, 1857~1940)’ 이를 비판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가르쳤지만, 땅에 생겨난 것은 교회였다라고. 의미심장하고, 교회로서는 귀담아 들어야 예언자적 충고입니다. 저는 말을 우리 교회가 종교라는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결국 박제된 종교가 된다는 경고로 여깁니다. 말은 정체된 종교에서종교 너머의 교회 나아가라는 말로 들립니다. “종교 이상의 교회말입니다. 종교가 가진 사회적 역할과 기능, 그리고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지상의 명령을 실천하는 교회. 그것이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계명 근거한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대로 순종하는지를 알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그러할 우리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넘어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역동적인 운동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땅에서 주님 오시는 날까지 펼치는 살아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과 전혀 상관없는 종교 안에 갇힌 신앙인이 것입니다. 넓고, 진지하게 자신을 넘어서고, 자신의 가족을 넘어서며, 우리 이웃과 사회에까지 우리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 제주교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러할 세상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인정할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도 그러하실 겁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고,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며,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아멘.

 


 

 

부활5 (다해)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찬양하나이다.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하느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사도 11:1-18

1 사도들과 유다에 있던 신도들은 이방인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를 주장하는 파에서 그를 비난하며 3 당신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었습니까?” 하고 따졌다. 4 베드로는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5내가 요빠 시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무아지경에서 신비로운 영상을 보았는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귀퉁이에 끈이 달려서 내려오다가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6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땅에 있는 가진 짐승과 산짐승과 길짐승과 하늘의 날짐승이 있었습니다. 7 그리고베드로야, 어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8 그래서 내가절대로 됩니다, 주님.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번도 입에 대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말했더니 9 하늘에서 다시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0 이런 말이 번이나 오고 뒤에 그것들은 모두 다시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가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사람 셋이 내가 머물러 있던 집에 찾아왔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망설이지 말고 그들을 따라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기 있는 신도 여섯 사람과 함께 그들을 따라가서 고르넬리오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13 그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보니까 천사가 자기 집에 나타나더니요빠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는 시몬을 불러오너라. 14 그가 너와 집안이 구원받을 말씀을 해줄 것이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15 내가 말을 시작하자 성령이 처음에 우리에게 내려 오셨던 것과 같이 그들 위에도 내려오셨습니다. 16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여러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시는 일을 막을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이제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회개하고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성시_ 시편 148

1    알렐루야!
.     하늘에서 주님을
.     찬양하여라.
.     높은 데서 찬양하여라.
2    그의 천사들 모두 찬양하여라.
.     그의 군대를 모두 찬양하여라.
3    해와 달아 찬양하고
.     반짝이는 별들아, 모두 찬양하여라.
4    하늘 위의 하늘들,
.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 찬양하여라.
5    주님의 명령으로 생겨났으니,
.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
6    지정해 주신 자리, 길이 지키어라.
.     내리신 법은 어기지 못한다.
7    땅에서도 주님을 찬양하여라.
.     물고기도 깊은 바다도,
8    번개와 우박, 눈과 안개도,
.     당신 말씀대로 몰아치는 된바람도,
9     저산 모든 언덕도,
.     과일나무와 모든 송백도,
10  들짐승들과 가축들도
.     기는 짐승과 나는 새들도,
11  세상 임금들과 모든 추장들도
.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도
12  총각 처녀 없이
.     늙은이 어린이 모두 함께
13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     홀로 한없이 높으시고
.     하늘 위에 위엄 떨치신다.
14  당신 백성의 영광을 드높여 주셔서,
.     당신을 가까이 모신 백성,
.     이스라엘 후손들,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묵시 21:1-6

1 뒤에 나는 하늘과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 나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나는 옥좌로부터 울려 나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5 옥좌에 앉으신 분이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하고 말씀하신 다시금기록하여라, 말은 확실하고 참된 말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6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루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생명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묵시 21:3 – 레위 26:11-12; 2역대 6:18; 에제 37:27; 즈가 2:10.
묵시 21:4 – 이사 25:8.

 

 

복음서_ 요한 13:31-35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었고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아니, 이제 주실 것이다. 33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 일찍이 유다인들에게 말한 대로 이제 너희에게도 말하거니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없다. 

 

34 나는 너희에게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제자라는 것을 알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