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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몽고 침입으로 사라진,신라 호국 사찰 - 황룡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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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답사기

2012. 12. 16.

 

황룡사지(皇龍寺址)

 

사적 제 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는 우선 시내 중심가 평지에 위치한 큰 규모에 놀란다.

포항에서 경주로 접어 들어 고속도로 IC 우회도로를 가다

보문단지들어 가는 입구 다리를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엄청 큰 터에

노란잔디가 깔린 황룡사지를 계속 보면서 지나는데 규모가 엄청나다. 

하기사 신라의 호국사찰이 아니였던가?  

 

 

 

남쪽으로는 경주 남산이 길게 누워 있고,서쪽으론 안압지.반월성,계림등 경주 동부사적지가,

북쪽으론 분황사가 이웃해 있고, 동쪽으로는 진평왕릉,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 낭산이 있다.

 

 

동금당지

멀리 신라의 聖山,남산이 雲霧에 쌓여 있다. 

 

 

지금도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황룡사지

가람배치도에서 보듯 당시에는 엄청난 규모였던 것 같다.

그리고 신라의 중심였고 왕실의 사찰였던 것 같다.

 몇 해 전에 인기리에 종영된 선덕여왕드라마나

지금 방영되고 있는 '대왕의 꿈(태종무열왕)'에서도 나오는

황룡사는 왕실의 사찰로써 원광법사(신라 화랑도 세속오계로 유명)가

나온다.특히 황룡사는 선덕여왕 때 세운 구층목탑이 대단한 목탑였던 것 같은데

저 못된 몽고놈들이 쳐들어 와 불태웠다고 하니...죽일놈들!!!

문화재는 왜 태우노~~~

아직도 복원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하기는 한가 보다

몇 일 전에 얼론 보도에 의하면 어느 독지가가 구층석탑을

1/10 크기 로 복원하는데 현재 2층까지만 되었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네요.

전부 나무로 깍고 끼워 맞추고 고증을 거치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네요.

하여튼 성원을 보냅니다.

복받어

    

 

 

 

皇龍寺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왕명으로 창건하였으며

 진흥왕 35년(574)에 신라 최대 불상인 장육존상(丈六尊像)을 모셨다.

그리고 선덕여왕 14년(645)에는 높이가 약 80m인 동양 최고의 구층목탑(九層木塔)이

백제의 기술자인 아비지(阿非知)에 의해 완성되어 신라 호국사찰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700여년간 이어온 황룡사의 법등이 끊기고,

그 유지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었다... 이하 생략.

<현지 안내문>

 

 

 

 

 금당지(金堂址)

사찰의 중심건물이며,본존불을 모시는 곳이 金堂이다.

 

 

 

금당지 안에 44개의 초석이 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네요.

 

 

 

장육존상과 협시불을 모신 불대좌석이 남아 있다.

 

 

 

 

대좌석 크기로 보아 대단한 불상을 모셨던 것 같다.

 

 

대불좌석

 

 

 

 

그 유명한 목탑지(황룡사구층석탑)

초석의 크기와 개수(64개)로 구층목탑의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네요.

 

 

 

 

 

황룡사 9층목탑은 금당 앞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동금당지

금당 좌,우에 동금당지,서금당지가 있었습니다.

 

 

 

강단지

금당 뒤에 위치해 있습니다.

꽤나 규모가 큽니다.강단지가 자세히 뭔지는 몰라도

지금의 만세루 같은 것이 아니 였을까요?

 

 

 

 

 

황룡사지 부제들...

 

금당지 남쪽 밖에 모아 놓았는데 엄청난 크기의 부제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이랄까? 저 까마귀는 역사를 알까?

무리지어 날아 다니는데 더욱 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자세히 보면 온갖 모양의 문양이 즐비 합니다.

쓰임의 용도는 몰라도 세월이 물씬 묻어나는

부제들입니다.

언재나 다시 복원된 황룡사를 볼 수 있을까요?

아마 우리 시대는 어렵지 않을까...

워낙 덩치가 큰 사찰이다 보니

복원은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네요

왜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 갈까요?

나쁜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추구 하는 것이 겠지요...

영원한 평화를~

우리 인류가 살아 가야할 길은

영원한 평화입니다.

항룡사지를 보고 배웁니다.

 

 

 

 

 

 

 

 

황룡사지 돌아보기 

 

 

황룡사지를 한바퀴 도는데 까마귀떼를 만났습니다.

까마귀떼가 스산한 느낌을 줍니다.그렇잖아도 황량하고 스산한 느낌을 주는

寺址인데 말입니다.

 

 

 

저 까마귀는 알고 있을까?

황룡사의 興亡를~~~

 

 

경주에 까마귀가 많다고 하드니 정말로

엄청난 규모의 까마귀 떼가 아닌가 ?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부터 까마귀를 보면 재수 없다고 침을 뺐으면서 테~에~, 테~에~

하든 기억에 음산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 까마귀가 한 때는 무슨 정력에 좋다고하여 한마리에

몇 십만원 한다고 하여 씨가 마르는가 싶드니

이게 왠일인가? 이제는 효험이 없는가 보네~~

경주에 까마귀가 많다드니~

정말이네요.

 

 

 

西門 쪽 모습    

 

 


 

서문 쪽 너른 터에 석탑의 일부가 나딩굴고~~~

 

 

 

 

 

 

 

 

 

 

 

 

 

 

나딩굴고 있는 한개의 지붕돌

그리고 몸돌에 1층지붕돌이 있는 1층(?)석탑

 

1층면에 정교하게 조각된 인왕상은 대단한 걸작(?)입니다.

8세기경에 유행한 조각 기법인가 싶네요.

얼마전에 본 장항리사지 5층석탑에서 본

인왕상과 매우 흡사합니다.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소재지 : 경주시 구황동 315~2

 

옛날 절에서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았던 깃대를 당간이라고 하는데,

이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양 옆에 세운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芬皇寺) 바로 남쪽에 있는데. 통일 신라시대의 것으로

높이는 360cm이다. 양 기둥 사이에는 동쪽으로 향한 돌거북이가 있는데

당간의 받침돌로 돌 거북이를 배치한 것은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입니다.

이 당간지주는 황룡사 것이 아니고 분황사의 것이라고 하네요.

 

 

 

당간받침돌 돌거북이 모양

 


 

 

 


 

분황사

황룡사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2012,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