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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전 구룡포산악회 첫 산행지/팔공산 은해사 건들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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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장의 사진

2019. 9. 18.

 

 

팔공산 건들바위

 

1982년 6월 12일 구룡포산악회 창립발기인 대회 총회를 마치고

그해 7월 셋째주 일요일(지금도 셋째주 일요일이 정기산행일이다) 첫 산행을 팔공산 건들바위로 갔었다.

아마도 영천 은해사,중암암을 걸처 능선재로 해서 관봉까지가 목표였을 낀데 산행 초보들이고 여름이라

힘들어서 능선재도 못 오르고 건들바위에서 정상식을 하는 모습이다.지금 생각해보면

건들바위는 중암암 위 만년송이 있고 옆에 삼인암이 있는 바위群이 아닌가 싶다.

 

사진을 보면 4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어제일같이 생생하게 다가 온다.

정상식이라고 애국가를 진지하게 부르는 모습이 자못 엄숙하다.이때는

길가다가도 해질무렵에 국기하강식을 할 때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멈춰서서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제창하였지요,


 

맨 앞 일행들 앞에 선 분이 이춘근 선배님이시다.

이 때 구룡포교보생명보험소장으로 발령나서 포항에서 들어 오셨는데 포항에서

이미 산악활동(영포산악회)을 왕성하게 하셔서 그런지 산악불모지 구룡포에서

뜻있는 인사들을 모시고 회원확충을 하면서 산악회조직을 해 나가셨다.

제가 기억하기로 이 때 하나둘 모인 인사들로 송석무(이하 존칭 생략),김해환(수협),정창용(아케이트),

정대용(일광사진),장철복(척양식품),故안원백,얼마전에 작고하신 최덕유(한남체인),장화익(두부제조)

하규태(동화냉동),이춘근(보험소장),김대원,김성룡(20세기양복),김순근(수협),김우영(한독약국),

이상길(신창지업),허달수,이규환(동원식육),장종만,안염택,안영암 등등 30여 명이 참여했었는데

나도 창립실무팀으로 참여하면서 송석무,이춘근,장종만과 함께 일을 했었었다.드디어

1982년 6월 12일 구룡포산악회 창립발기인대회를 종점 교보생명보험 2층(최덕유집)에서

거행하였다.초대회장에 송석무,부회장 이춘근,총무이사 장종만,기술이사 김순근 등

신임 임원진들을 선출하고 회칙을 통과시켜 정식 출범을 하게 된다.

이 때 아래 사진과 같은 송석무회장 명의의 회원패를 참여 전 회원들이 받았었다.

 

그리고 한달 후 창립산행으로 간 곳이 바로 팔공산 건들바위였다.

구룡포산악회 최초 산행인 것이다.사진을 보니 우선 많이 젊었다는 느낌이지요

그도 그럴수밖에,내나이가 29세였으니까~만 37년 전 사진입니다.

세월을 느끼는 중요한 것은 그 때 산행참여 20여명 중에 현재까지 회원은 4명이네요

그 때 창립회원들은 세월가면서 고인이 되거나 본회를 떠나고 현재까지

6명이 남아 활동하고 있답니다.세월이 流水같다드니~세월이 참 빠르게 흘렸네요.

래도 어제일같이 선명하게 남아 있답니다.모든일들이~

 

산악회 창립 후 

나는 여러 단체에서 콜(회원입회)을 많이 받았지만 구룡포산악회 하나로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자! 는 각오로 지금껏 한눈 안팔고 달려 왔다.지금 생각해보니 참 잘한 것 같다.

 여기저기 여러 단체에 참여 했었드라면 지금껏 구룡포산악회에 남아 있었을까?의문이 든다.솔직히, 

 

처음

산악회에 몸을 담게된 계기가 첫째 이춘근선배님의 권유였다.

그 전에는 솔직히 취미할동은 나에게 호사스러운 것이였다.

장래도 결혼문제도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때 였으니까 산악회활동은 나에게 언감생심였다.

하지만 형님의 적극적인 권유와 송석무초대회장,종만형님의 함께하자는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고,

둘째로 무엇보다도 산을 좋아 하는 DNA가 몸 안 켠에 있었지 않았나 싶었고 그래,사람이 태어 났드라고

죽기전에 우리나라 금수강산은 다 밟아 보고 죽어야 하지 않나?그럴려면 산악회가 최고지~하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답니다.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인맥을 형성하면서 지방에 살아 갈려면 단체에 하나 정도는

몸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구룡포산악회초대회장 송석무 이름으로 발행된 최초 회원패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이름으로 회원패는

내가 1985년 대구 연맹사무실을 방문하여

가입한 후 부터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