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인천

부시맨 2010. 1. 2. 20:14

  인천을 아끼시는- 그루터기 -님의 글입니다

 

하인천의 추억 (2부)

 

 

하늘이 무척 파랗다.자유공원에서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오는 바람이 매우 상쾌하다.

어느새 옛 공화춘 뒷골목 4층짜리 건물앞에 서 있다.건물 옆으로 살짝 돌아서니 고려다방이

나를 반긴다.우리 사무실의 모닝커피 전문 배달점이다.안을 들여다 보니 지금의 쟈이안트

강 마담이 앳 된 미스 강의 모습으로 손님과 정겹게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참 예쁘다.

미스 강 덕분에 고려다방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인천역앞 하인천 다방의 김 마담이

한탄을 할만도 하다.

 

고려다방 바로 앞에는 항상 굶주린 총각의 배를 채워주던 인천분식이 있다.

김 형태씨가 하는 가게인데 아줌마가 무척이나 선한인상의 착하신 분이다.딸이 둘 있는데

동생인 연옥이의 이름만 생각난다. 두 따님 다 아줌마를 닮아서 귀염성 있고 착하게 생긴게

매력이였다. 이집은 내가 짜장면을 시키면 보통 3인분 정도를 담아주곤 했는데, 그걸 아귀처럼

다 먹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간혹 사무실로 배달을 시키곤 했는데, 나의 짜장면 먹는

모습을 보고는 지금의 내 마누라는  "저걸 어떻게 다 먹어? 대단하다 !! 엄청나네!? "하면서

속으로 감탄을 했다고 이즈음에서야 얘기한다.

 

인천분식에서 큰길로 나오다 왼쪽으로는 단골집이던, 새마을집,실비집 등 몇몇 대폿집들이

몰려있는 좁은 골목이 있다.특히 새마을집은 숙직을 하며 술과 안주를 배달을 시켜 먹곤 하던

정겨운 집이다 골목길

초입의 대로 변에는 화신제과가 있다. 최영성씨가 하는 제과점으로 동네 빵집 수준밖에는

안되었지만 동생이 단역 탈렌트로 종종 T.V에 얼굴을 비추다가 요즘은 아예 얼굴을 안 비친다.

최영성씨는 나와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는데 내가 다른곳으로 발령받고 근무하는 새에 가게를

처분하고 어디론가 연락없이 사라졌다.길 건너편에는 전 치과가 있다. 아직도 있다. 참으로 오래

운영하는 편이다.내가 근무할때 40이 넘은 연세였으니 지금은칠순이 다 되어갈텐데...

 

조금 왼쪽 언덕배기에는 옛 영국 영사관자리였던 '파라다이스호텔' 이 떡하니 자리잡고있다.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니만큼 옛 '올림포스 호텔' 이란 명칭이 훨씬 잘 어울려 보였는데....

오른쪽에는 경인선의 종착역인 인천역이 초라하게 자리잡고있다.수십년이 지나도 별반 달라진

모습이 없다. 인천역 뒤쪽에는 동일아파트 양편으로 원주민들은 싫어하는 단어인 "뱀골목"과 "

새우젓골목" 이 자리잡고있다."  뱀 골목 " 은 골목자체가 좁고 협소하며 곱게 펴지지 않고 

구불구불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 새우젓 골목 "은 동일아파트 터가 예전 " 인천어시장 "

자리였을때 새우젓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연유로 지금까지 불리워지고 있다.

 

 새우젓 골목옆에는 횡성식당이라는 오징어찌개 식당이 매우 성업중이다. 8부두 노동자들이

즐겨찾던 식당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 두명씩

찾더니 이제는 노동자들이 오전11시부터 자리 잡기에도 버거운 상황을 맞고있다. 한때 동생이

국제여객터미널 앞쪽에 분점을 내기도 했었으나 형의 솜씨를  이가지는 못했던지 곧 문을 닫고

말았다.

 

대한제분 양쪽 옆길로 쭈욱 가다보면 왼쪽에는 반짝 어시장이 서는," 북성부두"가 있고,

오른쪽에는 퇴락한 " 만석부두 "가 자리잡고있다. 추억을 되새기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지만 아직도 이쪽에 부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인천사람들이 더 많은것 같아 안타까운

맘이 많이 든다.

 

다시 인천역앞으로 가봐야할 것 같다.

인천역 건너편에는 지금 시뻘건 패루가 세워져있다.중국의 어느시가 인천 중구청과의 우호선린

기념으로  중국인촌을 제대로 건설해달라는 일종의 청탁으로 세워진 무상증여패루이다.

다른 패루들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패루라서 전혀 맘에 안든다.

강제로 억지로 만드는 중국인 거리도 정말 맘에 안든다. 자치단체장의 욕심과 문화적,역사적

몰이해가 불러온 기형적 거리이다. 시간과 예산과 제대로된 계획과 애뜻한 지역사랑을 할줄아는

전문가와 그 곳에 살고있는 중국인들과 힘을 합쳐 애정어린 손길로 추진해도 쉽지 않은일인데...

 

패루를 들어서면서 왼편에 "하인천이발관"이 있었다. "엄광식"씨가 운영하던 이발관으로

사회 초년생이였던 나는 그에게 놀림을 많이 당했다. 그는 짖굿게도 총각인 내게 안마하는

아가씨를 붙여놓고 벌개지는 내 얼굴을 보며 키득거리는가 하면,면도하는 아가씨까지 동원해서

장난을 치곤했다. 10년전인가 공공장소에서 만난 그는 어엿한 여행사 사장님이 되어있었고

풍채도 좋아졌다. 하지만 짖굿음만은 여전했다. "ㅇㅇ"씨 그때 기분 좋았지... 라고 놀리는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그도 그렇게 나이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신일아파트로 돌아가야 할때가 된것같다.

인천역 앞길로 송월동 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미스 강 때문에 장사가 잘 되는 "고려다방"을

부러워하던 " 하인천다방" 이 움푹한 골목 1층에 자리잡고있고, 그 옆쪽에는, 언젠가부터

돼지갈비를 푸짐하게 주던 우리 김 대복씨의  " 대복집 "이 구수한 갈비냄새를 피우며 지나는

손님을 유혹하고있다. 부부가 푸짐하고 후덕스럽게 생겨서인지 손님들이 항상 그득하다.

그옆으로 조금더 가다보면 17사단 시절 군종병으로 있던 황 병장 사모님이 운영하는

 " 선정미용실 "이 있다.  사역병으로 차출 돼 사단 사찰에 연꽃을 만드는  사역중 친해진

황 병장님은 나보다 무려 8살이나 위였다. 나와의 만남뒤 2개월만에 제대하고  (주)바른손 의

부장으로 근무하던 황 병장님은 몇 년뒤 암으로 투병하다 그만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오른쪽 골목으로 오르다보면 북성교회가 있고, 교회 옆 막다른 골목길 끝에는 천순길씨가

살고 있다. 착하고 순하고 맘씨 좋았던 이웃집 아저씨 같은 천씨 아저씨와 , 교회 앞쪽에

멋진 정원을 가꾸며 배를 몇 척 부리시던 조0 0씨... 어떤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양복차림에  배를 내밀고 머리는 항상 포마드로 단정하게 빗어넘기며 허허대던 김 귀복씨!

두 노부부가 길 모퉁이 구멍가게를 하며 오순도순 살며,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시던 " 강 신태"

할아버지 부부! 남북어부 가족 업무때문에 한달에 한번씩 찾아뵙던 인연으로 친해지게된

김씨 아주머니등!...모두 하인천에서 연을 맺고 하인천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생활하고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다.

 

이제 하인천을 떠난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새삼스럽게 우리 방울이 (치와와)를 데려다

길렀던 신일아파트 박성남씨와의 소중한 인연을 바탕으로 추억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졌다.

 

                                                     - 그루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