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하점면] 천녀의 절터, 고요함이 흐르고..고려산 백련사(高麗山 白蓮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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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인천광역시

2013. 2. 22.

천년의 절터, 고요한 정적이 흐르다.

고려산 백련사(高麗山 白蓮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236  /  032-933-5082

 

천년절터이나,

새로운 가람들로 들어 섰습니다.

그러나, 산세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앉아 있습니다.

바람마저 고요하게 흐르는 절집,

백련사를 찾았습니다.

 

 

 

 

 

강화도의 중심부에 자리한 고려산,

그 옛 이름은 '오련산(五蓮山)'이었습니다. 고구려 장수왕4년(416년), 천축조사가 왕을 알현하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고구려 땅에 사찰을 창건하여 중생을 제도하여야 한다며, 사찰을 창건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에 왕이 허락을 하였고, 천축조사는 동자승을 데리고 절터를 알아보다가 발길을 멈춘 곳이 '혈구군(강화의 옛지명)'입니다. 오랜시간동안의 걸음으로 지친 천축조사가 쉬다가 잠이 들었는데, "산봉우리로 올라가거라."는 백발의 노인을 꿈에서 만나게 됩니다. 

다음날, 천축조사는 오련산에 올랐고, 정상에는 '오련지(五蓮池)'가 있었으며, 오색의 연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조사는 연꽃을 꺽어 하늘로 날려보내니 각기 다른 자리에 연꽃이 내려 앉자, 그 자리에 사찰을 창건하기에 이릅니다. 

횐연꽃이 떨어진 곳이 '백련사(白蓮寺)'이며, 푸른 연꽃이 떨어진곳에 '청련사(靑蓮寺)',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赤蓮寺=현 적석사積石寺)'를 세웠으며, 지금은 폐사터만 남아있지만 노란연꽃이 떨어진 곳에 '황련사(黃蓮寺)', 검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흑련사(黑蓮寺)'를 창건하였다고 전합니다.

 

오련산에서 고려산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은 

고종이 강화로 천도하면서 송도의 고려산 이름을 따서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고려산 백련사(高麗山 白蓮寺)'는 고려산의 서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직할말사로 석축을 높이 쌓고 그 위에 도량을 지은 산지가람의 형태입니다. 산비탈에 이루어진 절집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만나는 본당이 '극락전(極樂殿)'이며, 극락전의 뒤로는 근래에 지어진 2층의 요사가, 앞으로는 템플스테이의 활용처로 쓰이는 요사가 자리합니다. 그 아래로 '범종각(梵鐘閣)'이 자리하고 지척에는 수령 350년의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높이 45m의 위용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삼성각(三聖閣)'이 자리하며, 그 옆으로 처활대사의 '부도탑(浮屠塔)'이 자리합니다. 

 

 

 

 

 

적석사와 마찬가지로 백련사 역시 대부분 새로이 중건 중수 된 건물들입니다.

고종9년(1905년), 극락전을 중수하였고, 1967년 극락전과 삼성각을 중수하였습니다. 1986년 들어 범종각을 조성하였지요. 이로서 천년고찰의 역사를 느낄만한 건물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14, 5세기경에 조성 된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994호 철아미타불좌상을 도난 당하여 지금은 1908년에 봉안한 아미타후불 탱화만이 남아 있습니다.

적석사에는 적석사사적비가 그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면, 백련사에는 처활대사 부도탑이 그 명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순조6년(1806년), 청허휴정(淸虛休靜=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천봉(天峰)의 제자이며, 한평생 염불수행을 하다가 60세에 입적하신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 의 6세손인 '의해당 처활대사(義海堂 處活大師)'의 부도입니다.

 

백련사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려산의 서쪽 능선을 구비구비 타고 올라야 합니다. 햇살이 밝게 비추어 지는 곳이 아닌지라 아직은 겨울의 찬바람이 불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계절만큼은 참 더디게 올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도착한 백련사의 주차장에서는 도량은 보이지 않습니다.

높디 높은 석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이지요. 석축으로 쌓여진 모습에 날씨까지 차가워 서늘하지만, 주차장 바로 옆의 찻집에서 흘러 나오는 고요한 명상의 소리에 산중 산사의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정갈한 단청의 빛, 앳된 나무나음 솔솔 풍기는 아직 그대로의 기둥들.

백련사의 가람들이 최근에 중수 된 이유로 옛 흔적을 찾거나 천년역사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요한 산중의 작은 산사의 품격은 그대로여서 작은 발자국 소리가 그리 크게 들리며, 그 소리마저 정감어린 바스락거림으로 바뀌게 됩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산언덕을 넘어 숲을 지나왔기에 청량하고 시원합니다. 새소리마저 산중에서는 수도정진의 소리가 됩니다.

 

작은 가람의 옛 숨결,

부도전에서만 느끼게 되는 아쉼움이 크지만, 산중에 자리한 산사다운 고요함과 적막함, 그리고 넉넉함을 품은 절집입니다.

 

 

백련사 오르는 길에 자리한 거북받침돌 

 

극락전과 멀리 범종각이 자리합니다. 

 

백련사 '극락전(極樂殿)'

백련사의 본당으로 '아미타전(阿彌陀殿)',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합니다. 주불로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관세음보살과 협시보살을 봉안합니다.

백련사 극락전에는 보물 제994호인 '철아미타불 좌상(鐵阿彌陀佛坐像)'이 봉안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도난을 당하여 1908년에 조성 된 '아미타후불탱화(阿彌陀後佛幀畵)'만이 남아 있습니다. 

 

 

 

 

 

 

백련사 '범종각(梵鐘閣)' 

 

 

은행나무

수령 350년, 수고 45m, 둘레 4m의 은행나무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백련사 '삼성각(三聖閣)'

1967년, 비구니스님 한성탄에 의해 기와불사와 함께 중수한 건물입니다. 

 

백련사 '부도전(浮屠田)'

부도3기와 비석1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면의 부도2기와 비석1기가 의해당 처활대사(義海堂 處活大師)의 부도와 대사의 일대기를 적어 놓은 비석으며 1기의 탑신에는 '여화당(麗華堂)'이라는 당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의해당은 천봉스님의 제자로 휴정스님의 6세손입니다. 60세의 나이로 입적을 하게 되자 문도들이 부도와 비를 세웠다고 전합니다.

좌측에 홀로 선 부도의 탑신에는 '신녀?지탑(信女?之塔)'이라 새겨져 있어 신도의 부도로 추정 되고 있습니다. 

 

 

 

 

 

 

 

by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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