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등급

스스로 물러난 도덕 선생님의 못다한 이야기

공휴일 새벽에 도둑처럼 기습 반입한 사드 기지 공사 자재(9.10~12 일기)

댓글 0

삶의 고백/어쩌다 쓰는 일기

2021. 9. 13.

[금요일 9.10]

금요일(9.10) 아침 기지로 들어가려다 돌아나간 트럭. 바닥용인지 벽체용인지 모를 목재 자재가 가득 실려 있다.

목요일(9.9) 올해 38번째 국가폭력과 충돌하고 난 뒤, 이제 화요일까지 적어도 4일은 쉴 수 있구나, 편안한 잠으로 빠져들었다. 상황실을 지키는 지킴이 동지들도 미루어 둔 일정들을 소화하느라 잠시 서울을 다녀오기로 해서 상주하고 있는 지킴이는 나혼자. 그래도 설마 별일이 있겠냐 싶었다.

금요일(9.10) 아침. 늦잠을 자고 서둘러 지킴이초소로 올라가 공사인부들이 기지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속이 부글거려 마을회관까지 내려가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사이에 웬 자재를 잔뜩 실은 트럭이 올라와 진밭교 앞에 갓길쪽에 서 있었다. 동영쪽에 집을 짓는 공사가 있다더니 그곳으로 가는 차량일까 싶었다.

홀로 정문앞 평화행동을 해야하나 했는데, 석문쌤이 올라왔다. 트라제에 앰프가 없는 걸 깜박해서 마을회관까지 두번째 다녀왔다. 여전히 공사자재 트럭이 꼼작않고 있다.

뒤늦게 평화행동을 마치고 지킴이초소로 내려오니 할매 두 분과 열매님 올라와 있다. 출근길 바쁜 석문씨 보내고, 그 사이 버섯따러 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뒤늦게 올라간 공사인부들에 대한 확인을 열매님에게 부탁하고 내려왔다. 트라제를 세우고 내 차로 갈아타려는데 트럭운전자가 말을 걸어왔다.

화물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 곳이 사드기지인데 올라갈 수 없느냐는 얘기. 트럭에는 출입증이나 비표같은 것도 붙어있지 않고, 운전자에 대한 신원확인 절차같은 것은 밟았냐는 질문에 모르쇠. 어떤 용도로 쓰이는 자재냐는 질문에도 가져다 줄 뿐 어디 쓰는 자재인지는 모른다고. 화, 목 두 차례 경찰병력이 동원되어 통제하는 주민들을 무력화시키는 날이나 들어오라고, 미리 국방부 장교들에게 들어가는 절차에 대해 알아보라고 얘기했더니, 그럼 일단 돌아가야겠다고 차를 돌려나갔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중인데, 눈에 익은 공사차량(승합차)이 올라가서 쫓아 올라갔다. 지킴이 초소 아래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전기공사를 하는 사람들이란다.

다시 내려와 식사준비중인데 트럭에 장비를 실은 차량이 지나갔다. CP(옛 캐디숙소) 입구에 서는 걸 보고 돌아섰는데 잠시 후 보니 사라졌다. 어? 다시 쫓아 올라가니 열매님이 뒤따라 기지쪽으로 올라갔단다. 두달 전쯤 장마비에 파손된 도로를 보수하러 온 성주군내 업체였다. 성주군에서 발주한 공사인가 했는데 국방부가 발주한 보수공사였다. 

한편으론 장병들이 내려와 길가에 제초작업과 가로수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목요일에 진밭교에서부터 시작한 일인데 이제 정문 가까이 남은 구간을 작업중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기지를 통과하여 성묘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환경미화를 하는구나 했다.

발길이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길은 숲이 되고 만다. 내가 길을 열었더라도 뒤를 잇는 걸음이 없으면 길은 곧 사라진다.

지킴이 초소 옆 계곡 건너에 포크레인으로 만들었을 법한 작은 길이 있었다. 작년 6,7월 사드장비 야간 기습 반출 이후 모든 차량을 봉쇄하겠다고 지킴이초소를 설치하고 쓰레기 반출차량까지 막았던 그 때쯤, 우리는 그 길을 많이 이용했었다. 오늘 문득 그 길을 보니 작은 풀과 나무로 가득 차 있다. "발길이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길은 숲이 되고 만다. 내가 길을 열었더라도 뒤를 잇는 걸음이 없으면 길은 곧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드를 돌려보내고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우리의 평화운동도 함께하는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사그러지지 않을까? 오후평화행동에는 누가 함께할까? 오늘은 결국 홀로 해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산청간디학교 학생들 4명이 까치쌤과 함께 올라왔다. 현장학습으로 진행하는 평화교육에 아이들이 스스로 소성리현장을 선택하여 오게 되었단다.

오랜만에 옛날 교사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 가르쳤던 학습주제 몇 가지를 간결하게 전해줬다. 오후평화행동을 함께하며 아이들이 들려준 소감이 보람을 느끼게 했다. 유난히 강한 눈빛으로 집중해 준 친구가 가르치는 일의 기쁨을 되살려주었다.

 

[토요일 9.11]

빨간 날, 공휴일은 아침평화행동만 하고나면 쉬는 날. 오늘 아침은 안개가 정말 예쁘게 피어 있었다.

안개가 예쁘게 깔려 있던 토요일 아침. 마을회관 뒤쪽에서 웃말과 기지 쪽을 바라본 풍경.

평화행동에 앞서 토요평화모임을 준비하며 앰프를 준비하는데, 슈퍼 형수님이 새벽에 트럭들이 올라간 것같다고 하신다.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는데, 아침평화행동을 마치고 내려왔는데 어제 뒤늦게 올라가던 공사인부들이 오늘도 올라가고 있다. 급히 뒤쫓아가 정문앞에서 붙잡고 물어보았다. 전기공사 파트의 일용직 노동자들인데, 그날그날 일거리 있다하면 달려가는 사람들인데 토요일, 일요일 가릴 것 있냐면서 일 있다고 들어오라 해서 올라간단다. 일하는 곳이 어디냐, 건물 안이냐 밖이냐 물으니 건물밖인데 어디인지는 자신들도 모른단다. 전선을 까는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제초작업과 가로수 가지치기 작업으로 훼손된 현수막들

별 수 없이 내려오는 중에 목요일 금요일 장병들이 했던 제초작업과 가지치기 작업 중에 훼손된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휴일의 공사강행으로 열받는 중에 분노게이지가 더욱 치솟았다.

기도소로 내려와 CCTV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서울 일정을 소화중인 강교무에게 물어 상황을 전하고 CCTV를 확인했다. 과연 새벽 3시반쯤 어제 돌아갔던 트럭과 함께 윙카 1대, 지게차 1대, 판넬형 목자재 트럭 1대 등이 지휘차량인지 공사인부들인지 승용차 3대, 모두 7대의 차량이 기지로 들어갔다.

이젠 화, 목 두 번에 걸친 국가폭력도 모자라, 공휴일 새벽에 도둑처럼 기습하다니!!! 

도저히 그냥 묵과해선 안 될 일이었다. 

다시 절개지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면서 드나드는 모든 차량을 공격하겠다고 선포를 해야할까? 이제까지 지켜왔던 비폭력저항의 원칙을 이제 포기할 때가 된 것인가? 별별 상상을 하다가, 달마산 정상에 올라가 도대체 오늘같은 날 무슨 공사를 하는지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U자형 임도가 좋을까, 정상이 좋을까, 어느 곳도 실제 기지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엿보기는 힘들다. 심지어 안에서 공사하는 노동자들도 자기가 일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얘기가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느라 조금 길게 휴가를 보내는 영재씨에게 쌍안경을 빌려서 산으로 올라갔다.

U자형 임도를 따라 먼저 올라갔다. 발사대가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었는데, 그늘막으로 차단된 데다 나뭇잎들마저 울창해서 낙엽이 모두 떨어진 계절이 아니면 안을 볼 수 없는데, 그래도 혹시 경계초소 근처에서는 볼 수 있을까 기대하고 올라갔다. 그러나 참담한 실패. 우거진 풀과 나무들로 사라진 길을 뚫느라 공연히 기운만 낭비했다.

달마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그 가파른 길을 올라갈 때는 기진맥진. 소나무 뿌리에 돋은 버섯들을 혹시 송이버섯인가 궁금해하며 천천히 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하니 13:30쯤 되었다. 사과와 건빵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기지 안을 쌍안경으로 살폈다. U자형 임도쪽에서는 공사장비들 작동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었는데, 시간이 오후로 접어들어서인지 기지 안에서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결국 아무 소득 없이 내려오는 길은 얼마나 맥이 빠졌는지.

정상에서 마을풍경을 내려다보는데, 오히려 CP건물(옛 캐디숙소)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달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소성리

무슨 버섯인지도 모르고 소나무 뿌리 뻗어나간 곳에서 올라오는 버섯 몇 개를 캐고 내려왔다.

내려와보니 기도소 컨테이너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문제가 무엇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 배선공사를 했던 박실장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청했다. 마을에 초상이 났는데 봉분을 조성할 포크레인이 책방옆길로 들어가면서 전선을 끊고 지나갔다는 게 확인되었다.  

모처럼의 등산으로 후줄근한 몸을 씻으러 스파에 다녀와야겠는데, 오늘 하루는 왜 이리 고단한가?

 

[일요일 9.12]

주일예배를 대신하여 드리는 아침평화기도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첫번째 수난 예고 장면이었다. 

어제 새벽 도둑처럼 기습반입한 공사자재들 때문에 떠오른 생각들, 절개지 위 고공농성을 하면서 드나드는 차량을 공격하거나 고공농성을 보위하기 위한 자위 수단에 대한 생각들을 토로하며, 십자가 수난에 격렬히 반대하는 베드로, 자기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다. 대중들과 함께하는 투쟁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기도회를 마치고 평화행동을 위해 정문앞에 이르렀는데, 우리 뒤를 따라 차량행렬이 이어졌다.

기지를 통과해서 벌초 및 성묘하러 온 옛날 진밭 사람들과 봉정 어르신 가족들이었다. 평화행동하러 온 우리 때문에 국방부는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늘 해오던 평화행동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봉정어르신네 성묘행렬에 김선명교무님이 동행하여 벌초 후에 제례를 인도할 예정이었기에, 오늘의 평화행동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교무님이 다녀오신 이야기를 밴드에 올려주셨는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날마다 평화행동과 함께 진행했던 국가보안법 철폐 피켓팅도 쉬게 되어 아쉬웠다.

내려오는 길 현철이가 잠들어 있는 곳은 벌초를 하지 않아도 될른지 살펴보았다. 사진액자만 바로 세우면 문제 없을 듯해서 그냥 내려왔다. 

그 와중에 오늘도 공사차량 하나가 올라왔다. 봉정어르신네 차량 뒤에 따라붙어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세우고 "너네는 일요일도 없냐"고 물었더니, 한국군 초소 위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덮치면서 전선이 끊어지고 위험하다는 연락을 받고 긴급 보수하러 들어간다고 한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강행되는 사드 기지 공사. 새벽에 도둑처럼 기습 반입한 공사자재들. 요즘 극성을 부리고 있는 가을모기들 같은 놈들이다. 

오늘 뒤늦게 확인한 종합상황실 페북에 올려진 어제의 글을 옮겨두며 주말의 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