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송해면] 짚풀에 혼(魂)을 담다. 강화 화문석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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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인천광역시

2013. 2. 27.

전통문화의 혼(魂)을 잇다.

'화문석문화관'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 630-1 (장정양오길 413) / 032-930-7060

 

백색자리의 생산지인

송해면 양오리에 세워진 화문석문화관입니다.

화문석을 포함하여,

왕골공예품의 변천과정과

왕골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강화의 특산품, 화문석을 만나보고 왔습니다.

 

 

화문석병풍과 등메

꽃돗자리를 의미하는 화문석은 완초로 짜는 자리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주로 바닥용의 자리로만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색조를 활용하여 전통병풍그림의 양식인 민화를 도입하여 제작한 최초의 화문석 병품작품입니다.

바닥에 깔려 있는 등메는 야생의 골풀로 은경밀직법으로 만들어지는 자리입니다, 전시 된 등메는 현존 최고의 유물로 1890년경에 제작된 것입니다.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江華),

말 그대로 강화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산물들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또한 더불어 그러한 역사속에 문화와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강화화문석은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민족의 문화유산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강화 화문석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송해면 양오리에 그러한 의의를 두고 화문석의 문화발전과 계승을 위하여 '강화 화문석문화관'을 개장하였습니다.

 

'화문석문화관'은 강화 화문석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양오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양오리는 화문석의 발상지로 고려 중엽부터 가내 수공업으로 발전 되었습니다. 고려의 수도역할을 하면서 강화로 이주 해 온 왕실과 신하들을 위하여 최상품의 화문석을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그러한 자리(화문석)의 생산은 조선에 이르러서 도안을 특이하게 하라는 명을 받고 양오리에 거주하던 한충교씨에 의해 지금의 화문석이 완성이 됩니다. 다양한 도안과 개발, 색을 넣은 화문석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민족문화 유산이 된 것이지요.

그러한 화문석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화문석의 발전 과정을 만나 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강화 화문석문화관'입니다.

 

화문석문화관은 2층의 규모로 자리합니다.

1층은 작품전시관 및 체험학습 운영장으로 사용 되며, 2층이 화문석문화관으로 짚풀과 왕골의 재배, 가공, 제작등의 화문석 문화를 알려주는 공간입니다. 더하여 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 이상재(莞草匠 李相宰, 1973~  )'선생님의 작품과 선생의 제자들이 제작한 작품들을 함께 전시 함으로서 실제 화문석의 다양한 쓰임새를 알게 되고 직접 구매, 제작의뢰도 이루어 지고 있는 공간입니다.

 

 

화문석문화관 전경

 

 

 

'화문석(花紋席)'

'꽃 문양을 하고 있는 자리'라는 듯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일명 '꽃돗자리', 또는 '꽃자리'라고도 불립니다.

그 중 화문석의 주 재료인 왕골은 강화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으뜸으로 이름 나 있습니다. 기후조건이 알맞아 왕골의 질이 좋으며, 옛 시절부터 전해내려오는 숙련된 장인들의 솜씨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왕골은 질기고 윤기가 강하면서도 통풍이 탁월하여 여름이라면 땀 흡수는 물론 건조의 역할까지도 겸하였으며, 무더위에 짓무른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어 주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름에만 이로우냐? 그렇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가운 냉기를 막아주는 방풍막으로 인정을 받아 고려당시 원나라와 송나라에 보내는 품목 중 하나였을 정도입니다. 조선시대에도 그 인기는 끓이지 않아 청나라와 일본의 선사품으로도 선정 되었습니다.

 

그러나 화문석을 제작하는 방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60만번의 손길이 간다."라는 화문석,

우선, 4월에 못자리를 만들어 씨를 뿌리고, 한달여가 지나면 논으로 옮겨 심습니다.

이 후에도 거름을 주고 김매는 작업을 쉬지 않아야 하지요. 그리고 8월이 되어서야 '짚풀(왕골)'을 거둡니다. 그리고 베어낸 왕골은 줄기를 잘라내고 가닥을 내어 이슬을 맞혀가며 몇일동안 바짝 말립니다. 그리고 말린 왕골을 다시 물에 담가둡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여 거친 후에, 물에 불은 속을 칼로 훑어내고 나서 문양에 따라 뽑아 쓰기 좋도록 죽으로 엮어 건조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화문석 제작의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작과정은 둘째치고서라도 성인3명이 한조를 이루어 하루10시간을 일주일을 작업해야 한장의 화문석이 완성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그 정도도 숙련된 손길의 경우이지요. 

한장을 만드는 동안의 시간과 노동은 완성된 화문석의 가격이 입증을 합니다. 제법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쉽게 강화도에서는 딸 셋이 되면 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 화문석을 제작하기 위한 한팀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지금 현재도 화문석 한장은 50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를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화문석문화관 티켓 및 안내 

 

 

 

어제부터 왕골의 제작이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고려시대, 수도가 강화에 머물면서 왕골은 지역의 특산물로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가기전 까지 왕골, 화문석의 문양은 극히 단조로웠습니다. 왕골의 생삭만을 간직한 백화문석이 있었는가 하면 이 후 발전하여 '용문(龍紋)', '호문(虎紋)', '십장생(十長生)'으로까지 확대 되었습니다. 그러던 조선 중엽, 왕실의 명에 따라 "왕골의 문양을 차별히 하라."하여 현 화문석문화관이 자리한 양오리의 한충교 선생이 다양한 문양을 연구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이로서 '수복강령(壽福康寧)', '만수무강(萬壽無疆)'을 비롯하여 '원앙(鴛鴦)', '산수(山水)', '완자(卍字)', '민화(民畵)'등의 폭 넓은 소재를 자유스럽게 화문석에 적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와 개발은 현대에 이르러 염색과 채색기술을 접목함으로서 전통디자인은 물론, 서양의 디자인도 흡수하여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것입니다. 그리하여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문양은 물론이고 '학문(鶴紋)', '매화문(梅花紋)', '모란문(牡丹紋)'등과 함께, 거북, 사슴과 구름, 소나무등이 도안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수를 더한 풍경의 문양도 도안되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화문석의 제작은 오로지 장인의 '손놀림'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화문석을 제작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완초 화문석등의 소품공예등을 제작하는 방식인 '노경소직법(露經疎織法)'과 등메(돗자리)를 제작하는 방식인 '은경밀직법(隱經密織法)'으로 나누어 집니다.

노경소직법은 순수한 장인의 손놀림으로 만들어지는 작업과정으로 날줄을 겉으로 드러나 보이도록 성글게 짜는 기법이며, 은경직밀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돗틀에 씨실을 촘촘히 걸고 긴 대바늘에 꿴 자리에 알을 넣어가며 눌러 다져서 짜는 방법으로 날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촘촘히 짜는 기법을 말합니다.

즉, 화문석, 꽃자리, 꽃돗자리, 방석등은 '노경소직'으로, 돗방석과 돗자리등은 '은경밀직'으로 제작하게 됩니다.

 

 

 

문화관 1층, 우수작품 전시관및 공예품 전시관

주로 교육과 체험의 장소로 활용되며, 전시장 내에는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함께 전시됩니다. 또한, 각종 문양의 화문석과 꽃삼합등의 소품등이 전시되고 있는데 생각하고 있는 다른 디자인이나 도안이 있다면 그것을 왕골공예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화문석입니다.

이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제작 되어 지금에 이르기 가지 각종 도안과 문양, 색과 빛이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더욱 몸값이 높아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오래전인 고려시대부터도 화문석의 인기는 상당하였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그 수요가 급증을 하였지요. 이로서 조선을 개국하면서 이전부터 있던 '장흥고(長興庫)'를 재편성하여 '유지(油紙)', '포(布)', '지(紙)', '화문석(花紋席)'등 궁궐에서 쓰이는 물품등을 조달, 관리하도록 할 정도였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楓石 徐有榘, 1764~1845)'선생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기록 되기를,

고가의 화문석은 고급스러운 왕골인 '용수초(龍鬚草)'로 만들어 졌으며, 문양에 따라서 누른빛의 국화무늬 돗자리 '황화석(黃花席)', 오색으로 짠 용무늬의 '오채룡문석(五彩龍紋席)', 다섯개의 용 발톱을 묘사한 '오조룡석(五爪龍席)' 그리고 여러 빛으로 만들어 낸 돗자리인 '잡채화석(雜彩花席)'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혼(魂)'이 서린 화문석!

화문석문화관에서 그러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왕골공예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변화를 만날 수 있으며, 동시에 왕골공예를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 되어 있습니다.

 

왕골공예의 산실, 강화 '화문석문화관'은 공예예술의 알림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공간입니다.

 

 

 

 

1층 안쪽의 작업장 

 

 

  전시장 내의 작품

(좌) 제30회 인천광역시 공예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한명숙'님의  '선수 선착장의 낙조'이며,

(우) 제23회 강화 왕골공예품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김선희'님의 '석모도'입니다.

(원래 작품들을 마크로 촬영하지 않습니다만, 문화관 관계자님의 허락을 구하고 촬영하였습니다. 혹, 당사자님이 보시고 불편하시다면 댓글 주시면 바로 삭제, 수정 하겠습니다.)

 

화문석등의 소품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주문제작도 가능합니다. 

 

화문석문화관 2층 전시관 

 

전시관 입구의 '호문(虎紋)' 

 

짚풀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우리생활에서의 짚풀의 쓰임새를 모형, 패널로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또한 실제로 사용된 다양한 짚풀의 재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재배와 가공을 알려주는 디오라마입니다.

왕골의 재취를 위하여

씨부리기, 묘기를기 > 옮겨심기, 거름주기 > 수확하기 > 건조하기 > 정련, 표백하기 > 염색, 건조하기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왕골공예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완성된 화문석을 선조들은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전통적인 주거공간 중에 사랑방을 재현한 공간입니다. 

 

무형문화재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화문석의 맥을 이어온 장인의 유품과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그 맥을 잇는 분들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가 되고 있습니다. 

 

 

 

 

  

 

  

 

  

화문석 디자인 프로그램을 통하여 직접 화문석의 문양을 도안 해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INFO...

강화 화문석문화관

www.ghss.or.kr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장정양오길 413 (舊, 양오리 630-1)  /  032-930-7060

관람시간 : 09:00~18:00

관람요금 : 성인 1,000원, 청소년,군인 700원, 어린이 500원

주차요금 : 무료

휴관일 : 1월1일, 설날, 추석 당일

-왕골공예체험학습 : 초등학생 이상으로  1주일전 전화예약 (1인 비용 5,000원)

-왕골취미교양교육 : 강화군 거주자로 전화예약 신청 (수, 금 주2회 4시간, 수강료 무료)

찾아가는 길 :

 

 

by 박성환

www.gilson.asia