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야고보의 창문

초월 transcendence과 내재 immanence, 성 sacred과 속 profane, 그 경계에 창문 하나 달기...

“승천 : 부활 신앙의 고양 (高揚)” - 승천대축일

댓글 0

글모음/설교문

2022. 5. 28.

2022.5.29. 승천대축일(부활7주일)

사도 1:1-11 또는 다니 7:9-14 / 시편 47 도는 93 / 에페 1:15-23 또는 사도 1:1-11 / 루가 24:44-53

 

승천 : 부활 신앙의 고양 (高揚)”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사제, Artist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루가 24:51)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사도 1: 10-11)

 

 

원시기독교공동체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현현사건, 그리고 성령강림사건을 연속해서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복음서를 통해 기록된 이야기를 접하고 있어 사건들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가 무척 어렵습니다그들의 기록도 사건들이 발생한 50~70 후에 기록된 것들이라 1차적 자료가 아닙니다. 분명 초기 예수의 제자들도 우리처럼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처음 경험하는 신비한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의문들과 질문들, 그들은 유대교와 원시기독교공동체 안팎으로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을 겁니다. 하느님 나라의 운동으로 시작된 예수운동이 갑자기 십자가 사건으로 종결되면서 맞이했던 이러한 혼란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께서는 정치범들을 처형시키는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가?”, “ 무덤과 부활 현현은 과연 착각인가 환상인가 아니면 실재인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혼란과 도전 가운데 당시 유대 사회에 만연했던 메시아에 대한 종말론적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원시기독교공동체는 더욱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그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신앙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꼈고, 나름 그들의 경험과 신앙을 다양한 도전들로부터 변증을 해야만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오해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한 혼란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지탱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찾게 것은, 이미 우리가 살펴본 바대로, ‘부활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한 부활 신앙 속에서 교회는 서서히 역사라는 시간 속에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부활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냐 아니냐?라는 질문보다, 부활 사건이 주는의미 중요했습니다. 부활 신앙의 관점에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되돌아봐야 했고, 성령강림사건을 유추해 보야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경험한 모든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열쇠는 오직부활의 신앙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부활의 증인사도 확립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부활의 증인으로서, ‘거룩함의 담지자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신앙의 관점에서 공동체 안에 녹여낸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와 주님의 재림.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먼저 임하셨으니, 그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재림도 곧바로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이 깨달은 가장 중요한 부활의 의미는 부활이 지닌희망의 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로 절망에 빠졌던 제자들은 부활로 인해 재림에 대한 희망도 노래할 있게 됐습니다. 물론 유대교는 자신들의 메시아의 오심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이 따르던 예수가 바로 메시아임을 부활 사건을 통해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유대인들처럼 종말이 줄로 믿었습니다. 증표로 오순절에 모든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으니, 그들은 더욱 종말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전재산을 공동체를 위해 봉헌하기도 했습니다. 종말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루가는 예수의 승천 이야기를 루가복음 마지막 장에, 그리고 사도행전 장에 기록을 했습니다. 루가복음의 기록은 예수의떠나심 제자들이 예수를경배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반면 사도행전의 기록은 예수의 승천이야기를 소명사화와 성령임재예언과 연결시키고, 재림의 희망까지 그것을 연장시킵니다. 루가복음의 기록보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조금 구체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루가는 루가복음에서 승천이야기를부활소명사화뒤에 배치시키며예수의 부재, 예수의 떠남 강조함으로써예수의 시대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교회의 시대 막을 열면서 이야기를 교회의 소명과 재림에 대한 희망으로 시작합니다. 정리해보면 하나는예수 시기 마무리로, 다른 하나는교회 시기 시작으로 각각 활용한 것이지요. 루가는 승천사건을 부활과 연결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루가의 역사가적인 관점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루가는예언자의 시대’, ‘예수의 시대’, ‘교회의 시대 구분하며교회의 시대바로 전에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세세하게 기록합니다. 그가 재림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은 철저히 부활에 의해 시작된 재림에 대한 희망을 현실적으로 더욱 구체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구약에 언급한 대로 반드시 세상을 심판할 메시아의 도래를 염두에 뒀습니다. 

 

그러나 루가는 다시 오실 예수께서심판주이시기보다는구원자 오시는 분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종말은 세상 끝까지 복음이 증거 도래하는 재림입니다. 그것은 유대교의 메시아사상과 완전한 결별을 의미합니다. 루가는 철저히 예수 운동을구속사적으로 이해한 복음사가입니다. 그러므로승천사건 실제적인 사건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루가의 의도대로 그것은 철저히 부활의 희망을 궁극적인 지점까지고양(高揚)’시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루가는승천 대한 모티브를 구약의엘리야의 승천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루가는 부활의 신앙을 이제고양(高揚) 신앙으로 한껏 끌어올리고,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교회의 시대 염두에 것입니다. 루가가 표현한 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교회에 오신다는 메시지. 이것이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 그리고 재림으로 이어지는 루가의 종말관입니다. 종말사관의 핵심은 바로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대한 희망입니다.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 그리고 재림은 결국 하나의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통해 시작된 하느님의 구속사의 시작은 승천으로 보증이 되고, 성령강림으로 확증이 되며, 재림으로 종결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연속은 우리에게 어떻게 성육신하신 예수님의인성 점증적으로신성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사형이 집행된 십자가에서부터 영광의 보좌까지 어떻게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왕이시고, 세상의 통치자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심을승천 신앙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신앙이고,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승천-성령강림-재림에 대해 이야기할 요점을 정확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냐 아니냐?라는 논란에 휩싸이면 복음서를 그리고 우리 교회의 고백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것은 부활에 대한 신앙이고, 핵심은하느님의 구속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가 핵심입니다. 하느님의 구속의 행위에 초점이 맞춰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 그리고 재림에 대한 확실한 사실적 증거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철저히 우리 신앙의 실재를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 그리고 재림에 대해 세상을 향해 증거를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부활의 희망대로, 예수의 부활의 증인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살아낼 때뿐입니다. 부활의 희망이 없는 듯한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국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말할 뿐입니다. 부활이 가진 힘을 모르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은 모든 비인격적인 관계들을 인격적 관계로 변화시킵니다. 모든 것이 비인격화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부활의 신앙은 깨닫게 합니다. 승천은 이러한 부활신앙이 지닌 희망을 우리 안에 내면적으로 더욱고양(高揚)’시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러한 희망으로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기다린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부활로 시작된 하느님의 구속사를 재림으로 마무리하는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희망을 결코 버릴 없습니다.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무슨 말로 희망을 말할 있겠습니까? 절망에 빠진 친구에게, 슬픔에 빠진 이웃에게, 낙심과 좌절로 휘청대는 젊은 이들을 향해 우리는 무슨 말로 그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있겠습니까? 주택문제, 취업문제, 결혼문제, 양육문제등등.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고 추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슬픈 존재들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부활도, 승천도, 성령강림도, 재림도 단순히 종교 안에 갖힌 일련의 교리일 뿐이고, 신학적인 진술에 머물 뿐입니다. 부활의 희망을 살아내는 것은 신앙의 실존에서 매우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살리고, 절망에 빠진 자에게 생명에 대한 희망, 삶에 대한 찬미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 재림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부활이 없는 절망의 골고타를 오르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희망이 희망 고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부활의 신앙을 최대한으로 고양(高揚)시킬승천 대한 신앙 또한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요한 16:7)

 

승천 우리부활의 신앙 우리 안에 고양(高揚)시키고, 성령에 대한 약속을 확증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신 하느님으로 예배할 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지 않으셨다면 성령께서 오실 없으셨을 겁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기어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요한 14:18) 

 

주님께서는 승천하시어 초월 속으로 들어가 우리와 이상 인격적 관계를 갖지 않는 박제된 신이 되신 것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승천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성령을 내려주시고 지속적인 보살피심을 약속하셨습니다. 희망은 우리가 성령과 함께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포기할 없는 희망입니다. 이러한 희망이 승천의 은총 가운데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승천대축일 1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어 영광을 받으셨나이다. 간절히 비오니, 그리스도의 승천을 믿는 우리가 비록 육신은 땅에 있으나 하늘나라의 기쁨과 소망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사도 1:1-11

1 책을 데오필로님께 드린다. 나는 먼젓번 책에서 예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치심을 기록하였다. 2 예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신 다음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시초에서부터 낱낱이 기록하였다. 3 예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써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4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신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것이다.”

6 ¶ 사도들은 같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것이다.” 9 예수께서는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 10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11 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성시_ 시편 47

1    너희 만백성아, 손뼉을 쳐라,
.     기쁜 소리 드높여
.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2    주님은 지존하시고 지엄하시다.
.      누리의 크신 임금이시다.
3    우리 앞에 만민을 무릎 꿇리시고
.      민족을 우리 발아래 두셨다.
4    당신의 사랑, 야곱의 자랑거리,
.      땅을 우리에게 손수 골라 주셨다.
5    환호 소리 높은 중에
.     하느님 옥좌에 오르신다.
.     나팔 소리 나는 중에 주님 올라가신다.
6    찬미하여라 하느님을,
.     거룩한 시로 찬미하여라.
.     찬양하여라 우리 왕을,
.     거룩한 시로 찬양하여라.
7    하느님은 땅의 임금이시니,
.     멋진 가락에 맞추어 찬양하여라.
8    하느님은 만방의 ,
.     거룩한 옥좌에 앉으셨다.
9    세상의 통치자들을 손에 잡고 계신
.     끝없이 높으신 우리 하느님,
.     아브라함의 하느님께 나라의 영수들이
.      백성과 더불어 모여 든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에페 1:15-23

15 나는 여러분이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16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17 나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것인지를 알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9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시편 110:1) 21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시편 8:6).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복음서_ 루가 24:44-53

44 그리고 그들에게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45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46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47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48 너희는 모든 일의 증인이다. 49 나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하고 말씀하셨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아 근처로 데리고 나가셔서 손을 들어 축복해 주셨다. 51 이렇게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엎드려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53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