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북

아트월드 2020. 1. 1. 20:45

노년 독서(老年讀書)


 

젊어서 독서는 문틈 사이로 달을 엿보듯이,

마흔 살 안팎의 독서는 뜰에 나서 달을 바라보듯이,

늙어서 독서는 사방이 탁 트이게 높이 지은 누각이나 정자에 올라 달을 즐기며 감상하듯이.

 

소년독서 여극중규월 (少年讀書 如隙中窺月)

중년독서 여정중망월 (中年讀書 如庭中望月)

노년독서 여대상완월 (老年讀書 如臺上玩月)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에 걸쳐 활동한 문장가 장조(張潮)유몽영(幽夢影)에 나오는 글이다. `유몽영'은 중국인의 잠언집인 `채근담'과 으뜸을 겨루는 책이다. “천하에 책이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반드시 읽고, 책으로 벗을 대신하라.”는 장조의 자신만만한 독서론을 배경으로 작지 않은 울림을 주는 글이다.

 

벗만큼 가치 있는 책 읽기를 달 보듯이 하라니. 불교 초기 경전 모음집의 하나인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실린 대화가 생각난다. 바라문(婆羅門)이 부처께 질문을 사뢰었다.

 

나쁜 벗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이까?”

달을 보듯이 보라.”

바라문이 다시 여쭈었다. “좋은 벗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이까?”

달을 보듯이 보라.”

 

달이 차고 이울기를 순환하여 밝음과 어두움이 둘이 아니듯 나쁨과 좋음도 둘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라는 뜻이라 한다. 경전의 깊은 말씀을 온전히 깨우칠 수는 없지만 사바세계 두루 어루 더듬으며 가는 달의 변화는 새삼 느끼겠다.

슬그머니 `달을 볼 때에는 초승달이라도/작지만 밝은 부분을 보고,/크고 어두운 부분은 아니 보지요/그런데 사람을 볼 때에는/크고 밝은 부분이 있는데도/이를 보지 아니하고,/구태여 작고도 어두운 부분을/보는지'    (`달을 보듯이 사람을'/차영섭)라던 동료 시인의 안타까움도 함께 떠오른다.

 

돌아보면,“근대가 발명한 새로운 쾌락은 담배와 소설 읽기라고 설파했던 20세기 전반의 비평가인 프랑스의 알베르 티보데의 독서론(讀書論)에 쏠린 시절이 있었다. 그는 `소설의 미학'에서 독자를 두 부류로 나누었다. 한 부류는 `렉퇴르'로 취미와 오락으로 책을 읽는 수동적 독자이고, 다른 부류는 `리죄르'로 문학의 본질적 목적을 추구하고 때론 책속의 상황을 닮기도 하는 열렬한 정독자다. 리죄르 흉내내기를 흠씬 값지게 여겨 밤을 하얗게 새운 적도 있다. 오로지 책갈피의 틈새에 끼여. 일 년에 스무 권 이상 읽어야 다독인 그랑 렉퇴르 반열에 든다는 외국의 기준에 맞추어 쌓여진 책의 높이를 스스로 흐뭇해했던 눈 밝던 시기도 있었다.

 

나이 들어 노안이 오고, 생각이 번잡해져서 책 읽기에 골몰할 겨를이 만만치 않다. 글씨와 문장이 기호로만 인식되고, 읽다가 놓치는 글자나 흘리는 문장도 드물지 않다. 행간엔 온통 세파로 가득 차기도 한다. 바야흐로 책을 읽으며 달 속에 담긴 벗의 선악을 보고, 달을 바라보며 책 속에 떠있는 우리네 삶의 성쇠(盛衰)를 읽을 때가 된 것이다.

 

책은 인간에 대한 흥미에서 시작하여 인간에 대한 흥미에서 끝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단단하다. 글은 인간의 표현 충동에 의해 지어진 것이며 반드시 독자 -그 독자가 작가 한 사람일지라도- 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어진 글을 읽는 독서는 남의 무늬, 인문(人紋)을 살피는 일이다. 책을 읽는 건 사람의 무늬, 인문을 살피는 일이다. 자연스레 독서는 사람을 읽는 일이다. 혹시 사람 만나기가 싫어 혼자 책을 읽는다 해도 어차피 책속의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늙을수록 책을 읽고 서로 나누는 게 낫다. 함께 이야기를 섞으면 흘리고 놓친 것을 채울 수도 있고, 늙음의 정체성도 확인하고, 더러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여 탄탄해진 자아를 넘어 타자를 껴안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장조의 `유몽영'`달빛에 취할 때는 운치 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고 보태고 있다. 노년에는 달빛으로 글씨를 읽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세월의 차고 이움을 저지르고 겪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라고 되짚는 것이다.

 

마침, 달이 차오르고 있다. 생각의 누각에 올라 달을 읽는다. 반달, 초승달, 그믐달누각에 오를 힘이 남아 있는 한 누각에 오른다.

 

*`유몽영'`희미한 꿈의 그림자(幽夢影)'라는 뜻.


글쓴이 -유형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