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조선시대, 궁궐 내 계급 서열의 차이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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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테마여행]/신의 정원, 조선왕릉

2012. 8. 22.

조선시대, 신분제도에 의한 차이 알아보기

-궁궐 내 사람의 신분과 계급의 차이-

 

 

지난 포스팅에서 건물과 묘호, 믕호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궁궐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신분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그런데, 궁궐의 여인들에 대한 신분차이가 어지간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네요.

그래서 신분의 차이보다는

높고 낮은 계급을 부르는 호칭을 위주로 서술했습니다.

 

전회에 말씀드린대로,

 

정확히 들어맞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아~,..!" 정도면 되겠습니다.

 

 

화성행행도팔첩병(華城行幸圖八疊屛, 보물 제1430호, 삼성리움박물관 소장)

정조19년(1795년) 윤2월9일부터 16일까지 8일동안,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아 혜경궁홍씨와 현륭원으로 행차한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1.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 2.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3.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 4.낙남헌양로도(洛南軒養老圖), 5.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6.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 7.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8.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듯 조선시대는 신분사회라는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후궁과 상궁들의 신분계급은 복잡한 신분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군(大君)'과 '군(君)', '공주(公主)'와 '옹주(翁主)'의 차이-

조선시대에서 임금의 아들을 호칭으로 '대군(大君)''군(君)'이 있습니다.

그리고 딸은 '공주(公主)''옹주(翁主)'가 있지요. 우선 임금의 딸을 먼저 알고 갑니다. '공주(公主)'는 왕의 정비 또는 계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말합니다. '옹주(翁主)'는 왕과 후궁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렇듯 딸의 경우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그런데 아들의 경우는 조금은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왕과 정비, 또는 계비 사이에서 태어난 '적출자(嫡出子 : 적통에서 태어난 왕자)'를 '대군(大君)'이라 하며, 왕과 후궁사이에서 태어난 서출자(庶出子: 왕의 비를 제외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왕자)를 '군(君)'이라고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적출자라 하더라도 모두 대군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즉, 대군이란 왕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작호(爵號)라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쉽습니다.

적출자라 할지라도 대군으로의 책봉을 받아야 대군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적출자라 하더라도 대군으로의 책봉을 받지 못한다면 서출자와 마찬가지로 군으로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임금으로 가는 과정의 대군(大君)이라 하지만, 대군의 과정 없이 바로 왕위에 오른 임금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대군에 책봉되기 전, '세자(世子:왕위에 오를 왕의 아들)', 또는 '세손(世孫:왕위에 오를 왕의 손자)', '세제(世弟:왕위에 오를 왕의 동생이나 형)'등으로 책봉 되어 이미 후사로서 정해버리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군의 책봉과정없이 바로 왕으로 즉위하는 경우로 대군이라는 호칭이 없습니다. 

5대왕 문종, 9대왕 성종, 10대왕 연산군, 12대왕 인종, 20대왕 경종의 경우가 대군의 과정 없이 바로 즉위한 경우로 이들에게는 대군의 호칭이 없습니다. 연산군의 경우는 폐출된 군왕이므로 '군(君)'으로 내려졌지만, 실제 대군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원래의 군(君)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또한 그와는 반대로 '군(君)'이었으나 '대군(大君)'에 봉해진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서열상 왕이었으나 그러하지 못한 경우 예의적 차원에서 책봉한 경우입니다. 예로 9대왕 성종의 형 '월산대군(月山大君)'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경우에는 '**세자'로 남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군(君)'은 왕의 모든 왕자에게 내려지며, '대군(大君)'은 왕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책봉 과정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대원군(大院君)'과 '부원군(府院君)', '대비(大妃)'와 '부부인(府夫人)'의 차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름은 '석파 이하응(石坡 李昰應)'으로 대원군 중 유일하게 생존하여 작호를 받은 인물입니다.

26대왕 고종의 생부이자, 조선 말 10년간의 집권을 통하여 왕권강화와 내적개혁을 꿈꿨으며, 서구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하였지요. 그러나 모두 일시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으로도 불립니다. 

  

 

 

재위 중인 임금들 중 후사 없이 승하할 경우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정해진 임금의 아버지(生父)를 부르는 호칭을 '군(君)'에서 추존(追尊)하게 되어 '대원군(大院君)'이 됩니다. 

대원군이라는 말은 조선14대왕 선조대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선조 자신이 중종의 서손이자, 명종의 이복조카로 서자출신의 최초의 임금이었던 것이지요. 이로 인해 선조의 생부 '덕흥군(德興君)'을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으로 추존하면서 시작 되었습니다.

'대원군(大院君)'의 호칭을 받은 사람은 모두 4사람으로 14대왕 인조의 생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과 16대왕 인조의 생부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 이 후 원종元宗으로 추존), 25대왕 철종의 생부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이며,  26대왕 고종의 생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역대 대원군 중 유일하게 살아서 대원군(大院君)의 작호를 받은 인물이며, 그 외 3사람은 사후 작호를 받았습니다.

 

'대비(大妃)'는 왕의 어머니를 말합니다. 그러나 생모이지만 대비로 오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자, 서손인경우 왕비, 또는 계비의 아들로 입적이 되는경우가 있는데, 이럴경우는 대비(大妃)의 작호를 받을 수 없는 경우이지요. 왕의 부인을 '왕비(王妃)', 어머니를 '대비(大妃)', 왕의 할머니를 '왕대비(王大妃)', 왕의 증조할머니를 '대왕대비(大王大妃)'라고 합니다.              

 

'부원군(府院君)'은 왕의 정비, 계비의 아버지(生父)를 말합니다. 즉, 왕의 장인이지요.

원래의 부원군이란, 정1품의 작호로 공신에게 내어주는 작호이지만 왕비, 계비등 임금의 장인에게 내려주기도 하였습니다. 보통 본관을 앞에 두어 '**부원군'이라는 식으로 작호를 주게 됩니다.

그리고 '부부인(府夫人)'이란, 왕비의 어머니를 말합니다. 그러나 부부인(府夫人)의 호칭은 왕비, 계비의 어머니(生母)에게만 쓰는 것이 아니고 '대군(大君)의 부인'도 부부인으로 불립니다. 이 역시 자신의 본관을 앞에 두고 '**부부인'이라 합니다.

 

 

조선시대 궁녀

 

-여성의 계급을 말하는 '외명부(外命婦)'와 '내명부(內命婦)'의 차이-

조선시대 궁궐안에서 생활을 하거나, 출, 퇴근을 통하여 궁궐에서 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여성의 계급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다양하게 변화되었기에 정확한 명칭을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세종대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외명부와 내명부 제도에 대한 원형이 나타나 있어 그에 따른 내용과 그 외로 나타난 명칭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소 오류가 있을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그냥 참고만 하자는 것입니다.^^

남성들과 달리 무척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조선 궁궐의 여성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관직을 가진 남편의 부인, 또는 딸을 이르는 '외명부(外命婦)'와 일반적으로 '후궁(後宮)''궁녀(宮女)'로 불리는 여인들은 '내명부(內命婦)'에 속합니다. 

  

-외명부(外命婦) 품계(品階)

일반적으로 왕족종친의 처와 딸, 그리고 관리들의 처를 말하는 것으로 남편, 아버지의 벼슬에 따라 작위를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선 정1품의 품계에는 종친 계열의 공주(公主), 옹주(翁主), 왕비의 생모와 대군의 부인(부부인府夫人), 군부인(君夫人)등이 '정1품(正一品)'에 속하며,

문무(文武)관리의 아내로 남편의 품계에 따라 작호가 내려지는데,  

정,종1품(正,從一品) : 정경부인(貞敬夫人), 정숙부인(貞淑夫人)

정,종2품(正,從二品) : 정부인(貞夫人)

정3품(정삼품) : 숙부인(淑夫人)

종3품(종삼품) : 숙인(淑人)

4품(사품) : 영인(令人)

5품(오품) : 공인(恭人)

6품(육품) : 선인(宣人)

7품(칠품) : 안인(安人)

8품(팔품) : 단인(端人)

9품(구품) : 유인(孺人) 입니다.

단, 남편의 품계가 사라지면 부인의 작호도 사라졌으며, 정처(靖妻)만을 인정하였기에 첩이나 후처에게는 봉작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재가(再嫁)한 여인은 봉작하지 않았으며, 작호를 가지고 있었다면 박탈하엿습니다.

 

-내명부(內命婦)의 품위(品位)

쉽게 '후궁(後宮)''궁녀(宮女)'로 구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후궁도 궁녀이지만 구분하기 쉽게 하자는 것입니다. 내명부의 품위는 1품(一品)부터 9품(九品)으로 나뉘어 지는데, 그 중 1품(一品)에서 4품(四品)까지가 임금의 총애를 받아 승은을 입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사는 후궁들이며, 그 외가 상궁등의 궁녀들입니다. 그 외 품위를 받지 못한 궁녀들도 있습니다. 

후궁의 품위(品位)

정1품(正一品) : 빈(嬪), 희빈(熙嬪), 은빈(恩嬪), 명빈(明嬪), 정빈(貞嬪), 경빈(敬嬪), 혜빈(惠嬪), 홍빈(弘嬪), 숙빈(淑嬪), 의빈(懿嬪), 창빈(昌嬪)

종1품(從一品) : 귀인(貴人)

정2품(正二品) : 소의(昭儀)

종2품(從二品) : 숙의(淑儀), 양제(良)

정3품(正三品) : 소용(昭容)

종3품(從三品) : 숙용(淑容), 양원(良媛)

정4품(正四品) : 소원(昭媛)

종4품(從四品) : 숙원(淑媛), 승휘(承徽) 까지가 후궁으로 내관(內官)으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정5품(正五品)부터 '궁관(宮官)'이라 하여 상궁들의 직책이 나뉘어 집니다. 상궁들은 대부분 양반과 천민사이의 중간계급인 양인(良人)의 신분이었으며, 기본적으로 내관과 구분되어 있습니다만, 임금과 동침을 하게 되면 내관으로 승격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인이 된 뒤에도 15년에 걸쳐 궁구러의 법도등을 배우고 나서야 상궁의 자격이 주어지며, 어린 나이에 입궁하였다 해도 최소 35세가 넘어야 상궁에 오를수 있었습니다.  

상궁의 가장 높은 품위인 '정5품(正五品)'에는,  

'큰방상궁'으로 불리는 '제조상궁(提調尙宮)'으로 중전과 재비를 직접 대면하는 영향력이 있는 자리로 후궁과 승은상궁을 제외한 궁녀들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리고 왕의 재산과 내전의 금고를 관리하던 '부제조상궁(副提調尙宮=아랫고상궁阿里庫尙宮)'이 있으며, 왕과 왕비, 대비, 후궁등을 옆에서 직접 모시는 '대령상궁(待令尙宮=지밀상궁至密尙宮)'과 대령상궁을 보필하는 '시녀상궁(侍女尙宮)', 왕자와 공주의 육아를 맡아 돌보는 '보모상궁(保姆尙宮)'이 있으며, 궁녀들에 대한 관리와 평가하며 상과 벌을 내리는 '감찰상궁(監察尙宮)'등이 있습니다. 그 외 '승은상궁(承恩尙宮)'이 있지요. 말 그대로 임금의 승은을 입은 특별한 케이스의 상궁으로 어리고 이쁘장하여 임금의 눈에 콩깍지를 씌운 아름다운 여인네이겠지요.

결국 상궁의 각각의 품위계급(品位階級)은 왕의 의식주(衣食宙)가 관계합니다. 

지밀(至密) > 침방(針房) > 수방(繡房) > 소주방(燒廚房) > 세수간(洗手間) > 생과방(生果房) > 세답방(洗踏房)의 순(順)이라 보시면 거의 맞는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지밀(至密)'은 왕의 신변보호를 하는 곳으로 왕의 시중은 물론, 내전의 금고관리와 일상의 예의와 절차를 맡고 있습니다. '침방(針房)'과 '수방(繡房)'은 왕이 입을 옷을 만들며 그에 맞는 수를 놓는곳입니다. '소주방(燒廚房)'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으로 구분 되는데, '내소주방(內燒廚房)'은 왕의 평상시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담당하는 곳이며, '외소주방(外燒廚房)'은 궁궐내의 크고 작은 잔치의 음식들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세수간(洗手間)'은 조석으로 왕의 세숫물과 목욕물을 대령하는 곳으로 왕이 사용하는 수건과 식기의 세척을 담당합니다. '생과방(生果房)'은 식사 이외의 간식을 만드는 곳이며, '세답방(洗踏房)'은 왕이 입은 옷의 세탁과 다듬이질등을 담당하며 염색도 맡아 하는 곳입니다.   

 

 

상궁의 품위(品位) 

정5품(正五品) : 상궁(尙宮), 상의(尙儀)
종5품(從五品) : 상복(尙服), 상식(尙食), 소훈(소훈)

정6품(正六品) : 상침(尙寢), 상공(尙功)

종6품(從六品) : 상정(尙正), 상기(尙記), 수규(守閨), 수칙(守則)
정7품(正七品) : 전빈(典賓), 전의(典依), 전선(典膳)

종7품(從七品) : 전설(典設), 전제(典製), 전언(典言), 장찬(掌饌), 장정(掌正)

정8품(正八品) : 전찬(典贊), 전식(典飾), 전약(典藥)
종8품(從八品) : 전등(典燈), 전채(典彩), 전정(典正), 장서(掌書), 장봉(掌縫)
정9품(正九品) : 주궁(奏宮), 주상(奏商), 주각(奏角)
종9품(從九品) : 주변치(奏變徵), 주치(奏徵), 주우(奏羽), 주변궁(奏變宮), 장장(掌藏), 장식(掌食), 장의(掌醫) 등 입니다.

 

그 외에 품위를 받지 못하는 여인들도 있습니다.
-비자 : 각 후궁의 처소 또는 상궁의 살림집에 머물던 하녀로 별궁과 종친등의 사이에 왕래하는 서신을 전달하던 여종입니다.

-무수리: 우물물을 깃거나 각 처소의 청소를 담당하며 궁녀들의 시중을 들던 여종으로 궁궐 유일의 출근과 퇴근을 하였습니다. 이는 원나라의 몽골풍습이 전해진 것으로 고려로 시집온 원나라의 공주를 따라 온 계집종에게 '물을 달라.'면서 부르던 '수사이(水賜伊)'가 굳어져 조선에서 무수리로 굳어진 것입니다. 비록 품위가 없는 여종이었으나, 그 중 숙종의 승은을 입고 영조를 낳은 숙빈최씨(淑嬪崔氏)가 무수리 출신이었습니다.  

-각심이 : 궁녀들의 방에서 살림을 담당하는 여종으로 '방자(房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의녀(醫女) : '어의녀(御醫女)'와 '내의녀(內醫女)'로 구분되어 불리는데, 내의녀 중에서 뛰어난 의녀를 어의녀로 삼았습니다. 궁궐내에서 간단한 진맥이나 침술을 하였고, 궁궐내의 출산때는 조산부를 하였지요. 게다가 궁중잔치가 벌어질 때면 춤을 추는 기생역할도 하여 '약방기생'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여죄수를 다루는 일도 겸 하였습니다. 지금의 시대로 생각한다면 말도 안되는 사실입니다만, 당시 조선의 사회에서는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모두 잡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궁녀는 후궁과 달리 직업으로 인정하였기에 녹봉을 받기도 하였으며,

임금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어 벼락출세의 신분상승을 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궁녀의 삶은 그리 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궁녀의 자격은 역적의 후손이어서는 안되며, 신체건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처녀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앵무새의 피를 팔목에 떨어트려 피가 묻어나면 처녀, 그렇지 않으면 처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선 궁궐에 들어 오고 나면 늙거나 병들때 까지는 궁궐을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물론 직접 모시던 분이 상을 당할경우 3년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며, 가뭄이나 홍수로 인하여 원풀이로 인하여 궁녀가 방출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궁녀 자체가 '왕의 여자'이었기 때문에 결혼이 금지가 됩니다. 쉽게 말해 궁녀가 뜬금없이 임신을 하였다면 그것은 곧 왕족의 족보를 엉망으로 만들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출궁 후에도 과거 궁녀였다면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궁녀들은 입궁한 지 15년이 지나서 성년식(成年式)을 치루게 되는데, 궁궐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관례(冠禮)를 치룹니다. 쉽게 말해 신랑없는 결혼식으로 '외상관례(外上冠禮)'의 경우라 하겠습니다. 그래고 관례라고 친정에서는 의복은 물론, 잔치음식까지 해들고 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관례가 끝나고 나면 상궁의 아래에서 벗어나 독립하여 궁녀 2인이 한방에 머물게 됩니다. 위에서 밝혔듯이 평생을 홀로 사는 처지인지라 간혹 궁녀들간의 동성애가 있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 후, 주야로 교대로 하는 '상하번제(上下番制)'로 근무를 하거나, 1일단위의 '격일제(隔日制)'로 근무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평생을 궁궐안에 갇혀사는 여인들, 결혼을 물론이고 같은 여인네들 끼리 조차 접촉이 금지되었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삶이 다해 숨을 거두게 되면 이름도 없이 궁녀들의 묘역에 묻히게 됩니다.

일설에는 과거 궁녀들의 무덤은 풍수상 땅의 기운이 없는 곳으로 정하도록 하였습니다.

음기만을 품고 죽은 여인의 한을 다스리기 위함이었겠지요. 그런데 그 자리가 지금의 여의도 서쪽 끝부분이었다고 하는 설(說)이 있습니다. 과거 양과 말을 키우던 곳이라 하여 '양말산(羊馬山)'이라 불리던 곳으로, 바로 '국회의사당'이 있는 자리이지요. 궁녀들의 원혼이 머문자리 위에 지어진 국회의사당, 비록 설? 이라하지만 그래서일까요? 그 속에서는 허구헌날 싸움질에, 분열에, 부정부패에 더하여 '본연의 일!'조차도 내쳐버리는 일들이 다반사이지요? 정말 궁녀들이 헤코지 하는것 아닌가요?^^    

 

     

 

 by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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