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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월드 2020. 8. 27. 11:44

출처 : 마음의 우주, 어머니 (e-Book) 아트월드 출판사,

 

059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덜란드
스타일 : 후기 인상주의

 

<고흐는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 안나 카벤투스 반 고흐로부터 꽃과 꽃다발을 카피하며 미술을 배웠다>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60x49cm, 1889

이 작품은 그가 자살을 하기 한 해전에 그린 작품이다. 그는 40여점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이는 화가로서 자기를 성찰(省察)하기 위하여 그린다고 했다.

 

고흐는 목사의 아버지와 궁중 인쇄소에서 제본을 하는 장인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흐의 어머니인 안나 카벤투스 반 고흐(Anna Carbentus van Gogh 1819-1907)는 꽃과 식물을 드로잉하고 예리한 수채화를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고흐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그린 꽃과 엉겅퀴 꽃다발을 스케치한 것을 카피하므로 서 배웠다.

 

그녀의 남편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22-1885)는 목사로서 일곱 자녀의 가정을 오랜 동안 지켰다.
고흐는 생전에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가 죽은지 11년 후인 1901년에 파리에서 71점의 그림전시는 사후에야 명성을 크게 올리게 된 계기였다. 서양미술에 인상파, 야수파 및 초기 추상화에 끼친 고흐의 영향은 막대하다.

 

고흐는 시를 좋아하고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지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는 화장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자기감정을 꾸밀 줄 몰랐다. 정신질환 속에서도 10년간에 900점의 작품과 습작 1,100점의 많은 작품을 그렸다. 또한 그가 19년 동안 거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700통의 편지에는 깊은 고민과 사색의 흔적이 여실했다.

 

주로 그가 겪은 고독과 번민의 정신세계를 다룬 뛰어난 문장은 그가 읽은 책을 통해 간직한 사색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명화가로서의 고단한 삶에 대한 진한 슬픔이 묘사되어 있엇다. 그 편지들은 그 화가의 삶에 많은 통찰을 주었고, 그가 감수성이 예민한 마음을 가진 재능 있는 작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 편지들은 사후에 그가 위대한 화가로 인식되는데 증명서가 되고도 남았다.

 

지독한 가난으로 모델을 구하지 못하여 자신의 얼굴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화가로서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서 이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강하고 흔들림 없는 붓질 몇 번으로 그 특징을 한 번에 다 집어넣으면서 재빨리 그려야 했다.” 라고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다.

 

고흐의 화풍은 물감을 희석하지 않고 걸쭉하게 칠했다. 가끔 물감을 튜브에서 짜서 직접 화폭에 그대로 발랐다.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마티에르 기법으로 인하여 그의 그림은 붓자국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나타냈다. 고흐는 이미 파리 시절에 신인상주의의 점묘법에서 발전시켜 여러 가지 색을 짧은 선 모양으로 나란히 그리고 빨리 칠하는 기술을 스스로 개발했다.

 

빈센트 반 고흐 <화가 어머니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40.5x32.5cm 1888

고흐의 어머니 안나 카벤투스 반 고흐(1819-1907)는 수채화를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고흐는 어릴 때 어머니가 꽃을 스케치한 것을 카피하여 배웠다. 고흐는 이 작품에서 어머니의 고귀함과 자랑스러운 모습을 묘사했다.

그는 농민의 화가인 밀레를 존경했고 고흐가 그린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린 후에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감자를 심고 정직하게 경작한 가난한 농부의 손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항상 그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예술은 고독하다는 증거를 고흐를 통하여 읽을 수 있다. 이 편지들은 고흐의 동생이 죽고 난 후에 동생의 부인과 그 아들의 손으로 700통의 편지가 정리되었다. 또한 고흐가 죽은 지 24년후인 1914년에야 비로소 편지내용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의 작품과 인간에 대하여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빈센트 반 고흐 어머니의 사진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는 그의 유작이 뒤늦게 바쳐진 곳이다. 1987년에 고흐의 작품 <아이리스>는 뉴욕의 소더비에서 5,390만 미국 달러에 팔렸다. 1990년에 그의 <가세 박사의 초상>'(제1버전)이 크리스티에서 8,250만 달러에 일본의 경제인에게 팔려 새로운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미국 수집가에게 4,400만 달러에 다시 팔렸다.

 

 

빈센트 반 고흐 [가세 박사의 초상] 67×56cm 1890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였다. 1860년에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격의 준데르트 마을 학교에 입학했다. 1866-1868년까지 틸부르흐에 위치한 제2 빌렘 칼리지에 다녔다.

고흐가 쓴 70통의 편지는 제수가  0

 

빈센트 반 고흐 <여러 자화상>

그는 독학으로 작품들을 모사함으로써 미술에 대한 지식과 재주를 익혔다. “렘브란트 등 옛 홀란드 그림들을 다시 볼 때 나를 당혹시키는 것은 그들이 대개의 경우 아주 빠르게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라고 말했다.

16세인 1876년에 고흐는 삼촌 빈센트의 권유로 헤이그에 있는 구필 화랑에서 일했다. 그의 동생 테오도 나중에 그 회사에 들어왔다. 1873년에 회사는 그를 런던으로, 다음에는 파리로 발령시켰다. 1876년에 구필회사는 인간관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고흐를 해고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서 점점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1878년에 벨기에의 가난한 광산촌에서 평신도로서 설교자가 되었다.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고뇌에 찬 700통의 편지는 사후에 발간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1880년에 고흐는 동생 테오의 제안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동안 빈센트는 헤이그에서 안톤 모브(Anton Mauve)로부터 그림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1885-1886년까지 고흐는 벨기에에 있는 안트베르펀의 미술 학교에 등록하고 공부했다. 1888년에 그는 아를에 있는 사창가 거리의 여인에게 자신의 왼쪽 귀 조각을 잘라서 건넸다. 고흐는 그녀의 신고를 받고 그의 집에 도착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1889년에는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1890년 고흐는 들판으로 걸어 나간 뒤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아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는 <오베르의 풍경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은 적이 있었다.

“흐린 하늘 아래 한 없이 넓은 밭이 있고, 나는 슬픔과 극단적인 고독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

 

 

출처 : blog.daum.net/artworld66/30

 

[마음의 우주, 어머니] 전자책 출간

“어머니는 우리 마음속에 얼(Spirit)을 심어 준다.”라고 독일의 소설가인 장 파울(Jean Paul, 1763-1825)은 말했다. 이와 같이 화가는 어머니를 통하여 예술적인 영감(Inspiration)을 받고 있다. 그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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