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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관계성으로서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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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설교문

2022. 6. 12.

 

2022.6.12. 성삼위일체주일

잠언 8:1-4, 22-31 / 시편 8 / 로마 5:1-5 / 요한 16:12-15

 

삼위일체: 관계성으로서의 존재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사제, Artist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16:12-13)

 

 

주님께서는진리 ἀλήθεια’ 대해 말씀하시면서 진리가 세상에서 은폐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은폐는 오직성령 의해서만 세상에 밝혀질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스스로 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성자 통해 말씀하십니다. , 성자로부터 들은 진리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자께서는성부께서 가지신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 하시면서 성부와 성자를 동일 본질로 설명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언급은 진리를사물 속의 의미또는사건 속의 의미 파악했던 그리스 철학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어렵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분의 말씀 속에서 이미 선재해 있는성부-성자-성령이라는 관계성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초기 교부들이 철학적 존재론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었던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관계성 속으로 이끈 이유입니다. 진리를관계성속에서 파악하고, 관계성을 본질과 구분하지 않는 . 하느님의 본질은 이러한 성부-성자-성령의 관계성 속에서만 온전히 계시될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시간과 공간에 의해 파악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존재가 어떤 시간에 어떤 공간에 존재한다면 존재가 무엇인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전 10 수업시간에 학교 교실에 있는 사람은학생 또는 선생님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진리는 존재자가 속한 시간과 공간에 의해비은폐성 획득합니다. 철학에서는 이러한비은폐성진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형이상학적인 담론보다는 존재의 실제적인 관계성 속에서 이러한 진리를 파악하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채창완이란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채창완과 관련된 모든 관계성을 살펴보면 채창완이란 존재의 진실을 파악할 있다는 것입니다. 채창완은 아내의 남편이고,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제주교회의 사제이고, 친구들은 대부분 50대입니다. 채창완이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화가들과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분명 채창완은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고 직업이 신부이니 그리스도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자신의 말과 행위를 통해 성부-성자-성령과의 관계성을 드러내시고, 관계성을 통해 하느님의 본질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의 차원까지 개념을 확장시킴으로 존재와 관계성은 주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많은 교부들이 여러 이단 논쟁 속에서 천착했던친교로서의 존재’, ‘관계로서의 존재입니다. 이를 우리는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아실 겁니다. 교리 시간에 들어보셨겠지만, 말을 풀어보면하나의 본질(οὐσία) 가지 위격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계시된 초월적 하느님의 실존이라 말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우리 인간이 있는 길은, 주님께서도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를 해줄때 뿐입니다. 계시를 우리 안에 알려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현상의 세계가 초월의 세계로 스스로 돌파할 가능성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으로 되돌아가는 것만큼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초월은 현상의 세계로초월자의 의지 의해 돌파 가능합니다. 이러한 점은 우리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아마 동일할 겁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는 초월과 현상의 세계를 중계해 중계자, 또는 매개자가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라고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과 아담, 하느님과 아브라함, 하느님과 모세, 하느님과 선지자들히브리 성서는 초월적 존재가 어떻게 개인과 민족과관계성 맺었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개인의 삶과 민족의 역사와 떼려야 없는 관계성 속에 드러난 계시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성 속에 하느님께서 영으로 현현하셨음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히브리 성서가 말한 인격적 관계는 하느님과 인간 간에 계약을 통해 성립된 관계여서 율법이란 조건을 넘어서 성립될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언서를 통해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얼마나 하느님께서 원하셨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자기 (아들) 없이 존재하신 적이 있었는가?” 

 

말은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 고민했던 질문입니다. 이는 그가 하느님의 본성이 오직친교, 또는 관계속에서만 인식될 있는 것임을 깨달았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존재론적으로 말해서, 하느님의궁극적본성의 특징이 아닐 없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갈 있는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없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성자가 태어나기 전에 성자가 없었다면, 하느님 안에 진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리우스 반박하면서 했던 아타나시우스의 이러한 발언은 성부-성자의 관계성이 하느님 안에서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냄을 보여줍니다. 결국 아타나시우스는 성부-성자의 관계를 하느님의 실체의 차원까지 이끌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부-성자-성령이란 이름은 관계성 속의 이름이고, 성부-성자-성령은 관계성 속에서 하나가 됩니다. 하나 됨은 하느님 본질에서 결코 분리될 없는 것입니다. 어려운 얘기이지만 곰곰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제가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우리들의 블루스 통해 이러한 관계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되는 드라마에는 특정 주인공이 없습니다. 제주도라는 특수한 장소와 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제주 살이 1 제가 들어도 제주 사투리가 어색해서 처음에 불편했지만, 계속 보게 하는 몰입감 있는 드라마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객체들이 전체의 관계성 속에서 얽히고설키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공감하고 웃고 웁니다. 저도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있는 자신에 새삼 놀랐습니다. ‘블루스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대체적으로 아픈 사연들을 담고 있어 개별적인 이야기는 애잔한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인간 삶의 긍정과 희망을 담고 있어 좋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관계성 속에서 각각의 객체이면서도 전체로서 하나의 주인공이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들을 전체에서 하나씩 떼어서 살펴보면 그냥 시장에서 우리가 쉽게 만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개별 이야기도 일종의 신파극처럼 절절한 사연들로 넘쳐납니다. 인간 삶의 다양함 만큼이나 등장인물들의 사연도 매우 다양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객체들을 제주도라는 특수한 지역과 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하나의 관계성으로 묶어 놓으니, 객체들의 이야기들에전체라는 모종의 특수성이 부여됩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개인 간의 아픔을 담아내고 있지만, 개별적 이야기가 마치 구슬을 꿰듯이 전체 안에 하나로 엮이니 인간 보편성과 희망을 얘기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객체이면서도 전체에서 분리될 없는, 시장을 중심으로 , 끈끈한 관계성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결국 객체들은 전체로 편입되며 하나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래서 드라마 속의 객체들의 사연이 전체 속에 묶이므로 이상 개인의 비극적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이야기가 되어 마치 자신의 일인 함께아파하고, ‘함께분노하고, ‘함께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안에서 객체는 전체 속에, 전체는 객체들 속에 관계성으로 하나입니다. 중에서달이 춘희 할망의 어린 손녀은기 돌보면서 했던 말은 인상적입니다. 놀다가 잃어 버리면 춘희 할망 손주예요라고 아무에게나 말하면 된다고. 어린 은기는 시장이란 공간에서 미아가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목포에서 어린 은기 조차도춘희 할망 손주라는 한마디에 하나의 객체에서 시장 공동체 안으로 자동 편입됩니다. 안에서 객체의 구분은 전체의 관계성 속에서 은폐됩니다. 결국 우리는 객체로서 전체이고, 전체로서 객체인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 개의 이야기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이고, 하나의 이야기이면서도 여러 개의 이야기 말입니다. 재미있는 플롯의 드라마입니다.

 

이것이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가 지닌관계성 힘입니다. 이는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삼위일체 관계성에 대한유비 담고 있습니다. 성부-성자-성령은 하느님의 관계성의 이름입니다.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가 전체입니다. 시장 사람들의 각각의 본질이 하나의 시장 공간 속에서 하나라는 본질을 드러내고, 제주도라는 제한된 지역 속에서 지역공동체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시장 사람들은 하나하나 객체이면서도 동시에 전체로서 하나입니다. 그들을 묶는 결속력은 끈끈한 제주의 지역성과 서로에 대한 가족 같은 두터운 정입니다. 전체에서 분리된 객체는 드라마에서 이상 의미를 잃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는 성부-성자-성령의 관계성 속에서 하나의 본질을 공통으로 공유함을 보여줍니다. 물론 관계성은 바로상호 사랑, 상호 섬김, 성호 권위 끈끈하게 결속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본성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서 하나는 전체를 전체는 하나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부-성자-성령을 하느님으로 높이고 찬양합니다. 위격은 결코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존재할 없습니다. 

 

삼위일체주일에 이러한관계성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삼위일체가 지닌 관계성이 그대로 우리 교회 안에 적용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유수암으로 이사 계속해서 우리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시간 속에 놓인 우리 제주교회. 우리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러한 모습을 이러한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개인들은 각각의 객체성을 유지하면서 관계성 속에서 하나의 인격을 공유하는 공동체. 하나가 전체를 전체가 하나를 대변하는 공동체. 상호 섬김, 상호 협력, 상호 존중의 우정을 추구하는 공동체. 우리 제주교회가 이러한 삼위일체 신학 위에 든든히 세워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민하고, 기도하고, 대화하면서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성삼위일체주일 (다해)

 

본기도

찬양받으실 하느님, 성부께서는 세상을 지으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며, 성령으로 사랑과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놀라우신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고 영원히 하느님을 경배하며 찬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잠언 8:1-4, 22-31

1    지혜가 부르지 않느냐?
.     슬기가 목청을 돋우지 않느냐?
2    지혜가 길가 언덕에서 부르고
.     슬기가 네거리에 자리잡고 목청을 돋운다.
3    마을 어귀 성문께에서,
.     대문 여닫히는 곳에서 외친다.
4  “사람들아, 말을 들어라.
.     사람의 아들들아, 말을 들어라.
22  야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던 한처음에
.     모든 것에 앞서 나를 지으셨다.
23  땅이 생기기 , 옛날에 나는 이미 모습을 갖추었다.
24  깊은 바다가 생기기 전에,
.     샘에서 물이 솟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5  멧부리가 아직 박히지 않고
.     언덕이 생겨나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6  평평한 땅과
.     땅의 흙을 만드시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7  그가 하늘을 펼치시고
.     깊은 바다 둘레에 테를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다.
28  구름을 높이 달아 매시고
.      속에서 샘을 세차게 솟구치시며
29  물이 바닷가를 넘지 못하게 경계를 그으시고
.     땅의 터전을 잡으실 ,
30  나는 붙어 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
.     언제나 그의 앞에서 뛰놀며
.     날마다 그를 기쁘게 해드렸다.
31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
.     그가 만드신 위에서 뛰놀았다.

 

 

 

성시_ 시편 8

1    하느님, 우리의 주여!
.     주님의 이름 세상에
.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님의 영광 기리는 노래,
.     하늘 높이 퍼집니다.
.     어린이, 젖먹이들도 노래합니다.
2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하늘과
.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4    사람이 무엇이기에
.     이토록 생각해주시며
.     사람이 무엇이기에
.     이토록 보살펴주십니까?
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 하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하느님, 우리의 주여!
.     주님의 이름 세상에
.     어찌 이리 크십니까?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로마 5:1-5

1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4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서_ 요한 16:12-15

12 아직도 나는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말을 알아들을 없을 것이다.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주실 것이다. 14 그분은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게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시리라고 내가 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