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등급

스스로 물러난 도덕 선생님의 못다한 이야기

어린 나귀를 타고 하는 전투(2021.03.28 종려주일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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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백/고백 ; 기도 ; 선언 ; 설교 ; 묵상

2021. 4. 7.

대구마가교회와 대구새민족교회 연합 소성리현장예배(2021.03.28 종려주일) 설교문
요한복음 12장
12   다음날에는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하고 외쳤다.
14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보시고, 그 위에 올라타셨다. 그것은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과 같았다.
15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네 임금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16   제자들은 처음에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야, 이것이 예수를 두고 기록한 것이며, 또 사람들도 그에게 그렇게 대하였다는 것을 회상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던 현장예배를 다시 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 정치권력(로마제국주의, 유대성전권력)과 예수의 갈등

어제 아침평화기도회에서 묵상한 본문은 요한복음 11장 45절부터 57절까지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후맥락을 알 수 있는 이야기였지요.
48절을 읽으며 문득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이 (예수)를 그대로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일과 로마인들이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가는 일이 왜 연관이 됩니까? 
바로 그 앞에 기록된 사건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신 일과, 이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급격히 늘어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죽은 나사로를 되살려내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유리겔라 보다 탁월한 초능력자 예수, 하느님의 권능을 가지신 이를 믿는 일과 로마인들이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는 일이 어떻게 연관됩니까?
조헌정목사님은 [새끼 나귀와 권력 풍자]라는 제목으로 하신 설교(2018년 종려주일 부산의 믿음교회에서 하신 설교(https://blog.daum.net/ask2me2/70))에서 "유대는 당시 예루살렘 외의 지역에서는 정치와 군사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자치를 허용 받고 있었는데, 만약 예수를 그대로 둔다면 로마가 자치권을 빼앗고 직접 통치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게 대제사장 가야바의 판단인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로마가 허용한 범위내에서 일정 부분 권세를 누리고 있던 성전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들이 속속 겹쳐졌습니다. 성전숙청 사건, 안식일 논쟁 등등. 세례 요한으로부터 비롯된 세례운동이나 정결례 논쟁 등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결국 어떤 나라를 만들어갈 것인가, 세상 모든 권력의 압제를 거부하고 하느님의 직접 통치를 꿈꾸는 무리들의 첫번째 타킷은 하느님과 관련된 성전권력을 독점한 자신들이 될 것이고, 나아가 그들은 로마의 제국주의도 거부할 것이다. 결국 로마는 예수의 무리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결국 우리도 쫓겨날 것이다. ㅡ 이게 공의회로 모인 당시 성전권력자들의 생각이었을 겁니다.

♣ 예수님이 취한 노선 - 어린 나귀를 타고

예수님의 하늘나라 운동. 예수님은 어떻게 하느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실 생각이었을까요? 

조헌정목사님은  [예수의 고민]이라는 소제목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갈릴리 세포리스라는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로마군은 본때를 보인다고 그 마을 사람 전체 여인과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전체 2천명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아 마을 입구 양쪽에 세워 놓았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이 있었을 때는(BC 71) 로마로 들어가는 아피아가도에 무려 6천개의 십자가를 세웠다는 끔찍한 사실도.
따라서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케 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로마의 식민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행동을 해야 했지만, 동시에 군중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 시위가 되도록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의 중요한 관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관심이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2절에 보면 저들은 몰래 예수를 잡아 죽일 것을 궁리하면서 백성들의 소동을 두려워하여 축제 기간만은 피하자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예수의 고민을 이해하고 새끼 나귀 속에 담겨 있는 정치적 함의(含意)를 읽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조목사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서는 이야기를 로마제국의 권력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동쪽에서 예수님이 입성하던 그 때에 반대편 서쪽에서는 로마제국의 기병대와 보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는 얘기를 (역사적 예수 연구가 마르쿠스 보그와 존 도미닉 크로산이 지은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에서) 재인용하시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두 행렬을 대비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성경말씀 중에 눈에 확 들어온 대목이 있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ㅡ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 어린 나귀를 타고 하는 전투 - 소성리가 걸어온 길
 
예수님의 하늘나라운동은 비폭력·불복종 평화운동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어린 나귀를 타고 하는 전투]라고 붙였습니다. 
조목사님처럼 단순히 풍자나 퍼포먼스 정도로 그치지 않고 '전투'라는 제목을 단 이유는 예수님의 비폭력·불복종 평화운동도 거기서 머물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숙청을 하셨고, 결국 로마의 정치범으로 십자가형을 받기까지 이르렀지요.
예수님도 불을 던지러 왔다든지 옷을 팔아 칼을 사라든지 하는 말씀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폭력을 막아내며 우리의 신념을 지키고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일들을 전쟁이라고까지는 못해도 '싸움, 투쟁, 전투'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곳에서 지킴이로 4년째 있으면서 저는 우리들의 사드저지투쟁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방식을 따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어린 나귀를 타고 전투를 해왔습니다. 
소성리에 온 지 1주일만에 수천의 경찰이 주민들을 막고 길을 내줘 사드 발사대와 레이더가 기지로 들어가는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았습니다.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나라인 것을 절절하게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다시 싸움이 일어난다면 어떤 방법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진강변에서 산사태와 더불어 유실된다는 대전차지뢰를 줏어다가 지뢰를 심어볼까, 광산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훔쳐올까, 사드 기지를 산불로 공격할까, .....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전쟁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이 모든 과격한 상상들을 접어야 했습니다. 
방파제 테트라포드 모양의 철제침을 만들어 뿌리는 것을 상상했을 때, 그 정도는 사람이 아니라 트럭 타이어를 펑크내는 정도니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냐며, 금형기술자들, 용접기술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사고로 연결되어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포기하였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수백명이 모여 경찰이 따로 떼어내어 끌어내지 못하도록 우리 몸을 강력하게 연결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차와 자신의 목을 오토바이 잠금장치로 묶고, 강파이프 속으로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비너로 묶고, 자가용을 바리케이트 삼아, 차 안에 들어가 버티기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은 다만 몇 시간 지연시켰을 뿐, 모두 만신창이 몸으로 들려나오고 길은 뚫렸지요.
딱 한 번, 사각파이프를 엮어 격자틀을 만들고 칸칸이 들어가, 그 위에 그물을 뒤집어쓰고 진밭교 위에서 죽기살기로 막았던 날, 2018년 4월 12일 자재반입을 막아냈습니다.
그 후 공사자재나 장비를 반입하려 할 때마다 우리는 격자틀을 이용하여 저항했습니다. 격자틀은 우리가 타고나간 어린 나귀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부터 경찰은 커터날을 들고와서 그물을 찢어내고 한 사람 한 사람 격자에서 팔을 꺾고 머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비틀어 끄집어 내었습니다. 부상자나 탈진해 쓰러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지요. 우리는 번번이 사드기지로 들어가는 차량행렬을 끝까지 막아내는데 실패하고 길을 내주었습니다.

국방부는 우리의 격렬한 저항에 헬기로 실어나를 수 있는 것들은 헬기로 실어나르면서 (미군, 유조차 등), 헬기로 나르기 곤란한 사드장비, 기지공사용 장비·자재·인력의 출입을 위해선 경찰병력을 동원하면서 침탈해 왔습니다. 
저들이 기지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헬기로 실어나르는 동안 우리는 평화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최종저지선 앞에서 약식집회를 하였고, 나머지 시간은 도로를 감시하는 지킴이 활동을 해왔습니다. 매주 해오던 소성리와 김천의 집회,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해 온 기자회견, 항의방문, 평화백배, 기도회.... 
우리는 우리의 끈질긴 투쟁이 성주사드기지를 세계의 미군기지들 가운데 육지 속의 섬처럼 육로로 다니지 못하고 헬기로만 이동해야 하는 기지로 만들었다고 자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기지는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중입니다. 

♣ 사드기지 완성이 의미하는 것

사드기지의 완성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처음 이 싸움에 함께할 때는 단순히 두 가지만 생각했었습니다. 첫째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사드는 소용 없다는 것. 둘째 사드 전자파로 인한 위험이 너무 커서 반경 몇 km 안에는 사람이 거주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들이 만든 교범 상의 원칙을 무시하고 배치를 강행하고 있다는 것. 이 성주에서 가장 작은 마을 소성리 주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비겁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싸워오는 동안 사드 배치가 갖는 더 복합적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드라는 한 가지 무기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사드는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하에 완전히 끌려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하겠다고 애쓰다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설혹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되찾아 왔다 하더라도, 사드 배치가 공식적으로 확정된다면 전작권 환수는 전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맙니다.
문재인 정권이 말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한미연합사 사령관을 한국군 장성으로 임명하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여전히 한미는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한미연합사로 묶여 있습니다. 우리 군은 한미연합사의 지휘체계어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령관이 누가 되든지 한미연합사가 미국의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예하부대로서 미국 주도의 작전지휘체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국익을 해치는 것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우리 군은 그 지휘체계안에서 움직입니다.
문재인 정권은 미국MD참여, 사드추가배치, 한미일군사동맹 참여를 하지 않겠다는 3불 정책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허언이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미국 MD에 참여하고 있고 날이 갈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드가 배치되기도 전에 탄도탄 작전통제소(TMO)를 연동하기로 합의한 한미양국연동합의각서가 2016년 1월 체결되었고, 2017년 5월 연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사드가 배치되는 순간 이미 미국MD에 참여한 것이며, 사드가 더욱 업그레이드되면서 한국의 MD 자산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작전을 수행하는 하위 요소로 기능할 따름입니다.
사드배치는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시작된 미국의 한반도 공작이 완성되는 것을 뜻합니다. 한반도를 그들의 세계패권을 지키는 전초기지로 만들겠다는 오랜 노력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남한의 군대는 미국을 지키는 군대로서 그들의 군사조직의 말단 병사가 되어, 전시에는 총알받이로 평시에는 미군을 섬기는 하인으로 활용됩니다. 사드배치는 대한민국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완전히 예속·통합되었음을 확인해주는 지표인 것입니다.

♣ 어린 나귀를 타고 십자가를 향해

이미 지난해 5월 공사자재 반입을 핑계로 우리를 무참히 짓밟고 들어간 차량행렬 속에 사드를 업그레이드 하는 장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최근 미국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연내 대북 탄도미사일 방어역량 두 가지를 '추가'하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제 또 공사자재 반입을 핑계로 새로운 사드장비를 기습적으로 들여오지 않을까요?
미국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우리 정부에게 성주 사드기지를 방치하고 있다고 동맹으로서 용납 못할 일이라고 강하게 불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폐간되어야 마땅한 일부 언론과 미국에게 기대는 정치인들이 사드배치를 저지하고 있는 우리들을 정부가 묵인 방조하고 있다고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사실은 정부가 사드기지를 방치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는 국회동의도 없이 부지를 미군에 넘겨주면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피하기 위해 부지를 쪼개 넘겨주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도 마치기 전에 기지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미국의 요구에 충실했으면 우리의 법과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그 요구를 실행하고 있겠습니까? 미군기지를 우리 군대가 지켜주는 것도 우리의 법이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주둔군지위협정 어디에도 없는 규정에 없는 일입니다. 오직 사드기지만 현재 한국군이 경계임무를 수행중입니다.
정부가 사드를 반대하는 우리를 묵인방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같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 없으니 웬만하면 우리가 막을 수 없는 하늘길로 다니지만, 육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엔 언제나 국가폭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손발을 묶고 들어갔습니다. 오죽하면 코로나도 무시하고 몰려들어 주민을 짓밟았겠습니까?

저들의 요구는 우리의 합법적인 집회 시위 조차 불가능하게 만들라는 요구입니다. 격자틀에 몸을 넣었다가 탈진되어 끌려나오는 우리들을 아예 말살하라는 요구입니다. 자국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학살하라는 요구입니다. 제주 4.3 항쟁, 한국전쟁에서 보여준 견벽청야 작전을 실행하라는 요구입니다.
저들의 '방치', '묵인', '방조' 라는 표현에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이를 그대로 두면'이 떠오릅니다. 예수를 로마의 반역자로 몰아 로마의 사형틀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겠다는 음모가 느껴집니다.
이제 우리도 어린 나귀를 타고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야할 때입니다.

♣ 다시 각오를 다집니다.

넉달 전, 매번 들려나오고 길을 내줄 수밖에 없는 싸움을 답답해하며 절개지 위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언론매체에 "활동가 극단적 선택 예고에 해산 작전 중단"이란 제목으로 보도되었지요. 그날 그곳에 올라갔던 제 심정은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얼마나 많은 질책과 걱정을 들었는지, 첫번째 수난예고를 듣고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며 예수님께 대들었던 베드로 이야기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가.볍.고.  편.하.게. 지기 (소성리아침묵상 201209)]라는 제목으로 새마갈노에 썼던 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교회 앞에 자주 내걸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막 8:34)는 말씀과 함께 이 말씀을 되새겨 봅시다.
예수님이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편하다', '가볍다'라는 형용사는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감각에 관한 표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초기 기독교인들이 겪었던 '참혹한' 수난들 마저 '편하다' '가볍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편하고 가벼운 것이었을까요?
나는 첫번째 수난예고 후 베드로가 보여준 반응,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막 8:32)는 반응이 제대로 된 반응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며 꾸짖으셨을지라도.
오로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할 때만 각자 짊어져야 할 멍에가 가볍고 편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만큼만 짊어지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 말씀을 다시 읽으며, 미리 겁내어 하느님이 지워주시는 짐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저는 사드기지의 완성은 전작권 환수와 상관없이 한국군을 미군에 완벽하게 예속·통합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남녘땅이 미군의 전쟁연습장, 전초기지가 되어 강대국들의 대리전쟁터가 되고 우리가 총알받이가 되는 일을 우리 돈으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일을 막기 위해 하느님은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그 십자가가 내가 짊어져야 할 가볍고 편한 십자가라고 생각합니다.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행진에 함께 합시다.
그러나 그후 예수님을 버리고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쳤던 군중들은 되지 맙시다.
끝까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향해 예수님과 함께 나아갑시다.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바리새파 사람들의 말이 
이 땅의 점령군 미군들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무리들의 고백이 되도록 만듭시다.
아멘. 

출처 : 새마갈노(http://www.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