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등급

스스로 물러난 도덕 선생님의 못다한 이야기

웰다잉이란 게 무엇입니까 / 새마갈노 소성리편지 03(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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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백/소성리 사드저지기독교현장기도소

2020. 1. 20.

지난 11월 13일 수요일은 소성리에서 별이 된 청년 조현철의 1주기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전태일 열사 기일에 세상을 떠났지요. 그 황망했던 1주일의 기억을 떠올리며 죽음에 관한 묵상을 했습니다. 이곳 성주 효병원의 원장으로 제 건강상담을 해주시는 노태맹님의 에세이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을 읽었습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정문앞 평화행동 후에 이어지는 1인시위(피켓팅)는 그야말로 독서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10일 일요일부터 현철이를 기억하는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원불교 원영상교무님은 올 때마다 평화행동을 마치면 "현철아!" 크게 외쳐 부르는 게 일과였고요, 서울에서 내려오는 동물보호 활동가 김태령님은 월요일 아침 미리 꽃다발을 수목장한 나무 아래 올려주었습니다.


수요일 수요집회와 김천집회는 현철이 추모집회로 치렀습니다. 현철이의 부모님이 내려와서 함께해 주셨고, 현철이 아버님은 현철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장례를 마치고 들려주었던 소회를 다시 들려주었습니다. "현철이가 나가서 어떻게 지냈는지 몰랐는데, 장례를 치르며 끝까지 진정으로 슬퍼하며 함께하는 분들을 보고 현철이가 얼마나 훌륭한 분들과 함께했는지, 또 스스로 훌륭하게 살다 갔는지 알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후평화행동에서는 "전쟁무기 불법사드 아버지가 뽑아낸다!" 외치기도 하셨습니다.


수요집회에서 백창욱목사님은 우연처럼 반복된 역사를 기억하며 현철이의 죽음과 전태일열사의 죽음이 같은 날이란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민중 전태일이 노동해방을 위해 자기 몸을 바쳐서 모든 노동자들의 푯대가 된 것처럼, 역시 민중 조현철은 소성리 지킴이로 사드철회투쟁에 매진하다가 이 땅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자기 몸을 바쳤다. 민중의 바람은 우연 같아 보이는 필연으로 현실이 되고 진보를 이룬다." 현철이 부모님의 고백 - 가슴에 자식을 묻고도 그 장례식장에서 하늘나라를 경험했다는 고백을 되새기면서, 어쩌면 현철이의 죽음은 현철이 부모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였습니다. 


목요일에는 아침평화행동 후에 박형선교무님의 인도로 수목장 앞에서 추모제를 지냈습니다. 원불교의 성가와 독경 소리가 참 듣기 좋았습니다.


수목장한 곳에 꽃을 들고 찾아가는 발걸음은 토요일에도 이어졌고, 토요문화제에서는 전태일을 기억하며 영상과 시낭송과 노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다시 한 번 현철이를 기억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소성리의 가수 정진석님은 현철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져가는 것을 느낀다며  현철이를 떠올리며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고 고백했습니다.


노태맹님은 노인요양병원에서 숱한 죽음을 바라보면서 생각한 것들을 글로 풀어내며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죽음을 스스로 이해하지도 완성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해되고 완성되는 것은 오직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이다. 현재의 내가 앞서 죽어간 누군가를 기억하면서 그의 삶과 죽음을 완성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이해하고 완성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참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그들에 대해 우리는 무관심하고 방관하고 있다. 우리는 최소한 그들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 아픔과 슬픔에 공감해야 한다. 그것은 윤리적 요청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 삶과 죽음의 거처를 찾는 존재론적인 탐구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몇 년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던져봅니다. "웰다잉이란 게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죽음은 웰다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겁니까?"

명퇴 후에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면서 웰다잉에 대해 잠깐 공부했던 시절, 그때 함께 봉사하던 분들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현철이의 죽음, 전태일의 죽음, 수많은 분신열사들과 고난의 세월속에 투쟁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병을 얻어 병상에서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구구팔팔이삼사를 욕망하는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주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섬기는 이들은 예수의 부활을 참으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진정 웰다잉이란 무엇일까요?


부활이 약속된 죽음, 누군가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삶이 참된 웰다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처 : 새마갈노(http://www.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